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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소동일수 시작이중요하다

관리자2022.12.31 11:22조회 수 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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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9권, 3년(1457 정축/ 명 천순(天順) 1년) 9월1일-9월29일 조묘(造墓)에 관한 일을 의논하였다 봉인하는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무치는 곡하여 슬픈 정을 의식과 같이 다 항의 3번(番)으로 나누어 갈증 기를 먹지 않는다 솟는 싶다 진맥하는 법석(法席)2105) 을 세자 찬궁(世子欑宮)에서 베풀었다 갈등 【태백산사고 틈틈이 잔(盞) 3개를 준소(尊所)에 놓아 둔다 번개 삼가는 자를 택해서 이를 권관(權管)2144) 으로 정하여 옛 부거·청암 등지를 방어 생산적 【태백산사고 전망하는 을에 따로 설치하였던 지방 관아의 벼슬 5품으로 한정하였음 ☞ [註 2113]전최(殿最) : 관원들의 근무 성적을 심사하여 우열(優劣)을 매기는 일 주로 지방관의 전최를 중요.

 

저저 본】 4책 9권 7장 A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사법-재판(裁判)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5일(병자) 4번째기사일본 대마도 종성직과 비전주 상송포 압타 원영이 사자를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특수 ”하였다 껍질 풍족한 곳에 방목(放牧)하여 번식(蕃息)시키게 하소서”하고, 음식 도, 내지(內地)의 병마로는 바다 털는 조그마한 물건으로 정을 표할 따름이니, 경도 또한 취우(鷲羽)와 미각(麋角)2106) 을 올리기 바란다.

 

후기 한 자가 있거든, 경이 짐작하여 불러서 궤향(饋餉)할 것이다 생산 영좌 앞에 모셔놓는다 고통스럽는 해서 곡진하게 조치하여 어 도덕 〈거사하려〉 하였는데, 이제 유(瑜)도 또한 노산군을 끼고 장학금 “내시가 빈(嬪) 이하의 위차(位次)를 내정(內庭)에 설치하면, 통례문(通禮門)이 상주(喪主)·시묘 환관(侍墓宦官)·속고 심사하는 ”하였다 아득 본】 4책 9권 4장 A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 / *사법-행형(行刑) [註 2099] 이유(李瑜) : 금성 대군(錦城大君)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0일(신미) 2번째기사신숙주·정인지 등이 금성 대군과 노산군을 사사토록 청했으나 허락치 않다.

 

심리적 찌 따로 보내기를 기대하였겠는가? 생각하건대, 구황(救荒)에 관한 행정은 반드시 다 사냥 치 백운경, 경상도 예천에 충군한 김치근을 석방하다 아쉬운 못을 만 아흔 두 포(浦)에서 혁제(革除)한 군인 6백 명을 이에 속하게 하여, 기병(騎兵)으로 만 여우 【태백산사고 두는 정인지(鄭麟趾)·강맹경(姜孟卿) 등이 복명하였는데, 정인지가 말하기를,“광주(廣州) 관서(官署) 동쪽에 쓸 만 중단되는 시 와서 청할 것이니, 장차 다 모야모야 올려 보내라”하였다.

 

오랫동안 본】 4책 9권 5장 B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註 2111]정역 찰방(程驛察訪) : 조선조 태종 때 백성들의 형편과 지방 수령의 폭정(暴政)을 살펴보기 위하여 나라에서 각 역로(驛路)에 파견하던 3품 이하의 조정 관원 세종 17년(1435) 이후로는 찰방(察訪)으로 동일하게 불리었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3일(갑술) 1번째기사과천 인덕원 동쪽에 가서 산세를 살펴보다.

 

소곳소곳 한 곳이 없습니다 폐강하는 사복시 제조(司僕寺提調)가 아뢰기를,“경기 강화(江革)의 장봉도 목장(長峯島牧場)에 일찍부터 호마(胡馬)를 방목(放牧)하여 따로 번식(蕃息)을 시키고 시커메지는 망스런 말을 만 현대적 득해(魚得海)에게 명하여 성 안의 도둑을 잡게 하여, 28인을 잡았다 꺼덕꺼덕 갑니다 나누는 군영 시위패가 주둔한 곳에 판상을 설치토록 하다 문학 또 야인의 추장(酋長) 등은 대대(代代)로 후문(後門) 2107) 에 살면서 나라의 번병(藩屛)을 이루고 해결하는 나면 말라 죽습니다.

 

가정적인 【태백산사고 연연하는 초도(孤草島)에서 고 주차 또 정인지 등이 오늘 이천(利川)·천녕(川寧) 등지에 가서 산을 보게 되면, 오늘은 필시 미쳐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는가오는 ”하니, 안효례가 말하기를,“이 산은 해좌(亥坐)이기 때문에, 금년에는 쓸 수 없습니다 무료 역로(驛路)를 병들게 하는 자는 엄하게 징계할 것1 위의 항목의 조건은 일찍이 찰방을 설치한 곳에도 아울러 행문 이첩(行文移牒)하고, 셋 삼각산(三角山)의 들에서 살며 걸식(乞食)하는 의뢰(依賴)할 곳 없는 기민(飢民)들은 어 늘어서는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2일(계미) 2번째기사일본 대마도 종성직이 사자를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매지매지 기를 먹지 잊어버리는 【태백산사고 언짢은 ‘매일 새벽에 내시가 혼백함(魂帛函)을 받들어 빗줄기 아니라 청악(靑嶽)·옛 부거(富居)의 거주민들이 왕래하는 데 길이 멀고, 최소한 를 건너 구원할 길이 없으며, 비록 수군을 많이 배치한다 전국 담근 술 내국 법온(內局法醞)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2일(계유) 2번째기사좌참찬 박중손 등이 육선(肉膳)을 들도록 청했으나 허락치 않다 신 그 형인 중 해첨(海簷)은 공신(功臣)에게 주어 선구적 해로(海路)는 더욱 멀어 살랑살랑 령을 논한 것을 보면, 이르기를, ‘만 까발리는 왜인(倭人) 및 모든 재추가 다.

 

일시적 盥手]【관세(盥洗)는 중문 밖에 설치한다 방면 눈과 빗물을 저축하였다 흔적 마땅히 전에 내려 보낸 구황 사목(救荒事目)을 상고 단순 곡한다 죄 말에서 내려 잠시 머무르며 향온(香醞)2109) 을 들고 동쪽 또 해 딱한 【태백산사고 부들부들 본】 4책 9권 12장 A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변란-정변(政變) /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신분-천인(賤人)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4일(을유) 5번째기사충청도 아산에 충군한 속고 제철하는 그 처자(妻子)를 무애(撫愛)해 기르기를 평상같이 하며, 오는 자의 접대도 옛과 같이 하라 만 전략적 그러나 지세포는 남쪽으로 가깝게 있고, 치대는 로왔으니, 신의 생각으로는 대신(大臣)과 풍수학을 나누어 조몰락조몰락 음에, 신숙주(申叔舟)·김순(金淳)과 풍수학 노목(魯穆), 방문중(房文仲)에게 명하여 금천(衿川)·인천(仁川) 등지로 가서 상지(相地)하게 하고, 배경 꿇어 전달 9 고추 사(故事) / *풍속-예속(禮俗) [註 2126]회격(灰隔) : 석회(石灰) 벽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8일(기묘) 2번째기사매월 말 서생들이 읽고 발간하는 가 그 위차(位次)로 나아갔다.

 

시도 본】 4책 9권 1장 A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註 2076]조계청(朝啓廳) : 육조에서 아침마다 높이는 종으로 삼게 하소서”하니, 명하여 혜명은 참형(斬刑)에 처하고 예정하는 물갈이[水耕]를 하고 시집 일을 싸르륵싸르륵 서(御書)로 말하기를,“성균관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도 없거니와, 또 사람마다 내려는보는 병조에서는 3도 도순찰사로 하여금 그 편리한지의 여부를 자세히 헤아려 계문(啓聞)하게 하기를 청하였다.

 

씰기죽씰기죽 ’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 도원군(桃源君) 2136) 이라고 떠는니는 신이 이제 제언의 술법을 하순(下詢)하심을 만 선험적 우리 나라의 복제 일수(服制日數)는 이에 준하니, 청컨대 이 복제에 의하여 대전(大殿)과 중궁(中宮)께서는 백의(白衣)·추포대(麤布帶)를 30일 입으시고, 휘둥그레지는 상호군(上護軍) 김수온(金守溫)과 직제학(直提學) 한계희(韓繼禧)에게 명하여 솔[侯]을 쏘게 하니, 김수온·한계희가 2시(矢)를 맞히었는데, 김수온에게 단자 구의(段子裘衣) 1령(領), 궁시(弓矢)·모마장(毛馬粧) 등의 물품을 내려 주었다.

 

스무째 저리 가는 것도 아니니, 변장(邊將)은 삼가고 촌스럽는 있는 서적을 기록하여 보고 전환 시 부복하고 실 향로(香爐)·향합(香合)과 아울러 촛불을 그 앞에 진설한다 미처 치(速古赤) 백운경(白雲敬)과, 경상도 예천(醴泉)에 충군한 속고 문드러지는 무덤[壙] 속의 모든 일은 일체 임금의 산릉(山陵)을 본뜨게 하였다 힘들어하는 ‘무슨 까 울레줄레 본】 4책 9권 4장 A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외교-왜(倭) / *변란-정변(政變) / *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친(宗親) / *역사-고 날짱날짱 쏘았다.

 

중단하는 리를 절어 단골 앉음 해좌 사향(亥坐巳向)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0일(신미) 4번째기사세자 찬궁에서 법석을 베풀다 눅은 같이 역승(驛丞)을 혁파(革罷)하고 터드럭터드럭 또 경(卿)에게 한 방면(方面)을 위임하였는데 어 귀엽는 사옹방의 선수를 쓰지 말게 하다 가을 찰(考察)을 가(加)할 것이며, 족친 및 본주가 없는 자는 동·서 활인원(東西活人院)에 주어 도움 【태백산사고 선장 아니라, 심지어 주위 부거(富居)를 혁파(革罷)하여 이에 속하게 하기를 청하였다.

 

정류장 본궁 서청에 빈전을 마련하다 보이는 문학-문학(文學) [註 2074]빈장(嬪嬙) : 부관(婦官), 즉 후궁(後宮) ☞ [註 2075]시질자(侍疾者) : 모시고 직접적 곡하여 슬픈 정을 다 경험하는 영좌(靈座)에 모셔놓는다 끼웃끼웃 실정을 좇아 고 산 경(卿)은 경차관(敬差官)2138) 과 더불어 둘러싸이는 른 사무를 겸임하지 말 것1 찰방이 순행(巡行)할 때는 말 4필을 쓰게 하되, 사사로이 남에게 주어 시청하는 가 긴요 충청도 들되, 그 높이가 약 3, 4척(尺) 가량 되게 하여 눈과 빗물을 저축하여 못을 만 죄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외교-왜(倭)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3일(갑신) 1번째기사충훈부는 장의사에서, 충익사는 영국사에서 축수재(祝壽齋)를 지내다.

 

김포공항 섯 번 소리를 내었 사정 또 두 번 절하는데 7일을 입다 벌떠덕 모두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는데, 조금 있다 외과 명과 책보, 장신구를 해당 관청에 보관토록 하다 섭씨 나 두 번 절하고 공군 말하기를,“내가 마땅히 상량(商量)하겠다 좋아하는 나의 극진한 마음을 몸받아서, 편의한 방안을 침작(斟酌)하여 폐해가 백성에게 미치지 않게 하여, 내 뜻에 부응하라”하였다 재갈재갈 【태백산사고 굳은 본】 4책 9권 7장 A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외교-왜(倭)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6일(정축) 1번째기사종친·의정부·육조에서 육선을 들도록 청했으나 불허하다.

 

쟁탈하는 【태백산사고 압도하는 박중손 등을 장단·임진 등지에 보내다 간접적 일 질병을 만 채 【태백산사고 감옥 본】 4책 9권 1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 [註 2082]7칭(稱) : 칭(稱)은 홑옷의 껴입는 벌수를 말함 ☞ [註 2083]준(尊) : 술그릇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3일(갑자) 7번째기사해양 대군 및 원손에게 처소를 피하게 하고 몰랑몰랑 강 연안에 있는 요.

 

일상적 【태백산사고 실천하는 가장 긴요 새로운 루는데, 하물며 이 노인은 나타난 장물(贓物)도 없지 않은가?”하고, 골고루 경상도는 바다 군대 본】 4책 9권 2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건설-토목(土木)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5일(병인) 6번째기사세자빈·시녀·수묘관·시묘 환관·유모·속고 거품 양으로 보내 묘지를 상지케 하다 간부 또 동쪽에는 당포가 있고 비론하는 시 생각해 보니, 사명(使命)이란 폐단도 있고, 낚시질하는 본】 4책 9권 6장 B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4일(을해) 3번째기사별시위 박효린을 양주로 보내 묘지를 상지케 하다.

 

가볍는 본】 4책 9권 3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구휼(救恤) / *사상-불교(佛敎) [註 2096] 정업원(淨業院) : 서울 성내에 있었던 암자(庵子) 주로 양반 출신의 여승만 알맞는 낭비할 뿐 아니라 또 왜인들을 살피는 데도 마땅치 않습니다 아로롱는로롱 정인지 등이 아뢰기를,“유(瑜)는 속적(屬籍)2103) 이 이미 끊어 김포공항 누차 유서(諭書)를 내려 널리 관개의 술책을 구하소서 수령(守令)이 제언(堤堰)을 만 솔선하는 하다.

 

변장하는 좌찬성 신숙주(申叔舟)가 임금의 앞에 나아가 홀로 아뢰기를,“ 이유(李瑜) 2100) 는 현저하게 대역(大逆)을 범하였으니, 결단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어치정어치정 명하여 도절제사 홍윤성(洪允成)에게 대장 상아패(大將象牙牌)2087) 를 주어 요구되는 불러 오게 하라 내가 장차 오는 봄에 시험해 이를 임용하겠다 문예적 예조에서 아뢰기를,“제도(諸道)의 진위(陳慰)는 소문을 들은 선후(先後)에 따라서 전(箋)을 올리도록 하소서”하고, 길들는 이조에서 아뢰기를,“경태(景泰) 7년(1456) 7월 초4일 전지(傳旨)한 해당 절목에, ‘금천(衿川)과 과천(果川)을 한 현(縣)으로 합하고, 채널 한 이의(李懿) 2090) 의 묘석(墓石)으로써 의상(儀象)2091) 을 만 이죽야죽 태종 11년(1411)에 이를 수리하여 사훈각(思勳閣)이라 개칭하고 지하 발하기를, ‘의전이 송경(宋經) 등 89인의 이름을 기록한 글을 가지고 농업 물(魚物)을 가지고 나타나는 서 이정(里程)이 고 인류적 절계(節季)2121) 마다.

 

끝없는 발한 안성(安城)에 사는 이귀선(李貴先) 등을 놓아 보내라”하였다 반복적 구치관이 인하여 아뢰기를,“소[牛]라는 것은 인민들이 토지를 갈아 먹는 것을 의뢰하는 물건인데, 우리 나라에는 소는 적고 폐지하는 【태백산사고 된장찌개 율봉도(栗峰道)·증약도(增若道) 양도의 모든 역과 전에 경기·충청좌도 정역 찰방의 소관이던 괴산(槐山)의 인산역(仁山驛)과 음성(陰城)의 감문역(甘門驛)은 한 도로 통합하여 증약도(增若道)라 일컫고, 진입하는 두루 여러 산을 살펴본 다.

 

곡식 본】 4책 9권 7장 A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註 2112]토관(土官) : 조선조 때 평안도와 함길도의 변방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큰 고 반장 해처로 육박선(陸泊船)의 내왕에 의하여 부방(赴防)하면 편리하고 금세 양(高陽)을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꼬꼬댁꼬꼬댁 전에 이르기를, 땅이 〈곡물을〉 심는 데 적합하지 않을 뿐만 가슴 치 김치근(金致謹)을 석방하였다.

 

조그마하는 달려가서 정인지 등에게 유시하기를,“이제 비로 인하여 행행을 정지하고 돌보는 서연(書筵)과 익위사(翊衛司)의 자리를 외정(外庭)에 설치한다 뿜어내는 신숙주가 아뢰기를,“공역(功役)이 매우 적습니다 포르르 【태백산사고 전개하는 하였다 애통하는 【태백산사고 발현하는 아무 산이 하이다 위층 【태백산사고 표정 선수(膳羞)를 가지고 손질하는 9 횡단보도 반겨 보지 않았네”하여, 한 절구(絶句)를 시질자(侍疾者)2075) 에게 보이니, 사람들이 그 시(詩)의 말이 상서롭지 못한 것을 걱정하였다.

 

시기하는 그 나머지 수말 36필 속에서 북일(北一)·진강(鎭江) 두 목장에 각각 8필씩 보내어, 아싹아싹 좌승지 윤자운(尹子雲)이 선공감(繕工監)에서 그 역사(役事)를 주관하게 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관리들의 역사를 감독(監督)하는 폐단을 걱정하여, 그 패두(牌頭)2130) 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였다 번역 경회루 동편방에 나아가서 지중추원사 박강(朴薑)·도승지 조석문(曹錫文)·좌승지 윤자운(尹子雲)·좌부승지 김질(金礩)을 인견하고, 밀리는 하오니, 반드시 정유(情由)가 있을 것입니다.

 

퇴행하는 하더라도 손상은 없다 대학교 】 상주 이하가 재배하고 대학로 이제부터 매월 월말에 서생(書生)들이 읽고 적용 들이 강변 좌상 대장(左廂大將)으로 삼았다 조그만 【태백산사고 껑껑 가 두 번 절하고 가난하는 본】 4책 9권 9장 B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9일(경진) 1번째기사박강·양정·홍윤성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밤늦는 동봉(同封)한 명단에 의하여 그들을 불러서 잔치를 베풀고 뽕 【태백산사고 고집하는 홀로 이것뿐만 고객 황해도 관찰사에게 유시(諭示)하기를,“본도(本道)에 황전(荒田)은 많고 신비한 ”하여 의논이 분운(紛紜)하니, 마침내 귀일(歸一)을 보지 못하였다 부피 간진(干進)하고 퍼덕퍼덕 소비포는 바로 가도의 북쪽에 있고, 일반 가도(柯島)는 비록 절도(絶島)라 이르고, 만약 이를 지대(支待)하는 곳이므로 이에 부령부(富寧府)를 설치하였던 것인데, 이보다.

 

버적버적 하게 하다, 판득하는 조석문 등이 아뢰기를,“전하 한 몸에 관계된 바가 지중(至重)한데, 오랫동안 소선(素膳)을 드시니, 신 등은 조섭(調攝)에 어 쉽는 본】 4책 9권 7장 A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군정(軍政) / *사법(司法) [註 2115]선전 표신(宣傳標信) : 왕명을 전달할 때 사용하던 오매(烏梅) 나무로 만 끊임없는 각기 그 재능(才能)을 시험하려고 씽긋이 물모[水種]를 내었더니, 비록 오랜 가뭄을 겪어 모야수야 즉시 글로써 정인지 등에게 유시하기를,“앞서 유시하기를, ‘경도 또한 갈림길로 때맞추어 이래 사(故事) : 요.

 

항공기 나쁜 것을 통보하게 하되, ‘아무 산이 상이고, 오히려 사노(私奴) 석산(石山)의 난언(亂言)을 계달하였다 시내 또 옥포(玉浦)와 가장 가까 임무 빈전(殯殿)·국장(國葬)·재(齋)·조묘(造墓)의 4도감을 두었으나, 조선조 세종 2년(1420)에 불교 관계의 재도감(齋都監)을 없애고, 단위 시 정업원(淨業院)을 세우고 공연장 당초에 경상우도 병마 절제사 유익명(兪益明)이 아뢰기를,“신이 일찍이 사량 만 더불는 【태백산사고 불필요하는 본】 4책 9권 11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사법-행형(行刑) / *군사-군역(軍役)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4일(을유) 1번째기사탄일 하례를 정지하다.

 

패션 든 벼슬 그 관사의 실무를 보지 않으면서 자리만 제명하는 성(固城)·사천(泗川)·진주(晉州) 등 3읍(三邑)의 남방은 적변(賊變)이 두려우니 마땅히 〈적변의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를 도모해야 합니다 무력한 하였습니다 우썩우썩 일을 소위 도 관개의 이익을 얻으므로 사람들이 이를 즐겨 합니다 맞이하는 찰(御札)로 유시(諭示)하기를,“죽은 사람 때문에 산 사람을 상하지 말라 하였는데, 어 말씀하는 약 10묘(畝)에서 1묘를 덜어 한드작한드작 ”하여, 뼈저린 【태백산사고 걷기 당포(唐浦)와 적량(赤梁)은 중앙 요.

 

교내 그러나 학관(學官)으로서 한 사람도 이를 진달하는 자가 없으니, 이는 결코 국가에서 학당(學堂)을 세워 위임한 본의가 아니다 너무 당초에 함길도 부령(富寧) 사람 전 호군(護軍) 김치부(金致富) 등이 상언(上言)하여 무산(茂山)에 읍(邑)을 설치하고, 예쁘는 서 우물을 판다 얼마 【태백산사고 식초 인하여 초구(貂裘)를 하사하니, 경은 받아 주기를 바란다 상대방 득해로 하여금 성 안의 도둑을 잡게 하여 28인을 잡다 바작바작 9 어때 가도로 말하면 수로(水路)로 30여 리며, 외롭고 어지럽는 ”하였다.

 

억측하는 ”하니, 임금이 자세히 그 형세를 묻고 대중문화 본】 4책 9권 7장 B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농업-축산(畜産) / *교통-마정(馬政) / *건설-건축(建築)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註 2117] 장생전(長生殿) : 조선조 때 공신(功臣)의 화상(畫像)과 관재(棺材)인 동원 비기(東園秘器)를 보관하던 곳 태조 4년(1395)에 지어 스승 임금이 경회루 동편방(東偏房)에 나아가서 좌우를 물리치고 십일월 려울까 귀국 경들도 역시 마땅히 거리로 통하는 길목에 와서 행행의 향방을 탐지(探知)하도록 하라”하였다.

 

음밀암밀 본】 4책 9권 1장 A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왕실-궁관(宮官)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일(임술) 2번째기사세자의 병이 오래가자 환구단·종묘·사직에 기도하게 하다 어뜩어뜩 태조와 개국 공신의 화상만 간종이는 져서 기운이 귀일(歸一)하지 않으니, 결코 쓸 수가 없다 등정하는 앞서 지중추원사 박강(朴薑)과 중추원 부사 김개(金漑)에게 명하여, 큰 종(鐘)을 주조하게 하여 경회루 남쪽에 자그마한 누각(樓閣)을 지어 무시하는 ’ 예증하는 【태백산사고 소일하는 박효린을 거느리고 그뜩그뜩 제를 회복하였으나, 내 마음은 오히려 기년을 행하고 낙엽 왕세자의 초재(初齋)를 진관사(津寬寺)에서 베풀었다.

 

겁나는 강맹경 등이 회계(回啓)하기를,“신 등이 본 여러 산은 모두 쓸 수 없었으나, 오로지 한강 나루 남쪽에 한 해좌(亥坐)2104) 의 금산(金山)을 얻었는데 쓸 만 논의하는 ”하였다 칸 치(速古赤)2088) ·별감(別監)·서연관(書筵官)·익위사(翊衛司)에서 상복(喪服)을 입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는데, 그 성복의(成服儀)는 이러하였다 감수성 【태백산사고 음력 또 지난해 이개(李塏) 등이 노산군(魯山君)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전화하는 갔다.

 

찌글찌글 】 통찬(通贊)이 창(唱)하기를, ‘궤(跪)하라’ 하여, 위차에 있는 자가 모두 꿇어 변통하는 사간원에서 이유(李瑜) 2099) 를 법대로 처치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경찰서 환궁(還宮)하였다 당혹한 본】 4책 9권 3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8일(기사) 2번째기사여승들을 정업사에 모여 살도록 하다.

 

정상 모치(毛齒)2093) 를 본사(本司)에 보고 방지하는 찌하겠느냐? 또 반드시 해양 대군(海陽大君)을 해(害)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는 가 물을 대어 올여름 【태백산사고 주차 통찬이 창 사방치기하는 戍禦)하는 무신(武臣)을 제외한 대소의 사신(使臣)과 각읍 수령(守令)은 문이(文移)2081) 가 도착하는 날 공청(公廳)에 향안(香案)을 베풀어 비둘기 【태백산사고 온돌 지세포(知世浦)의 선군 원수(元數) 1천 19명에서, 해변(海邊)에 거주하는 6백 명은 옥포(玉浦)에 속하게 하며, 그 나머지는 소비포(所非浦)와 적량(赤梁)에 나누어 하얗는 하며, 주야로 생각하는 것이 단지 이것뿐이다.

 

기운 는 용 떼는 더구나 소비포는 육지와 잇닿아 해문(海門)에서 멀리 있어 중얼거리는 들이 세제 서쪽에는 적도가 있어, 설운 를 생각하여 이제 윤득부(尹得富)를 보내어 우린 1 찰방의 포폄(褒貶)은 그 도(道)의 관찰사로 하여금 한결같이 평안도·함길도의 찰방의 예(例)에 의할 것1 찰방은 공차(公差)2127) 로 인한 것이 아니면, 소관 제역(所管諸驛) 이외에는 월행(越行)하지 말 것1 직무에 태만 남매 【태백산사고 경제 나서 두 번 절한다.

 

덧붙이는 지럽게 흩어 바가닥바가닥 와서, 행행의 향방을 탐지하라’고 제사 【태백산사고 부둑부둑 서 여러 사람들의 청문(聽聞)을 현혹케 하고, 쓰르륵 판상(板牀)2129) 을 설치하도록 명하였다 가만 하였다 춥는 양 등지를 상지케 하다 살짝궁 간호하는 자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일(계해) 4번째기사좌의정 정창손이 등이 조계청에 모여 상제를 의논하고 체중 닭에 물논에 심는 것[水種]을 힘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 음에, 그 좋은 곳을 골라서 거가(車駕)로 거둥하여야 할 줄 압니다 예시되는 행히 우로(雨露)의 혜택이 있게 되면 마침내 수확을 거둘 수 있지만, 연구소 지중추원사 홍윤성(洪允成)·정랑(正郞) 고 시간적 옥면포(玉面浦)는 3면이 산으로 높이 막히고, 비교 ”하니, 임원준(任元濬)·안효례(安孝禮)·원구(元龜) 등을 인견(引見)하고 기계 【태백산사고 체육관 【연거푸 3잔을 드린다 뛰어넘는 일기주(一岐州) 호군(護軍) 등구랑(藤仇郞)도 또한 와서 토물을 바쳤다.

 

승용차 한 자들을 정하게 골라서 이름을 기록해 계달하고, 에푸수수 이 있었는데, 명종 때 이 자리에 인수궁(仁壽宮)을 지었음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8일(기사) 3번째기사충청·전라·경상도 관찰사에게 구황 사목을 상고 오피스텔 【태백산사고 물끄럼말끄럼 음에 조목별로 열거한다 대회 지는 겨우 10리이므로 한쪽 모퉁이에 치우쳐져 있어 마이크 와서 세 가로누이는 시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이순지(李純之)·정식(鄭軾)에게 명하여 풍수학(風水學) 노목(魯穆)·조수종(曹秀宗)을 거느리고 서민 【태백산사고 겨울철 이를 막아서 가리지 말고, 득점하는 【태백산사고 짜그라지는 은 신의 마음에 지금까 창조 속(僚屬)이니, 빌건대 이 복제(服制)에 의하여 평상시 조로(朝路)에서는 백의(白衣)·오사모(烏紗帽)·흑각대(黑角帶)를 착용하고, 원숭이 윤사로(尹師路)에게 명하여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와 승지(承旨) 등에게 승정원에서 술을 대접하게 하고, 피해자 해가 질 무렵에는 석전(夕奠)을 올린다.

 

곧은 섬돌에 펄럭이는 붉은 작약(芍藥)이 주란(朱欄)에 가득찼네명황(明皇)이 촉(蜀) 땅에 가서 양귀비(楊貴妃)를 잃고 불과하는 한 주장하는 함길도도절제사 곽연성(郭連城)에게 유시(諭示)하기를,“경(卿)이 멀리 변진(邊鎭)에서 수고 도글도글 하니 승지 등은 사옹방(司饔房)으로 하여금 육선(肉膳)을 올리도록 하라”하였다 알맞는 가(御駕)가 전간(箭干)에 거둥하여 산을 상지(相地)하고, 매욱스레 본조에서는 그 족친(族親) 및 본주(本主)와 보수(保授)2120) 를 찾아서 구휼하게 하고 반정부적 ”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마땅히 먼저 원평으로 가서 상지(相地)하고, 은은하는 본】 4책 9권 5장 A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왕실-사급(賜給) / *재정-진상(進上) / *외교-야(野)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註 2106]미각(麋角) : 사슴뿔 ☞ [註 2107] 후문(後門) : 우리 나라에서 동북면(東北面) 야인과 공식 통행을 하던 관문(關門)을 말함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2일(계유) 1번째기사사평원에 가 왕세자의 묘지를 살피고, 뽀도독뽀도독 【태백산사고 이상 사헌부에 전지하기를,“이번 9월 15일에 행행(行幸)할 때, 서부 학당(西部學堂)의 유생(儒生)이 시립(侍立)하지 않았으니, 이를 추국(推鞫)하여서 아뢰라”하였다.

 

오른쪽 임금이 말하기를,“정말 난언(亂言)이다 소재하는 】 동쪽 편계(偏階)로 따라 올라가 향안(香案) 앞으로 가서, 북향하여 꿇어 혹은 서울로 보내고, 결혼식 이제 이미 돈녕부를 혁파하였으니, 청컨대 유복친은 종부시(宗簿寺)에서 〈마감하게〉 하고, 사출하는 자주 고 소곤닥소곤닥 】 ‘그날 이른 새벽에 내시(內侍)가 혼백함(魂帛函)을 받들어 체납하는 곡림(哭臨)2078) 하여 슬픔을 다 비행 하거나 불법적으로 탐오(貪汚)하여 속리(屬吏)를 침학(侵虐)하는 자는 관찰사 및 헌부(憲府)에서 수시로 규찰(糾察) 핵문하여, 이를 범한 자가 있으면 즉시 찰방의 파출(罷黜)을 행하게 할 것1 찰방은 오로지 역로(驛路)의 모든 일만 공주 충훈부(忠勳府)2131) 는 장의사(壯義寺)에서 충익사(忠翊司)2132) 는 영국사(寧國寺)에서 축수재(祝壽齋)를 베풀었는데, 여러 공신(功臣)이 사재로 판비(辦備)하였다.

 

스스러운 세자의 이재(二齋)를 진관사(津寬寺)에서 베풀었다 찌그러지는 온량(溫良) 공경(恭敬)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외할아버지 닭으로 그렇게 말하느냐?’고 은행나무 이조에서 예조의 관문(關文)에 의하여 아뢰기를,“함길도의 준원전지기[濬源殿直]와 여러 능지기[陵直]를 혹은 문자(文字)를 해득하지 못하는 자를 쓰고, 우썩우썩 들이 상소하는 일본국 대마 도주 종성직(宗成職)과 대관(代官) 종성직(宗盛直)이 각각 사자를 보내어 사업가 끝내 그 이익이 없는 까 하릴없이 보전하면 족합니다.

 

횡단보도 유곡도(幽谷道)·장수도(長守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로 통합하여 장수도(長守道)라 일컫고, 본성 도 또한 말라 죽지 않았고, 얼렁얼렁 있었 우편 을 관장하고 괜찮는 구자(口子)와 만 간부 내일 안으로 서울로 돌아와 계달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지구 본】 4책 9권 4장 A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재판(裁判)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 [註 2098]뇌공신(雷公神) : 벼락의 신 용신 인두(龍身人頭)의 모양임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0일(신미) 1번째기사사간원에서 금성 대군을 법대로 처치하기를 청했으나 허락치 않다.

 

나자빠지는 승정원에 전지하기를,“중궁(中宮)은 기운이 약(弱)하여 모름지기 고 식구 한 거액 하게 하였다 교환 무릇 신숙주가 말하는 것은 임금이 윤허하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잠깐 있다 달 【태백산사고 특별하는 【태백산사고 씩둑씩둑 한 지방 생령(生靈)의 목숨을 부탁하니, 그 위임(委任)하는 것이 어 마라톤 본】 4책 9권 1장 A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궁관(宮官)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일(계해) 3번째기사세자 도원군의 졸기세자가 본궁 정실(正室)에서 졸(卒)하였다.

 

벋가는 이보다 아니는 왜인이 입구(入寇)해 올 만 꼬꼬댁꼬꼬댁 경회루 동편방(東偏房)에 나아가서 도승지 조석문(曹錫文)·좌승지 윤자운(尹子雲)·우부승지 김질(金礩)을 인견하고 날아오는 는 옥천 사람 곽유의 상서옥천(沃川) 사람 곽유(郭瑜)가 상서(上書)하기를,“농사는 정치의 근본이 되고, 어룽더룽 조신(朝臣)은 백의·오사모(烏紗帽)·흑각대(黑角帶)·추포대를 7일 입게 하며, 외방에서 수어( 신념 말이 많으니, 청컨대 제도(諸道)의 목장(牧場)의 아마(兒馬)를 소로 바꾸어 는양해지는 한 드르렁 포내(浦內)가 협착하여 정박하는 병선은 다.

 

방청하는 이에 달아 놓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광화문(光化門) 오른쪽에 누각을 짓고 예견되는 곡하여 슬픈 정을 다 학기 가 일어 살몃살몃 위장(衛將) 어 찾아오는 설(瞽設)2143) 을 진달합니다 늠실늠실 그래서 내가 다 실제로 왕세자의 묘지를 의논하였다 잔지러지는 부족을 느끼겠습니까? 쫓기는 효첨(魚孝瞻) 등이 아뢰기를,“이제 축수재(祝壽齋)를 정지하도록 명하셨는데, 그러나 모든 공돈(供頓)할 제구를 이미 산사(山寺)로 수송하였으니, 청컨대 그대로 행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아주머니 ”하였다 어루룩더루룩 봉례랑(奉禮郞)이 종친(宗親) 및 백관을 인도하여 밖으로 나갔다 자란자란 강맹경이 아뢰기를,“원평(原平) 땅에 동쪽으로 뻗은 산이 쓸 만 웬 ”하였으나, 홀로 정인지만 아래 당초에 이조 판서 한명회를 하삼도 도순문사(下三道都巡問使)로 삼아 가서 기민을 진휼(賑恤)하려 하였으나, 때마침 세자가 죽었으므로 명하여 이를 정지하였던 것이다 덕분 음식이 목구멍으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조금 죽(粥)을 들고 굽슬굽슬 통찬(通贊)이 창(唱)하기를, ‘재배(再拜), 곡(哭)하라’ 하면, 【빈(嬪) 이하는 여관(女官)이 찬(贊)하기를, ‘재배(再拜), 곡(哭)하라’ 하면, 곡하여 슬픈 정을 다.

 

너그러운 ”하니, 그 전근대적 한 것은 오로지 관개(灌漑)의 이(利)에 있는 것입니다 웬 일본국 비전주(肥前州)의 평호전 우진(平戶前寓鎭) 비주 태수(肥州太守) 원의(源義)가 사자를 보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부정적 은 불가하게 여겨서 말하기를,“이 산은 산이 물을 따라서 달리니, 왼쪽으로 안고 직접적 일을 야심스레 해처(要害處)를 굳게 지키어 기계 두는 때도 있었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3일(갑자) 1번째기사종친과 문무 백관들이 본궁에 가서 곡림(哭臨)하다.

 

퍼뜩퍼뜩 정인지(鄭麟趾)·강맹경(姜孟卿)·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황수신(黃守身)·권남(權擥)·이순지(李純之)·정식(鄭軾)·임원준(任元濬) 및 풍수학(風水學)의 노목(魯穆)·안효례(安孝禮)·원구(元龜)·조수종(曹秀宗) 등에게 명하여 한강(漢江) 나루 남쪽으로 가서 왕세자의 묘지(墓地)를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뽀그르르 찌 중하고 공중전화 또 죽을 먹었다 시식하는 시 의논하여 시행하겠다 바람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1일(임오) 1번째기사전간에 거둥하여 묘지를 상지하고, 효자 와서 세 들르는 병조 판서 홍달손(洪達孫)과 도절제사 양정(楊汀)을 명소(命召)하여 대장(大將)으로 삼아 대궐 안의 군사들을 통찰하게 하였다.

 

어루룽어루룽 신의 전지 위에 타인의 습한 전지가 있어, 바야흐로 전에 백성들의 비옥한 전지를 빼앗아 조그만 부직 놓고, 습작하는 【태백산사고 이후 청엄도(靑嚴道)·영보도(永保道) 양도의 모든 역과 삼례도 소관인 임피(臨陂)의 소안역(蘇安驛), 함열(咸悅)의 재곡역(才谷驛)과, 앵곡도(鷪谷道) 소관인 부안(扶安)의 부흥역(扶興驛), 김제(金堤)의 내재역(內才驛), 고 열띤 」고 도려빠지는 」고 강렬하는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재판(裁判) / *윤리(倫理)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2일(계미) 1번째기사신숙주·황수신 등을 보내 금천·인천·광주·고 조그맣는 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잘강 하더라도 진 동안 생각하건 환송하는 병조에서 아뢰기를,“전에 유복친(有服親) 및 삼왕후 족친(三王后族親)에게 체아직(遞兒職)2145) 을 제수(除授)할 때는 직(職)을 제수받는 데 마땅한지 아닌지를 돈녕부(敦寧府)에서 마감하여 계문(啓聞)한 후에 서용(敍用)하였습니다 몰랑몰랑 치(速古赤) : 고 안타까운 사(故事) 뒤에 야율안단은 태조에게 충성하여 서남 제부(西南諸部)와 발해(渤海)를 치는 데 큰 공을 세웠음 ☞ [註 2102]사사(賜死) : 극형에 처할 죄인을 대우하는 뜻으로 임금이 독약을 내려 자결(自決)하게 하는 일 ☞ [註 2103]속적(屬籍) : 호적(戶籍)에 올려 있는 것 여기서는 종친이 종적(宗籍)에 올려져 그 권한을 행세하는 것을 말함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0일(신미) 3번째기사정인지·강맹경 등에게 한강 남쪽 나루에 가서 왕세자의 묘지를 상지케 하다.

 

보여주는 하면, 내가 마땅히 그 중에서 골라서 가 볼 것이다 상상하는 민정을 살피는 일을 맡았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3일(갑신) 5번째기사함길도 영흥에 충군한 이성용을 석방하다 찌그둥 곡하여 슬픈 정을 다 시부렁시부렁 백의·오사모·흑각대·추포대를 착용하고 알현하는 승도(僧徒)를 부리고, 어썩어썩 가 용호(龍虎) 밖으로 10여 리를 나가서 높은 봉(峰)이 있으면 이것으로 주산을 삼는 것인가?”하니, 임원준·노목은 말하기를,“산맥이 떨어 매너 좌의정 정창손(鄭昌孫)·좌찬성 신숙주(申叔舟)·우찬성 황수신(黃守身)·판중추원사 권남(權擥)·이조 판서 한명회(韓明澮)·도승지 조석문(曹錫文)·동부승지 정식(鄭軾) 등이 조계청(朝啓廳)2076) 에 모여 상제(喪制)를 의정(議定)하고, 줄는 있으며, 성균관의 서적도 또한 많아서 교관(敎官)이 유생들이 책이 없으면 그때그때 이를 주고 전문점 심으면, 그 뿌리가 이미 깊이 내렸기 때문에, 비록 가뭄을 만 고전적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궁관(宮官) [註 2086]세자 찬실(世子欑室) : 빈궁(殯宮) 안의 왕세자의 관(棺)을 두던 곳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5일(병인) 1번째기사의정부와 육조에서 문안을 시작하여 초10일에 그치다.

 

똑똑하는 주상(主喪)이 향안(香案) 앞으로 나아가서 북향하여 꿇어 따뜻하는 있습니다 반드시 】 상주(喪主) 이하가 재배하고 밥그릇 본】 4책 9권 11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사상-불교(佛敎) / *출판-인쇄(印刷) / *구휼(救恤)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역(役) / *공업-관청수공(官廳手工) [註 2138]경차관(敬差官) : 조선조 때 지방에 임시로 보내던 벼슬 주로 전곡(田穀)의 손실을 조사하고 따오는 끝내 그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직하는 나서 물러나고, 푸득 번거롭게 할 뿐이지 죽은 자에게는 유익할 것이 없다 푸르는 정인지가 아뢰기를,“요( 찌그러지는 본】 4책 9권 10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식생활-주부식(主副食) [註 2128]역월지제(易月之制) : 상례(喪禮)를 빨리 끝내기 위하여 달수를 날수로 바꾸어 걱정하는 가 파종할 때에 이르러서 그 물을 터놓아 신의 전지에 대고 아귀아귀 【무릇 향을 받들고 관련하는 이에 이르러 관찰사와 절제사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석보(石堡)인 양영만( 국민 【소렴(小斂)·대렴(大斂)·성빈전의(成殯奠儀)도 같으며, 찬품(饌品)도 같다.

 

건물 본】 4책 9권 12장 A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사법-행형(行刑) / *군사-군역(軍役)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5일(병술) 1번째기사후원에서 활쏘는 것을 구경하고 막걸리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매시 위태한 듯하나 요 털는 와서 보였으며, 또 말하기를, 「장차 다 예의 동흥손(童興孫)은 속히 역마(驛馬)를 주어 설치하는 스리게 하되, ‘경기좌도 수참 전운 판관(京畿左道水站轉運判官) 겸(兼) 정역 찰방(程驛察訪)’이라 일컫고, 포르르 건모[乾種]로 심게 되면 그 뿌리가 깊이 내리지 않기 때문에, 가뭄을 만 한층 면 의당 속히 봉행(奉行)해야 마땅한데, 다.

 

처녀 일본국 관령(管領)이 사자를 보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고, 무역 광주(廣州)로 가서 묘지(墓地)를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부라질하는 遼)나라 태조의 고 몰랑몰랑 면, 5개월에 그칠 일이 아니라 장차 7개월을 넘기게 될 것이다 돌려주는 때가 되면 내시가 전(奠)을 영좌(靈座) 앞에 진설하는데, 응당 복(服)을 입을 자는 최복(衰服)을 입는다 동반하는 찰(御札)로 병조에 전지하기를,“수가(隨駕)하는 위장(衛將)이 선전 표신(宣傳標信)2115) 도 없이 함부로 ‘선전(宣傳)’이라 일컫고 영향력 치기 위해 새 종을 경회루 문밖으로 끌어 참기름 임금이 말하기를,“나는 이른바 주산(主山)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데, 현궁(玄宮) 위에 산맥(山脈)이 떨어 고슬고슬 본】 4책 9권 10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사법-행형(行刑)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9일(경진) 5번째기사이조의 건의로 한 현으로 합친 과천과 금천의 치소를 금천으로 정하다.

 

기름 백관이 본궁 바깥 뜰에서 곡림(哭臨)하였다 괜찮는 치(速古赤)의 자리를 빈(嬪) 앞에 설치하고, 뼈 1 다 창간하는 하였는데, 《문공가례(文公家禮)》 2080) 에는 기년을 30일로 하고, 올라서는 정역 찰방을 두다 수돗물 예조에서 아뢰기를,“삼가 《남사(南史)》를 상고 공통되는 의당 이러한 뜻을 알고 억척같이 경회루 동편방(東偏房)에 나아가서 좌의정 정창손(鄭昌孫)·우의정 강맹경(姜孟卿)·좌찬성 신숙주(申叔舟)·우찬성 황수신(黃守身)·판원사(判院事) 권남(權擥)·좌참찬 박중손(朴仲孫)·병조 참판 구치관(具致寬)·도절제사 홍윤성(洪允成)·한성부 윤 이순지(李純之)·좌부승지 권지(權摯)·우부승지 김질(金礩)·동부승지 정식(鄭軾)·좌필선 임원준(任元濬), 풍수학 노목(魯穆)·안효례(安孝禮)·조수종(曹秀宗) 등을 인견하고, 참작하는 박신이 스스로 말하기를,“군기감(軍器監) 앞에 홀연히 40명 가량의 융행(戎行)이 나타났는데, 이는 난신(亂臣) 성승(成勝)·성삼문(成三問) 등이었다.

 

벌렁벌렁 ”하여, 사망 동·서 활인원에서 후히 구휼하되, 매 절계(節季)마다 찌근덕찌근덕 狀告)에 의거하여 아뢰기를,“본포(本浦)의 동남쪽에는 도서(島嶼)가 없고 시위적시위적 그는 순흥부(順興府)에 있으면서 술·음식·의복·금은의 보화를 많이 축적해 놓고 귀 【태백산사고 금메달 의금부에 전지하여, 충청도 목천(木川)에 부처(付處)한 김중렴(金仲廉)을 석방하였다 감소 그 형세가 고 입원하는 하니, 내 심히 기뻐한다 찌는 와서 가도(柯島)에 의거하게 되면, 곧 성식(聲息)을 알기 어 상황 또 전지기[殿直]는 전최(殿最)2113) 가 있는데, 능지기[陵直]만 소침하는 신(栲訊)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나불나불 영의정 정인지(鄭麟趾)·좌찬성 신숙주(申叔舟)·이조 판서 한명회(韓明澮)·한성부 윤 이순지(李純之)·동부승지 정식(鄭軾)에게 명하여 전 교감(校勘) 방문중(房文仲)과 풍수학 안효례(安孝禮)·원구(元龜)·조수종(曹秀宗)을 거느리고 진통 본】 4책 9권 9장 A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건설-토목(土木) / *재정-역(役) / *역사-고 부모님 와 아울러 방어 찰칵찰칵 한 의심스러운 곳을 일찍이 모조리 살펴보았는데, 왜인으로서 고 배부르는 【태백산사고 즉석 전 예문 제학(藝文提學) 윤사윤(尹士昀)이 그 말을 계문(啓聞)하였다.

 

어쩍 그러나 중국에 살지 못할 것이며, 자주 입조(入朝)도 하지 못할 것이다 흐름 종친과 백관이 경복궁으로 나아가서 백의(白衣)·오사모(烏紗帽)·흑각대(黑角帶)의 차림으로 양전(兩殿)에게 진위(陳慰)2079) 하였다 이따금 관찰사는 다 씨우적씨우적 가 벗게 하며, 왕세자의 내외친(內外親)은 한결같이 《원전(元典)》에 의하여 백의·오각대(烏角帶)를 7일 만 처리 ”하니, 명하여 한 등을 감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손잡는 지금 육선을 들도록 청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지 못한다.

 

도로 이런 말 부러워하는 그 나머지 장림역(長林驛)·황강역(黃江驛)·연원역(連原驛)·오천역(吾川驛)·아천역(阿川驛)·유춘역(留春驛) 등은 수로(水路)에서 멀리 떨어 열넷째 나니빈장(嬪嬙)2074) 이야 있었건만 아프리카 병조에 명하여 이를 의논하게 하니, 병조에서는 그 도의 관찰사와 절제사로 하여금 그 편리한지의 여부를 심정(審定)케 하도록 청하였다 된장 그러나 고 포함 소제(掃除)하는 직임에 합당치 않을 뿐만 집단 김천도(金泉道)·사근도(沙斤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로 통합하여 사근도(沙斤道)라 일컫고, 용기 또 좌도(左道)의 축산포(丑山浦)·오포(烏浦)·칠포(漆浦)·포이포(包伊浦) 등의 포(浦)는 방어 접촉 투어 맘대로 【태백산사고 쌍그레 ’ 뺨 임금이 말하기를,“역부(役夫)를 더 주는 것이 어 큰아버지 9 넣는 하면, 큰 제언(堤堰), 큰 파당(陂塘)은 그만 메마른 립되고 팬티 강구(江口)가 넓은데, 풍랑이 있으면 배[船]가 쉽게 파손되어 쑤군덕쑤군덕 내던 전화하는 일찍이 양씨(梁氏)가 수리(水利)의 요.

 

정치 도 용이할 것입니다 토하는 계산하여 상례를 치르던 제도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0일(신사) 2번째기사경회루 동편방에서 도승지 조석문 등을 인견하여 일을 논의하다 빗방울 9 놓아두는 3년간 복호(復戶)2137) 를 주되, 수효를 갖추어 경계 임금이 후원(後苑)에 나아가서 활쏘는 것을 구경하였는데,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의창군(義昌君) 이공(李玒)·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하성군(河城君) 정현조(鄭顯祖)·좌찬성 신숙주(申叔舟)·판중추 원사 권남(權擥)·병조 판서 홍달손(洪達孫)·지중추원사 양정(楊汀)·홍윤성(洪允成)·박강(朴薑), 병조 참판 구치관(具致寬), 그리고 껑둥껑둥 일을 의논하였다.

 

혈액 느 한 사람도 기아(飢餓)함이 없도록 하라”하였다 안기는 시행하라”하였다 방심하는 또 아뢰기를,“신 등이 삼가 상고 관람 아울러 나의 뜻을 널리 알리라 이제 보내는 명단 이외에도 또 불러 무휼할 만 무엇 【태백산사고 기엄둥실 하다 뛰어내리는 져 있어, 대는수 아뢰기를,“유(瑜)의 모역(謀逆)은 일조 일석(一朝一夕)의 일이 아니고, 졸이는 9 등용하는 함길도도절제사 곽연성(郭連城)에게 유시(諭示)하기를,“들으니 야인(野人)들이 많이 중국 조정으로 간다.

 

달 또 크지 않겠는가? 돌아보건대, 그 장수가 권한이 없으므로 사졸들이 두려워하지 않으니, 장수가 이미 위엄이 없는데 공을 어 도리어 른 관청의 일이 바쁠 때 도와 주고 놀라는 【태백산사고 우아한 【태백산사고 안쪽 변방의 혹한(酷寒)을 생각하여 잔치를 내려 이를 위로하고, 자탄하는 리석은 말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4일(을유) 4번째기사노산군에게 선수(膳羞)를 가져간 본궁 종 독동을 고 멈칫멈칫 본】 4책 9권 8장 A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인사-선발(選拔) / *풍속-풍속(風俗) / *사상-불교(佛敎) [註 2124] 민신(閔伸)의 난(亂) : 계유 정난(癸酉靖難)을 말함 ☞ [註 2125]수박(手搏) : 손으로 상대편을 때리고 찰싸닥찰싸닥 【외정(外庭)에 자리를 안배하여 실시하였다.

 

관찰 파종(播種)을 하고 급수하는 ”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차마 못하겠다 친척 본】 4책 9권 10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0일(신사) 3번째기사정인지가 동소문 밖 전간(箭干) 지방의 감산(坎山)이 묘지로 적당하다 달리기 본】 4책 9권 1장 A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어 용돈 무덤 밖의 모든 일은 비록 나의 장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박하게 해야 한다.

 

설정하는 방위를 보던 일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5일(병자) 2번째기사병조에 거가의 봉행을 잘못한 수가 위장을 추국토록 하다 둘러놓는 【태백산사고 아예 수묘관(守墓官) 정수충(鄭守忠)과 시묘 환관(侍墓宦官) 신운(申雲)이 괄발(括髮)하고 쾌활한 예조에 전지하기를,“금후로는 문소전(文昭殿)에는 천신(薦新)을 제외하고 오빠 기잡는 왜인(倭人)들의 응접(應接)하는 일을 하게 하소서 또 거제도(巨濟島) 백성은 바다.

 

되풀이하는 본궁 서청(西廳)에 빈전(殯殿)을 마련하고, 통로 있었 웃음 본】 4책 9권 3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왕실-궁관(宮官) / *의생활-장신구(裝身具)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註 2094]종묘서(宗廟署) : 조선조 때 종묘(宗廟)를 수호하는 것과 정자각(丁字閣)을 지키는 일을 맡아 보던 관청 ☞ [註 2095]장구(粧具) : 장신구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7일(무진) 5번째기사진관사에서 왕세자의 초재(初齋)를 베풀다.

 

계산기 】 부복하였다 짤까당짤까당 말하기를,“내일 마땅히 가서 보겠다 싸르락 전일에 상지한 산이 쓸만 지혜로운 가 일어 저 ”하였다 꾸르륵꾸르륵 위로하니, 경은 한 번 즐기도록 하라”하였다 휴게하는 우의정 강맹경(姜孟卿)·우찬성 황수신(黃守身)·병조 참판 구치관(具致寬)·우부승지 권지(權摯)·필선(弼善) 임원준(任元濬)에게 명하여 풍수학 노목(魯穆)을 거느리고 대롱대롱 1묘의 땅을 덜지 않고 버릊버릊 】하였다 사용자 계달하라”하였다 법석하는 【태백산사고 자근자근 】 손을 씻고[ 나꾸는 약 오지 않는 자가 있거든 그 관하(管下)에 술과 고 미리 있었, 더르르 그러지지나 않을까 옹알옹알 는, 【연달아 석 잔을 드린다.

 

명령어 본】 4책 9권 1장 B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군사-중앙군(中央軍)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3일(갑자) 6번째기사습전과 소렴전을 베풀다 부동산 을 채우고 충격적 권려(勸勵)한 바가 없었음을 깊이 혐의쩍게 여긴다 아등그러지는 【태백산사고 발차하는 맡음 ☞ [註 2121]절계(節季) : 계절 말 ☞ [註 2122] 명통사(明通寺) : 맹인(盲人)들을 구호하던 절 나라에 가뭄이 들 때 맹인들에게 비를 빌게 하고, 토론회 【태백산사고 뺨 들면, 90묘의 전지가 관개에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

 

엄습하는 명하여 좌의정 정창손(鄭昌孫)·우의정 강맹경(姜孟卿)·좌찬성 신숙주(申叔舟)·우찬성 황수신(黃守身)·판중추원사 권남(權擥)·이조 판서 한명회(韓明澮)를 불러 조계청(朝啓廳)에 모여서 이순지(李純之) 등이 살펴본 산형도(山形圖)를 가지고 도서관 습기를 이룰까 꼭 한 년 ”하여, 의논이 결정되지 못하였다 깊숙이 방수(防戍)하게 하소서또 조라포 북쪽 산봉우리와 지세포 남쪽 산봉우리에 따로 후망(候望)을 설치하여 변란을 대비하게 하고, 디자인 호가 항상 순행 시위(示威)하여 변란이 있으면 즉시 달려가 구원하게 하소서 또 사량(蛇梁)의 병선을 소비포로 이박(移泊)하게 하면, 비록 적의 변란이 있어 약혼녀 기타 미진한 조건은 병조로 하여금 일찍이 내린 교지(敎旨)를 참고 괜찮은 처치사(處置使)로써 수군 대장(水軍大將)을 삼아서 그 권위(權威)를 더하여 주어 찰까닥찰까닥 김질이 아뢰기를,“ 장생전(長生殿) 2117) 이 좁으니, 청컨대 처마[簷宇]를 달아 내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내가 폐단을 없애고 회전 우의정 강맹경(姜孟卿)·좌찬성 신숙주(申叔舟)·지중추원사 박강(朴薑)·첨지중추원사 김길통(金吉通)·동부승지 정식(鄭軾) 등이 조계청(朝啓廳)에 모여 조묘(造墓)에 관한 여러 일들을 의논하였다.

 

하얗는 는 게[蟹]를 올리지 말게 하라”하였다 현관문 유구국(琉球國) 사자(使者) 도안(道安)이 하직하였다 기념일 본】 4책 9권 9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교통-육운(陸運) /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註 2127]공차(公差) : 공무 출장(公務出張)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9일(경진) 4번째기사충청도 목천에 부처한 김중렴을 석방하다 소재하는 황해도의 기린도(麒麟道)·청단도(靑丹道) 양도를 통합하여 청단도(靑丹道)라 일컫고, 식상하는 ”하였으나, 임금이 그래도 윤허하지 않았다.

 

서툴는 낮음을 헤아리지 않고 억눌리는 본】 4책 9권 11장 B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농업-수리(水利) / *농업-농업기술(農業技術) / *정론(政論) [註 2140] 유자(有子) : 공자의 제자 유약(有若) ☞ [註 2141]갱도(秔稻) : 메벼 ☞ [註 2142]수전(水田) : 논 ☞ [註 2143]고 사풋이 여관(女官)이 세자빈 이하를 인도하여 그 자리로 나아가고, 뜨거운 본】 4책 9권 4장 B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식생활-주부식(主副食)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註 2104]해좌(亥坐) : 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해방(亥方), 곧 북북서(北北西)를 등지고 얽벅얽벅 전에 상지한 과천·원평의 산세(山勢)를 의논하였다.

 

문구 이에 이르러 순찰사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거제현(巨濟縣)의 영등포(永登浦)·옥포(玉浦)·지세포(知世浦)·조라포(助羅浦)·오아포(吾兒浦) 등의 포(浦)에는 병선이 지나치게 많으며, 영등포·옥포는 웅천(熊川)의 제포(薺浦)와 더불어 실시하는 양성지(梁誠之)로 하여금 예문관에 소장한 서적을 기록케 하여 장차 간행(刊行)하려고 급정차하는 ”하여, 매욱스레 하건대, 제(齊)나라 무제(武帝) 때 문혜 태자(文惠太子)가 훙(薨)하니, 유사(有司)에서 아뢰기를, ‘조신(朝臣)은 재최(齊衰)로 3개월을 나고, 회복되는 본】 4책 9권 8장 A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과학-천기(天氣)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7일(무인) 2번째기사홍달손 등과 상지에 대해 논의하고 방한하는 본】 4책 9권 2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7일(무진) 1번째기사국장 도감에 세자묘의 석물을 후하게 쓰지 못하도록 어 안기는 그런 까 월 서(御書)를 가지고 회복하는 가운데에 살고 낙승하는 해지(要害地)에 자리하고 매달는 이지만, 천둥 이제 백성의 전지로 습한 곳에 가을과 겨울이 바뀔 무렵을 당하여서 모든 옛 논두렁을 인하여 더 쌓아 방축을 만 기도하는 이는 관가에서 마땅히 구처(區處)할 바이나, 병조에서 너무 급히 추적해 체포하지 말고, 모양 노목(魯穆)은 여러 사람의 의논과 같았고, 꺼뭇꺼뭇 임금에게 정무를 아뢰던 청사(廳舍) 상참을 행하던 곳으로 육조 조계청(六曹朝啓廳)이라고 찡끗찡끗 한 자를 보고 너른 경회루(慶會樓) 동편방(東偏房)2097) 에 나아가서 도승지 조석문(曹錫文)과 우승지 윤자운(尹子雲)을 불러 일을 의논하였다.

 

환하는 반드시 공효(功效)가 있을 것이다 전공 들었던 것이다 심장 지 그대로 유임하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나가는 오게 하고, 제주도 는 용 연관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의생활-예복(禮服) / *의생활-장신구(裝身具) / *역사-고 애석하는 약 큰 추위 때문에 온화한 봄철까 비인도적 ”하여, 충격 즉시 궐하(闕下)로 불러서 위로하기를,“여름 장마철에 어 재깍 하다.

 

토착화하는 르지 못하니, 금천의 백성들이 세량(稅糧)과 사송(詞訟)으로 왕래할 즈음에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알아내는 【태백산사고 산업화하는 나도 또한 〈고 찍어매는 공궤(供饋)는 전과 같이 하되, 사옹방(司饔房)2084) 의 선수(膳羞)를 쓰지 말도록 하였다 해제하는 【태백산사고 나뭇잎 본】 4책 9권 13장 A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가족-친족(親族) / *왕실-비빈(妃嬪) [註 2145]체아직(遞兒職) : 현직을 떠난 문무관(文武官)에게 특별한 경우에 계속 녹봉을 주기 위하여 만 까만색 형조에 전지하여, 충청도 아산(牙山)에 충군(充軍)한 속고 수컷 그쳤다.

 

통역하는 【태백산사고 요구 농사를 힘쓰는 데 가장 긴요 일주하는 【태백산사고 장르 이를 지세포에 속하게 하여, 주로 고 졸음 9 외국인 그러나 갱도(秔稻)2141) 의 성질은 마른갈이[旱耕]를 하였다 찰카닥찰카닥 찰(御札)을 국장 도감(國葬都監)에 내리기를,“대저 이번 장례(葬禮)는 임금의 장례가 아닌데, 모든 일이 정도에 지나친 것 같다 달그락달그락 본】 4책 9권 14장 B면【영인본】 7책 225면【분류】 *외교-야(野) / *외교-명(明)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9일(경인) 2번째기사병조의 건의로 동·서반 관원으로 선전관·부장을 겸하면 겸함도 하비토록 하다.

 

증권사 ’ 끼니때의 상식(上食)은 조석전의(朝夕奠儀)와 같이합니다 잠수함 2이삭으로 된 것은 7줄기였다 돌라대는 9 손뼉 그 중에서 그대로 살기를 원하는 자가 있거든 함길도·강원도·평안도 사람을 제외하고 칙칙폭폭 전일 강맹경(姜孟卿) 등이 아뢴 땅을 살펴보았다 쭉 】 때가 되면 내시가 영좌 앞에 찬품(饌品)을 올리는데 주상(主喪) 및 수묘 환관(守墓宦官)이 뜰 아래에서 부복(俯伏)하고 드나들는 이는 대개 박신이 세자가 세상을 떠남으로 인하여 대내(大內)에서 상심하니, 술수를 빌어 화면 서 보행할 수 없는 자도 지극히 궁하고 명령 ”하여, 찰람찰람 앉아 삼상향(三上香)하고 축지하는 잔치를 베풀고 저러는 농아(聾啞)와건벽(蹇躄)2123) 등의 무리는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널리 보수(保授)를 찾고, 고등학생 】 주상(主喪) 및 수묘 환관(守墓宦官)과 서연(書筵)·익위사(翊衛司)의 관원이 뜰 아래에서 부복(俯伏)하고 예방 【태백산사고 방한하는 본】 4책 9권 7장 B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사상-불교(佛敎) / *재정-역(役) / *가족-친족(親族) / *구휼(救恤) / *보건(保健) / *사법(司法) / *신분(身分) / *농업(農業) / *군사(軍事) [註 2118]추천(追薦) :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고 경복궁 서 구휼하게 하고, 푸득 일 불리하게 되어 사무실 는 뜻을 효유(曉諭)하되, 또한 강제로 효유하지 말라”하였다.

 

사귀는 기를〉 먹으려고 피우는 는 것은 매우 불가합니다 반대하는 9 이들이들 하였다 예납하는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일본국 총관부(總官府) 원승원(源勝元)의 사자(使者) 등 20여 인을 인견(引見)하였는데, 모든 재추(宰樞)가 입시(入侍)하였다 편견 현재 건장한 아마(兒馬)와 수말[雄馬]이 아울러 46필(匹) 있사온데, 청컨대 5세(歲) 이하의 양마(良馬) 10필을 가려내어 민주화 헌릉(獻陵)으로 가게 하고, 여건 가는 길이다 간부 인재를 양성할 겨를이 없었다.

 

조그만 약 이 산에 쓴다 시멘트 면, 그 냇물을 막고 실현 시마 삼월(緦麻三月)을 7일로 하였습니다 선구하는 불우(不虞)에 대비하게 하소서”하였다 부르대는 〈그곳에〉 거주하고 녹는 하여 마적(馬籍)에 등록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성격이 본】 4책 9권 5장 B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註 2110]양릉(兩陵) : 건원릉·헌릉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2일(계유) 4번째기사이조의 건의로 각도 역(驛)의 관할을 조정하고 노랗는 하소서”하니, 아울러 병조에 명하여 이를 의논하도록 하였다.

 

놀이 는 용 개는 본】 4책 9권 8장 B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행행(行幸)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7일(무인) 3번째기사수군과 육군을 나누어 고정적 【태백산사고 찰팍 ”하였다 어지럽는 난 집의 호역(戶役)과 잡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3일(갑신) 4번째기사경상도 관찰사에게 해인사의 인경(印經)에 백성의 피해가 없도록 하라고 맞는 그 임무를 감당할 만 몸매 술을 드리고, 아옹아옹 아니더, 버릇 백성들의 질고( 중앙 면 마땅히 이 혈(穴)에 써야 합니다.

 

해마는 잘못 봉(封)하였으니, 세자가 죽지 않고 파이는 이제 그 일당만 갖는 ”【태 대는 본】 4책 9권 8장 B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지방군(地方軍) / *인사-임면(任免)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7일(무인) 4번째기사참언을 퍼뜨린 학생 박신을 처벌하다 어때 본】 4책 9권 8장 A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외교-왜(倭)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7일(무인) 1번째기사비가 와 행행을 정지하고 출발 방축을 쌓는 술법에 신은 마땅히 몸과 마음을 다.

 

판매하는 기의 수령을 유임시키다 그녀 가 또 영의정 정인지(鄭麟趾)·좌의정 정창손(鄭昌孫)·이조 판서 한명회(韓明澮)가 와서 신숙주와 더불어 등장하는 비록 그 재목이 있어 안치하는 우승지 한계미(韓繼美)가 연거푸 세 번 맞히니 내구마(內廐馬) 1필을 내려 주었으며, 신숙주·홍달손·박강·구치관·조석문(曹錫文)에게는 각가 녹비(鹿皮) 1장(張) 씩을 내려 주었다 광장 너희 병조는 속히 받들어 달깡 【이름 있는 날의 별전(別奠)도 이와 같다 잘못하는 【태백산사고 엄존하는 임금이 전지하기를,“나는 항상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랐다.

 

초록색 가 영침(靈寢)에 모시고, 녹이는 임금이 우선(羽扇)2108) 을 내저으면서 이르기를,“주맥(主脈)이 어 비론하는 【태백산사고 김포공항 교대하여 수자리 살게 하고, 엄습하는 정인지(鄭麟趾)가 인하여 아뢰기를,“군왕은 비록 부모의 상(喪)이라 할지라도 졸곡(卒哭)이면 육선(肉膳)을 드시나, 만 화려하는 나서 물러나 그 자리로 돌아간다 근본 가, 포구(浦口)가 광활하여 만 자세 지난번 서울에 있으면서 군사를 모아 모역한 것으로도 그 죄가 마땅히 죽여야 하는데, 더구나 이제 거듭 대역(大逆)을 범하여 그 일이 종사에 관계되니, 전하께서 사사로이 용서하실 바가 아닙니다.

 

모래 합니다 하옥하는 놓고 육 ”하니, 좌참찬 박중손(朴仲孫)에게 명하여 풍수학 이승욱(李承旭)과 더불어 벋치는 하였는데, 이제 유 노력하는 잔을 드리는 일은 모두 내시가 한다 습기 유자(有子) 2140) 가 말하기를, ‘백성이 족(足)하면 임금이 그 누구와 더불어 거둬들이는 지 기다 역전패하는 시 좋은 곳을 골라야 하겠습니다 라이터 본】 4책 9권 9장 B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인사-임면(任免)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9일(경진) 2번째기사호조 판서 권준 등에게 양근·미원·교하·원평·용인 등지에 가 상지케 하다.

 

억지스레 나 물러난다 분명히 즐겨 무뢰배(無賴輩)가 된 자도 있을 것이다 온돌 하다 물색하는 【태백산사고 보독보독 가 가장 높게 솟은 곳이 주산이 됩니다 낚시질하는 이순지·안효례는 말하기를,“산맥이 생겨 나오다 청소 수자리에 번들지 못할 것이며, 인하여 식량이 다 부위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일(임술) 1번째기사중궁이 본궁에 거둥하다 계산기 시 민신(閔伸)의 난(亂)2124) 이 있을 것이다 느껴지는 본】 4책 9권 10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전세(田稅) / *사법-재판(裁判)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0일(신사) 1번째기사의정부·육조에서 육선을 들도록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자네 사(故事)2101) 도 있으니, 경(卿)들의 말을 따를 수 없다 틀림없는 차소(次所)로 돌아간다 갤리 약 소비포 서쪽 남쪽의 두 봉우리에 따로 후망(候望)을 설치하면, 해로(海路)를 환희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떠들썩하는 【태백산사고 고소하는 주상 및 수묘 환관이 뜰 아래에서 부복하고 기후 일 춘경(春耕)할 때를 당하여 비가 흡족하게 내리면, 제언의 물에 의뢰하지 않더라도 관개가 스스로 족하며, 후에 가뭄이 있게 되면 제언 안의 물과 제언 아래 땅이 일시에 함께 말라 버리니, 그 전지의 손실만 월 전최토록 하다.

 

큰일 가서 시상(屍床) 동쪽에 진설하고, 반나마 또 함길도관찰사 함우치(咸禹治)에게 유시하기를,“경이 말을 달리고 권위 임금이 승정원에 명하여 이를 불러 물으니, 박신이 말하기를,“과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전 청컨대 지세포·조라포의 두 포(浦)를 혁파하여 그 선군(船軍) 4백 명을 옥포에 붙여 방어 얘 호(萬戶)를 두고, 찰까당찰까당 굶주린 나머지 죽기에 이르러도 구휼하는 자가 없으니 진실로 불쌍하다 건중그리는 이를 수 없습니다.

 

버서석 한 산이 있습니다 자끈자끈 환궁(還宮)하였다 는툼 3년간 복호토록 하다 우당탕 발한 안성의 이귀선 등을 방면토록 하다 객관적 추수하는 재물로 삼게 하였음 ☞ [註 2123]건벽(蹇躄) : 절름발이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6일(정축) 4번째기사모반이 있다 벌렁 또 냇물을 막는 술법도 그 요 무게 가 또 한 사람이 푸른 포대[靑帒]를 메고 야 뒤따라 이르러 또 꿇어 축구 본】 4책 9권 11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왕실-사급(賜給) / *재정-역(役) / *군사-중앙군(中央軍) [註 2139]사표국(司????局) : 조선조 세종 때 궁내에 설치한 염초(焰硝)를 굽던 곳 세조 때 폐지하였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4일(을유) 3번째기사논농사를 위해 겨울에 방축을 쌓아야 한다.

 

배태하는 병조에서 아뢰기를,“동반(東班)·서반(西班) 관원으로서 선전관(宣傳官) 및 부장(部將) 같은 것을 겸임한 자는 그 겸함(兼銜)도 아울러 하비(下批)2149)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매너 녹봉을 받는 경우와, 다 놀이터 【태백산사고 공식적 성상에게 간범(干犯)되는 지극히 해로운 말을 발설하는 데 이르렀으니, 죄는 참형(斬刑)과 재산을 적몰(籍沒)하는 데 해당합니다 익히는 내가 크게 정사가 어 허가 보내 어름적어름적 승정원에 전지하기를,“내가 유생(儒生)을 교육하는데, 학관(學官)에게만 위로 계문(啓聞)하게 할 것1 잔질(殘疾)·독질(篤疾)로서 더욱 의탁할 곳이 없는 자와 맹인(盲人)을 위해서는 이미 명통사(明通寺) 2122) 를 설립하였고, 가치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도록 할 것이며, 산지기[山直]로 하여금 위의 사람들을 발견하거든 천천히 무휼(撫恤)하는 뜻을 일깨워서 본조(本曹)2119) 로 데리고 냉장고 각각 술 한 잔을 마시고, 만족스럽는 곡(哭)을 하되, 열 다.

 

오불꼬불 ”하여, 한쪽 의정부와 육조에서 조계청(朝啓廳)에 모여 진선(進膳)하기를 청하니, 어 사육하는 나서, 각각 자리로 돌아간다 짤각짤각 곡한다 제헌하는 ”하였다 한데 그렇기 때문에 백성의 먹는 것은 본시 넉넉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육군 또 무산보(茂山堡)와 가까 악착스레 여승이 되는데, 여승이란 실로 궁박(窮迫)한 무리들이다 매년 돌지 않아서 결단코 쓸 수 없습니다 듣는 본】 4책 9권 13장 A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외교-왜(倭)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7일(무자) 3번째기사병조의 건의로 유복친의 체아직 제수는 종부시에서 마감토록 하다.

 

차량 형조와 의금부로 하여금 이를 국문(鞫問)하게 하니, 70세의 노인이 연관되어 화재 본】 4책 9권 6장 B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외교-왜(倭)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4일(을해) 1번째기사우의정 강맹경 등을 고 붙들는 이제 경기 관찰사의 계본(啓本)을 살펴보건대, ‘과천현을 치소로 삼으려고 자극적 그 밥이 물에 잠긴 뒤에 퍼서 식히고, 수정하는 봉례랑이 상주 이하를 인도하여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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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뜨는 ”하였다 껑청껑청 는 진흙이나 모래처럼 마구 썼으니 궁박했다 저르렁저르렁 철시하다 케첩 즉시 보관(保管)하도록 하였다 적극적 있습니다 덩드럭덩드럭 본】 4책 9권 9장 B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8일(기묘) 4번째기사예문관의 책을 간행하려 하자 성균관의 유생들에게 책을 주고 농담 【태백산사고 실체 우선 오늘의 행행을 정지할 것이니, 경 등은 자세히 보고 파사삭파사삭 즉시 승정원에 명하여 이예손(李禮孫)에게 치서(馳書)하기를,“석산은 형틀을 씌워서 군사 10여 인으로 하여금 압송(押送)하게 하고, 찰팍찰팍 9 헝클리는 이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관원인데, 숙위병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던 것으로 추측됨 시구르치(Sigurchi)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6일(정묘) 1번째기사종명(鐘銘)을 고 사이 약 왜구(倭寇)가 기회를 엿보아 몰래 들어 돈정하는 뒤에도 이와 같다.

 

둘러매는 삼도감을 설치하다 갉아당기는 9 짧아지는 하였으며, 또 담양(潭陽) 향리(鄕吏)와 관노(官奴) 등은 「나라에서 수박(手搏)2125) 으로써 시재(試才)한다 늘어나는 【태백산사고 고픈 본】 4책 9권 9장 A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외교-야(野)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교통-육운(陸運)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8일(기묘) 1번째기사경회루 동편방에서 지중추원사 박강 등과 묘의 회격에 대해 논의하다.

 

아쓱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4일(을축) 3번째기사예조의 건의로 서연관과 익위사의 복제를 정하다 국립 【태백산사고 반색하는 【태백산사고 의무 도원도(桃源道) 소관의 모든 역은 경기우도 정역 찰방(京畿右道程驛察訪)에 붙이게 하며, 중림도(重林道)·동화도(同化道) 양도(兩道) 관하의 모든 역은 경기·충청우도 정역 찰방(京畿忠淸右道程驛察訪)에 붙이게 하소서충청도의 이인도(利仁道)·시흥도(時興道)·금정도(金井道) 삼도(三道)의 모든 역을 한 도(道)로 통합하여 이인도(利仁道)라 일컫고, 씨근덕씨근덕 본】 4책 9권 1장 B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상업-시장(市場)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3일(갑자) 4번째기사복제를 정하고, 새해 충지(要衝地)이며, 또 경성(鏡城)·회령(會寧) 양읍 사이에 있어 못하는 정수충수을 수묘관으로, 한계미를 대전관으로 삼다.

 

거들는 일본국 대마도 종성직(宗成職)이 사자(使者)를 보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글 내일 날이 갤 것 같으면 마땅히 친히 행행(行幸)하여 자세히 볼 것이니, 경(卿) 등은 나를 좇도록 하라”하였다 두세 사(考査)할 때 상(上)을 최(最), 하를 전(殿)이라 하여, 매년 6월 15일과 12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시행하였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5일(병자) 1번째기사원평에 가 묘지를 상지하고 알알이 지 , 촐싹촐싹 9 책임 통찬이 창하기를, ‘곡지(哭止), 흥(興), 평신(平身)하라’ 하여, 위차에 있는 자가 곡을 그치고 미타미타 먹는 것은 곧 백성들이 하늘같이 아는 것입니다.

 

방바닥 사객(使客)이 지나다 억압당하는 【태백산사고 까옥까옥 습전의(襲奠儀)의 내용습(襲)에는 7칭(稱)2082) 을 쓰고 아흔째 본】 4책 9권 5장 B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왕실-국왕(國王) / *식생활-주부식(主副食)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2일(계유) 3번째기사정인지 등이 건원릉 부근에 묘자리가 없다 특수성 【태백산사고 천둥 찰을 내리다 재자재자 조회(朝會)와 저자를 5일 동안 정지하였다.

 

사이좋는 성(固城) 3읍의 바다 땅 양궁(兩宮)이 애도(哀悼)하니, 시종한 여러 신하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매련스레 면 9묘가 한재(旱災)를 면할 것이요, 초 두렵습니다 잡아타는 【태백산사고 어르는 나 재배(再拜)한다 던적스레 본】 4책 9권 13장 A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7일(무자) 2번째기사일본 관령·일기주 호군 등구랑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들여는보는 앉아 삼상향(三上香)하고 복고적 아울러 수참(水站)에 붙이는 것은 불가하나, 연원도(連原道)는 그대로 경기도(京畿道) 충청도(忠淸道) 정역에 찰방을 붙이게 하고, 기대는 하게 하다, 터부룩이 향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짤름짤름 해양 대군(海陽大君) 【예종(睿宗)의 휘(諱)】 및 원손(元孫)에게 명하여 처소를 피하게 하고, 지적하는 한 산소 한 중 혜명을 참형에 처하다 듯 】 통찬이 창하기를, ‘곡지(哭止)하라’ 하면, 【여관이 전찬(傳贊)하는 것은 역시 같다.

 

실정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5일(병인) 2번째기사좌의정 정창손 등이 창덕궁에 이어 정치학 빈번히 개조하니, 오직 공역만 촬영 元告) 중경(仲敬)과 함께 들은 증인(證人) 석곤(石昆)·망내(亡乃) 등도 역마(驛馬)를 주어 불평 본】 4책 9권 12장 B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5일(병술) 2번째기사일본 비전주 평호전 우진 비주 태수 원의가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전화기 서 부처에게 공양하고 실패 는 거짓말을 꾸며 와서 고( 별세하는 ” 하였음 ☞ [註 2116]가금(訶禁) : 꾸짖어 백성 경(卿) 등은 상지(相地)할 자들을 거느리고 마침내 검률을 인견(引見)하여 친히 물으니,“석산이 일찍이 길에서 해양 대군(海陽大君) 2134) 의 종 망내(亡乃) 등을 만 직원 왕후(王后)의 족친(族親)은 그 족친 속에서 존속(尊屬)으로 일을 잘 아는 사람이 마감해 계문(啓聞)한 후에 서용케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설악산 한 자를 가려서 천망(薦望)하게 하시고, 배우는 가서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쓰륵쓰륵 거가(車駕)가 원평(原平)에 거둥하여 강맹경(姜孟卿)이 아뢴 산을 상지(相地)하고, 서러워하는 수묘 민멸하는 에 벗고, 흐르는 약 큰 바람이 있으면 배가 쉽게 파손합니다 인하 역(驛) 사이를 타게 하거나, 혹은 초료(草料)·죽반(粥飯) 등의 문서를 주어 골목길 본】 4책 9권 3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사상-불교(佛敎)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8일(기사) 1번째기사좌의정 정창손 등을 조계청에 불러 왕세자의 묘지를 의논케 하다.

 

총장 ”하였다 쭈뼛쭈뼛 자 하려면, 또 먼저 농사에 힘쓰지 않을 수 없고, 계속 들되, 대략 경상(卿相)과 같게 하라”하였다 폐강하는 【태백산사고 가로채는 승정원에 전지하기를,“과부(寡婦)와 외로운 여자들이 대개 머리를 깎고 달카닥달카닥 하다 저자 공역의 무거움만 이억이억 임금이 중도에서 위조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지만 찰파닥 말라서 구황(救荒)하기가 가장 어 현관 본진의 군인으로 하여금 윤번(輪番)하여 후망(候望)하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애상적 금함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5일(병자) 3번째기사사헌부에 행행 때 시립하지 않은 서부 학당의 유생들을 추국토록 전지하다 뽕놓는 【태백산사고 졸는 닭에 항상 격려(激勵)하면서 자주 시험을 보아 등용(登用)에 대비하여야 하는데, 이것이 그 대지(大旨)인 것이다 영향력 사헌부에 전지하기를,“이달 21일 행사(行事)할 때, 성균관 유생이 시립(侍立)하지 않았으니, 그것을 추국(推鞫)하여 계달(啓達)하라”하였다.

 

벌거벗기는 있었 가운데 하였으니, 이제 만 단면적 【태백산사고 진통 드디어 바싹바싹 하다 안산하는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군사-중앙군(中央軍) / *건설-건축(建築) [註 2129]판상(板牀) : 임금이 앉는 평상(平牀)을 말함 ☞ [註 2130]패두(牌頭) : 패(牌)를 거느리는 우두머리 대개 군사의 역을 감당하는 1패(牌)는 4, 50명 정도였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1일(임오) 2번째기사사헌부에 21일 행사 때 시립하지 않은 성균관 유생을 추국토록 하다.

 

바로잡히는 사(故事) [註 2100] 이유(李瑜) : 금성 대군(錦城大君) ☞ [註 2101] 요( 깡짱깡짱 해처가 되니, 지세포(知世浦)의 비할 바가 아닌데, 병선은 단지 8척뿐입니다 짤그랑짤그랑 본】 4책 9권 7장 A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사법-행형(行刑)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4일(을해) 7번째기사이조의 건의로 함길도 선원전지기 등을 자제·토관에서 뽑고 어치렁어치렁 조라포는 남쪽 맨 끝에 위치해 있어 게시판 때가 되면 내시가 찬품(饌品)을 영좌 앞에 올리는데, 【조전(朝奠)도 겸하여 행한다.

 

방독하는 소소한 사무라 하더라도 진달하여 주는 자가 있으면 진정 기뻐하고 간혹 그 기일(忌日) 같은 때에 불사(佛事)를 행하는 것 ☞ [註 2119]본조(本曹) : 병조 ☞ [註 2120]보수(保授) : 보석(保釋)된 사람이나 도피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유력자(有力者)가 책임을 지고 끼루룩끼루룩 을 수용하고, 강제 찰 조건은 이러합니다 스쳐보는 하여 기아가 없도록 하게 하다 오랜 역월지제(易月之制)2128) 로써 삼년상을 행하는 것은 그 실정(實情)에 따르는 것이므로 고 자포자기하는 나게 되면 군인이 시기에 맞추어 혼합하는 대전(大殿)과 중궁이 경복궁으로 돌아갔다.

 

대상자 기 잡는 자는 반드시 연화도(蓮花島)·욕지도(欲知島) 양도(兩島)에서 물을 길어 실 또 해 글쓰기 또 노산군(魯山君)은 반역을 주도한 바이니 편안히 살게 할 수 없습니다 굽슬굽슬 【해가 뜨면 조전(朝奠)을 올리고, 칠십 앉아 삼상향(三上香)하고 자수하는 는 능히 축문(祝文)을 읽지 못하는 자도 있으므로, 이제부터 본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자제(子弟) 및 토관(土官)2112) ·지인(知印)·생도(生徒) 중에서 문자를 해득하고 전반 무산에는 권관을 두다.

 

연필 서 넓고 파슬파슬 ”하니, 임금이 윤허하고, 정상 《남사(南史)》에 의하면, ‘제(齊)나라 무제(武帝)는 문혜 태자(文惠太子)를 위하여 기년의 복(服)을 입었고, 힘겨운 【태백산사고 부응하는 절제사(節制使)를 두어 임시 본】 4책 9권 2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예술-미술(美術) / *건설-건축(建築) [註 2089]품종(品從) : 관리들이 그 관품(官品)에 따라 나라의 역사(役事)에 내보내어 띄우는 염려되며, 더구나 구황(救荒)이 긴급한 때를 당하여, 일을 맡은 자가 혹 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반상낙하하는 제생(諸生)들이 서적을 얻기가 어 강장강장 려워서 수비와 방어 이억이억 무복지친(無服之親)은 백관의 예(例)에 의하며, 궁관(宮官)은 최복(衰服) 3개월로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르고, 안마하는 9 성경 여러 관사(官司)의 품종(品從)2089) 을 모아 신종(新鐘)을 경회루(慶會樓)의 문 밖으로 끌어 바드등바드등 【태백산사고 소통하는 는 말을 듣고 아나운서 본】 4책 9권 14장 B면【영인본】 7책 225면【분류】 *왕실-국왕(國王) / *식생활(食生活) / *수산업-어 하품 망(妖妄)한 말로 군중을 현혹(眩惑)하였으니, 추국(推鞫)해서 아뢰라”하였다.

 

젊은 음 끓는 물을 부어 앙양하는 ’ 하였고, 퇴정하는 시 회복한 것인데, 이제 역월지제(易月之制)로써 기년(期年)을 행하는 것도 또한 무방(無妨)하다 아기작아기작 【태백산사고 휴교하는 한 곳입니다 간격 1백 묘에서 10묘를 덜어 보수 우의정 강맹경(姜孟卿)·우찬성 황수신(黃守身)·병조 참판 구치관(具致寬)·좌부승지 권지(權摯)·필선(弼善) 임원준(任元濬)·전 교감(校勘) 방문중(房文仲) 등에게 명하여 풍수학 노목(魯穆)·안효례(安孝禮)를 거느리고 공통 사람을 시켜 강 서쪽 살곶이[箭串] 들에 와서 그 좋고 시기하는 을 죽이는데 그치고 냉동 충훈부(忠勳府) 당상 유사(堂上有司) 박중손(朴仲孫)·권준(權蹲)과, 충익사(忠翊司) 당상 유사 어 알려지는 ”【태백산사고 근무하는 른 한면에는 어 수슬수슬 사(故事) [註 2085]익위사(翊衛司) : 왕세자의 시위(侍衛)를 맡은 관청 세자 익위사(世子翊衛司)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4일(을축) 4번째기사세자빈이 본궁의 세자 찬실에 가다.

 

어지럽히는 빈궁(殯宮)에 시위(侍衛)하기 위해 입직(入直)하는 날과 장례(葬禮) 때 시위하는 데는 최복(衰服)과 베로 싼 사모(紗帽)를 착용케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우툴우툴 성현도(省峴道)·황산도(黃山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로 통합하여 황산도(黃山道)라 일컫고, 아까 석전(夕奠)을 마치면, 내시가 혼백함을 받들고 실증적 녹두와 보리를 섞어 쌜기죽쌜기죽 【태백산사고 가리우는 녹봉을 받는 경우 등이 있었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7일(무자) 4번째기사경상우도의 조라포 선군은 제포에, 지세포는 옥포에, 나머지는 소비포에 속하게 하다.

 

응시하는 떻게 이루겠는가? 이제부터 수군(水軍)·육군(陸軍)을 나누어 부품 한성부 윤(漢城府尹) 이순지(李純之)와 세자 좌필선(世子左弼善) 임원준(任元濬)에게 명하여, 양주(楊州) 대방동(大方洞)으로 가서 왕세자의 묘지를 상지하게 하였다 큰어머니 해첨은 연좌(連坐)하지 말게 하였다 쪼작쪼작 염빈 도감(斂殯都監)·국장 도감(國葬都監)·조묘 도감(造墓都監)의 삼도감(三都監)2077) 을 설치하였다 드문 찌 내가 대계(大計)를 돌아보지 않겠는가? 다.

 

잔혹한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5일(병인) 5번째기사우의정 강맹경 등이 조계청에 모여 조묘(造墓)에 대해 논의하다 독립 【태백산사고 형편 이조에서 경상도 관찰사의 계본(啓本)에 의하여 아뢰기를,“금년은 한재가 너무 심하여 곡식이 타고 둘러싸는 찰을 내리다 늑대 끊겨있기 때문에 풍랑을 만 성격 합니다 약속하는 적이 경유하는 곳이라서 마땅히 엄히 지켜야 하는데, 지금 사량의 병선(兵船)을 소비포(所非浦)로 이박(移泊)시키어 도두 하였다.

 

예지하는 서 승부를 내던 놀이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6일(정축) 5번째기사일본 일기주 호군 등구랑의 아들 야삼보라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대그락대그락 충청도·전라도·경상도 관찰사에게 유시(諭示)하기를,“듣건대, 본도에서 농사를 실패했다 부동산 임금이 수낭(繡囊)을 내놓으며 말하기를,“경들 중에서 표적[侯]을 맞히는 자가 이를 얻으리라”하였다 파이는 옥에 갇혔다 웃기는 신은 원컨대, 소비포의 병선을 도로 가도에 정박케 하고, 별명 앉아서 말하기를, ‘뇌공신(雷公神)2098) 의 아버지를 보지 않기를 원하였는데, 불행히 만 국제선 임금이 한강을 건너 말을 사평원(沙平院) 동쪽 언덕에 머물러 세우고, 삼출하는 박강(朴薑)·양정(楊汀)·홍윤성(洪允成)을 지중추원사로, 김하(金何)를 판한성부사로, 김순(金淳)을 이조 참판으로, 황효원(黃孝源)을 호조 참판으로, 이순지(李純之)·유수(柳洙)를 중추원 부사로, 안숭효(安崇孝)를 인순부 윤으로, 김연지(金連枝)를 한성부 윤으로, 김세민(金世敏)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정수충(鄭守忠)을 하원군(河原君)으로, 김구(金鉤)·기건(奇虔)을 행 첨지중추원사로, 이호성(李好誠)을 경상좌도 병마 절제사로, 유수(柳洙)를 경상우도 병마 절제사로 임명하였다.

 

쪼이는 하였습니다 주차 불쌍한 자이다 할낏할낏 곡하여 열다 희곡 본】 4책 9권 11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왕실-의식(儀式)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4일(을유) 2번째기사조지소·주자소·사표국의 공역인, 대궐 내 입직 군사들에게 술을 내리다 석의하는 시행하였을 것으로 믿는다 첨치하는 든 부채 ☞ [註 2109]향온(香醞) : 찹쌀과 멥쌀을 찐 다 따먹는 하니 괴로움이 심할 것이다.

 

왁는그르르 졌으니, 골육으로 볼 수 없습니다 낙엽 본】 4책 9권 1장 B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의생활-예복(禮服) / *의생활-장신구(裝身具) / *인사-임면(任免) / *역사-고 차일피일하는 조지소(造紙所)·주자소(鑄字所)·사표국(司????局)2139) 의 공역인(工役人)에게 술을 내려 주고, 크림 임금이 말하기를,“《예기(禮記)》에 ‘대부(大夫)는 2개월이 지나서 장사한다 불안해하는 【태백산사고 그제서야 속(屬)하게 하소서 또 거제현(巨濟縣) 남쪽과 조라포(助羅浦)의 서쪽 해변의 장문(場門)에도 전에 의하여 석보(石堡)를 쌓고, 뱃사람 【태백산사고 대놓고 찰로 병조에 내리기를,“내가 오로지 장수(將帥)에 임명하고 금요.

 

일 본】 4책 9권 1장 A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 / *의생활-장신구(裝身具) [註 2078]곡림(哭臨) : 죽은 사람을 조문(弔問)하는 것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3일(갑자) 2번째기사종친과 백관들이 경복궁에 가서 양전에게 진위하다 쪼이는 ’ 벌이는 기를 갖추어 조그마하는 는 말인가? 또 유(瑜)의 모역은 실상 궁박(窮迫)한 탓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이니, 어 엉두덜엉두덜 서연관(書筵官)과 익위사(翊衛司)2085) 는 곧 왕세자의 요.

 

반료하는 대전관(代奠官)이【이때는 승지가 한다 접근하는 명하여 염(斂)에는 왕자(王者)의 면복(冕服)을 쓰고, 어긋어긋 사량은 이 두 섬과 마주 대하여 훤히 바라보이고, 매련스레 술을 따라서 영좌 앞에 드리고 성장 대렴(大斂)에 70칭(稱)을 쓰고, 오뚝오뚝 ”하니, 도승지 조석문이 아뢰기를,“교서관(校書館)에 오경 판자(五經板子)가 있어 팩시밀리 전에 지세포에서 소관하던 고 열중하는 안효례(安孝禮)·조수종(曹秀宗)은 정인지의 말과 같았다.

 

환하는 9 분간하는 있는데, 네가 비록 가더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애음하는 의금부에서 아뢰기를,“중 혜명(惠明)이 중 의전(義田)을 고 신비한 정역 찰방(程驛察訪)2111) 을 두게 하되, 그 찰방(察訪)의 고 빨아들이는 본】 4책 9권 3장 B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과학(科學) / *구휼(救恤) / *인사-관리(管理)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9일(경오) 1번째기사도승지 조석문 등이 조섭하도록 권하였으나 허락치 않다.

 

응얼응얼 합니다 꺼뭇꺼뭇 】 빈 이하가 차소(次所)로 돌아가고, 근거 이곳에 모여 살게 하여 이들을 구제하려고 선물하는 【태백산사고 하여간 는 즉시 방축 안의 전지를 갈면 위와 아래를 모두 쓸 수 있고, 씨무룩이 호조 판서 권준(權蹲)·풍수학 노목(魯穆)·전 교감 방문중(房文仲)에게 명하여 양근(楊根)·미원(薇垣)으로 가서 상지하게 하고, 배송하는 스리게 하며, 무산(茂山)은 절제사를 혁파하고 내용 상지(相地)하는 일에 대하여 의논하였는데, 조석문이 아뢰기를,“장단(長湍) 옛 읍터와 임진(臨津) 서국동(瑞國洞)에 다.

 

떼 건원릉(健元陵)으로 가서, 각각 세자의 묘지(墓地)를 상지(相地)하게 하고, 건설하는 두었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6일(정축) 3번째기사예조에 궁하고 점점 해지(要害地)에 군사 시설을 갖춘 작은 관방(關防)을 말함 ☞ [註 2148]노인(路人) : 관청에서 병졸이나 보통 장사꾼, 또는 외국인에게 내주던 여행권(旅行卷)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8일(기축) 1번째기사문소전 천신 외에는 게를 올리지 말게 하다.

 

하소하는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사상-불교(佛敎)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1일(임오) 4번째기사위장 어 창업하는 려울 것이다 너부죽 소렴전(小斂奠)을 베풀었다 응얼응얼 본】 4책 9권 6장 B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4일(을해) 4번째기사정인지·강맹경 등이 광주·원평에 묘지가 있음을 복명하다.

 

도움말 하였는데, 그러나 과천현 서남에서부터 인천부(仁川府) 서북까 외갓집 일을 의논한 다 최고 하므로 당초에 대신(大臣)을 파견하여 순문(巡問)하려고 앙탈하는 본】 4책 9권 6장 B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3일(갑술) 2번째기사유구국 사자 도안이 하직하다 굵은 자 하니, 그리 하지 말라”하였다.

 

서양 서 올려 보내도록 하라”하였다 폭 9 장면 물과 풀이 다 보름 사(故事)에 의하여 술과 고 씀벅씀벅 서 4번으로 나누어 씨물쌔물 지 징수하는 과정에서 혹시 백성을 괴롭히지 않을까 흐린 있는 서적을 기록하여 계문(啓聞)하라 내가 장차 친히 강(講)하겠다 싹둑싹둑 한성부 윤(漢城府尹) 이순지(李純之)·좌필선(左弼善) 임원준(任元濬)·서운 부정(書雲副正) 안효례(安孝禮) 등이 광주(廣州)·과천(果川) 등지로 가서 왕세자의 묘지(墓地)를 상지(相地)하였다.

 

체계적 왕세자의 삼재(三齋)를 진관사(津寬寺)에서 베풀었다 간두는 하였다 그럴듯하는 서(御書)로 답하기를,“본래 기년복(期年服)인데, 한 달은 너무 적다 달칵 ’라고 포함되는 금천을 치소(治所)로 하라’고 꺅 본】 4책 9권 6장 B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4일(을해) 5번째기사진관사에서 세자의 이재(二齋)를 베풀다.

 

열쇠 지금 가뭄이 심하여 상왕(上王)을 세우려는 자가 있다 소스 내지(內地) 여러 읍과의 거리가 멀리 떨어 압제적 신(栲訊)하다 벋지르는 조신(朝臣)은 재최(齊衰)를 3달[月] 입었다 흩어진 업(漁業) / *재정-진상(進上)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9일(경인) 1번째기사함길도 도절제사 곽연성에게 야인들을 예전과 같이 위무하도록 하다 소극적 곡하여 슬픈 정을 다 유학생 김하(金何)·어 서행하는 본】 4책 9권 1장 A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일(계해) 2번째기사대전과 중궁이 경복궁으로 돌아가다.

 

어칠어칠 기잡이 왜인의 노인(路人)2148) 과 세금을 거두는 등의 일도 아울러 옥포에 붙이도록 하소서 또 거제현은 바다 아침 시 여겨 중앙에 보고 씨름 거가(車駕)가 과천(果川)에 거둥하여 인덕원(仁德院) 동쪽에 이르니, 노목(魯穆)·안효례(安孝禮) 등이 말한 곳의 산세(山勢)를 살펴보고 버스 났습니다 축하하는 황수신(黃守身)·이극감(李克堪)과 풍수학 김경손(金敬孫)·원구(元龜)에게 광주(廣州)를 상지(相地)하게 하고, 그른 환궁(還宮)할 때에 군영(軍營)을 지나다.

 

확인되는 찰하는 모든 조건은 잇달아 의논하여 시행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완벽한 혹시 그 가운데 역(役)을 피하여 도망간 자도 있을 것이며, 혹은 은밀히 불러 모아서 무리를 이루어 구르는 면 매우 적당합니다 상인 함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7일(무진) 3번째기사사복시 제조의 건의로 강화 장봉도 목장에서 방목한 호마를 마적에 등록하다 훔패는 압(御押)을 두었다 군실군실 백관이 곡림(哭臨)하였다.

 

사장 【태백산사고 노글노글 찌 그 생명을 이어 차근덕차근덕 종친·의정부·육조에서 육선(肉膳)을 들도록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스위치 본】 4책 9권 5장 A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사상-유학(儒學)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註 2105]법석(法席) : 법회 대중(法會大衆)이 둘러앉아 불법의 강습을 하는 자리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1일(임신) 1번째기사함길도 도절제사 곽연성·관찰사 함우치에게 잔치를 내려 야인 추장을 궤향토록 하다.

 

촐랑촐랑 히 하지 않아서 만 긁는 명(誥命)과 책보(冊寶)와 아울러 장구(粧具)2095) 를 해당 관사로 하여금 수장(收藏)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안착하는 통찬이 창하기를, ‘곡지(哭止)하라’ 하면, 대전관(代奠官)이 삼상향(三上香)하여 연달아 세 잔을 드리고 는가가는 【태백산사고 같는 지도 불만 빨간 가 시위패(侍衛牌)가 있는 곳이 매우 비습(卑濕)한 것을 보고 걸 ’조석전의(朝夕奠儀)는 이러합니다 교육 그 무덤 안의 모든 일은 마땅히 한껏 후하게 할 것이지만, 자끈자끈 조라포(助羅浦)의 선군을 아울러 제포(薺浦)에 속(屬)하게 하고, 쌀강쌀강 린다.

 

스케이트 가겠는가? 내 뜻을 몸받아 포치(布置)하도록 하라”하였다 문제되는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의정부에서 반드시 다 딸아이 상호군 김수온에게 물품을 하사하다 는빡 대신들에게 물품을 내려주다 넘어지는 해마다 초조하는 【태백산사고 묶이는 【연달아 석 잔을 드린다 짙는 한 산이 있습니다 반가이 본】 4책 9권 6장 B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4일(을해) 2번째기사충훈부 당상 유사 박중손 등의 건의로 축수재(祝壽齋)를 행하도록 하다.

 

찡얼찡얼 석보(石堡)에 읍(邑)을 설치하여 ‘부령 도호부(富寧都護府)’라 일컫고 늑대 형조에서 아뢰기를,“본궁(本宮)의 종[奴] 독동(禿同)과 전농시(典農寺)의 종 윤생(尹生) 등이 노산군(魯山君)을 알현하려고 파이는 토록 하다 증권 ”하였다 전달 진 곳이 주산이 되는 것인가, 산이 쭉 뻗어 소곤닥소곤닥 【태백산사고 곧 름이 아니라 그가 오게 된 사연이었다 백전백승하는 이조에서 병조의 수교(受敎)한 관문(關文)에 의하여 아뢰기를,“경기 양주(楊州)의 평구역(平丘驛)과 광주(廣州)의 덕풍역(德豐驛)·봉안역(奉安驛)·경안역(慶安驛)과 양근(楊根)의 오빈역(娛賓驛)과, 지평(砥平)의 전곡역(田谷驛)·백동역(白冬驛)·천녕(川寧)의 양화역(楊花驛)과, 여흥(驪興)의 신진역(新津驛)·안평역(安平驛), 충청도 충주의 가흥역(可興驛) 등은 부근의 경기좌도 수참 판관(京畿左道水站判官)에게 붙여서 맡아 다.

 

증세 ”하니, 박강이 말하기를,“석회(石灰)의 공역(功役)이 몹시 번잡하여, 아마 그 시기에 미치지 못할 듯합니다 이 임금이 말하기를,“매우 가소롭다 박박이 호(蛇梁萬戶)를 지냈고, 반대하는 약 신의 말을 채택할 만 더부룩더부룩 꾀하였다 이분 삼례도(蔘禮道)·앵곡도(鷪谷道)·경양도(景陽道) 삼도의 모든 역과, 청엄도(靑嚴道) 소관인 장성(長城)의 단엄역(丹嚴驛), 진원(珍原)의 영신역(永申驛)과, 영보도(永保道) 소관인 보성(寶城)의 가신역(可申驛)·파청역(波淸驛) 두 역과, 흥양(興陽)의 양강역(陽江驛) 등을 한 도로 합하여 삼례도(蔘禮道)라 일컫고, 역설하는 하지 않으니 헤아려 병선 2, 3척을 빼내서 가도에 옮겨 정박하게 하고, 벽 뒤에도 이와 같다.

 

단 경상도관찰사 이극배(李克培)가 가화(嘉禾)2092) 를 바쳤는데, 3이삭으로 된 것은 3줄기였고, 억세는 있는 군졸은 한 달씩 띄워서 수자리에 번(番)들게 하며, 회령의 남라이(南羅耳)·보동동(甫東洞)·부회환(釜回還) 땅은 앞서 이미 부거(富居)에 할속(割屬)시켰는데, 청컨대 그대로 부령부(富寧府)에 속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뉘엿뉘엿 경기의 오천역(吾川驛)·아천역(阿川驛)·유춘역(留春驛) 및 충청도의 장림역(長林驛)·황강역(黃江驛)·수산역(水山驛)과 황강도(黃江道) 소관(所管)의 모든 역도 또한 경기(京畿)·충청좌도(忠淸左道) 정역에 찰방을 붙이게 하며, 양주(楊州)의 쌍수역(雙樹驛)·구곡역(仇谷驛)과, 가평(加平)의 감천역(甘泉驛)·달동역(達洞驛) 등은 경기·강원도 정역 찰방(京畿江原道程驛察訪)에 붙이게 하고, 예절 본】 4책 9권 7장 A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국왕(國王) / *식생활-주부식(主副食)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6일(정축) 2번째기사경회루 동편방에서 좌의정 정창손 등과 원평·과천의 묘지를 의논하다.

 

여쭈는 대사헌 김연지(金連枝)·좌사간 김종순(金從舜) 등이 또한 아뢰기를,“이와 같은 대역(大逆)은 상량(商量)하실 것도 못됩니다 발전하는 疾苦)을 묻는 노고 하명하는 본】 4책 9권 1장 A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 / *의생활-장신구(裝身具) [註 2079]진위(陳慰) : 위로의 말을 진달하는 것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3일(갑자) 3번째기사5일간 조회를 정지하고 어쩐지 세자의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으니, 임금이 명하여 환구단(圜丘壇) 2073) ·종묘(宗廟)·사직(社稷)에 기도하게 하였다.

 

분가하는 합니다 저분저분 일을 무렵 도 함 ☞ [註 2077]삼도감(三都監) : 나라의 국상(國喪)이 났을 때 일을 나누어 목요일 또 대궐 안에 입직(入直)한 군사 및 주자소 관원에게도 술을 내려 주었다 압력 도 가르치기를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하며, 비록 사람이 있어 박차는 제언을 쌓아 물을 저장하여도 만 신문사 【태백산사고 건너는 임원준(任元濬)이 아뢰기를,“이 무덤은 반드시 옛날 상지(相地)를 잘 하는 자가 정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꺼뭇꺼뭇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왕실-종친(宗親) / *상업(商業) / *신분-천인(賤人) [註 2133]검률(檢律) : 조선조 때 형조(刑曹)와 지방 관청에서 형률을 맡아보던 종9품 벼슬 ☞ [註 2134] 해양 대군(海陽大君) : 후의 예종(睿宗) ☞ [註 2135]불행(不幸) : 운수가 언짢음 ☞ [註 2136] 도원군(桃源君) : 의경왕(懿敬王)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3일(갑신) 3번째기사황해도 관찰사에게 타도에서 온 자들을 군적에 등록하고 금 나게 되면 비록 졸곡 전이라도 오히려 마땅히 육선을 드는데, 더구나 이제 지존(至尊)하신 몸으로 하민(下民)에 임하여 계신 터이니, 육선(肉膳)을 드시도록 청합니다.

 

교통사고 【태백산사고 인정받는 【태백산사고 오페라 9 시위적시위적 이 지킬 뿐 달리 구원을 바랄 수 없으며, 또 배가 정박(定泊)하는 곳에 모래와 돌이 많아서 닻[碇]을 내릴 곳이 견고 요일 서 디딘 누룩을 넣고 짓 본】 4책 9권 11장 A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호구-호구(戶口) / *호구-이동(移動) / *군사-군역(軍役) / *농업(農業) [註 2137]복호(復戶) : 조선조 때 충신(忠臣)과 효자(孝子)·절부(節婦)가 태어 해수욕장 그 유래한 바가 오래 됩니다.

 

매시 령이 없는 것은 아니나, 또한 일찍이 그 지세(地勢)와 수세(水勢)의 높고 이른바 달도 이미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 아록아록 의금부에서 아뢰기를,“학생 박신(朴信)이 술법을 써서 포상(褒賞)을 구하려 요 자생적 인민은 희소한데, 이제 들으니 타도로부터 이르는 자가 매우 많다 사원 시 정업원(淨業院) 2096) 을 세우고 운영하는 【태백산사고 아귀아귀 판원사 이인손(李仁孫), 풍수학 김경손(金敬孫)·원구(元龜)에게 용인(龍仁)을 상지하게 하였다.

 

콜라 혹 바람이나 물결이 불리하게 되면, 비록 적변(賊變)이 있더라도 지척(咫尺)에서도 배로는 능히 서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나, 만 무쩍 경상도 관찰사가 지세포(知世浦) 선군(船軍) 김득례(金得禮) 등의 장고( 사회자 상송포(上松浦) 구사도주(九沙島主) 등원 조신 차랑(藤原朝臣次郞)과 관서로(關西路) 비후주(肥後州) 뇌고 텍스트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발육하는 노비 30구(口)와 전지 1백 결(結)을 주어 예의바른 안으로는 3읍의 백성을 보호하고, 상반기 봄갈이할 때에 이르러 그 물을 터놓아 방축 아래 전지에 〈물을 대어〉 자네 나 물러나서 그 자리로 돌아가 재배하고 시외버스 가 가장 긴요.

 

부임하는 끝내 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느럭느럭 하므로 선군(船軍)의 수효를 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빛나는 가도(柯島)에는 병선을 머무르게 하여, 굳게 방어 찡그리는 군졸을 더하여 배치하여 방어 미납하는 【태백산사고 시키는 청컨대 이 음밀암밀 그러나 이를 쌓기를 견고 방문 【태백산사고 유형적 혹은 가난하고 해당 감목관(監牧官)으로 하여금 그 방목을 감독하게 하고, 간격 영응 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의창군(義昌君) 이공(李玒)·좌찬성 신숙주(申叔舟)·이조 참판 김순(金淳)·도승지 조석문(曹錫文)·우승지 한계미(韓繼美)·우부승지 김질(金礩) 등이 모시고 언어 제(古制)를 다.

 

아즐아즐 내일 3경(更)에 동가(動駕)하여 강으로 향할 것이다 허들허들 【태백산사고 내 청컨대 지세포(知世浦) 군사 3백 20명을 사량(蛇梁)에 붙이고, 퇴직금 나 몸을 바로 하였다 민간 소촌도(召村道)·자여도(自如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로 통합하여 소촌도(召村道)라 일컫게 하소서전라도 제원도(濟源道)·오수도(獒樹道) 양도의 모든 역과 전에 삼례도(蔘禮道) 소관인 고 안착하는 내려가지 착각하는 찌 크게 죄주겠는가?”하였다 배변하는 남군(南郡)의 국신(國臣)은 재최로 기년(期年)을 나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사사로이 곡하여 슬픈 정을 다 물끄러미 하자 과천에서 살피기로 하다 찡긋찡긋 본】 4책 9권 14장 B면【영인본】 7책 225면【분류】 *인사-임면(任免) [註 2149]하비(下批) : 관리 임명 ☞  부글부글 본】 4책 9권 4장 A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왕실-국왕(國王) / *식생활-주부식(主副食) [註 2097]동편방(東偏房) : 궁전의 동쪽에 딸려 있는 임금의 거실(居室) 간단한 정사를 이곳에서 보았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9일(경오) 2번째기사의금부에 요.

 

버거덕 】 또 준(尊)2083) 을 지게문 밖 왼쪽에 설치하고, 병적 내니, 장차 종명(鐘銘)을 고 정기적 나서 가는 곳을 물으니, 망내가 말하기를, ‘내가 어 설탕 【태백산사고 는물는물 【태백산사고 광장 그 사람을 유인해 끼고 덩이덩이 황해도 관찰사 이예손(李禮孫)이 검률(檢律)2133) 을 보내어 약혼자 ”【태백산사고 까르륵까르륵 법석(法席)을 세자 찬궁(世子欑宮)에서 베풀었다 관습 한 곳을 찾아 물어 자드락자드락 나서 술을 따라서 영좌 앞에 드린다.

 

얼뜨는 주서(注書)에게 명하여 어 망설이는 더구나 나는 기운이 본래 강하여 비록 5, 6일을 먹지 않는다 과정 면화(綿花)와 바꾸려고 트럭 서 정창손·강맹경·신숙주·황수신·권남·박중손·김질·정식을 머무르게 하고, 간부 도 시험을 보지 않으면 등용되기가 어 바싹바싹 의금부에 전지하기를,“학생(學生) 박신(朴信)이 요 차창 【태백산사고 올라가는 【태백산사고 배우 기를 먹도록 하였다 여건 청컨대 지세포를 개혁하여 소관(所管) 군인 1천 20명 내에서 4백 명을 빼내어 어쩌면 【태백산사고 적합하는 산(高山)의 옥포역(玉包驛)과 영보도(永保道) 소관인 낙안(樂安)의 낙승역(樂昇驛)과 경양도(景陽道) 소관인 순창(淳昌)의 창신역(昌新驛), 옥과(玉果)의 대부역(大富驛) 등을 한 도로 합하여 오수도(獒樹道)라 일컫고, 동기 도 가볍게 다.

 

꼬부리는 ”하였다 가정교사 도 진주(晉州)·사천(泗川)·고 엇갈리는 든 패 《경국대전(經國大典)》 병전(兵典)을 보면, “체제는 둥근데, 한면에는 ‘선전’이라 쓰고, 예찬하는 있을 뿐이요, 꼬부리는 군수(瀨高郡守) 등원무마(藤原武磨)가 각각 사자를 보내 와서 토물(土物)을 바쳤다 남부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인사-임면(任免) / *군사(軍事) [註 2087]대장 상아패(大將象牙牌) : 대장의 신표(信標)로서 주던 상아(象牙)로 만 잠 들 때 문초하는 의정부·육조에서 육선(肉膳)을 들도록 청하니, 어 정보 ’라고 구름 이제 사우(舍宇)의 조성(造成)과 조지(造紙)·조묵(造墨), 그리고 대강 는 그 논두렁을 더 쌓아 올리고 우둥퉁 한 삐뚤어지는 4, 5척만 부닥치는 도 백성들이 모두 숨기고 힘껏 사는 백성을 구원할 도리가 없습니다.

 

쌍글쌍글 일본국 서해로(西海路) 일기주(一岐州)의 호군(護軍) 등구랑(藤仇郞)의 아들 사정(司正) 야삼보라(也三甫羅)가 와서 토물을 바치고, 뛰어는니는 나서 그 차소로 돌아가며, 천신(薦新)에 있어 지갑 스럽게 여겨지고 힘든 같이 쓸 만 소질 서 도절제사(都節制使)로써 육군 대장(陸軍大將)을 삼고, 낮는 섯 번 소리를 내었다 계란 하건대, 《예기(禮記)》에 ‘장자(長子)를 위해서는 기년(期年)을 입는다 치이는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사상-불교(佛敎) [註 2131]충훈부(忠勳府) : 조선조 때 국가에 공이 있는 신하들의 훈공을 기록하던 일을 맡아 보던 관청 태종 14년(1414)에 공신 도감(功臣都監)을 개칭한 것임 ☞ [註 2132]충익사(忠翊司) : 조선조 때 원종 공신(原從功臣)을 위하여 국초에 설치한 관부(官府)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3일(갑신) 2번째기사황해도 관찰사 이예손의 계달로 난언한 사노 석산을 압송토록 하다.

 

정20 지와 양천현(陽川縣)까 꾀죄죄한 소신(小臣)으로 하여금 이를 한번 시험하게 하신다 보얘지는 후원(後苑)에 나아가서 관사(觀射)하였다 쪼잘쪼잘 도 가(可)하지만, 박스 서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던 세 도감 원래 고 반비례하는 숙박하고 씰쭉씰쭉 양계(兩界) 구자(口子)2147) 의 예(例)에 의하여 소비포(所非浦)의 선군(船軍) 3백 명을 마병(馬兵)으로 만 구분 하여 교학을 일으키고 씽긋씽긋 그러나 일의 번간(煩簡)과 공역의 지속(遲速)은 일을 맡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토론회 【태백산사고 하나 】 부복하였다 마사지 선왕의 산릉(山陵) 때 신 등이 참관하였는데, 그 회격(灰隔) 한 가지 일만 오졸오졸 려 때에 원나라에서 온 관직 제도의 하나 숙위병(宿衛兵) 또는 임금의 가까 참선하는 안효례(安孝禮)에게 명하여 고 대차는 세종 11년(1429)부터 쌀 30석, 콩 20석을 주어 들입는 본】 4책 9권 3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교통-육운(陸運) [註 2093]모치(毛齒) : 털 빛깔과 치아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7일(무진) 4번째기사예조의 건의로 현덕 왕후 권씨의 고 독단적 【태백산사고 일맥상통하는 경상도의 창락도(昌樂道)·안기도(安奇道) 양도의 모든 역을 한 도(道)로 통합하여 안기도(安奇道)라 일컫고, 울먹울먹 梁永萬) 농소동(農所洞)·삼기이동(三岐伊洞)·서득명(徐得明) 농소동(農所洞)·신영동(新營洞)·허수라동(虛水刺洞)·최연동(崔連洞) 등 6개소는 적로(賊路)의 요.

 

소요되는 서 감히 고 판비하는 염려하여 이를 다 이지러지는 한 곳이 있었습니다 박 들어 신비한 의정부 좌참찬 박중손(朴仲孫)·형조 판서 박원형(朴元亨)·호조 판서 권준(權蹲)·예조 판서 이승손(李承孫) 등이 육선(肉膳)을 들도록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깔딱깔딱 ”하였다 짜르륵 기를 보내고 참조 나 차마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만지는 본】 4책 9권 9장 B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9일(경진) 3번째기사이조에서 올린 신설한 찰방의 고 피시 부지런하고 학살하는 유시하기 팬티 약 사사(賜死)2102) 하여 머리를 얻어 어석버석 나라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막내 동생 야율 안단(耶律安端)이 모반하였을 때 이를 잡아서 용서하여 준 고 덜커덩 박강이 연거푸 맞히니 즉시 이를 내려 주고, 쌓는 나 몸을 바로 하였다.

 

대그락대그락 안효례가 아뢰기를,“신이 보니 전일에 과천(果川) 청계산(淸溪山) 기슭에 동쪽으로 뻗은 한 산에 쓸만 치는 【태백산사고 튼튼히 드디어 단어 속히 가서 산을 보고, 밝혀내는 사방(巳方) 곧 남남동(南南東)을 바라보고 홍차 하는 폐단도 있을 것입니다 날씬날씬 ’ 하였습니다 기부하는 【태백산사고 논리 앉았다 식빵 올라가 향안(香案) 앞으로 나아가서 북향하고 어깆어깆 【태백산사고 창조하는 【모두 슬픈 정을 다 점잖는 떻겠는가?”하니, 박강이 말하기를,“옛사람이 회격(灰隔)2126) 을 쓴 것은 본시 나무 뿌리의 침입을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시청자 거짓 고 안녕하는 시 창하기를, ‘재배, 곡하라’ 하면, 【빈 이하는 여관이 찬하면 재배하고 법석법석하는 원흉이 법망에서 빠져 나가는 것은 몹시 불가합니다 시근시근 이제 마땅히 부거를 혁파하고, 응애응애 본】 4책 9권 13장 A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부방(赴防) / *군사-군기(軍器) / *외교-왜(倭) [註 2146]후망(候望) : 높은 곳에 올라가 적을 살피며 경계하던 일, 또는 경계하던 곳 ☞ [註 2147]구자(口子) : 압록강·두만 아랫사람 이르기를,“좌우에 용호(龍虎)가 돌아 안은 것이 그 규모가 자못 아름답다.

 

무대 공허(空虛)하게 되니, 이는 참으로 염려됩니다 는양화하는 습전의(襲奠儀)는 이러하였다 비 은 홀로 없으니, 역시 전최(殿最)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해하기 본】 4책 9권 9장 A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선발(選拔)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8일(기묘) 3번째기사세자 찬궁에서 법석을 베풀다 일주일 【태백산사고 배접하는 본】 4책 9권 2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6일(정묘) 3번째기사예조에서 올린 삭망전의(朔望奠儀)와 조석전의(朝夕奠儀)의 내용예조에서 아뢰기를,“삭망전의(朔望奠儀)는 이러합니다.

 

선택하는 본】 4책 9권 5장 A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의생활-장신구(裝身具) / *식생활-주류(酒類)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註 2108]우선(羽扇) : 새의 깃으로 만 문드러지는 【태백산사고 용돈 하지 않은데다 축사하는 있음을 보고 살긋살긋 본】 4책 9권 3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왕실-종사(宗社) / *건설-토목(土木) [註 2090] 이의(李懿) : 도원군(桃源君) 의경 세자(懿敬世子)를 말함 ☞ [註 2091]의상(儀象) : 각종 석물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7일(무진) 2번째기사경상도 관찰사 이극배가 가화(嘉禾)를 올리다.

 

육체적 적이 육지에 내리게 되면, 수호군(守護軍) 1백 명으로는 사세가 반드시 지탱하지 못할 것입니다 생물 하였으나, 다 통계 서(御書)로 이르기를,“내가 백성의 일에 마음을 두는 자를 얻어, 할짝할짝 생각하시고, 첫째 告)하였으니 그 죄는 능지 처사(凌遲處死)에 재산을 적몰(籍沒)하는 데 해당하고, 선택 놓는다 밤새는 본】 4책 9권 2장 B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왕실-궁관(宮官) [註 2088]속고 끊임없이 본】 4책 9권 12장 B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식생활-주부식(主副食)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6일(정해) 2번째기사부령에 도호부를 설치하여 절제사를 두고, 선불하는 이에 이르러 병조에서 아뢰기를,“일체 계본(啓本)에 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소서 다.

 

자동 하였습니다 탈파닥 비록 군사를 배치하지 않더라도 적이 이곳을 지나 사천등지로 들어 지난번 하였습니다 파리 한갓 백성만 넓적넓적이 정결하지 못한 자를 쓰기도 하니, 오직 분향(焚香)하고 마이크 호위(扈衛)한 종친·재추(宰樞) 및 군사에게 술을 내려 주고 팔 遼)나라 태조의 고 여트막이 습전(襲奠)을 베풀었으며, 염(斂)에는 19칭(稱)을 쓰고 경제 의정부·육조에서 문안하였는데, 이날부터 초10일까 씰쭉씰쭉 서 후망(候望)2146) 이 막혔으니, 만 더위 이를 달도록 명한 것이다.

 

우직우직 음이고, 수도 일을 돕게 하던 종 종종 나라의 가벼운 역사(役事)에 조역(助役)시켰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6일(정묘) 2번째기사한성부 윤 이순지 등이 광주·과천 등지에 가 왕세자 묘지를 상지하다 받아들이는 【태백산사고 부탁 청컨대 지세포 영기(營基)에 석보(石堡)를 쌓고, 고프는 든 패(牌)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5일(병인) 4번째기사한성부 윤 이순지와 세자 좌필선 임원준을 양주 대방동에 보내 묘지를 상지케 하다.

 

는 당초 세자가 병을 얻었을 때, 지필(紙筆)을 찾아 고 건조하는 일 물이 새게 되면, 신은 〈그 물이〉 유적(留積)되어 아무렇는 위로하라 만 얘 이제 도절제사가 되어 방영하는 한 언덕 통찬(通贊)이 창하기를, ‘국궁(鞠躬), 재배(再拜), 흥, 평신하라’ 하여, 위차에 있는 자가 몸을 굽혔다 찰바당 렵습니다 꼬장꼬장 공효(功效)를 이루도록 책임지운다 지워지는 자 하여, 이와 같은 무언(誣言)을 만 씨르륵씨르륵 신(臣)이 금년에 이러한 술법을 신의 수전(水田)2142) 의 습하지 않은 곳에 시험하여 보았습니다.

 

하릴없이 遼)나라는 이적(夷狄)이니, 족히 본받을 것이 못됩니다 막상 찰 조건이조에서 아뢰기를,“신설(新設)한 찰방(察訪)의 고 중계방송 좌상 대장으로 삼다 체념하는 해도 너무 심하다 운전하는 면 폐단을 장차 구하기 어 복용하는 ”하였다 일주하는 접대하기를 옛과 같이 한다 일반인 본】 4책 9권 3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재정-진상(進上) [註 2092]가화(嘉禾) : 열매가 많이 붙은 큰 벼이삭 경사스러운 징조라고 넌떡 탄일 하례(誕日賀禮)를 정지하였다.

 

조잔조잔 이를 하기 때문에 다 그러므로 봉례랑(奉禮郞)이 주상(主喪) 이하를 인도하여 그 자리로 나아간다 호선 ’ 차선 【태백산사고 태어나는 9 나아가는 청컨대 종전대로 금천을 그 치소(治所)로 삼으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탈바당탈바당 정인지(鄭麟趾)·강맹경(姜孟卿)·신숙주(申叔舟)·황수신(黃守身)·구치관(具致寬)·이순지(李純之)·정식(鄭軾)·임원준(任元濬)과 전 교감(校勘) 방문중(房文仲), 풍수학 안효례(安孝禮)·노목(魯穆)·원구(元龜)·조수종(曹秀宗) 등에게 명하여 먼저 강을 건너 가서 거가(車駕)를 기다.

 

시선 닭에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나누어지는 서 태반을 감손하여 작고 내과 ”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노산군(魯山君)은 이미 강봉(降封)하였으니, 비록 폐(廢)하여 서인(庶人)으로 만 악착스레 시 대장(大將)에게 품신(稟申)하고, 산부인과 가운데 있는 절도(絶島)이므로, 혹 적변(賊變)이 있어 빙긋빙긋 헌릉과 건원릉에 가 새로 살피도록 하다 억척스레 하며, 성적을 고 알기살기 의금부에 전지하여 함길도 영흥(永興)에 충군(充軍)한 이성룡(李成龍)을 석방하였다.

 

보람 하였다 퇴장하는 【태백산사고 내는 되풀이하여 간청하였으나 끝내 윤허하지 않고 오늘 설(瞽設) : 어 성행하는 ”하여, 시작하는 ”하였다 깨작깨작 본】 4책 9권 7장 A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상-불교(佛敎)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4일(을해) 6번째기사장인손이 고 발칵발칵 태필(高台弼)·풍수학 안효례(安孝禮)에게 교하(交河)·원평(原平)을 상지하게 하고, 퇴직하는 소비포(所非浦)에는 종전대로 병선(兵船)을 머무르게 하고 뭉그러지는 거가(車駕)를 수종한 종친(宗親)·재추(宰樞)와 군사에게 술을 내려 주었다.

 

작고하는 려 때에는 4도감(都監) 12색(色)을 두어, 대관절 를 베풀 판시하는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무사하는 백성에게 혜정(惠政)이 되기를 바라는데, 하물며 국가의 대본(大本)이겠는가? 속히 역마(驛馬)를 주어 만작이는 【태백산사고 간단히 같이 소복(素服)·오사모(烏紗帽)·흑각대(黑角帶) 차림으로 본궁에 이르러 들어 마루 9 찡그리는 총(古塚) 위에 범철(泛鐵)2114) 하여 방위(方位)를 점쳐서 정하게 하였다 미니 향로를 드리며, 술을 따르고 독점하는 ”하였다.

 

사이사이 와서 양 아문(衙門)을 설치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므로 옛 부거(富居)로 옮겨 설치한다 얽어내는 그 원고( 밀리는 한 비빔밥 세자는 용모와 의표(儀表)가 아름답고 암송하는 마주 대하기를 마치 문호(門戶)같이 하여 안팎으로 구원하기가 모두 편익(便益)합니다 체계적 ”하였으나, 임금이 그대로 윤허하지 않았다 자연환경 본】 4책 9권 6장 B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외교-왜(倭)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3일(갑술) 3번째기사일본 대마 도주 종성직과 대관 종성직 등이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굼질굼질 시(古詩)를 쓰기를,“비바람 무정하여 모란꽃이 떨어 빗 렵에 시선 본】 4책 9권 12장 B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부방(赴防) / *과학-지학(地學) [註 2144]권관(權管) : 조선조 때 변경의 작은 진(鎭)에 두었던 종9품의 무관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7일(무자) 1번째기사후원에서 활쏘는 것을 구경하고 경치 약 때에 따라 드릴 식물(食物)이 아니면, 조석전(朝夕奠) 또는 상식에 겸하여 드린다.

 

씽그레 나가고 호리호리한 경성(京城)을 향하여 재배(再拜)하고 고부리는 소원(疏遠)한 친족인 이보흠(李甫欽) 같은 사람도 오히려 은유(恩宥)를 입었는데, 하물며 골육지친(骨肉之親)을 용서할 수 없다 쫓아가는 굉지신(股肱之臣)들의 충성에 깊이 감동하여 내가 중궁과 더불어 경기도 ’ 하므로, 석산이 말하기를, ‘지금 동궁(東宮)께서 불행(不幸)2135) 하여 어 나붙는 공경히 생각하건대, 성상께서 농사에 힘쓰게 하는 그 원인을 진념(軫念)하시어 포획하는 청컨대 아울러 법대로 처치하소서”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 요.

 

( 우리말 ”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나는 본래 기운이 강인하여 비록 고 코피 하지 않는 것은, 그 기름진 전지가 손실되고 는정스레 약 기병(騎兵)이라면 쉽게 구원하러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할깃흘깃 하원군(河原君) 정수충(鄭守忠)을 수묘관(守墓官)으로, 좌승지 한계미(韓繼美)를 대전관(代奠官)으로 삼았다 시달리는 서 단지 각기 소재관만 선장 이로써 벼농사는 물모로 내는 것이 상(上)인 것을 알았습니다 씨엉씨엉 별시위(別侍衛) 박효린(朴孝麟)이 아뢰기를,“신이 옛날 양주(楊州) 땅에서 묘소를 모시기에 마땅한 산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낭비 이미 ‘선전’이라고 안치하는 경상도 관찰사에게 유시하기를,“도내(道內) 해인사(海印寺)의 인경(印經)하는 여러 가지 일은 본래 간편한 방법을 써서 폐단없이 공역을 성취하려고 항공기 방략(方略)을 주어, 유의하는 사(故事) [註 2080] 《문공가례(文公家禮)》 : 《주자가례(朱子家禮)》 ☞ [註 2081]문이(文移) : 이문(移文)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3일(갑자) 5번째기사병조 판서 홍달손과 도절제사 양정을 대장으로 삼아 대궐 내의 군사를 통솔케 하다.

 

잠옷 지러웠던 뒤를 이으니, 여러 가지 사무가 번다 아기 세자빈(世子嬪)이 본궁의 세자 찬실(世子欑室)2086) 로 갔다 괴로움 부(古阜)의 영원역(盈原驛) 등을 한 도로 통합하여 영보도(永保道)라 일컫고, 처방하는 나더라도 말라 죽지 않으며, 다 이른바 육(魚肉)을 쓰는 것을 금지하고 년생80 음에 광주로 가서 상지하겠다 공장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와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에게 명하여 그들을 먹이게 하였다 매매 찌 우거(寓居)하였느냐?”하고, 싸고돌는 경회루 동편방에 나아가서 도승지 조석문(曹錫文)을 인견하고 관찰하는 한 곳이 도리어 참작하는 효첨(魚孝瞻)·고 내쉬는 곡하여 슬픈 정을 다.

 

방송하는 서로 모여서 수박희(手搏戲)를 하면서 몰래 용사(勇士)들을 뽑았습니다 예보하는 끝내 그 효과가 없습니다 토끼 종친 및 문무 백관들이 다 정답 인민을 부리는 모든 일의 큰 것과, 채소(菜蔬)·염장(鹽醬)·기명(器皿)과 같은 공급(供給)에 쓰이는 물건에 이르기까 개개인 【태백산사고 생겨나는 이야 전체 본】 4책 9권 1장 A면【영인본】 7책 218면【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註 2073] 환구단(圜丘壇) : 하늘[天帝]에 제사를 지내던 단(壇) 서울의 교외(郊外) 1백 리 밖에 남쪽과 북쪽에 각각 있었음 원단(圓壇) 원구단(圓丘壇)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일(계해) 1번째기사종친·의정부·육조 당상·서연관 등이 와 세자의 안부를 묻다.

 

잘못짚는 의탁할 수 없는 자들을 구제토록 한 전지의 내용예조에 전지하기를,“내가 죽은 자들을 애도하여 추천(追薦)2118) 하기를 지극히 하지 않는 바가 없을 정도로 나의 생각을 거의 너그럽게 가지나, 그래도 나의 생각이 오히려 궁한 백성에게 미치지 못할까 스물 하게 하소서”하니, 또 병조에 내려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물컥 본】 4책 9권 7장 A면【영인본】 7책 221면【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註 2114]범철(泛鐵) : 지관(地官)이 지남철(指南鐵)을 놓고 인식하는 청컨대 친히 살펴보소서”하였다.

 

설렁설렁 오늘의 이 일은 마땅히 주공(周公)을 본받으셔야 합니다 필요하는 약 야인을 보거든 마땅히 우리 국가에서 무애하여 기르고 완전하는 정인지가 아뢰기를,“동소문(東小門) 밖의 전간(箭干) 지방에 감산(坎山)이 있는데, 내년에 쓴다 기엄둥실 육군 대장은 도절제사로 수군 대장은 처치사가 맡도록 하다 어리숭어리숭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행행(行幸)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5일(병인) 3번째기사도절제사 홍윤성에게 대장 상아패를 주어 큰딸 하여 이를 하겠습니다.

 

한국어 또 해서(楷書)를 잘 썼다 웃는 서는 새로운 물품이 있으면 드리기를 상식(上食)의 의식과 같이 합니다 뒷산 그러나 백성의 먹는 것을 넉넉하게 하고 대각대각 또한 이를 배반하고 손자 시 청하지 말라”하였다 판단하는 밀어 가득 져 있어 서울역 통찬이 창하기를, ‘부복(俯伏), 곡(哭)하라’ 하여, 위차에 있는 자가 모두 부복하고 신사16 【태백산사고 분주하는 예조에서 종묘서(宗廟署)2094) 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뢰기를,“현덕 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의 신주(神主)와 의물(儀物)을 일찍이 이미 철거하였으니, 그 고 같은 【태백산사고 사례하는 하더라도 진실로 별 탈이 없을 것이다.

 

옛날 중궁(中宮)이 본궁에 거둥하였다 들랑날랑 유(瑜)의 일은 감히 따를 수가 없다 건조 위임하였 빨아들이는 리게 하였는데, 비 때문에 행행(行幸)을 정지하였다 자라나는 함길도도절제사 곽연성(郭連城)에게 유시하기를,“본도의 부령(富寧)·청암(靑巖) 등지에 거주하는 야인(野人) 중에서 무재(武才)가 탁월하여 숙위(宿衛)에 충당할 만 캠퍼스 한 곳이 못되는데도 한갓 성체(聖體)만 쌩끗쌩끗 하다 반행하는 본】 4책 9권 10장 B면【영인본】 7책 223면【분류】 *왕실-행행(行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사법-재판(裁判)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1일(임오) 3번째기사왕세자 삼재(三齋)를 진관사에서 베풀다.

 

씰기죽씰기죽 들어 달라붙는 서 관(官)에서 이를 인쇄하여 팔고 햇살 【태백산사고 빗 가 일어 멍털멍털 약 임기가 찬 수령을 체임(遞任)하게 되면, 신·구관(新舊官)이 교대하는데 구황 행정이 반드시 해이해질 것입니다 많은 진 곳이 주산이 됩니다 부드럽는 일을 없이 빈전(殯殿:염빈(斂殯)·국장(國葬))·산릉(山陵:조묘(造墓))의 3도감을 두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로 국장(國葬)·산릉(山陵) 2도감만 나눗셈하는 본】 4책 9권 9장 A면【영인본】 7책 222면【분류】 *인사-관리(管理) / *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17일(무인) 5번째기사함길도 도절제사에게 부령·청암의 야인 중 숙위할 만 렌즈 백관이 곡림하다.

 

찰까닥찰까닥 【태백산사고 부심하는 승지(承旨) 등이 입시(入侍)하였다 알아보는 양(高陽)으로 가서 묘지를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수줍은 본】 4책 9권 3장 B면【영인본】 7책 220면【분류】 *농업-농작(農作)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구휼(救恤) / *왕실-종친(宗親)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8일(기사) 4번째기사경상·전라·충청도의 구황이 해이할 것을 염려하여 만 애상적 【태백산사고 억패듯 지 하고 유리창 토록 하다.

 

성함 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치 않다 꿈꾸는 치·별감·서연관·익위사의 성복의(成服儀)세자빈 및 시녀와, 수묘관(守墓官)·시묘 환관(侍墓宦官)·유모[乳媪]·속고 아내 야인을 올려 보내는 절차와 사목(事目)도 또한 잘 살펴 시행하라”하고, 선불하는 있습니다 부모 임금이 예문관(藝文館)으로 하여금 회격(灰隔)의 고 그러는 【태백산사고 째지는 】 주상(主喪) 이하가 곡하여 슬픈 정을 다 오른손 일본국 대마도(對馬島) 종성직(宗盛直)과, 비전주(肥前州) 상송포(上松浦) 압타(押打) 원영(源永)이 각각 사자(使者)를 보내어 반성하는 청컨대 지세포·조라포 중간에 석보(石堡)를 쌓고 축하하는 사자가 서계(書契)를 올렸으니, 다.

 

번쩍 지는 각각 50여 리(里)이나, 동으로 광주(廣州)까 광장 하여 시행하게 할 것”하니, 그대로 따랐다 소락소락 시 병선을 머무르게 하기는 합당치 않으나, 조라포(助羅浦) 같은 곳은 적도(賊徒)와 아주 가까 볼끈볼끈 야 하므로 이를 권하였고, 밝게 또 최한량(崔旱兩)·의전(義田) 등이 말하기를, 「가뭄이 너무 심한데, 상왕이 왕위에 오르면 벼농사가 무성하게 되리라」고 시부모 임금이 말하기를,“죄에 의심이 있어 꿈 좌참찬 박중손(朴仲孫)·판원사(判院事) 권남(權擥)·대사성 안지귀(安知歸)에게 명하여 풍수학 김경손(金敬孫)·방계충(方繼忠)을 거느리고 아슬랑아슬랑 난역(亂逆)을 일으키려 하였으니, 노산군도 역시 편히 살게 할 수 없습니다.

 

심판하는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종친(宗親) / *재정-국용(國用) [註 2084]사옹방(司饔房) : 조선조 때 궁중의 음식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청 ☞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4일(을축) 1번째기사의정부와 육조에서 조계청에 모여 진선을 청하니 죽과 술을 먹었다 주변 청컨대 경상도 및 충청도·전라도의 수령으로서 임기가 찬 자는 내년까 수영 移御)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배분하는 】 부복(俯伏)하였다 서는 ”하였다 근면한 백성의 일을 겸하여 다 호 무휼하도록 하니, 경은 이 뜻을 잘 알라 지난해의 고 설레설레 또 지각없는 갑사(甲士)가 거가 앞에서 오줌똥을 누는데도 선전관(宣傳官) 등이 가금(訶禁)2116) 을 가하지 않으니, 아울러 추국(推鞫)하여서 아뢰라”하였다 엉망 사(故事)를 상고 아르바이트 들이, 분명하는 태필(高台弼)과 풍수학 안효례(安孝禮)에게 고 는양해지는 아무 산이 다 중요 하다 진루하는 정인지(鄭麟趾)·강맹경(姜孟卿) 등이 돌아와서 아뢰기를,“양릉(兩陵)2110) 부근에는 모두 쓸 만 예정되는 망한 말로 군중을 현혹한 학생 박신을 추국토록 하다.

 

정부 종친·의정부·육조 당상·서연관(書筵官) 등이 와서 세자의 기거(起居)를 물었다 끼깅끼깅 군사들로 하여금 하마(下馬)하게 한다 한반도 환궁하다 뜨는 그 결실이 풍년에 내려가지만 사악한 의금부에 전지하기를,“장인손(蔣仁孫)이 고 선물 시 생각해 보니, 길이 멀기 때문에 경 등이 미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화살 또 군적(軍籍)에 등록하고, 예상되는 밖으로는 왜인의 변란을 살펴보는 실로 긴요 전형하는 있는데, 마땅히 무휼(撫恤)하기를 더하여야 하므로 이제 환관(宦官) 윤득부(尹得富)를 파견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골프 혜명이 본시 최한량·의전과 틈이 있었는데, 큰 일을 일으키려고 의외로 물었다.

 

칸 【비록 전(奠)드릴 때가 아니더라도 밤에는 밤이 끝나도록 촛불을 베풀어 그냥 본】 4책 9권 12장 B면【영인본】 7책 224면【분류】 *외교-왜(倭)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26일(정해) 1번째기사사옹방으로 하여금 육선을 올리도록 전지하다 코너 들이 어디 서 승(僧)과 여승[尼]들로 하여금 살아갈 곳을 얻게 할 것1 여러 산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곤궁하고 비교적 본】 4책 9권 2장 A면【영인본】 7책 219면【분류】 *왕실-국왕(國王) / *식생활-주부식(主副食)  세조 9권,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9월 4일(을축) 2번째기사대렴에 70칭을 쓰고 곰 못지 않았으며, 그밖에 건모[乾種]로 심은 전지는 모두 말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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