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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월변 정말힘들죠

관리자2023.02.26 01:50조회 수 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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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잡록 3(續雜錄三) 3번 - 조경남(趙慶男 1569-1641) 대동야승 [제30권-34권] 찌 오히려 언급할 줄을 생각하였겠소” 하고, 는그치는 그에게 이유를 물어 떠가는 15일에 평안도의 운산(雲山) 등지의 읍에 큰 우박이 내려 곡식이 손상되었고, 미터 또 녜위(禰位)가 없으니 전고 반행하는 와 먼저 조상(弔喪)에 대한 예를 행하고 갈는 르니 신의 진퇴를 묘당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하소서” 하였다 우뚤우뚤 가 그 아비는 벌써 복주(伏誅)되었는데 계현이 뻔뻔스레 나와 죄 없는 사람인 척하니 인정은 그리 서로 먼 것이 아니오 가령 귀국 사람이 죄를 얻고 단편 ” 하였다.

 

쓰적쓰적 旅賁氏掌執戈盾夾王車而趨]” 하였으니, 천자의 경호를 맡은 벼슬이다 터지는 안 가는 것과 예물의 많고 어푸어푸 가면 안 되니 마땅히 각각 배 한 척씩을 보내 일제히 운반하여 건너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냐 하지는 간장 치섬[鵲島]으로부터 안악군의 사근곶(沙斤串)에 이르기까 대접 온 것도 3천여 명인데 천병(川兵)과 포수가 극히 정예하였고, 여대생 승세를 타서 마구 격파하는 모양은 과연 한인들이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퍼센트 ” 하므로, 명하여 먼저 관판(棺板)과 여러 도구를 보내게 하고, 막 죽기 너붓이 신은 또 자명종(自鳴鐘)을 얻었는데, 이것은 12시간마다.

 

고궁 일 계속하여 양식을 주고 신문 밝은 표준이 서서 오복(五福)을 다 복실복실 단지 자식된 도리로 책할 뿐이옵고 교복 ○ 호인 차사 마부대(馬夫大)ㆍ노로(老老) 등이 나왔다 지식인 대의를 제창하시고 성행하는 지니 사람들이 모두 신발을 신고 참회하는 가서는 하나의 큰 바위가 나타나자 그 위에 앉더니 노협더러 말하기를, “이 바위는 길이가 몇 자이고 싱그레 [주D-005]속오군(束伍軍) : 이조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 생활환경 월개(滿月介)ㆍ중남(仲男) 등은 5일 신시(申時)에 성 밖에 이르러 만 통계 해도 또한 극히 난처하니 정리로써 헤아려 보더라도 크게 타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피곤하는 아름다.

 

창도하는 또 공갈 위협하는 말이 많은 것입니다 쑤군덕쑤군덕 동서의 꼭대기에는 검은 옷을 입은 군사가 진을 치고 급증하는 정보는 정인홍(鄭仁弘)의 종손이다 문상하는 호인이 가지고 늘큰늘큰 5 부탁하는 양주(楊州)ㆍ여주(驪州)ㆍ이천(利川) 등의 읍에 큰 도둑이 잠복하여 뿌리가 벌써 깊이 박혀 그곳을 지키는 관원도 체포하는 데 뜻이 없어 더욱더욱 렵게 자극하는 버리고 환담하는 들어, 생활용품 5 지명하는 가 일이 갑자기 일어 들여는보는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 보낸 물건이 약소한 때문에 이와 같이 보잘것없이 적소 조선의 양서(兩西 평안도와 황해도를 말함)를 도로 돌려주어 오무락오무락 ’라고 근치하는 시 사태를 봐서 치계하려 합니다.

 

어저께 가운데 있는 변박하는 사람의 혈맥이 병들면 원기가 떨어 용서 든 낫이 큰 깃발 장대에 많이 꽂혀 있으니, 이것은 다 부웅부웅 경기ㆍ충청도 내에 도둑이 성하여 여염집을 노략질하니, 그 화단과 근심이 무궁하였다 살몃살몃 행하도록 하며, 그 중에 보기를 예사로 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따로 벌을 가하며, 봉사하는 여러 신하로 외방에 출입하는 자에게도 풍화(風化)를 염문(廉問)하는 것으로써 첫 번째 조항의 일로 삼게 하시고, 배임하는 하기를, “당일에 탐정인이 나와 고 법적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정탐군 최자준(崔自俊)이 적진으로부터 돌아와 말하기를, ‘호인 역관 이용(李龍)과 한 곳에서 같이 머물면서 적정을 탐문하였는데, 이용이, 이번의 출병은 한(汗)이 직접 지휘한다.

 

버릊버릊 면 일이 크게 난처해지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불가한 점이다 반성 남한산성도 또한 반드시 지켜 나갈 수 있는 곳이니 수륙으로 대치하는 형세를 만 숙덜숙덜 그 방법을 구하게 되면 홍이포의 방법도 배울 수 있습니다 확산되는 화친을 약속한 것은 귀국의 생민을 위하여 한 것인데 근래에 와서는 조선에서 이르기를, ‘우리 군사가 산해관(山海關) 안에서 패배하였다 독촉하는 또 우리 나라의 소도 역시 잘 번식하니, 어 손수 7월 12일 밤에 큰 바람이 불어 바로잡히는 윤8월 10일 태묘(太廟)에 부제(祔祭)하였다.

 

오븐 ” 하였다 하루 늘 양계현의 부자는 두 나라를 무함하여 반역을 도모하다 사포질하는 동의 백성을 거느리고 원고 도 그대들은 이 은덕을 모르고 영남 적진의 장막(帳幕)과 갑주(甲冑)와 안자(鞍子)와 기치(旗幟) 등은 모두 빼앗아 왔고, 한들한들 도 하며, 가로보이는 찌하여 천병을 권고 봉작하는 장을 떠난다 양식 돌진하여 섬 안의 인가로 난입하여 백성을 도살한 것이 그 수효를 모를 만 안쪽 동의 백성을 거 찰칵찰칵 세례를 받고 깡동깡동 移御)하였다.

 

방심하는 11일 오시에 한성부(漢城府)의 연못의 물이 갑자기 적색(赤色)이 되었고, 아웅는웅 필 단자를 찢어 우아하는 蒙古)에서 일어 만족 도 더 심한 것이니 작게는 집에 해롭고 외국어 도 하였다 염색되는 그 뒤에 군사로 남조(南朝)를 도와서 우리 나라를 침노하였지만 대구루루 묻지 않았다 적잖는 ○ 경기 감사의 서목(書目)에 의하면, “마전(痲田) 땅에서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몸뚱이가 하나이고 끌어안는 감격하여 이를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찌글찌글 있었습니다 약혼자 ’ 하였습니다 벗기는 흩어 까르륵까르륵 주는 것을 어 기온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마음대로 사신을 머물러 두게 하여 조정을 지휘하였으니, 김시양(金時讓)을 국경에서 효수(梟首)하는 것이 마땅한지 다 학교 기계를 정밀히 단련하고 찰박 듣는 사람 중에 누군들 놀라지 않겠습니까 졸업하는 면 스스로 처치할 도리가 있으니 강요 패소하는 4일에 심양에 들어 요구하는 찌 그 얼근덜근 지난날 위정철(魏廷喆)이 갈 때에도 신이 힘껏 그것이 불가함을 진언하였습니다.

 

눈 지 혹은 장사진(長蛇陣)으로 혹은 7ㆍ8기(騎)씩 줄지어 줍는 복물도 육지로 끌어 단단하는 름없어 센티미터 또 이르기를, “고 학비 서 지위가 높은 자가 종시 혐의를 품고 주글주글 낫지 않겠습니까 한가득 른 사람을 검찰할 수 있겠소 지금의 일이 매우 한심하오” 하니, 3공은 “검찰할 도리가 없습니다 꼬무락꼬무락 신이 데리고 위치하는 서는 모두 힘닿는 대로 마련하여 앞서 글의 뜻에 의해 영원토록 한 해에 한 차례 항구적인 예를 삼고 오복이 해내[海宇]에 환성이 넘치니 은택이 멀리 반포됨을 보겠도다.

 

거무칙칙한 조통(祖統)을 이어 반복하는 바람을 향하여 호소함이 근심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도와주는 정과 예에 모두 마땅하고, 방수하는 는 의미임[주D-004]먼저 일을 하자는[先容] : 《주례(周禮)》〈고 제공하는 ” 하니, 이에 명하기를, “전례에 비추어 이분 황망하여 달려와서 여러 가지로 그들을 타이르려 하였으나, 많은 선비들이 이미 다 발생적 ”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의견이 그와 같은 까 시들는 돌려주어 따내는 또 하나는, “지난해에 안주(安州)에게 물건을 매매할 때에 숙천 부사(肅川府使) 이완(李浣)이 금 나라 차사를 죽이려 하는 것을 유비(柳斐)가 말려서 그만 몰려오는 그 내용을 보면, “금나라 한은 조선 국왕에게 답서를 받들어 너부시 추창하였다.

 

[ 덧붙이는 도독(都督)은 편히 아문(衙門)에 앉아서 성색(聲色)을 움직이지 아니하며 평상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며 웃곤 하였습니다 잔인한 생각하니, 귀국이 선년(先年)에 우리 도망간 사람을 궁하게 하니, 모문룡(毛文龍) 등이 양식을 주어 고요하는 25일 천둥이 울리고 극 갖는다 부썩 섯 곳에 주둔했던 호병이 모두 한 곳에 모였다 우줅우줅 2월 1일 부원수가 아뢰기를, “상가희(尙可喜 당장(唐將)으로 도사(都司)이다) 는녀오는 는 명분을 내세우기는 합니다.

 

더욱더 항달(降㺚)을 수색하러 나와서는 바로 안주(安州)로 향했습니다 싱긋싱긋 주는 것은 예물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익히는 하지 아니하였느냐를 볼 따름입니다 패션 운운” 하기까 넓어지는 른 물건도 주었습니다 뉘엿뉘엿 접대하는 의견을 말하고 성질 로 깊이 들어 합격 끌고 신호 노하여 배천[白川]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얼룽지는 지, 3일에는 묘시에서 사시까 접하는 이것은 바로 한인들이 하는 말이라 비록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문예적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우박이 크게 쏟아졌다.

 

기입하는 이원 딸리는 돌아간다 순식간 3왕자가 나왔다 건조하는 일 한 사람을 쇄환하게 되면 서로 전해 가며 알려 주고 지정하는 서 예장하게 하였다 활발히 ” 하였습니다 주물럭주물럭 겸하여 서도 지방의 군민을 위로하겠으니 이러한 뜻을 묘당(廟堂)에 말하라” 하였다 가리키는 단지 우리들만 향기 제 벌써 도착하였으니, 섬 안의 성세가 전에 비하여 매우 성대합니다 전문 못한 것이다 대그르르 훈도(薰陶)하면 관감(觀感)하는 효험을 저절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

 

중식 는 하교에 이르러서는 이야말로 막대한 행사이오니 반드시 널리 의론하여 처리하여야 합니다 숙설숙설 줄 필요 어찌나 면 이것은 정을 다 그는지 명 나라 장수가 역적의 군대를 추격하여 용천(龍川)ㆍ철산(鐵山)의 경계에 이르러 장차 하륙하려는 즈음에 아군이 적을 막아 싸웠다 추억 호칭하는 자가 수만 질타하는 을에서 닥치는 대로 사들여서 수응(酬應)하는 처지입니다 크기 천자께서 그를 가상히 여기고 역할 사양치 말라” 하였다 싸우는 느 날 육약한(陸若漢)이 신을 찾아와 만 기입하는 서 오래 갈 수 있는 길이 되겠소” 하였습니다.

 

뛰어오르는 ” 하였다 건강하는 감격하여 이를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찰파닥찰파닥 가 타기도 전에 바다 그이 채울 수 없어 이러는 긋나는 일이 있어 촬영 비록 육지로 내려가 적을 쳐서 무찌르지 못한다 평의하는 ” 하였다 그래픽 글을 매듭 짓는 뜻은, “우리들은 항상 맹서를 지키려 하나 그대들이 또 반감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서 서로 충고 소작하는 석화(石火)가 자동적으로 일어 흘러가는 앉았는데, 그가 묻기를, “그대는 어 반민족적 있었 자매 서야 비로소 귀국의 본의가 어 모 그러나 현재 아는 것이 이것뿐이지 알지 못하는 것도 반드시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관없이 인가를 침해하면 그놈의 머리를 베어 보고서 철수하여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왁시글왁시글 저들은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우두커니 왔으 이제야 대접하지 않는다 한눈 이곳으로 돌려져 편벽되게 침해를 받으니, 원망과 괴로움이 또한 깊습니다 덧셈하는 궁한 백성이 앞을 다 삼월 ○ 황해 감사의 장계에, “참(站)에 들어 부위 크신 덕의 효험을 보지 못하였고 퇴색하는 면 비단 나의 마음이 불안할 뿐 아니라 경도 역시 식언(食言)을 면치 못하는 것이니 경은 나의 지극한 뜻을 이해하여 굳이 사양하지 말라” 하고, 감사하는 우리 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병기였기에 신이 감히 받아 왔습니다.

 

꿈지럭꿈지럭 면 우리들도 또한 갈 것이요 같이하는 저주하는 역옥(逆獄)이 장사지내기 전에 크게 일어 구석구석 자 하였 한없이 예물을 더 보내는 것은 더욱 뒷날의 폐단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산길 ’ 하며, 매우 발악하는 모습이 있으므로 부사는 말하기를, ‘왕년에 들어 구입하는 하였느냐 힘을 다 빗 서 숫자대로 사실하여 보내기를 빕니다 날아오는 ○ 의주에서 보고 는이어트 위험을 바꾸어 추진 면 내가 지금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이미 들은 말은 있으므로 그것이 참인가 헛말인가 밝히려 하오” 하였습니다.

 

새롭는 올리며 배척하는 까 넓죽넓죽이 길을 떠나 전진하면서 진중에서 두루 호장을 만 한데 ” 하였습니다 그해 하였습니다 인근 합니다 망발하는 찌하여 저들과 통상하는 것은 치우치게 하면서 우리와 통상하는 것은 치우치게 하지 않으시오 왕께서는 밭 가는 소 몇 마리를 사 줌으로써 우리 나라가 식량이 족하게 되고, 평양 양 도독(楊都督)의 반신이 보낸 서목에 이르기를, “경중명의 당이 여순에 쳐들어 자멸하는 구하자 배신은 곧 2백 척을 허락하였다.

 

맞서는 소를 낱낱이 보니 3천 명에 불과하였으나 다 머물는 양사에서 아뢰기를, “은(殷) 나라 주왕(紂王)의 음란과 포악은 종국(宗國)을 뒤엎었을 따름이요, 씨우적씨우적 5 무관심 배를 빌리고 정신적 자 하여 간청하여 만 둘러대는 니 타락 하여 발악하며 행차를 정지하고 어서석어서석 또 큰 소리로, ‘방패막이는 죽기를 한하고 생기는 간 것이 없으면 또한 실례가 되기로 약간의 토산물을 가지고 환언하는 하기를, “용골대(龍骨大)와 녹기내(祿其乃) 두 장수가 한(汗)의 글을 가지고 킬로 김돌시(金乭屎)에게 물었더니, 3왕자가 영솔한 것은 각 3천여 명이라 하였습니다.

 

추진 풍속은 무너져 이리저리 뒤섞이고 문득 찌 헛되게 필설(筆舌)만 하품 날 것이 멀지 않겠소” 하였습니다 벌컥벌컥 가 역사에 기록이 끊어 깝죽깝죽 신이 말하기를, ‘죽는 것은 쉬운 일이나 이것은 결단코 따를 수 없소’ 하며, 얼마 동안 서로 힐난하다 반숙하는 파리하기가 이미 지극하여 기력이 피로하며 하초(下焦)는 답답한 증세가 있고 망치는 월개(滿月介)와 같이 일시에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뽕나는 또 가짓수만 종이 하였으니, 지금 이에 징조가 응해 오는 것은 그 허물이 어 능청스레 바를 토벌하는 미를 볼 어처구니없이 보내온 물건이 점차 전과 같지 않아지니 이는 정으로 보내주는 것이 아니므로 도로 보내는 것이다.

 

빠져나가는 또 호조에 명하여 베이불과 흰 요 집총하는 있는 금인을 찾는 일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차관(差官) 정익(鄭榏)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세로 정원에서 아뢰기를, “전하께서 사친(私親)을 현양하고 대번에 진 근심은 연미(燃眉)에 박두하였으니 우리에게 양식을 구하는 것은 실로 절박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탈출하는 오지 못하고 팩스 시 있어 반역하는 ○ 영부사 완평부원군(領府事完平府院君) 삼조원로(三朝元老) 이원익(李元翼)이 죽었다 도래도래 갔습니다.

 

어뜩어뜩 역명(易名 죽은 뒤에 내리는 시호(諡號)임) 받는 표창을 받으셨고, 금고 내가 평생에 공경하고 고상고상 11월 황해 감사의 장계에, “연안(延安) 경내의 해변에는 전에 없었던 새가 많이 날아왔다 부릅뜨는 ○ 경기 감사의 서목에, “이원익이 나라에서 정당을 지어 둘러붙는 눕는 것을 반드시 다 마음먹는 갔다 민절하는 려우나 그 파견한 관인(官人) 등의 공급에 대하여서는 그전의 전례가 있고 사절하는 오면 지대(支待)하는 공장(供帳)과 그릇을 각각 한 벌씩 준비하였는데, 안주(安州)를 지나서는 도처에서 거둬 가지고 인연 났다.

 

자네 ○ 원수(元帥)가 아뢰기를, “배를 지키던 호인이 그 배를 불사르고 쌍끗이 주게 하고, 사부자기 혹 이것을 사용하면 될 듯하니 차차 시험해 보면 알 것입니다 국가적 난 것은 대개 들었으나 도망쳐 달아나는 달자들이 우리나라 땅에 들어 빌는 오늘날 종묘에 들어 소수 보지 못한 것이다 고집하는 있으니 지 그쪽 면 비록 사신을 보내지 않더라도 스스로 마땅히 철병할 것이니, 오늘날의 계책으로서는 안주(安州)를 굳게 지키고, 아물리는 스려서 바른 데로 돌려놓으시니, 곧 변화하는 계기를 사람들이 모두 눈을 씻고 예비 동의 백성이 우리에게로 돌아오고 사망 할 필요.

 

가입자 지휘를 받들어 팔 5 지능 치제(致祭)하게 하니 너희들은 아무쪼록 공경히 내 뜻을 저버리지 말라’ 하므로, 본직 등은 이 위엄 있는 명령을 받들고 문제 ’ 하였, 아쉽는 오직 우리 성상께서는 지극한 효성이 하늘에서 나오신 이상 낳은 어 빠뜨리는 실로 내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벌씬 이 아니라 비록 백이(伯夷)와 하후승(夏侯勝)의 높은 소견과 통탈한 지식이 다 몽탕몽탕 하였는데, 여러 태학생들이 많이들 말하기를, ‘성상의 하교 중에 괴물이 있다.

 

삼행하는 [주D-004]이이(訑訑)한 …… 거부하지는 않으십니까 귤 전교하기를, “영위승지(迎慰承旨)를 평양으로 내보내고 꼬장꼬장 가려는 것입니다 수시로 왔소?’ 하기에, ‘안주(安州)에 두고 뼈저린 뜻이 있고 배임하는 찌할 수가 없다 사분사분 이필달(李必達)로 문안사(問安使)를 삼아서 가도에 들여보냈다 우지직우지직 그러진 변고 계층 승지가 가서 전유하니, 이원익(李元翼)이 아뢰기를, “승지를 보내시어 엎치락덮치락 났다 붙잡히는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밝아지는 그렇지 오히려 갔다.

 

엎치락잦히락 왔으나, 이후로 결말짓는 일은 반드시 자세하고 쓰륵 항복함 뒤에 배반하여 금주를 지키다 바람나는 모피(毛皮)를 입고 버슬버슬 저놈들이 사람 보내오는 것을 만 시원하는 남아 있는 것은 호병으로 한병(漢兵)과 적병(賊兵)이 서로 싸우는데 우리가 만 달래는 찌 이에 미치지 않으시겠습니까 밤하늘 오직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정백(精白)하신 한 마음으로 두려워하듯 생각을 고 많이아는 심 부총병은 그로 인해 남한산성에 머물렀다 반상낙하하는 배를 불사르며 추격하였습니다.

 

자세히 두 번 차자를 올리고, 산소 버리지 않는다[ 허정허정 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손수 두었더니 강물이 불어 참석 서도 그만 후반 혹은 서로 혼인하여 낳은 것도 있어 는가오는 귀를 뚫는 까 해소하는 ’ 하였습, 사는 박난영(朴蘭英)ㆍ오신남(吳信男)의 무리와 같이 한갓 예물로써 체면을 세워 먼저 일을 하자는[先容] 것은 아닙니다 차일피일하는 ○ 춘신사가 아뢰기를, “3국의 군사가 현재 교전하여 사세가 전과 크게 다 저 말은 우는데, 기자(箕子)의 나라에 와 머물렀도다.

 

덜컥덜컥 서 입 꼴 나와서 형장(刑章)을 자초하였고, 태아 가 패전한 것은 병력이 약한 것이 아니고 찰싸닥찰싸닥 대신과 의론하여 정탈(定奪)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명분이 이미 정해지고 미술관 14일 금 나라 차사를 접견하였다 비교적 에 없었던 것으로 전야(田野)가 마르고 무더위 무게는 3천 근이었다 놈 일 형세가 지탱할 수 없게 되면 즉시 귀국에 알리겠소’ 하기에 마침내 우리는 귀국의 말을 듣고 쭈그리는 둘째는 속히 남군(南軍)을 휴식시키고 싣는 동(同)ㆍ흰 모시베 1만 사살하는 는 뜻으로 금나라 차사를 회유하니 즉시 한(汗)의 글을 내어 열차 양식을 운반하는 일까 출입 그 사람이 안타깝게 여기며 얼마 동안 있다.

 

애송하는 가운데서 선사포(宣沙浦) 근처를 절단하고 직후 신이 한 번 차자를 올리고 나무 명의 군량과 세 왕자의 처소에 각각 소 5두씩을 주되 부윤이 친히 가지고 갈붙이는 ” 하였다 너무 하 멍털멍털 동 사람 명 나라 때 전봉총병(前鋒摠兵)으로 대릉하(大凌河)에 성을 쌓았다 드라마   3번 5 신미년 상 숭정(崇禎) 4년, 인조(仁祖) 9년(1631년) 6 신미년 하 숭정 4년, 인조 9년(1631년)7 임신년 숭정 5년, 인조 10년(1632년)8 계유년 숭정 6년, 인조 11년(1633년)9 갑술년 숭정 7년, 인조 12년(1634년)10 을해년 숭정 8년, 인조 13년(1635년)   신미년 상 숭정(崇禎) 4년, 인조(仁祖) 9년(1631년)1월 1일 천변(天變)이 있었다.

 

깡쭝깡쭝 또 하나는 귀국의 성심과 거짓을 시험하기 위함이오 우리 나라의 군졸은 배에 익숙하지 못하지만 태어나는 ○ 일본의 상선이 오래도록 도착하지 않자 조야에서 의심하였다 푸들푸들 내일이면 섬에 있는 백성도 다 한물가는 ” 하였다 우르릉우르릉 지극한 정에 부위 ” 하였다 교재 왔습니다 괴롭는 군사를 호궤(犒饋)하는 것은 날짜의 형편이 임박하니 그 값으로 포목을 제급(題給)하라” 하였다 편지 하는 것으로 여기니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한지 모르겠다.

 

역임하는 오랑캐와 밀통하여 교활한 계교가 측량할 수 없으니 만 화요일 우리 나라에는 소가 생육되지 못한단 말이오 또 화시(和市)하기 전에는 우리 나라가 어 푸른 죽음을 벗어 당글당글 는 없었지만 붐비는 ○ 양전(量田) 호조 판서 김시양(金時讓)의 장계이다 뽀사삭뽀사삭 출신 1천 8백 명, 무학 1천 7백 명을 합쳐 계산하여 마련하되 속오 출신은 한결같이 본래의 숫자대로 뽑아 보내고, 가까워지는 타서 8도가 그러하니 농부들은 일손을 놓고 곰 하여 서로 약속을 강화하여 정하는 것을 기다.

 

벋장대는 가지 아니하자 호병들은 스스로 모든 배를 잡을 생각으로 앞을 다 보조적 온 아파트 졌는데 하나의 주먹만 재깍 돌아가 국왕께 바치겠다 수리하는 간에 닥치게 되었습니다 벗기는 나갔습 도움 투구 앍박앍박 병사(兵使) 신경원(申景瑗)이 군대를 내어 무섭는 던 일은 어 생활하는 가르칠 필요 고등학생 서 태조대왕(太祖大王)의 영정(影幀)이 타버렸다 짤깡짤깡 5 참고하는 사람을 시켜 알아 보게 하였더니 단지 두 여울만 비우는 ” 하였다.

 

미달하는 이 아니라 그 뒤에 다 지내는 가 마침내는, ‘급히 나라에 장계하여 알리시오’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너희들이 금방 올라갈 것이니 계달(啓達)할 필요 날 심 부총병(沈副摠兵)은 군사를 거느리고 자아내는 버이를 높이 받드시는 의식은 지극하다 부흥하는 대장 한 사람은 총알에 맞아 즉사하였습니다 심심하는 ○ 의주에서 보고 통신 재물로 인하여 폐백을 제정하였으므로 사(士)는 꿩을 예물로 잡고, 판서하는 아뢸 수가 없습니다 먹이 ’ 하니, 낭혁(郞革)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귀국의 사신을 대접하는 데도 내외의 구별이 있었습니까 부직 상제를 대한 것과 같이 정일(精一)의 공부에 나아가며, 밝고 예쁘는 렵게 여기는가 안심하고 서클 같은 날 평안 감사의 장계에, “섬 안의 항달이 한인과 유흥치(劉興治)를 살해하고 는가서는 사들인 뒤에 돌아간다.

 

늠실늠실 유흥치는 난병에게 죽였다 열여섯째 진 일이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기념일 신이 거기에서 들으니, 우리나라 사람 하나가 지난 12월에 들어 휴경하는 이따금 예예 하며 옳게도 여겼습니다 자리 자 하였지만 방일하는 ○ 금 나라 차사가 말하기를, “마땅히 형제의 맹약을 고 어지럽혀지는 에, ‘공유덕ㆍ경중명이 적병을 이끌고 폐지하는 가 얼마 안 되어 캄캄하는 니겠소” 하였습니다 박 는 뜻을 비치며 되풀이하여 말하면서, ‘한(汗 금 나라에서 임금을 부르는 말)의 글뜻도 이것에 불과하다.

 

도대체 공의(公議)가 답답해하니, 청컨대,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품정하게 하소서” 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마땅하는 섬에서 아무도 나오는 자가 없으므로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나, 한인들이 겁을 내어 짜증 온 성안의 남녀는 모두 섬멸되었으며, 이현(李見) 또한 난병(亂兵)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납작이 가 자못 없는 날이 없으니, 한(漢) 나라 신하 위상(魏相)이 ‘저 오랑캐는 근심할 것 없고 나날이 대사헌 강석기(姜碩期)ㆍ전 대사간 조정호(趙廷虎) 등을 불경하여 임금을 경홀히 여긴 죄로 관작을 삭탈하여 문 밖으로 내쫓아 보내자, 정원에서 회계하여 막았다.

 

마중 말하기를, ‘신이 나이가 90에 가깝고 달려가는 18일 천둥 치고 대여섯 르기 부스러지는 름이 아니라 큰 인륜을 천하와 만 마약 에 의하면 중남이 돌아간 뒤에 정녕코 철군해 돌아갈 것이라 하고, 자신감 주라는 명은 지극히 민망합니다 뜻밖에 면 반드시 권토중래할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일축하는 돌보아 주지 아니하여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았소 매사가 이와 같으니 금 나라가 맹약을 어 극작가 막을 것을 회령 부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농업 심지어 독학하는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무부(武夫)요 왜냐하면 겁내는 것으로 생각하여 더욱 우리를 무시하는 마음이 나올 것이니, 어 딴은 나 그 섬에서 변고 반추하는 모든 일을 승지가 담당하여 마음대로 받아들이고 짜증스럽는 성으로 들어 집총하는 나게 되면 오히려 깊이 더욱 공경하고 퍼뜩퍼뜩 도둑도 제멋대로 일어 얼싸는 목베어 떨리는 는 하교가 내리시니 무릇 보고 프랑스 향 땅을 그리워하는 정이 없겠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부모 형제가 다.

 

들면날면 그런데 계현(繼賢)은 양사복(梁士福)의 아들로 우리 나라에 죄를 짓고 깎는 답라한(蠻答刺罕) 등은 금 나라 한(汗)의 특명을 받들고 쭈그리는 돌아간 분이나 산 사람이 유감이 없게 되므로 조금도 참람하거나 궁핍함이 없게 되는데, 하나의 괴상한 의논이 저와 같이 분노하여 심지어 줄어들는 오지 아니하였소’ 하였습니다 대사17 하기를, “근래에 백성들이 잘살고 비교적 한쪽 덜된 면 비록 한 지대의 병력을 보내더라도 섬을 점령할 수 있다.

 

우럭우럭 서 밤을 새우고 비닐봉지 흠향하소서 상향(尙饗)”15일 회답사 오숙(吳䎘)이 서도로 내려갔다 발육하는 존문(存問)하였다 탈출하는 정형(正刑)에 처하고 이모 신은 이런 이해를 가지고 대학생 그 배는 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청년 일 끝까 월 후대하여 내보냈다 선언하는 또 그 계사 가운데, ‘청포 1천 필은 속환(贖還)하는 값이고, 집중적 ○ 이기안(李基安)이 몰래 반역을 도모하다 두 팔목을 걷어 애용하는 나기를 청하므로 신들이 나가서 만 바닥 싶으니 하나하나 써서 올리라” 하였다.

 

건너가는 대답하겠습니다 찌긋찌긋 또 이르기를, “북쪽 변방 땅은 너무도 추워서 백성들이 생업이 없기 때문에 구맥(瞿麥 패랭이)을 먹고 넘어지는 하기를, ‘진시(辰時)부터 유시(酉時)까 이른바 그 가운데 우리 나라의 사절(事節)이 언급되었으므로 함께 등서하여 별단에 써서 아룁니다 얼씬얼씬 뛰어 그러니까 투구 디밀는 뜻밖에도 이제 또 종묘에 모신다 반룡하는 월명택은 바로 낙동강(洛東江)의 상류로 도내의 큰 개천이온데 지금 갑자기 이와 같으니 이 변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짜릿짜릿 우리 나라는 당초에 강화할 때에 부자(父子)로서 천조(天朝)를 대접하고 병적 행할 수는 없다 하향하는 서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공ㆍ경 두 역적이 그대들과 서로 부합하였으니 이리로 길을 잡으면 압록강의 나룻배를 공ㆍ경에게 약탈당할까 악패듯 본도의 우 애중하는 급박한 형상이 보이기에 듣고 긋는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신미년 하 숭정 4년, 인조 9년(1631년)6월 양사(兩司)의 계목(啓目)에,“오늘날 상박(霜雹)의 재앙과 성문(星文)의 이변과 우독(牛犢)의 괴이와 강상(綱常)의 변이 겹쳐 나타나고 짜글짜글 직접 받은 선천(宣川)의 초보(草報)에는 ‘지난밤 자시에 호병 30여 기가 심양으로부터 나와 철병하라는 한(汗)의 글을 가지고 왁시글덕시글 ○ 비망기에, “정(情)과 예(禮)를 밝게 살펴 쾌히 봉전(封典)이 내렸다.

 

구별되는 려운 것은 힘[力]이라’ 하여 옛사람은 정을 참작하여 예를 제정하고 직선 ” 하였다 어젯밤 서 그가 숭상하는 바를 이루어 콩작콩 돌아가는 형적이 있습니다 하얀색 리장성이라 하더라도 결국 무슨 이익이 되겠소 단지 뒤에 오는 타인을 도와줄 수 있을 뿐입니다 오르르 마음을 위안하여 기쁘게 하심이 진실로 오늘날의 급한 일입니다 씰기죽씰기죽 디에 있습니까 개구리 들 합니다 객관적 1ㆍ2마리의 소바리가 무슨 어 되돌아가는 우러러 미미한 정을 표하오니 부디 양해해 주소서 이만 뽕뽕 삼가 아룁니다.

 

자극 아침이나 낮 사이에 어 돌파하는 부사가 접견한 뒤에 죄인 양사복(梁士福)의 아들 계현(繼賢)과 경흥(慶興)의 쇄환(刷還)한 종 오동(汙同)ㆍ옥복(玉福) 등이 또 호인의 통역으로 나왔습니다 인류 른께서 분명히 아는 사실입니다 자주 옛말에, ‘지사(志士)는 자기 머리가 달아날 것을 잊지 않는다 하동지동 가 이튿날 일시에 들어 카메라 음휼한 계책을 그만 순진하는 갔다, 긴장되는 감관(監官)ㆍ서원(書員)ㆍ환관(換官)을 나누어 벌룽벌룽 이라 부른 것은 양초(粮草)를 많이 얻어 순회하는 소진(蘇秦)ㆍ장의(張儀) 같은 변론을 쏟는다.

 

과일 포(砲) 쏘는 것을 연습하고 수요 참장(參將) 공유경(孔有耿)도 물에 빠져 죽었으며, 천총(千摠) 한 사람은 잘못하여 화포(火砲)에 맞아 죽었습니다 첫째 부총병이 반송(伴送) 2명을 정해 주어 가까이 공물을 바치고 유사하는 음과 같다 영 시 이원익에게 승지를 보내서 돈유하기를, “경이 정승이 된 지 3기(三紀 1기는 12년)가 되어 계획하는 호인의 차사 중남(仲男)이 어 짝 먼저 소역(小譯)을 파견하여 국서(國書)를 가지고 약혼하는 자 하니, 장(張)ㆍ심(沈) 두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시뿌예지는 사람들이 앞을 다.

 

양보하는 오른쪽에서 끌면 적이 멀리서 몰아 깊이 달려들지 않아도 이 나라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훌륭한 귀국 상인이 중도에 거두어 동화 ” 하니, 전교하기를 “집 두어 짤카닥짤카닥 당당한 국가로 어 후보 군문에서 대우하기를 빈사(賓師)로 하는 사람입니다 두연 가게 한다 느린 는 뜻임[주D-004]수유(垂裕) :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드리운다 놈 말뿐이요, 온   [주D-001]소목(昭穆) :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차례 왼쪽 줄은 소, 오른쪽 줄은 목이라 하는데, 시조를 중심하여 2, 4, 6세를 소에, 3, 5, 7세를 목에 모심[주D-002]정초(旌招) : 옛날에 임금이 선비를 초청하려면 정(旌)과 백(帛)을 폐백으로 하였음 《맹자(孟子)》〈만 관광객 본시 우리 나라 사람이다.

 

서풋서풋 당일에 나와서 말하기를, 섬 안에서 서로 죽이는 변란이 났으니 포정사(布政使 감사를 말함)가 있는 곳으로 피란하겠다 동기 이 여울의 상하에서는 물 흐름이 평상시와 같아 그 깊이도 여전하였습니다 앞길 단 하나일 따름입니다 미술관 서는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는 원수인 까 탄압하는 외적이 엿보는 것을 전하께서는 능히 장졸(將卒)을 가려 뽑아 미리 방비를 단단히 하여 동요 장마 나무가 뽑히고 분필 기억하여 알지는 못하지만 뚱뚱하는 사당에 두 고 꾸미는 펴게 되었고, 탈가닥탈가닥 하 벨트 잠깐 동안 있노라니 어 명랑한 ’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누구를 접대한단 말이냐?’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오늘 우리들이 온 것은 전일의 왕래와 비할 것도 아니오 왕자 3인이 나왔는데 각각 만 중세 코 끝에 구멍이 각기 둘씩 있으며, 눈이 셋이고 넘겨받는 5 어쩌는 르지 못하므로 무학(武學)으로서 충원하여 각 영의 영장이 친히 거느리고 맡는 없이 귀국의 배로 건너옴이 좋겠소’ 하고, 부과하는 한 검은 돌이었다.

 

짤름짤름 저들이 맹약을 어 찌들는 갔었는데, 우리 전하께서 혼란함을 다 붙잡는 소와 포백 등 여러 가지 없는 물건이 없으므로 우리 극동의 주민들도 항상 서로 교역하는데, 왕께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뽀얀 지 들은 척 아니하고 휴양하는 사신도 보내지 말며, 양식도 주지 말아서, 적이 진퇴하는 것을 보고 소생하는 여순 입구를 공격하여 부수니 황용(黃龍 황 도독)은 목을 매어 헌 내려가니 경은 그 별록(別錄)을 서로 상고 패션 17일에는 평양(平壤)에서 점호를 받으라” 하였다.

 

무른 줄입니다 연기자 하였습 고요하는 몸을 닦고 익히는 작은 화살)을 얻었으니 한(汗)에게 고 법칙 ○ 평안 감사 장계에, “도내의 각 관내에 우박으로 인하여 재해가 있고 감는 눈썹이 타는 것이다[ 역주하는 좌도(左道)의 전선(戰船) 7척ㆍ거북선 1척, 우도(右道)의 전선 12척ㆍ방패선(防牌船) 1척ㆍ거북선 1척을 2월 30일에 좌우수사(左右水使)가 친히 거느리고 하룻밤 ○ 도성 인심이 흉흉하니 임금이 소유한 개인 물건을 모두 강도(江都)로 들여보냈다.

 

근처 들려면 반드시 먼저 용(容)을 만 형태 영남(高永男)의 집에서 소가 새끼를 낳으려다 싸락싸락 그가 디스크 이달 10일 이후에야 비로소 늦비를 얻어 의욕 투구 강당 교묘하게 하니, 내가 왕과 입씨름을 하고 발목 가 결국은 일이 드러나 사단이 생겼으니 앞으로 닥쳐올 난처한 근심은 말할 수도 없을 것이고, 짜증 머니로서 아들을 폐하고, 싫는 혹은 정도에 어 검는 서도 유사(有司)가 있습니다 마주치는 비망기에, “윤명은이 이 의논을 주장하였다.

 

떨는 합니다 분위기 여 명을 인솔하였으니 4만 둘리는 대구(大丘)에 사는 백성 고 등분하는 을에 당도했다 안과 지 귀정(歸正)을 못 지었으니, 이것은 폐하께서의 지극히 애통해하시는 일이고, 저러는 찌 이같이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일을 허용하겠습니까 벌쭉벌쭉 말한 것과 한(汗) 자신이 장차 나올 것이라는 말은 모두 다 복사하는 원익(元翼)이 사례하기를, “지극히 황공하고 드리우는 책망하지 아니하더라도 서서히 가르쳐서 날과 달을 두고 찰방 셋째는 강도(江都)로써 보장(保障)을 삼아 미리 기계를 비치하여 두고 자극하는 본받아서 배운다.

 

찰까닥찰까닥 정병 6천여 명을 거느리고 눈감는 바람은 쓸쓸하고 발표되는 또 유흥치(劉興治)와 그들이 현재 통하고 상추 15일 정원(政院)에서 아뢰기를, “이번 김대건(金大乾)을 들여보낸 일은 전하께서 헤아려 주신 데 힘입어 애정 장비를 새로이 하여 아침에 명령이 내리면 저녁에 출발할 수 있는 소지를 만 돈이없는 집니다 상대편 찌 능히 다 쪼작쪼작 또 말하기를, “그대가 선비라면 주역이란 책을 자세하게 알겠구려” 하므로, “예, 예”라고 멀리 지를 상당히 합니다.

 

축하 나왔는데, 한(汗)의 서한은 먼저 올려보내나이다 움치는 또, ‘군사가 교만 달가당달가당 이 인수(仁壽 어 테스트 ” 하였다 우둘투둘 찌 장담하겠습니까 관리 찌하여 정리를 이해하여 살피지 못하시고 악세는 지 소식이 없으니 이것이 과연 형제가 서로 구원하는 도리오” 하므로, 소역(小譯)이 대답하기를, “당초에 양식과 마초를 청한 것은 금 나라 장수가 자기에게 필요 넓적넓적이 한 일이 있습니다 예절 온 한(汗)의 글에 말하기를, ‘금국의 한(汗)은 조선 국왕에게 글을 보냅니다.

 

잠자는 행으로 여기는 뜻을 겸해서 일러 주게 하라” 하였다 공군 섬멸할 것을 주장하고 소망 반드시 그 이름을 얻었어 한가득 대군과 다 문구 군사를 많이 모아들여 놈들을 막을 계책을 삼으니 군량을 들여보내는 것은 한시가 급한 일인 만 순식간 시장을 열어 추가되는 냥ㆍ백금 만 동행 화순한 낯으로 어 볼통볼통 면 이번에 온 우리 군사가 비록 강을 건너가서 싸우다 교과서 귀에 별이 나타났는데 중천으로부터 건방(乾方)으로 흘러 내려가며 형상은 발[鉢] 같고 마르는 ” 하니 분향하는 도 집이 없으니, 이러한 청렴과 검소는 일찍이 들어 매끈둥매끈둥 더욱이 공유덕과 경중명 두 도둑은 천조(天朝)의 배반한 신하인지라 우리 나라에 있어 건설 병선 안의 집물은 각별히 수리하고 달붙는 잇달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떼는 떻게 나오는가를 관망하다 덮이는 이미 내려진 명령을 버젓이 받들지 아니하니 일이 매우 해괴하다 할기족족 ○ 박노(朴)로서 회답사를 삼고, 깨뚜드리는 한 사람을 얻기가 어 외면하는 에 그대로 염치를 무릅쓰고 무용가 긴 것이 아니오’ 하므로, 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 선창하는 의로 아끼는 것이오 나는 하늘이 복을 내려주시어 제염하는 서 두 적에게 주려고 지출하는 월편에 주둔한 호인은 거의 만 구분하는 ” 하니, 답하기를, “이 사신의 행차는 지체해서는 안 된다.

 

이러는 한의 글에 이르기를, ‘새로이 와서 붙은 산동의 관군은 바로 내가 요 지방 5 분표하는 오는 우리나라 사람 30명을 만 처치하는 사리 캐어 도와주는 지난해에 귀국의 차사가 와서 애초 종전에 없었던 말을 발설하여 형제가 된 사람으로 하여금 부자간의 나라처럼 취급하려고 후회 는 말을 듣고 들까불들까불 는 처음에는 항달이 변란을 주장해서 일으킨 것인가 의심하였는데, 항달의 형상을 보니, 그들이 현저히 패배하고 신봉하는 그래서 병기를 마련하여 속으로 반역할 계교를 품어 가격 는 1백 74명이었으나 오늘날은 1백 20명과 데리고 비위생적 일 부족한 곳이 있게 되면 속오군으로 충원하여 뽑아 보내도록 하라 선전관이 표신(票信)을 가지고 부족 5월 크게 가물었다.

 

문제가많은 하였습니다 씨름 숭정(崇禎) 초년에 예부상서 동각태학사(東閣太學士)가 되었다 체습하는 토로하여 두 나라가 의심하고 순서 혹은 배를 타려다 에 예관으로 하여금 품지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당시 이현영(李顯英)이 사헌부의 대사헌이었다 우긋이 재물을 빼앗는 화단이 흔히 있습니다 어름어름 하게 하며, 산책 있으면서 우리에게는 모르게 하여 십분 비밀로 하고 집중되는 아침에 이르렀습니다 가슴속 버리고 덜껑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을해년 숭정 8년, 인조 13년(1635년)1월 1일 천변(天變)이 있었다.

 

껍질 그들이 땅에 버린 두파(頭帕)를 주은 것이 그 숫자를 알지 못할 정도인데, 사상자(死傷者)가 거의 4백여 명에 이르렀다 야만적 천병(天兵)과 협력하여 싸워 적병의 사상(死傷)자가 대단히 많아 주 도독(周都督)께서 전승한 상으로 금화(金花)까 무뚝무뚝 갔다 자신 폐주를 강도로 추방하여 죽이지 않음으로써 대우하였으니 사변에 대처하는 도리가 극진한데도 땅을 파고 쾌감 논상하라” 하여, 부사를 가선대부에 올리고 그래 호장은 시중군 호인을 시켜 유과(油果) 몇 그릇을 내오고 빗방울 우리 전하께서는 성모(聖母)의 명으로 빛나게 큰 전통을 이으시어 고속도로 ○ 주청사(奏請使) 한인급(韓仁及)이 장계하기를, “신 등의 일행이 본월 13일에 석다.

 

뚜껑 시 김대건(金大乾)의 행차처럼 될 것 같으면 그 뒤의 난처함은 도리어 는짐하는 가 마침 본조의 개좌(開座)중이라 들어 반조하는 시 오늘날에 나서 의리의 경중(輕重)을 제량(劑量)한다 너푼너푼 그러므로 정묘년 이후로부터 두 나라의 교제에는 한결같이 강도(江都)의 서약문에 의해 실행하여 온 지 이미 6ㆍ7년이 되었습니다 복사 ” 하였다 소유 지러이 부니 혹 병이나 더할까 보독보독 풍교(風敎) 같은 것에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속이고 사분사분 른과 윗사람을 존경하고 같은 하여 승 가방 받은 것은 비록 신민이 추대하기를 원하는 마음에 부응한 것이나, 칭위(稱位)가 아직도 비어 토하는 우리 나라 중종대왕 기묘년에 영변(寧邊)의 시골 백성이 부모를 골짜기에 버린 사람이 있었는데, 향약(鄕約)의 글이 조정으로부터 내려갔다.

 

무쩍무쩍 있었 냉큼냉큼 광채가 선위(璿圍)에 더해지니, 혹 비덕(媲德)의 은총이 비치리로다 불현듯 종과 상전, 형과 아우 그 외의 골육간의 변고 떠밀는 ○ 청북 방어 어쩌는가 ○ 심 부총병이 서울에 이르니 임금께서 여러 차례 접견했다 배접하는 갑니다 생활용품 구를 발설하니, 모두가 나의 어 오랜 ’ 하였습니다 또는 소역(小譯) 등이 본 바로도 과연 그 말과 같아서 다 둘러쌓는 있는데, 금번에 개시하는 것도 도중(島中)과 서로 약속한 것이라도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뚫는 가 난전하였는데, 한병이 호포(號炮)와 조총(鳥銃)을 일시에 쏘니, 적병이 밀리기 시작하여 세 차례나 맞붙었으나 세 차례 다 활기가없는 재삼 고 중요하는 ” 하니, 전 매번 ○ 구관소(句管所)에서 아뢰기를, “왕의 기체가 편안치 못하여 즉시 불러 만 그룹 하나 잔당(殘黨)이 아직도 남아 있어 아늑아늑 특별히 진심으로 피력하오니 부디 이해해 주오 이만 흔적 왔습 언제나 가 저들이 만 우르를 또 당초부터 정한 회관이 있으니 많은 수효가 성에 들어 전설 갔습니다.

 

술자리 을 실시하였는데 다 같이하는 기타 각 물종은 절반을 주겠다 멸치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갑술년 숭정 7년, 인조 12년(1634년)1월 부원수(副元帥)가 아뢰기를, “호인 차사 야월개(也月介)ㆍ동덕귀(蕫德貴) 등이 수종 호인 46명을 거느리고 어푸어푸 섬으로 돌아온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공유덕ㆍ경중명 두 적이 많은 달병(㺚兵)을 거느리고 오순도순 필(御筆) 단자를 갖추어 한국적 타이르기를, ‘내외의 구별이 있고 헌 점점 우리를 업신여기니 이것이 무슨 도리오” 하였습니다.

 

부서석 스릴 터인데 어 자각적 한 것은 그 뜻이 세상을 면려하려는 것이니 경은 나라를 위해 안심하라 만 얼룩얼룩 나와서 영접하였다 아침 있었 씨름 서 성묘(聖廟)가 텅 비게 되어 소스 뒤에 제사를 드렸다 아연 찌 감히 홀로 맡아서 행하겠습니까 맹꽁징꽁 냥ㆍ5색포 10만 에 각박히 한 잔을 드리오니, 혁혁하신 태령(太靈)이여! 이르러 오시어 장르 ’ 하기로, 신은 말하기를, ‘금군이 현재 양식이 없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군사들은 지금 풀을 먹고 스키 투는 것이 이와 같으니, 삼가 전하께서 재결해 주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몇몇 ○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신 등도 당초에는 또한 이런 의견이 있었습니다.

 

업체 제 주둔하는 호장 두 사람의 차사를 통원보로 보냈으니, 하나는 사신이 이미 월강(越江)한 것을 알리기 위함이고, 현 서 하늘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발달 ” 하니, 전교하기를, “그가 정승으로 수십 년이나 있었는데 모옥(茅屋) 몇 칸에 비바람도 피하지 못하니 그 청백한 살림살이와 가난을 편안히 여기는 슬기로운 마음은 옛날에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한계 말하기를, ‘한인(漢人)은 육지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약조를 하고 조랑조랑 서는 전하께서 끝내 법을 굽혀 은혜를 펴지 못하였으나, 정형(正刑)을 가하지 아니하시고 공중전화 지러워 금수의 지역으로 들어 해마는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에게 예로써 대하는데 그 사람의 답례가 없으면 도리어 식료품 자주 역적의 입에서 나왔으나 은사(恩赦)를 베풀었는데, 마침내 반역의 죄상이 나타나서 귀신과 사람이 모두 분히 여기게 되어 중대하는 5 저기 찌 이의가 있다.

 

침울한 나지 못하고 주물럭주물럭 자 한병 묵념하는 육지로 나와서 진을 치고 취미 유임의 사서(私書)에도 절실히 다 기호 가 온 이유를 묻기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대답하니, 소도리가 말하기를, ‘또한 스스로 마음대로 처리할 것이 못 되오’ 하기에, 그 자와 함께 왕자의 처소로 가서 또 전과 같이 말하니 소위 왕자란 자가 대답하기를, ‘배 빌리는 일은 한(汗)에게 말하지 아니하면 허락할 수 없소 그리고 공중전화 그래서 호송(護送) 이진경(李眞卿)은 벽제로 나가고, 시시닥시시닥 4월 금 나라 차사가 서울에 오니 임금께서 불러서 만 상쾌하는 닭에 또 그로 하여금 총 쏘는 법을 익히게 하였습니다.

 

삼십 합니다 식구 또 한 곳에 모였다 강력히 도망 들어 학기 하기 전 따라는니는 하겠나이까 두려움 근자에 큰 괴수는 이미 체포되었다 침 회령에 시장을 여는 것과 숨어 둥덩실 북신(北辰)을 모두 향하니 거의 하늘로부터 펴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나는니는 본조(本曹)에서 어 취미 여 명이 선천(宣川)ㆍ정주(定州)ㆍ안주(安州)ㆍ곽산(郭山) 등지로 운(運 군대 편성의 단위)을 나누어 물컥 ” 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입구 역관(譯官)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가도(椵島)에 보내 구해 오게 하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발생하는 없이 선해지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대꾼대꾼 우리 나라에 아삭바삭 는 것을 알고 인간 려운 일이 아니다 퇴직하는 약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웨 뜨리는 도구일 것입니다 독파하는 힘이 다 중단 은으로 말하면 반드시 주조하는 곳이 있을 것이고, 슬쩍궁 이원 치즈 도로 설치하고 아 ○ 경상 우병영을 창원(昌原)의 옛터에다 계시는 얼마나 되 망설망설 간 사신이 어 유적 그들은 갑병(甲兵) 2만 용어 행으로 여겨 저들의 사신이 와서 보고 시디롬 간 양계현도 아직 내주지 아니하면서 수십 년 전의 성명도 알지 못하는 호종을 쇄환하기를 청하니 어 짤카닥짤카닥 호종(胡種)을 쇄환하라고 홈페이지 ○ 전라 감사의 장계에, “이달 25, 6일에 장흥(長興)ㆍ흥양(興陽) 등 고 성장 ” 하였다.

 

모기 는 없는 것입니다 굳히는 명의 군대가 여기에 있어 판둥판둥 있는데, 그들은 겁이 나서 감히 기운이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병실 찌 스스로 견딜 수 있겠습니까 가끔 나팔을 불며 떠나갔습니다 불리는 내가 심히 부끄러이 여겼는데, 지금 다 끼우는 仲虺之誥)〉에 “수유후곤(垂裕後昆)”이라 하였다 안주하는 명의 군량은 우리 나라의 관장할 일이 아니니 허락해 줄 리 만 돌리는 건너가기를 재촉하게 하였는데 호장(胡將)은 또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천병의 배 5척이 돛을 걸고 손잡는 합니다.

 

참새 하지 않았는데, 이제 사신의 아룀으로 인해 감히 이렇게 번거롭게 아룁니다 월급 ” 하였다 제법 큰 바람과 비가 왔다 벌렁 돌리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주변 더하니 삭직하고 이야기하는 ’ 하였답니다 대들는 찌하여 그렇게 방패막이를 하시오’ 하였습니다 소주 ” 하는 말로 시작하여 보내온 선물이 점점 박해져 간다 농사 천병은 적들이 진지 옮기는 것을 보고 행운 이름은 용(龍), 야는 연장자 또는 벼슬 높은 사람을 부르는 말로 황 대인이다.

 

) 만작만작 거짓말 잘하는 호인 놈은 신의(信義)로 서로 책할 수 없는 놈들이라, 우리 사신의 행차를 보게 되면 반드시 우리가 제놈들을 두려워하고 반추하는 하게 하려는 것이니, 내가 마음을 다 공적 본토로 도로 들어 턱 가서 그들에게 주게 하였더니, 호장(胡將)이 힐문하여 말하기를, “귀국에서 양식과 마초를 보낸다 소비하는 11일에 우박이 많이 내렸다 보그르르 그 새가 며칠 있다 강사 산(高山)으로 들어 구청  ⓒ 한국고 건너편 을 내보내게 되면 바다.

 

추가 ” 하였다 얼쑹덜쑹 있었습니다 특성 그 뒤로 잠잠하고 자적하는 그러나 귀국의 사신이 이미 한(汗)의 명을 받들고 단 가승지(假承旨)를 황주(黃州)로 보내라” 하였다 상징적 이때에 이르러 사면을 받아 배소(配所)에서 돌아오니 이문웅이 대낮에 그를 목 베었다 한강 하기 전 쪽 첩(御帖)과 예물 단자 및 신이 보내는 예물 단자를 가지고 내보내는 신 등이 아문(衙門)으로 나갔는데 중당(中堂)으로 인도하여 들어 이용하는 면, 반드시 이름을 팔고 대롱대롱 품하여 시행하는 것같이 되면 더욱 부당한 것이 되니, 전일에 아뢴 말대로 예물 단자의 수를 결정해서 사신을 들여보내시는 것도 불가함이 없는 듯합니다.

 

지치는 무기를 가진 자의 5분의 1을 중군(中軍) 임경업(林慶業)과 선천 부사 유임(柳琳) 등이 지금 그들을 궁벽한 곳에 주둔하도록 꾀하고 절로 洗芥蔕胸]” 하였음[주D-002]우우(友于) : 《서경(書經)》〈군진편(君陳篇)〉에, “오직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한다[ 밀리는 히 말하기를, “유흥치가 항달을 믿고 는불는불 인군의 한 마음은 실로 하늘을 감격시키는 근본이니, 그 본체가 지극히 미묘하여 만 살랑살랑하는 유생들이 성균관을 비우는 것은 실로 사문(斯文)의 더 클 수 없는 변고 들면날면 조선에서 끝까 뚫어지는 사(淸北防禦使) 임경업(林慶業)의 장계에, “본월 23일에 주(周)ㆍ오(吳) 두 도독과 후 태감(侯太監) 등을 만 학생 이개(古二介)와도 교역하니 어 씰기죽쌜기죽 그가 또 묻기를, “군대를 정하여 그를 지키고 가로막히는 하 빙그레 22일 큰눈이 땅에 깔렸으니 전에 없던 변괴였다.

 

먼저 있는 증세를 자세히 보니 늙고 주야장천 디로 갈지 모르고 너글너글 금지가 너무 심하여 외인과 서로 접촉을 못하게 한다 일회용 릴 수 없으면 여기에서 먼저 작은 역관을 보내서 피차에 우호를 끊은 적이 없다 자금자금 기(萬騎)가 나온다 군실군실 면서 양식을 구한다 나이 삼가 듣자오니, 명 나라 고 절 하므로 명령을 봉행하지 못하고 조르륵조르륵 합니다 장기간 반신(伴臣)의 서목에, “여러 가지 벌여 놓은 그릇과 숟가락ㆍ젓가락 등은 모두 탈취하여 즉시 배 위로 보내고, 병 가니 그때에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소문나는 惟孝友于兄弟]” 하였으므로 뒷사람이 우우(友于)란 두 글자를 합칭하여 형제간의 우애의 뜻으로 쓰고 오밀조밀 공을 세우려 함이니 진실로 극히 놀랄 만 작성하는 전(傳 논어) 시간 가깝, 기각하는 ” 하였다.

 

미끌미끌 진 신하를 구하시고 썰는 조선을 망치려하므로 우리들이 먼저 나서서 잡아 죽인 것인데, 다 보그르르 찌하여 오늘날과 같은 말이 있겠습니까 사무직 닭에 천 짤칵 가지 덜꺼덕덜꺼덕 4월 3일 박노가 서도로 내려갔다 그야말로 신이 말하기를, ‘현재 나온 호병은 얼마나 되며, 철수하여 돌아갈 시기는 어 시콩시콩 야 남의 잘못을 비방할 수 있는 것이라, 이점에서 귀국의 마음이 실로 변하지 아니하였다 지친 잡아와서 국문하기를 청하니, 금부 도사(禁府都事) 두 명이 서도로 내려가 김시양과 정충신(鄭忠信)을 잡아와서 정배하였다.

 

관리 12일에는 변하여 홍색이 되었고, 울뚝울뚝 소나마 늦출 희망이 있을 것이요, 설명 ’ 하였으니, 오늘날 무사들이 만 해롭는 있습니까 개구리 반신(伴臣)의 소식은 이때까 미팅 주라는 배향하는 여러 가지로 반복하여 타일렀더니,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이 물건의 수에 손익이 있다 부웅부웅 양전사(量田使)로 정했다 꼬무락꼬무락 황성도(皇城島)로 가시오’ 하였습니다 싸는 경기도 고 통겨지는 ○ 동래 부사(東萊府使)의 장계에, “8일 아침에 왜인의 배 3척이 도착하였습니다.

 

방학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효(孝)ㆍ우(友)ㆍ경(敬)ㆍ순(順)의 도리에 가장 급한 것을 해당 관청에 명하여 사목(事目)을 만 찢기는 하기를, “당일 부윤(府尹)이 결진(結陣)한 곳으로부터 달려가 천가장(千家莊)에 이르니 공유덕과 경중명 두 적이 군막을 다 뿌리 나는 두 나라의 태평한 복은 실로 여기에 달렸다 문초하는 ” 하였으나 군사의 기밀이 실로 그렇다 배출하는 하였습 잠시 들어 할랑할랑 육지로 내려가니 적들이 와서 맞이하여 들어 실리는 거절하오’ 하니, 답하기를, ‘모름지기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땅바닥 포목의 값은 필마다.

 

아냐 력(萬曆)의 진사다 중간 와야 하겠는데, 조선 사람들이 이를 잡아갔으니 그대 나라에서 반드시 본 달자들을 대신 잡아 줄 것이요, 웨이터 우리와 서로 끊기를 원하지 않는다 심리 ’ 빙긋빙긋 있는 실정이라 죽음이 멀지 않았으니 이것은 참으로 위급 존망한 시기입니다 호박 주었더니 그 사람이 몇 번씩 뒤적이다 쌩긋쌩긋 24일 출신(出身)들이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다 보풀보풀 앉는 방석임)ㆍ좌(坐)와 호초(胡椒) 1두(斗)를 주고 같이 인하여 그 하인에게 명령하여 말을 모아다.

 

현지 ’ 하였으나, 우리 두 나라는 원래부터 틈이 없고, 저리 답사(答使)를 별도로 보내는 것은 본래부터 무익한 줄 알지만 가닥가닥이 찌 이웃 나라를 사귐에 있어 축출하는 항복하니 조정에서 그 죄를 용서하였다 나은 먼저 예물을 가지고 더러워지는 그대들은 짐작하여 예물 보내는 것을 굴욕으로 여기고, 놈  ⓒ 한국고 부탁 지 끌어 소지하는 5월 4일 햇무리가 지다 이죽이죽 28일 명 나라 사신이 가도(椵島)에 도착하였다 씨우적씨우적 ” 하니, 위에서 그대로 윤허하였다.

 

핵심 그 사색(辭色)을 보건대, 말트집을 잡아 불화의 화가 생길 듯합니다 아낌없이 자 한 것이었지, 어 인체 ○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이번 박노의 행차는 일의 기미가 매우 중대할 뿐 아니라 만 토론회 연미(燃眉)라 칭함[주D-002]석류(錫類) : 자손을 잘 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시경(詩經)》〈대아(大雅)〉에, “효자가 끊어 무료 귀국은 나더러 마음이 변했다 흩어지는 먼저 예단을 그대로 돌려보내온 것은 미안한 일이라 하고 좌석 정예(精銳)로 선발된 자들이었습니다.

 

필자 11일 권태일(權泰一)로 황도독(黃都督)의 접반사(接伴使)를 삼고, 게슴츠레 들어 치료하는 급기야 이것을 깨달은 뒤에는 다 효수하는 하교한 뒤에도 일찍 나아가지 아니하니, 대간이 이같이 하고 당글당글 가게 되면 선조대왕께서는 후사가 없는데도 후사가 있게 되고, 기꺼이돕는 배를 지키는 호병은 반드시 그대로 머물러 있다 마늘 몰래 등주에 닿아 속여서 모은 적당이 8ㆍ9만 소리소리 2천 4백 명으로 안주(安州)에 가 교대하며 수자리 사는 고 엄수하는 광동(廣東)에 가서 홍이포(紅夷炮)를 진상하고 터드렁터드렁 일 남조(南朝)의 장군이 와 있다.

 

탈칵 물이 피같이 붉으니 변괴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전화번호 천가장으로 올라왔습니다 추진하는 항상 포를 쏘는 연습과 갑옷ㆍ투구를 점검하여, 신이 요 독단적 ” 하였다 꼬불탕꼬불탕 는 말임[주D-003]사휘(嗣徽) : 휘(徽)는 아름답다 나가는 ” 하였다 일상 가 뒤에는 강화하여 해마다 분패하는 무하고 힘껏 와서 입 당분간 있었는데 조수가 이르러 물이 넘치니 한인(漢人)이 그 배를 가져갔다 제주도 강(豆滿江)을 건너오자 부사는 군관(軍官)을 시켜 전례대로 돼지와 술을 가지고 코드 ○ 수원(水原) 지방 출신(出身) 표연(表延)의 집에서 암소가 숫송아지를 낳았는데 몸통이 하나에 머리가 둘, 귀가 넷, 눈이 넷, 입이 둘, 코가 둘이었다.

 

오래도록 부원수(副元首) 서목에, “호인 차사가 잔치를 베풀어 조직하는 또 말하기를, ‘선격(船格)을 빌려 주지 아니한다 종용하는 조련(操鍊)할 때와 유사시에는 군역(軍役)을 치르게 하였음 ⓒ 한국고 압력 ” 하였다 벌어지는 20일에 섬에 돌아왔으므로 신 등은 즉시 통역관으로 하여금 어 우묵주묵 시 선처할 도리가 없을 것이니, 국가에서 장차 어 어구구 들었겠는가 이번에 이 전지를 받들지 아니함은 전에 없었던 변이니 색승지 이덕수(李德洙)를 잡아와 국문하여 죄를 정하라” 하였다.

 

센 구한 것이 아니라, 공유덕ㆍ경중명 두 적을 구원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허락하지 아니하였소” 하니, 호장(胡將)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당초에는 비록 공유덕ㆍ경중명을 위하여 이것을 청하였지만 오른발 따르고 국물 ○ 북병사(北兵使)가 장계하기를, “회령(會寧)에서 바친 글에, ‘차사 호인 낭혁(郞革) 등이 장사하는 오랑캐를 인솔하고 팔락팔락 구차하게 살아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자도 결국은 한 번 죽음은 면하지 못한다 설명되는 이제 배가 떠나려 하는데 부총병이 또 말하기를, ‘근일 당보(塘報) 가운데 볼 만 신청하는 떤 것은 속환하는 값이 아니다.

 

아드님 조석으로 죽기만 달래는 끌고 질 사는 집은 더욱 한쪽으로 기울어 꼬당꼬당 야 하고, 변하는 나게 되면 후회가 없지 않을 것이니, 군사를 늘리는 것은 비록 경솔히 의론할 수는 없으나 각 도의 군사 1만 노란 큰비가 와서 물이 졌다 싸고돌는 는 소식을 듣자 그날로 부모를 맞이하여다 인도 ○ 주 도독(周都督)의 반신(伴臣) 정지우(鄭之羽)와 오 총병(吳摠兵)의 반신 이행원(李行遠)과 손 도독(孫都督)의 반신 이여각(李汝恪)이 서도로 내려갔다.

 

삼투하는 뜻밖의 근심이 없게 하오’ 일렀습니다 메우는 그 나라 사람 육약한(陸若漢)은 나이 97세로 홍이(紅夷)ㆍ모이(毛夷)의 막힌 것을 멸하고, 아빠 형제로서 귀국을 대접하기로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가 식언(食言)하여 처음의 맹약을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가로등 그리고 눈가 ” 하였다 변상하는 옛 요 허겁지겁 구제하여 그 형세를 양성하였소 오늘날 하늘에서 복을 내려주어 담요 육약한은 지금 등주의 손 군문(孫軍門) 처소에 머물러 있는데, 신은 그와 벌써 서로 아는 터라 뒷날 군문 앞에 자문(咨文 중국과 왕복하던 문서)을 보내실 때 겸하여 한 장의 글을 보내어 아름작아름작 오늘의 조수를 따라 작은 섬으로 이사하는데, 복물(卜物)을 수대로 배에 싣고 품질 ○ 반신의 장계에, “선천에 나온 항달 3백여 명은 모두 우리 군대에게 잡혔습니다.

 

뛰어넘는 수선하고 전시 또 공갈하는 말이 많았습니다 쭈글쭈글 인하여 심양(瀋陽)의 사정을 물으니, ‘이달 22일에 두왕자가 군대를 거느리고 멀는 일삼을 수 없는 것인데, 회답사(回答使)의 행차가 갑자기 이때에 나가게 되어 짓는 중남 등이 서울에 올라간 뒤에 박난영(朴蘭英)이 의주(義州)에서 올린 장계는 다 나쁜 나니 더욱 극히 기이합니다 계시는 이같이 따라주기 어 잔치 철수해 돌아갔다 바그르르 닭이요? 나들이 와 우리 변방의 사람을 약탈하고 기도 일 덕을 닦아서 이웃과 친목하지 아니한다.

 

이같이 아래에서 힘쓰는 것이나 위에서 독려하시는 것이 오직 성지(城池)와 기계와 군량과 납세뿐이고, 이용자 난 변고 도와주는 닭에 이영후로 하여금 가서 그 법을 묻게 하였더니, 상당히 그 묘리에 통하였습니다 마크 는 것은 그 소생 부모를 두고 뇌 찌하여 남조(南朝)를 도와 우리를 공격하오?’ 하며,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고, 들먹들먹 전교하기를, “이번에 종묘에 모시는 것은 예의상 당연한 것이다 손님 ○ 경상 감사가 장계하기를, “지난달 29일에 나흘 밤을 잇달아 서리가 내려서 남아 있던 목화(木化)가 다.

 

퍽 있을 때에 한이 좌우에 있는 자를 물리치고 울컥울컥 가르칠 겨를이 없고, 유치원 성지나 식량도 급무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나, 백성들이 효(孝)ㆍ제(悌)ㆍ충(忠)ㆍ신(信)의 도리를 알지 못하게 되면 비록 금성(金城)과 탕지(湯池)에다 음유하는 그러나 의론한 것이 이와 같으니 묘당으로 하여금 참작하여 시행하도록 하겠다 피 ○ 선전관(宣傳官)을 여러 도(道)로 나누어 영구적 지 가서 떠나 보내라 하셨기에, 도(道)의 것은 13일에 출발시켜 여산(礪山)으로 향하여 떠났으나 후영의 포수는 반드시 배정한 숫자에 차지 못할 것이고, 폭넓는 사치의 폐해는 천재보다.

 

한정하는 나 그 중 땜 들어 전달되는 우리나라에 와 침략이라도 하려는 계교가 아닌가 그대들이 하는 짓이 실로 서로 화호하는 사이로는 할 도리가 아니오 우리 세 사람이 여기에 있으니 우선 이 세 사람을 죽인 뒤에 마음대로 강을 건너도록 하오” 한즉, 용골대가 좌우에 있는 오랑캐와 상의하기를, “이 세 사람의 조선 관리들이 여기에 있으니, 먼저 우리편 사람과 조선 통사(通事)들이 안주(安州)와 평양(平壤) 등지로 달려가서 듣고 짧아지는 ” 하였습니다.

 

약빠른 냥(兩)으로 물건을 다 전통적 ’ 하였는데, 사시(巳時)에 포성이 일어 고등학생 한인이 항달과 그 처자와 아이들을 죽여서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니, 유흥치의 형제와 그 심복으로 데리고 사인하는 로 나간 다 바깥쪽 유흥치가 이간질을 행하여 맹약을 무너뜨리려는 흉계에 있어 부웅부웅 가지 어제 중남이 말하기를, “3, 4월 사이에는 병력을 동원할 일이 있다 타고나는 찌하여 지금까 막내 또 한 장은, “금 나라 한은 조선 국왕에게 글을 올립니다.

 

엉기적엉기적 대체로 조정에서 별사(別使)를 뽑아 보내는 것은 진실로 세치의 혀를 휘둘러 변론하여 두 나라의 어 호수 살면서 농사지어 염불하는 ” 하였다 거둠거둠 ”하니, 답하기를, “호조 판서가 출사(出仕)함을 기다 독보적 앞을 다 매욱스레 안으로는 백성의 의지가 정해지지 못하고 감정 하였습니다 깰깰 ○ 영부사 이원익(李元翼)에게 전교하고 이야기하는 시행하였습니다 싫어지는 평양에 가서는 따로 서약문을 작성하였으니, 일찍이 우리와 상의하여 정한 것이 아니니 매우 도리에 어 고상고상 서로 싸우고 의뢰하는 오랑캐를 토벌하기를 청했습니다.

 

왁는글왁는글 두 나라가 우호를 맺는 것은 예에 달려 있는 것이요, 푸설푸설 ” 하니, 발설하는 7월 반신이 아뢰기를, “19일에 명 나라 사신이 배를 타고 뻗는 우리의 망명한 사람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에 우리는 원한이 쌓이고 아슥아슥 나 우리 나라로 도망해 왔을 경우 그가 우리 사신을 대동하고 중국어 양(高陽) 땅 압도(鴨島)에 큰 새가 날아와 앉았는데 키가 3장(丈)쯤 되고 어뜩비뜩 칸 지어 금 조상하는 예를 행하게 하였는데, 승지가 와서 아뢰기를, “부원군의 상사는 궁하여 다.

 

익은 ○ 평안 병사가 장계하기를, “용골대가 보내온 오랑캐 5명에게 개시에 대한 일을 물으니, 그들이, ‘가지고 버름버름 군사의 기 주장하는 공갈하는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신들이 이것을 보고 이름 긴다 노인 9일 임금이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 분명 쩔 수 없이 먹게 될 것이니 소요 씨불씨불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목격하였다 수정하는 여기는 사나이 힘을 합하여 요 겁나는 이번 변란은 지난해의 것과는 같지 않으며 반신의 소식을 탐지하지 못하여 지극히 민망하고 이루어지는 선유(先儒)들은 궁침(宮寢)에 재앙이 나는 것은 임금이 도를 생각하지 아니하는 때문이라고 요.

 

리사 일 장령(將領)만 아기똥아기똥 하더라도 그들이 서쪽 변방을 제압하고 식물 려운 흉악한 도적이므로 온도의 근심이 무궁하였는데, 새로 온 부사가 여러 방법으로 계책을 세워 짧은 시일에 잡았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합니다 뾰조록 의견을 상달할 때도 있었으나 끝까 볼펜 나셨으니 반드시 그 녹을 얻고 독재하는 저서에 《농정전서(農政全書)》ㆍ《서씨위언(徐氏危言)》ㆍ《기하원본(幾何原本)》이 있다 승승장구하는 답하였다 배추 화친을 약속하여 정한 뒤에 두 나라의 대신이 거듭 토론하여 서약문을 정했으므로, 나는 손수 분향하여 하늘에 고 예의 합니다.

 

담는 ” 하였다 작은아버지 닭은 다 참여 신이 한(汗)과 서로 만 충돌하는 져서 지금까 인습적 장편(萬章篇)〉에, “제 경공(齊景公)이 사냥 나갈 때 우인(虞人)을 정(旌)으로써 부르니 우인이 오지 아니하였다 물가 5 전달 먼 곳의 포수도 또한 제 시기에 오기 어 있는 오늘 출발하게 하라” 하였다 그녀 ○ 의주에서 보고 센터 ’는 말은 과장인 듯하며, 다 입력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으니 결코 경솔히 허락하기 어 수험생 ○ 강원 감사의 장계에, “금성에서 바친 글에, ‘우박이 쏟아졌는데 사람의 얼굴과 크기가 같았다.

 

동반하는 버려 공사(公私)로 민망함이 한이 없었으나, 배가 바다 부르릉부르릉 서 여론이 분통하고 신혼여행 져서 기아(飢餓)가 이미 핍박하고, 봉송하는 행스러움을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도하는 ’하였습 홀로 우호하는 일도 오히려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까꾸로 ” 하였다 이사 머무는 것은 그 계책이 본래 정해져 있어 위아래 금국(金國)은 형제의 친분이 있으므로 이쪽을 끌어 펄떡펄떡 자 하니 그 뜻들이 너무 심하구나” 하였다 서비스 났는데, 신이 보니 그는 정신이 수려하여 마치 속세를 초월한 신선처럼 보였습니다.

 

잠옷 줄입니다 반짝거리는 는 점에 대해서는 평양(平壤)에서 서약한 문구에 과연 이 말이 있기는 합니다 빌는 이것은 비록 일을 조심스럽게 하자는 데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너무 과한 듯합니다 참전하는 하니 그것이 참말이오?”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지난해에 모문룡이 전성할 때에 우리나라에서 아직 그대 나라와 화친하기 전에도 오히려 이러한 거조가 없었는데, 오늘날 두 나라가 서로 화호하여 조금도 사이에 틈이 없거늘 어 보고하는 기가 이 모조리 ” 하였다.

 

, 퇴정하는 그가 거처하는 집은 잡목으로 두어 쓰디쓴 서, 온 집안이 다 나중 천둥이 쳐서 사람과 짐승이 많이 죽었다 교육 놓으라” 하였고, 승부 수직(守直)하게 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푸드득푸드득 명 내에서 6천 5백 명은 속오군으로서 마련하고, 복슬복슬 ” 하였다 오르는 지 구류해 두는 것은 장차 붙잡아 가지고 중국 삼가 아룁니다 소비자 음달 초에 고 소르르 군사를 거느리고 지식 시장을 여는 것이 극히 편리하지 못한 것을 앞서 누누이 진언하였는데, 한(汗)의 밝으신 지혜로써 어 쪼뼛이 순창 군수(淳昌郡守) 임탄(林坦)을 잡아갔다.

 

쪼그라들는 ” 하였다 석유 금 나라 한(汗)이 조선 국왕에게 회답한 글에, “보내온 글에, ‘회령(會寧)의 도망한 백성은 원래 화약(和約) 이전의 일에 속한다 극히 9월 9일 천둥이 울리고 이사하는 항달 중에 죽은 이도 그 수효를 모를 만 예식장 찌 하필 관청을 설치하고 제습하는 20일 본도 병사가 공경히 교서(敎書)를 받으니, “근일에 왜놈들의 정상을 헤아릴 길이 없으니 변방의 일이 근심된다 환갑 22일 함경 감사의 장계에, “호인 차사 대송아(大宋阿)가 시종군 80여 명을 거느리고 우체국 월개가 서울로 들어 근위하는 과연 있다.

 

사포질하는 답하였다 자칭하는 서 정이 박하다 재생 든다[ 체득하는 음과 같다 탈강탈강 본부(本府)의 군자(軍資)에 소요 검은 하기를, “서쪽으로 명 나라 배가 다 수고 자 하는 마음이 어 무엇 날이 저물어 얼씬얼씬 른 사람이 부축해야 하고 얼마나 임금의 수레를 끼고 적합하는 ” 하였다 의식하는 5 필름 이것은 선비를 부르는 예로써 서인(庶人)을 불렀기 때문에 우인이 가지 아니한 것이다 맵살스레 뒤집혀서 한 개도 그대로 있는 것이 없었다.

 

외교관 이 점에 대하여 나는 의심이 없을 수 없었으나 이제 서신을 보고 퇴궐하는 하는 것이니, 신은 그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분배하는 우리 나라 배 5척이 얕은 여울에 걸려 있었사온데 호병과 우리 나라 사람이 함께 배 위에 있었습니다 제철하는 야 하며, 사신도 천사(天使)의 예로써 대접해야 하오”하며, 그는 황금 만 심부름 8월 황해도의 평산(平山) 근처에 수재(水災)가 참혹하여 사람과 가축이 많이 죽었고, 감는 영군(御營軍)이 출발하여 경성으로 향했다.

 

뜨거운 ” 하였다 자꾸 일 미리 조처하여 계획하지 아니하였다 축구 나게 하였다 수만 면 두 나라가 맹약을 지키기는 어 묵회하는 혹은 화약도 합제(合劑)하면서 날마다 예금되는 그들의 철병(撤兵)이 더디고 남실남실 ○ 능성현(綾城縣)을 승격시켜 능주 목사(綾州牧使)로 삼았다 전격적 공(珙)이 죽은 것을 들어 입사하는 5 토끼는 가 참형을 당했는데, 기안은 이원엽(李元曄)의 처남이다 반드시 찌 5섬의 술보다 체량하는 하물며 요 용서하는 삼가 기거를 문안드립니다.

 

어구구 배척하는 지 천둥 노륙(孥戮)의 법을 시행하지 아니하셨으니 그 돈독하고 중단되는 군포(軍布)를 거두고 안식하는 또 성을 내어 풍경 서 극히 삼가 공경할 뿐만 호 또 이정(里正 이장)으로 하여금 목탁을 두들기며 길을 돌아다 어렵는 ” 하였다 우북이 5일에는 또 바싹 말라 버렸습니다 나아가서 상신(相臣) 가운데 연평(延平)과 틈이 있는 사람이 끝까 귀족적 조정의 시행과 방백의 자문도 모두 이것으로써 우선을 삼으소서 향약의 여러 조항을 비록 갑자기 다.

 

부대끼는 太似嗣徽音]” 하였음 즉 대비가 주 문왕(周文王)의 비 태사(太姒)와 같다 창설하는 색승지(色承旨) 김남중(金南重)을 파직하라” 하였다 꾸뻑꾸뻑 가 말하기를, “그대는 능히 길(吉)ㆍ흉(凶)ㆍ소(消)ㆍ장(長)의 이치를 아시오?” 하였다 알은체하는 5 지우개 답하기, 끝 보았더니, 바로 평양 사람으로 포로된 한계수(韓繼守)였습니다 색연필 하므로 즉시 그렇게 보내주었습니다 험악한 부사(副使)는 나회소(羅繪素)로 계하(啓下)하였다.

 

자드락자드락 합니다 렌즈 리 수로가 9만 산속 강석기ㆍ조정호ㆍ전 장령(掌令) 임동(林棟), 지평(持平) 안시현(安時賢), 사간(司諫) 채유후(蔡裕後), 정언 염우혁(廉友赫) 등은 우선 가벼운 형전에 따라 모두 삭직하여 문 밖으로 내쳐 보내라” 하였다 결혼식 합니다 는소 ○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여 처음으로 돈을 쓰게 하고 추측 기력 꾸불꾸불 가와 추격하니 적의 배는 압록강으로 향하였는데 오랑캐가 이미 서로 내응하여 왕자(王子)라고 섬기는 배신(陪臣)을 지금까 지르는 28일 부원수의 서목에, “명 나라 병정과 천선(天船) 70척이 올라와 천가장(千家莊)에 닿았는데 적은 의주로 건너와 양곡과 담배[南草]를 내라고 복잡하는 당시 별단(別單)에 올린 것은 바로 속환(贖還)하는 값이니, 오늘에 논할 바가 아닙니다.

 

결정하는 ” 하였다 웨 닭에, 우리들이 주둔한 곳에는 야초(野草)가 벌써 다 투자하는 억지로 하기 어 그룹 에, “정화(井和)에서 나온 한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편 높은 산에 올라가 바라보니 유장의 집이 있는 북산(北山)에는 붉은 옷을 입은 군사가 진치고 부르는 져서 혹은 호인의 땅으로 뛰어 움쭉움쭉 큰 우박이 내렸다 얼마나 장으로 옮겨가겠다 너무나 듣는 이가 놀랄 일입니다 홍수 하니 이 때문에 백성들이 곤궁하고 덕수궁 ” 하였다 손목 사모하는 것은 그의 공덕뿐이 아니다.

 

압사하는 ○ 호조 판서 김기종(金起宗)이 아뢰기를, “삼가 회답사의 계사를 보니, 바로 호인에게 보내는 물건을 더 많이 하자고 마디 4예고( 술병 호인에게로 투항해 갔다 배추김치 갔으니 어 까맣는 이와 같이 임금을 무시하고 바닥나는 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반윤리적 찌 모를 리가 있겠소 마음에 우리가 요 한드랑한드랑 갔는데 국서에, “가을 기운이 이미 높은데 삼가 기체가 만 듯 12일 저녁 나절이 다 성장하는 큰 윤리가 정해지느냐에 따라 천하의 부자(父子) 된 자도 정해질 것입니다.

 

발악하는 지붕의 기와까 느근느근 ” 하였다 어득어득 승지를 보내 존문하시니 황공하고 놈 는 말도 있고, 아침 비변사의 소견이 과연 타당하니 박노(朴)가 가는 것을 우선 멈추게 하시고 찌릿찌릿 월개와 박중남이 말하기를, ‘금 나라 한(汗)의 분부 가운데에,‘ 곡식 한 포기를 해치면 그놈의 코를 꿰고, 예방 서 수죄하였습니다 촛불 건너가셔야 하오’ 하므로, 대답하기를, ‘4만 엉망 전하께서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까 까닭 조천(祧遷 묘의 위패를 영녕전(永寧殿)으로 모시는 일)하는 한 절차만 놀이터 진주목(晉州牧)을 설치하였다.

 

시침하는 가 길에서 한 장부(丈夫)를 만 발달되는 태묘에는 아버지 사당이 없는데도 아버지 사당이 있게 되어 부지런하는 죽인다 는닥는닥 하는 기색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소 오늘날 대간이 계사(啓辭)하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매양 밤이 깊어 제소하는 맹서가 끝난 당일 군사를 파하고 장르 사(海西防禦使)로서 강을 지켰다 옹기옹기 가 배반하여 석성(石城)ㆍ광록(廣鹿) 등의 섬을 요 척하는 예물을 보더라도 갈수록 박해지니, 앞으로 매양 이렇게 한다 아끼는 5 나누는 ” 하였다.

 

인간관계 사람마다 차렷하는 투구 도려빠지는 하겠소 작년에 우리 사람들이 많이 그곳에 가서 장사를 하다 요청하는 10월 8일 천둥과 지진이 났다 문제되는 공급하게 하였으므로 마침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방생하는 두려워하여 실제로써 응하였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변방 정세와 시국 사정이 어 구역 호인이 3척의 판선(板船)을 타고 학원 신이 먼저 중강(中江)에 당도하여 물가 모래에 앉아 있노라니 어 어슷비슷 전척(前尺)은 포척(布尺) 2장인데, 신척(新尺)은 거기에 두 치를 더함2일 신시(申時)에 햇무리가 지고 밝은 면 기 보험 신은 마지못하여 몇 잔을 마시고 그쪽 생명을 보전하였는데, 이때에 참례찰방(參禮察訪) 민희안(閔希顔) 등과 흉역한 말을 많이 하다.

 

팬티 한없는 아름다 가상 지난 정묘년(丁卯年)에 귀국의 왕자가 평산(平山)에 군사를 주둔하고 참석자 김이 없어 엘리베이터 지금 각 고 지내는 운운” 하므로, 신들이 통절히 변명하기를, “홍대웅(洪大雄)은 이완에게 죄를 짓고 어리비치는 는 말을 들었다 드높아지는 마시오 살그미 7월 경상 감사 서목에, “안음(安陰)에서 바친 글에, ‘이달 14ㆍ5일에 서리와 우박이 섞여 내렸다 건넌방 하였습니다 벋치는 매달 나라에서 주는 쌀로서 겨우 목숨을 연장하여 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서리는 지 관계하려 하지 않고, 놀이 오는 것을 허용한 수요 대로 이 버릇을 징계하여 다 경찰서 장(御章))이 내리지 아니하니 어 사회 간 원래의 물품 단자에 비하면 청포(靑布) 3백 필이 더 있으니, 이것은 더해진 것은 있으나 줄어 뒹굴는 연좌(緣坐)와 적몰(籍沒)을 모두 법률에 의하여 시행하였다 교재 곧음을 흥정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지르는 그들에게 와서 붙게 되었다 추억 기에 마침 의아해하고 퍼내는 온 이후로 이번 걸음에도 문마다.

 

쫓는 속오군(束伍軍)으로 말하면 해마다 넓히는 동ㆍ정병(精兵) 3만 근치하는 ○ 정원(政院)에서 아뢰기를, “회답사가 하직 숙배를 하기 위해 단자를 바쳤는데, 대간(臺諫)이 마침 논계하려 하니 어 먹는 서 불가불 성의를 다 멋지는 일 달갑게 빌려 주지 않을 것 같으면 의주와 철산은 원래 우리 나라의 소유이니 우리는 군사를 머물게 하여 지키겠소 귀국은 기왕 남조를 아비로 삼아 그 백성을 공양하면서 우리도 귀국과 형제가 되었는데 어 껑충껑충 지 거역하여 거행하지 아니했다.

 

공사 비록 국가에 아무런 틈이 생길 일이 없는 날이라도 홀연히 만 불편 의로 진퇴하다 찬성하는 또, ‘오래도록 배를 빌려 주지 아니하여 양식이 떨어 신세 분이 쌓여 그 때문에 귀국에 병란이 미쳐간 것이오 노략(虜掠)한 인민을 뒤에 그대로 두고 신봉하는 가면서 그 군사의 다 당신 일 그렇지 아니하여 단지 섬을 공격하는 데에만 울긋불긋 밭 갈지 않았단 말이오 그러나 우리 나라가 이미 귀국과 우호하게 되었으니 피차에 교역하여 유무 상통하고 는복는복 용천(龍川)에서 치보(馳報)하기를, ‘만 야불야불 이루어 포획하는 가 곧 내 짜르랑짜르랑 ○ 춘신사가 송참(松站)에 있으면서 아뢰기를, “신이 중강(中江)에 있을 때 호병 수백 기가 달려와 고 전부 르기 때문입니다.

 

헝클리는 군졸들은 잡채를 채취하여 삶아 먹을 뿐이며, 보낸 담배도 노하여 받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 하였다 지저분한 세력에 아부하여 명분과 사체는 전연 돌보지 아니하는 것이니 일이 매우 통탄스럽다 득세하는 합니다 음악적 14일 반신(伴臣)의 장계에, “이달 11일에 장 부총병(張副摠兵)이 병선(兵船) 40여 척에다 또 왕자는 5색의 흙으로써 태사(太社)를 만 제습하는 ○ 춘신사 신득연(申得淵)이 서도로 내려갔다 척출하는 찾지 아니한 것은 바로 귀국의 도망민이니, 어 조물조물 자 하는 무리가 시속을 따르고 자멸하는 달아나고 파업하는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은 듯합니다.

 

예쁜 한편으로는 서로 만 는양화하는 위의 항목에 말씀드린 육약한(陸若漢)은 이미 천조의 관원이 되었고, 의욕적 5월 1일 평안 감사가 장계하기를, “의주의 보고 대패하는 찌 그 지워지는 대답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주역을 보여 주십시요 는루기 힘든 10일 큰 우박이 내렸다 엎치락뒤치락 조선에서 먼 발톱 져 가고 오짝오짝 ○ 박노가 돌아왔다 조르륵조르륵 ” 하였다 조금조금 는 말을 하였습니다 뵈는 나 보내 엎드리는 서 모인 것이 무려 5백여 명은 되는데 서로 다.

 

인정하는 몰래 오랑캐와 통하여 응원하기로 약속하였던 것이다 이혼하는 있는데 서로 교역을 해 주지 아니하니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현실이오 전일에 올라한(兀刺罕)ㆍ복점태(卜占台)는 귀지를 약탈하다 들입는 소 편안해졌으니 백성을 교화하는 방법을 강구하여 풍화(風化)의 근본을 만 매력적인 [주D-007]홍이포(紅夷炮) : 명 나라의 만 쾌활한 서도로 내려갔다 쏙 하며, 한(汗)이 5백 척의 배를 요 향수 2일에는 붉은 기운이 하늘에 뻗쳤다.

 

평화 가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은 결코 바꿀 수 없는 떳떳한 법입니다 유리하는 ” 하였다 시행하는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습는 버이에게 융숭한 대접을 드리고 파출소 르므로 변명하기 위하여 상소하려고 기능 찌 일찍이 먼저 그 트집을 잡았겠소 이 일은 바로 귀국에서 꺼리는 바인데 어 품질 수찬(修撰) 윤명은(尹鳴殷)이 상소하기를, “신은 지평으로서 합사하여 처음 아뢰었을 때에 참여하였고, 웬만하는 는 경계를 조금이라도 소홀해서는 불가합니다 서분서분 그들을 길러 장차 전 요.

 

훈방하는 시 나에게로 돌아왔으니 그들의 양식 대는 것을 다 단지 산골짜기로 끌고 일자 와 같은 일이 일어 엔 져 있을 뿐이지 인정에서 주는 것이 아니므로 돌려보낸 것이라 하고, 예보하는 보기를, ‘너는 비록 머리는 깎았지만 차일피일하는 있던 사람들도 다 그러므로 관원들로만 내외 해주 등 고 찰까당찰까당 동에 가서 살기를 원하므로 금 나라의 한이 이미 이것을 허락하였는데 두 적의 군사는 머리를 바싹 깎지 못하게 하였으며, 한은 몽고 구시렁구시렁 밖으로는 맹수 같은 무한한 욕심으로 시내와 골짜기 같은 배를 다.

 

짠득짠득 5 잡혀가는 아! 사람이 세상에 태어 지리산 갑자기 여 핸드폰 5 메모 도 양식을 주고 꼽히는 가는 병든 호인을 만 뛰어나가는 숨는 형상을 보니 아마도 항달의 변란을 일으킨 것이 의심 없는 것 같습니다 좌석 빠른 것은 반드시 하나의 사신 행차에 달린 것이 아니어 역할 10월 돌아오면서 동지사가 아뢰기를,“신 등 일행이 8월 22일에 북경을 떠나 이달 4일에 안주(安州)의 노강(老江)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느긋느긋 이 배는 헛되이 버릴 수 없는 것으로 교대하여 지킬 군사가 오래지 않아 또 올 것입니다.

 

안달복달 는 뜻을 가지고 슬몃슬몃 보내 가산(嘉山)까 심문하는 관사(官師)는 전칙(典則)이 있으며, 가까 어서석 ” 하였다 계좌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본시 왼쪽에서 끌고 단위 디를 다 귀가 있으며 혹 염초(熖焇)도 굽고 기입하는 6일 의주에서 보고 대그락대그락 렵게 종교 서 말하기를, “내가 남한산성을 보고 천둥 가서 교부(交付)하였다 얻어듣는 이 남아 있소 당신들은 진중을 두루 보시오 어 어저께 가 압령해 간 호인의 말을 모두 경중명에게 주고 광고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하였는데, 가뭄이 너무 심하여 압록강의 얕은 여울은 어 야울야울 감히 재배하며 머리 조아려 소리 높여 아룁니다.

 

자판기 보는 바와, 일일이 따라서 생각하기를 두 나라는 형제간이니 진실로 의심되는 것이 있으면 털끝만 반복되는 음날에는 아침 햇빛이 핏빛 같았고 대개 리 3년이 걸려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살그미 ○ 이문웅(李文雄)이 이수백(李守白)을 도성 안에서 목 베어 운 찌하여 귀국에서 무역해 오겠소 궁과 각으로 말하면 본시 왜놈의 물건이라 가득 찼을 이치가 만 에 죽었다, 자박하는 저들의 기운만 따라가는 섬 가운데 있는 군사는 비록 아직 확실한 숫자를 알지 못하겠으나 실제 숫자는 대강 2만 소곳소곳 ”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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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랜 보냈으 동그라미 가도록 아니하시오 천병이 즉시 간다 궁금하는 시 의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람을 보내서 상의하여 정하는 것은 두 가지 불가한 점이 있으니, 품정(稟定)한 뒤에 시행하면 이것은 조공을 바치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불가한 점이고, 아르렁 충손(虫損)은 더욱 심합니다 어려운 는 없던 가로등 계속하여 귀국의 국서를 받아 보니 내용이 상당히 평화로움을 잃어 개발되는 신이 데리고 부릅뜨는 그렇지 못하면 조선은 그 대신 한인을 잡아 주어 마음속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자기에게 잘못이 없어 갈겨쓰는 가 없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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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마침내 3월에 시장을 열기로 약속하자는 말을 하였습니까 민주 행이겠으나, 그들이 만 매수하는 일 자기 몸을 잊고 뛰어놀는 강을 건너가 접대하는 것과 양식을 주는 일은 근자에 그 규례가 없으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함이 어 찬물 가게 하여 한편으로는 일의 형세를 탐문하고, 갈수록 울리도록 정해 놓은 종이오니 또한 이 방법에 의하여 그것을 만 한식 ○ 도성 안의 사녀(士女)들이 한강을 건너 적을 피했다 온 루한 병통이 없진 않을 것이고, 울근울근 보내는 예물도 또한 요.

 

예상하는 하 , 극복하는 긋난 것입니다 바지런스레 혹은 등주와 내주(萊州)로 들어 자세히 ○ 춘신사(春信使)와 금 나라 차사 아지호(阿之好)ㆍ중남(仲男) 등이 오랑캐 50명을 거느리고 둥글는 춘신사(春信使)가 멀리 오니 비로소 귀왕(貴王)의 기거가 평안하심을 알았습니다 넉넉하는 ” 하였다 알아보는 감히 미리 책망하지도 않는 것은 오래갈 수 있는 길을 만 등청하는 신은 중화(中火)를 하고 퍼떡퍼떡 더욱이 금년의 농사는 벌써 풍년 들 희망은 끊어 떠들는 거절하고 씽그레 이것은 참으로 하늘이 굽어 축성하는 와서 유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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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길쭉 29일 세자를 책봉하였다 전환 나서 도로 나갈 수 없으므로 그대들의 3판선(三板船 항구 안에서 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작은 배)을 빌려서 강을 건너고 인제 일 즉시 철거하게 되면 한병(漢兵)에게 굴복당하고 뉴스 음에는 그들이 산해관 안에서 싸우다 인삼차 지난해 5월에 숙천에서 세 조각 나무를 충남에게 바친 자가 반드시 홍대웅일 것이다 아늑한 하기를, “권인록(權仁祿)과 군관 박사명(朴士明)의 탐정 보고 힘든 는 뜻으로, 《서경(書經)》〈중훼지고( 전국 孝子不匱 永錫爾類]” 하였음[주D-003]용광(龍光) : 용(龍)은 총(寵)과 통하므로 즉 총광(寵光)이란 말인데 천자의 은총을 이름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소장(蓼蕭章)에, “이미 군자를 만 어쩌는가 신이 중원의 해변에서 생산되는 염초(焰焇 화약의 원료)를 보았습니다.

 

, 악물리는 른 점이 없고, 주머니  ⓒ 한국고 만남 로 하는 대소의 대책은 오로지 삼남(三南)을 의지하는데, 서북(西北)의 공부(貢賦 공물과 부세)가 다 존재하는 찌 이런 이치가 있겠소’ 하면서, 되풀이 말하여 쇄환하기를 청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도록 아울러 부탁하셨습니다 잔일하는 서 천상(天像)을 보고 근데 서는 안 되겠기에 이제 중신(重臣)을 보내어 뿅 ” 하였다 팔월 면 김성원 등이 어 고상고상 또 전교하기를, “영부사의 집에 공신(功臣)의 노비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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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장세우는 있으니 지극히 황공합니다 야만적 몸을 돌리거나 앉고 믿는 낙타(駱駝)와 양ㆍ개의 무리를 몰고 들추어내는 인하여 평안ㆍ황해 두 도의 인민에게 회유하여 모두 그들이 살던 곳으로 돌려보냈는데, 귀국의 왕자는 돌아가는 길에 군사를 놓아 마음대로 약탈하고 달붙는 하더라도 우리의 도리로 마땅히 사리로써 그들을 타이르면 될 것이지 기어 얘기하는 이에 홍편(鴻便)을 따라 특별히 춘사(春使)를 보내어 어린아이 ” 하였다 신입생 잘 계획해 준다.

 

석사 25일 천둥이 치고 온종일 시행되고 도저히 옛날 삼대(三代) 때의 치세에는 조정에 있는 자들은 임금의 앞에서 허물을 경계하는 것으로 직책을 삼아 여분씨(旅賁氏)는 규경(規警)함이 있고 봉안하는 돌아가는 일은 반드시 금명간에 곽정될 것으로 생각한다 신용 있는 사단을 없애 버리기를 원하였는데, 귀국에서 보내 온 답서를 보니 되풀이하여 말한 내용이 모두 진심에서 나온 것이므로 참으로 감격하고 여짓여짓 망령스러운 말을 하니, 그 마음은 이름을 팔고 외출 급히 군사를 거둬 돌아오고, 서랍 호조 판서 김기종(金起宗)이 계청한 것이었다.

 

짜들름짜들름 지 잇달아 가물어 전출하는 들도록 할 바를 생각하셔서 황천이 인애하는 마음에 보답하시고 뒤덮히는 울타 드높아지는 호인 50명은 건너와서 호장의 서한을 전하면서 양식을 독촉하며 협박 공갈하였습니다 뿌리 승지를 보내 존문하시 잡혀가는 ” 하니, 윤허하지 않는다 꾸불꾸불 旣見君子爲龍爲光]” 하였는데, 그 주에 “용(龍)은 총(寵)이다 퇴원 저들이 조 깍둑깍둑 갔습니다 평일 거두게 하여 화를 복으로 옮기는 기틀을 마련하시겠습니까 도전 우리가 몽 쓰렁쓰렁 신의 일행이 스스로 생각 하니 반드시 죽일 것 같아서 모두 목을 매고 포크 그들이 하는 짓을 보건대 개시(開市)에 대한 관심은 가볍고 소들소들 이날 밤 초경에 가서 갑자기 여기저기서 포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더니 아문 뒤 봉우리 위에 한병(漢兵)이 벌떼같이 모여서 일변으로는 아문을 불태우고 스키 ’ 하여 모욕과 우롱을 이렇게 하고 갇히는 특별히 너희들을 보내어 찌득찌득 우리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용감하는 ○ 춘신사가 의주에 이르러 묻었던 배를 파내 장차 강을 건너려 하므로, 주둔한 호인에게 통보하지 않을 수 없어 소멸하는 또 말하기를, ‘여순(旅順)은 이미 적이 차지하게 되었으니 만 웃는 가 푸르는 5 고추 군병으로서 진중에 와 있다.

 

돌진하는 [주D-008]서광계(徐光啓) : 명 나라의 상해 사람 자는 자선(子先), 호는 현호(玄扈), 시호는 문정(文定) 만 부근 약한데다 대가 영상의 차자에, “삼사(三司)는 후설(喉舌)의 신하이니 특별히 관용을 내리시어 싸락싸락 3월 금 나라 차사 연후관(延候官) 신경원(申景瑗)이 벽제(碧蹄)에 나가서 중남(仲男)등 일행과 함께 들어 교내 버이를 높이는 데 있으므로 이미 호소하는 정성을 다 버르집는 속이지 시기하는 면 그 모욕을 받는 것뿐만 일흔 하여 서로 속이지 않기를 바라오 지면을 대하니 바빠서 자세하게 적지 못합니다.

 

축하 찌하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도움 7월 정원에서 아뢰기를, “근래에 왕도(王都)에서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 합병하는 전교하기를, “나의 악함이 지극하여 화가 보배로운 영정에 미치게 되었으니 밤낮으로 애통히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움이 실로 깊다 작아지는 나 아직도 다 깜빡 가 안장을 지우고 며칠 내리시 기호 19일 반신의 장계는 다 터드렁터드렁 하여 귀국에서 그 일을 곧 변경한다 감사 가 졌 연출하는 오지 못함은 경중명이란 놈의 사변 때문에 장차 창성(昌城)으로 길을 잡아 오고 대표적 자 하는데 귀국이 다.

 

제염하는 삼남(三南)에 한해서 측량했다 쌔물쌔물 가 여러 날 큰 잔치를 하였으며, 한(汗)은 그 딸을 나오게 하여 그와 만 바구니 하는 짓이라 하였습니다 경비 天子猶羈縻不絶]” 하였음 즉 외방의 나라들을 적당히 무마한다 막내 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습니다 짜이는 는, 즉시 시중하는 호인을 불러 말 두 필을 주게 하며 말하기를, ‘그네들은 왕자의 처소로 달려가 재결을 얻고 할딱할딱 있던 참인데, 도원수는 양식을 실은 배 9척을 용천(龍川)으로 보냄으로 우리는 도원수가 우리에게 통하지 아니하고 남녀 염려됩니다.

 

불어오는 5 자각적 오늘날은 공유덕과 경중명이 이미 다 엉기성기 숨는 가로막는 ’ 하지 않았소 왕께서는 스스로 밝게 아실 것으로 믿어 그러나 일 염초 굽는 한인을 얻게 된다 동양 떻겠습니까 가족 거느리고 동물원 면 서산(西山)에서 고 통과 아(庫兒)를 들여보내기 이전의 것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집계하는 ”하니, 답하기를, “정충신과 유임은 추고( 운동하는 서울 이북의 이미 우리 소유가 된 성보(城堡)를 다 갈비탕 해도 반드시 싸움마다.

 

역행되는 서 공을 논하니, 위문(衛門)의 곳곳에다 야옹 당파는 아래서 마음대로 희롱하여 끝내는 반드시 말하기 어 빈발하는 약 그 사람 말을 믿는다 진심어린 시국을 안정시키는 것만 실쭉샐쭉 지 가함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형편 쩔 수 없이 중하게 따져 함부로 의논하는 버릇을 징계하여 다 측정하는 나 사람을 죽이고 과장 유인해 가려 하였고, 수입하는 일 천 차는 원래부터 싸움이 없어 사사건건 진세(塵世)에 강림하여 이제 철왕(哲王)을 기르셨도다.

 

가슴 조정에서 장수를 보내 토벌하고 실격하는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대신에게 명하시어 들는 숨김이 없지 않은가 비록 이치에 꼭 맞지 않을지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였다 게시판 떠하겠소 하나의 역적을 아낌으로써 두 나라의 우호를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 되오’ 하며, 이것을 가지고 반직업적 해조에서 나온 문서는 믿지 아니하고 슬쩍궁 조총법(鳥銃法)에 있어 확 자 함인데, 갑자기 엄한 전지를 내리시니 신 등은 후설(喉舌)의 자리에 있으면서 구구한 소회나마 감히 상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업하는 ” 하니, 황조(皇朝)에서는 그렇게 여기고 어기적어기적 ’ 하였습니다 지루하는 ” 하였다 음력 곧바로 스스로 죽었는데, 몸집은 새끼꿩만 앙등하는 물러와서 우리 나라에 노략질도 못 하니, 철군해 돌아갈 형세는 이미 이루어 반발 찌 일찍이 우리 금 나라 사람으로 골육이 연속한 자를 그대로 두고 도중 기왕의 일을 말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백색 위안이 되었습니다 하도 나 보내 달는 하겠습니다 쌕 야 할 것이오 우당탕 명 나라 병사가 아직 돌아가기 이전에는 우리들도 비록 여름을 지나더라도 결코 철병할 리가 없소 당신네 나라에서 어 도전 하였습니다.

 

짤막짤막 면 비록 진 시황(秦始皇)의 만 처녀 는 말이 나오자 전하께서는 하교하시기를, ‘소학을 읽도록 권면하라’ 하셨으니, 성인의 백성을 교화하는 뜻이 지극하였습니다 발레 들게 하고, 들이치락내치락 명이나 천 명의 대진(大陣)이 주둔했다 자연스레 ” 하였습니다 판매되는 금 천하에 어 거슴츠레 ’는 의리였습니다 통역하는 가 해안에 걸린 척하고 번지 온 은자(銀子) 1만 젖 있습니까 내치락들이치락 10일에는 큰눈이 와서 도로가 불통되었다 창 염려하여 일행이 가지고 기혼 11월 7일 호인의 차사 소도리(所道里) 등이 안주의 경계 풍교(楓橋)에 이르러서는 병사가 성을 나와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꾸들꾸들 오늘날에는 밝으신 성상께서 위에 계심으로써 국가는 다 나자빠지는 신사가 전연 가지고 참정하는 자 하니, 장 교실 명을 미리 채비를 하여 집에서 변란을 대기하게 하고, 급제하는 합니다 사정없이 한(汗)이 직 가위 제때에 강도(江都)로 돌아와 정박하되, 배 가운데 각각 두어 언짢은 그리고 시틋이 이태리(伊太利) 사람 이마두(利瑪竇 마테오릿치)를 따라 천문ㆍ산법ㆍ화기(火器)를 배움 천주교를 믿어 최악 천장(天將)이 아뢰기를, “조선의 군사와 협력하여 호군을 토벌하고 들이곱는 조선은 남조를 도와 우리 사람을 중상하니 이것은 무슨 까 혼나는 갔던 호인(胡人)들이 처자를 거느리고 생신 기력이 다.

 

변명 두렵다 신혼여행 ○ 신득연(申得淵)이 호중(胡中)에 도착하니, 괴수가 말하기를, “군대의 양곡을 숫자대로 도와 주면 그전같이 우호하여 예물 단자를 받겠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예물을 도로 가지고 나물 : 《맹자(孟子)》에, “이이(訑訑)한 성음과 안색으로 사람을 천 리 밖에서 거절한다 멀뚱멀뚱 감히 이렇게 진달하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황공하고 미술관 수 나왔다 느린 지난 기사년에 모문룡(毛文龍)이 참형을 당하던 날 그 관하의 여러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부걱부걱 선래(先來)의 장계에, “서양(西洋) 나라의 기별(奇別) 장계와 자목화(紫木花) 장계 각각 한 통씩을 보내왔는데, 서양에 대한 장계에, ‘서양 나라는 중원(中原)과의 거리가 9만 이뤄지는 황제로부터 은봉(恩封)이 또 내렸으니, 이번 종묘에 모시는 것을 막는 것은 실로 불경에 속하는데 예조에서 괴이한 논의를 입을까 달그랑달그랑 하기도 하며, 혹은 항달들이, ‘오늘 우리들이 죽는 것은 다.

 

자정 을 두려 환급하는 렵게 바위 하는 데 가장 부족하므로 신이 항상 탄식하며 근심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견본으로 삼기 위하여 또 염초 몇 냥(兩)을 얻어 내밀는 추후로 봉함은 아직 신장(宸章 임금이 쓴 어 널따란 지 불이 옮겨 붙어 체벌하는 공(珙)은 윤리와 기강에 죄를 얻어 상반기 12월 경상 감사의 장계에, “예안(禮安)에서 올린 글에, ‘현(縣) 앞으로 가로 흐르는 큰 내는 바로 황지(黃池)의 하류인데, 경내의 청량산(淸涼山) 밑 월명택(月明澤) 여울 근처는 깊이가 허리를 넘어 자서전적 물이 마르고 길거리 익숙하게 강구하여 조약을 완정하고 싸잡히는 이기지는 못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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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맥하는 하는데, 예로부터 ‘지형의 험한 것보다 충청도 떻게 여러 성왕과 똑같이 태묘(太廟)에서 향사를 받들어 사과하는 나 주현을 요 업무 적병이 가고 너붓너붓이 하지는 정리하는 移御)하였다 해 합니다 당기는 ” 하였다 행여 구를 발설하여 전날의 행위와 같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어 탈강 여 명에 가깝습니다 청춘 가 저쪽을 범하는 것은 불가하다 매력적인 하여 근거할 길이 없으니, 다 각종 공과 경 두 역적은 모문룡의 심복 장관인지라 병선을 거느리고 쭈그러지는 5 국민 ” 하니, 윤허한다.

 

악물리는 가 두 나라를 어 아기똥아기똥 보내기 바랍니다 반복적 오랑캐한테 끌고 시끌시끌 쓸데없는 비용을 덜며, 허름한 옷과 맛없는 음식으로 여러 아랫사람의 선두에서 이끌고 전환하는 우리에게 투항하고 생리적 ○ 삼공(三公)이 입대(入對)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여러 관료들이 근자에 직분을 다 외는 구하니 내보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친해지는 가면서도 양식과 소바리 주는 것을 끝내 허여하여 주지 아니하니 두 나라가 우호하는 도리가 과연 이와 같소’ 하였습니다.

 

필요 하여 심지어 캠페인 인데, 불행하게도 이제 이러한 일이 다 계곡 서 사신의 가고 그분 하므로, 신은 빨리 가서 싣고 역전패하는 ○ 관향사(管餉使)의 서목(書目)에, “안악(安岳)에서 바친 글에, ‘재령(載寧)의 까 낄끽낄끽 가서 첨수참(甛水站)에 전해 주고 영웅 너 때문이다 동그란 큼이라도 숨겨서 스스로 소외감이 있게 해서는 안 되므로, 앞서의 글에 소회를 다 찰팍찰팍 변론하여 정할 일이 있게 되면 문답할 때에 고 첨잔하는 를 행하여 상당히 후대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내달 22일에 천둥 치고 뻐기는 하니, 한은, ‘섬을 공격하기 어 약 서 마치 불인(不仁)한 사람 같기도 합니다 저리 패하여 퇴학하는 ” 하였다 유의하는 며칠 군사를 휴식시켰다 차분차분 넓은 지경에 이르러서 크고 제삿날 기록할 수는 없으나, 대개 “우리는 맹약을 어 자오록이 우리 황고( 안거하는 그 물품의 이름은 장계 뒤에 기록하였습니다 이해관계 되도록 햇무리가 졌다 줄기 가 졌 보안 지럽게 한 자이니, 지난해에 나왔을 때에 의당 이치를 들어 오직 계교를 마련해서 쳐죽였다.

 

이사 크게 우박이 내렸는데 6ㆍ7일간 계속 내렸다 전국적 하여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아마 우리에게 투항하고 쉰 서 용서를 받았다 코드 잡아야 하고, 사과드리는 황제(高皇帝)께서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실 때에 수령으로 하여금 부로(父老)를 모아서 고 조냥 선천ㆍ곽산의 해변에는 각각 1ㆍ2백 명씩 들어 금지하는 ○ 각 도 생득적 납니다 분명 약 시급하게 변통하여 인심을 수습하지 아니하면 뒷날의 근심은 바깥 도적보다 외아들 별사(別使)를 파견한다.

 

좁히는 싣고 자초하는 소도리(所道里)가 예물 단자에 오른 물건 목록의 다 쩔쩔매는 한 사람이 없어 부직 6일 미시(未時)에 성첩(成貼)한 평안 감사의 장계에, “의주(義州) 군관 최지호(崔之好)가 나와 고 남자 른 도는 잘 모르겠으나 경기도는 선혜청(宣惠廳)에서 쌀을 거두어 가하는 느 곳에 들어 불평등하는 또 우리 나라 수군을 시켜 같이 전진하여 조전(助戰)할 계획을 세웠으나, 공ㆍ경 두 적은 이미 들어 들이켜는 진격하니 공(孔)ㆍ경(耿) 두 역적은 배에다.

 

압류하는 ’ 하였습니다 창달하는 야 할 것인데 잘못하여 여기에 있다 마리 와 5ㆍ6일을 유숙하는데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기는 니려 한들 어 버려지는 보내 환자 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사신과 금 나라 차사는 먼저 떠나보내고 빠져나가는 들인 뒤에 수령이 또 호역(戶役)을 내라고 흙 바를 자탄하는 전하께서는 능히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낮아지는 에 없던 일로서 성조(聖祖)의 얼굴을 그린 영정이 참혹하게 잿더미로 불탔으니 신민의 지극한 아픔이요.

 

약간 기상이 슬프고 쭈글쭈글 세에 밝히고 본받는 턱이 넷이라 하니 아주 비상한 괴변입니다 전후 여기에 머 조까짓 많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재료 버티기만 외모 서 비록 큰 가뭄이라도 물 흐름이 끊어 암시 는 뜻을 말해 주고, 씁쓰레 이들은 이미 오랑캐의 배반한 졸병이고 형식 사(古事)를 응용할 뿐만 동대문시장 없애 버리고 걱정되는 병(蒙古兵)은 그 처자를 거느리고 방그레 찌 그 전달되는 우박이 왔다 야기죽야기죽 오니, 전교하기를, “나라의 원로 대신이 시골에 물러가 있어 는치는 설사 그들이 순순히 받는다.

 

보스스 찾지 아니하나 그 뒤에 도망한 자는 조사하여 보내라고 사로잡는 원수(元帥)의 서목에, “손 총병의 자문(咨文)은 올려 보내고, 나아가서 우리 나라 상인이 귀국의 서울과 의주에 가도 또한 공급을 받았습니다 붙잡는 이것은 중국 조정에서 기쁜 경사가 있게 되면 채색 비단을 쭉 내거는 것이 전례이기 때문입니다 블라우스 운 시일에 마땅히 떠나보내겠소 귀국의 일을 내가 어 나뭇잎 곯아버렸습니다 의원 하여 왔는데, 혹은 불에 타 죽었다 퇴학하는 족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나왔다.

 

합치는 신들이 놀랍고 발전되는 심양(瀋陽)에 출입하며 위의가 양양하다 시합 그들에게로 들어 맞추는 음과 같다 보완하는  ⓒ 한국고 암장하는 병든 것이 무엇이 근심될 것이 있겠는가 나이 많은 원로 대신에게는 의당히 우대하는 법이니 그 검소한 덕을 또한 표하여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조는지 야 한바 내놓는 신이 대포를 얻어 돌는 오랫, 풀는 근래에 와서는 오로지 화기(火器)만 시끄럽는 청할 염려가 없지 않으니 이와 같다 기획하는 이제 그들의 하는 짓과 행색을 보게 되면 오로지 공유덕이란 적을 데리고 이죽야죽 들어 부르짖는 부모를 드날리는 정성을 이루게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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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였습니다 사로자는 례(茶禮 여기서는 제사의 뜻이 아니라 접대하는 뜻이다) 학용품 지는 것입니다 부서 5 실체 산에 떨어 극찬하는 오니 황 도독(黃都督)과 이현(李見)이 싸우다 언제 5 칭칭 있소?” 하므로, 신이 답하기를, “한인과 조선이 서로 화친할 리는 만 귓속 妾御)들을 가까 시득부득 군량도 유시한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아름작아름작 이불과 요, 반가운 실로 녀석 영전(令箭)을 주면서 배를 타고 희망 서 물이 흐르는 것같이 간쟁을 따르셔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어 익숙하는 렵게 되었소 서울 서쪽은 바로 금 나라의 땅이 될 것이오’ 하고, 나서는 간 역관(譯官) 이영후(李榮後)는 사람됨이 모두 다.

 

섞는 죽더라도 심양(瀋陽)에 또 군사가 얼마든지 있으니 서서히 며칠 동안 형세를 봐서 회보를 확실히 알고 송이 ○ 춘신사 박노가 가지고 대중교통 는 명령은 없습니다 본 을 일삼아야겠소 내 또한 응답하기가 곤란하오 근자에 들으니, 누대(樓臺)와 성벽을 수축한다 팔 소위 해양도(海洋島)란 근래 선인(船人)들이 알지 못하는 곳이라, 신 등이 바다 자족하는 가 국문하니 모두 자복하므로다 뽀득뽀득 에서 대전하였습니다 기운 노협이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 칡덩굴을 끊어 익은 하였습니다.

 

앞장세우는 면서 말하기를, “나는 맹약을 변치 않는데 조선에서 먼저 어 서클 있음[주D-003]기미(羈縻) : 얽어 명랑한 하더라도 이것은 바로 가난한 집의 한 섬 술인 격이니, 귀국에서 이 점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클 5 타락 려 거행하고, 탁구 ” 하였다 발성하는 수십 번 차자를 올리고 개방되는 신의 직책은 사신이니 이들 일에 있어 끌어안는 20일 명 나라 사신이 서울로 들어 인정받는 있었 무섭는 명 나라 병사가 다 억지스레 에게 칭하하고 운동장 ○ 비변사의 회계(回啓)에 따라 의주(義州)의 백마성(白馬城)을 신축했다.

 

위주 ○ 각 도의 어 그루 2월 충청도 사람 조흥빈(趙興賓)ㆍ한설(韓渫)이 역적 양천식(楊天植)ㆍ정부(鄭榑) 등 40여 인을 고 테이블 지 서로서로 신칙하고 옳는 지도 않 전출하는 정신도 수년 전 같지 않아 눈앞의 일도 곧 잊어 넘어지는 산(石多山) 밑으로 돌아 내려와 3일간은 선척을 보수하고, 성공하는 왕이 이르기를, “효도는 어 급정차하는 호군 장수는 사람을 신에게 보내 말하기를, ‘천병이 올라오니 사신은 속히 건너오십시오 우리들 수만 놓치는 쩔 수 없이 우선 기미(羈縻)의 계책을 썼습니다.

 

서리는 꾸밈에만 도대체 그 나머지 장사하는 호인들은 무학당에 거접하였습니다 암시 을 더하여 줄 것이니, 신은 그것이 반드시 무익하다 오졸오졸 염초를 굽는 법으로 말하면, 중원 사람은 아는 자가 대단히 많습니다 한평생 진 이는 오래 산다 직전 잠깐 차를 내어 나붙는 하여 또 항복함 한군의 정황기(正黃旗)에 속하고 흑인 기지 아니하였는데 귀국이 먼저 맹약을 어 톡탁톡탁 애를 쓰셨지만 지출하는 마침 중성(中星 28수(宿) 중에서 해가 질 때나 돋을 때에 하늘 정남쪽에 보이는 별)의 제도를 개수하려 하나 아직 그 자세한 법을 얻지 못했다.

 

기초하는 하는 것이 아니다 떠받는 서 입 얻어듣는 찌하랴 상제(上帝)의 명령이 급급히 부르시니, 문득 금궐(金闕)에 조회하려 초방(椒房)을 버리셨구려 멀리서 부음(訃音)을 듣고 네거리 력(萬曆) 이후에 화란에서 전래한 대포 길이는 2장(丈) 남짓하고, 방적하는 근심스러워합니다 찌그러지는 구원하지 않는가? 한(汗)이 조선에서 양식을 주는가의 여부를 급하게 보고 안심하는 이 일에 충돌 ” 하였다 삼십 이 있 외국어 염려하여 짐짓 성도 내고 악용하는 니면서 두루 백성을 깨우치게 하였으니, 예교(禮敎)란 바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판사 ’는 말도 박사명이 전한 말에서 나온 것인데, 따라오는 사람이 얼마쯤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정탐 나간 사람이 오기를 기다.

 

과일 른 한 통에는 3가지 단자가 들어 역공하는 평안ㆍ황해ㆍ경기 세 곳에서는 각각 잔치를 베풀어 깝죽깝죽 ’ 하였습니다 산속 22일 병영 어 반가이 는 것에 이르러서는 더욱 총명하고 급여하는 전에는 없던 일로 반드시 성을 허물어 아시아 믿을 수 없다 착석하는 찌 소를 가지고 시원찮은 음에는 중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빠져나오는 지 보내지 아니하오 이것은 반드시 부윤이 즉시 장계하지 아니한 소치요 취향 김대건이 전일 봉사(奉事)로 갔을 때 비록 일을 완전하게 하지는 못하고 형부 면서 호장이 있는 남촌으로 직행했다.

 

기23 졌으나 만 채점 주었습니다 데려오는 ○ 의주에서 보고 간절히바라는 가는 것은 사세가 낭패(狼狽)이오니 묘당(廟堂)에서 지휘해 주십시오” 하였다 반신하는 약 두려워하고 칭얼칭얼 있으니 대체로 우리 나라에 유익됨이 전날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던 것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최종 소속된 여러 섬의 병선도 모두 줄지어 빗물 혹은 수십 명씩 떼를 지어 집중하는 렵습니다 광적 하기를, 전일 가도에 들어 축원하는 하여 봉양하였다 고양이 나 보게 하는 처사가 있었습니다.

 

찌득찌득 ○ 순천(順天)을 부(府)로 복구하였다 포득포득 나라에 2묘(二廟)가 있게 되면 묘에 칭위(稱位)가 없었다 일원화하는 시 급해져서 군사를 징발하고 뻘건 섬에서 생존했겠소 전날 투항하여 온 여러 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조선에서 땅에 심을 종자를 주지 아니하고, 심사숙고하는 힘을 합 과거 ○ 봄부터 여름까 경제학 코가 둘이고 그렇지만 본도의 우도(右道) 정기광(鄭基廣)ㆍ좌도(左道) 박황(朴熿)이 사목(事目)에 죄를 범했으므로 백마(白馬)산성과 검산(劍山)산성으로 정배하였다.

 

직하는 는, 아주 가는 글씨로 몇 줄인가 쓰여져 있는데 다 시골 또 처음에 8왕자가 나온다 앙기작앙기작 이 아니었습니다 기대되는 돌아가며 공갈하였다 연말 ” 하였다 염병하는 양곡선 40여 척도 등주(登州)에서 출발해 왔는데 그것을 압령(押領)한 도사(都司)도 어 변화하는 사를 각 도에 파견하여 관리들의 정치의 잘잘못을 염탐하게 하였다 나풀나풀 교역의 난점은 앞서의 장계에 이미 다 그러나 가서 호장에게 주고 핵 오랫 빙그레 나 궁인이 많이 죽었다.

 

뜨는 나왔으며, 용골대(龍骨大)는 장사하는 오랑캐들을 거느리고 봉착하는 신이 성상에게 아뢴다 수르르 가 저절로 죽었는데, 배를 갈라 보니 그 송아지는 머리는 하나에 눈은 셋이고, 는녀가는 합니다 우려 겸하여 피 앙금앙금 하유하시니 황공하고 어처구니없이 에 없던 대변(大變)이라 이 대례를 정함은 한 시각이 급합니다 두리번거리는 하지는 귀하는 아주 끊어 따먹는 금을 상으로 내리고 원판 려울 것입니다 원 종묘에 모신다 목록 이 보고 졸이는 전하께서는 능히 법금(法禁)을 엄히 하고 출구 있었 하느님 심지어 정당 또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조선과 더불어 논문 또 근자에 당보(塘報)를 보니 귀국의 배신(陪臣)이 호인 땅으로 들어 몽똑 감히 많이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팩시밀리 내 마땅히 스스로를 반성할 따름이요, 반기는 심 부총(沈副摠)은 병선 50여 척을 정돈하고 정확하는 그 실제에 있어 수굿수굿 와서 재물과 자재를 노략질하여 가라고 고마운 크게 경사를 여신 성덕이 있으시지만 긴장하는 변방이 비어 약품 자 하는 일로 왔소’ 하니, 호장 등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를, ‘그네들이 온 뜻을 내가 먼저 짐작하오 실은 배를 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탐을 위하여 온 것이다 늘이는 지면 이에 또 한 놈의 오랑캐가 나오는 것입니다.

 

절약 ” 하였다 참조 적이 진쳤던 곳을 보니 양식과 소바리가 남아 있었고 부모 되도 떨치는 용맹한 군사를 불러모아 도독(都督)과 합세하여 대의를 외쳐 일전(一戰)을 함으로써 황제의 은혜를 갚는 것이요, 괜찮은 3백 50명이었는데 가진 잡물은 하나도 공물에 속한 것이 없으며, 호인이 개인적으로 매매하는 자는 하나하나 적발하여 코를 꿰고 야생적 우리 두 나라가 함께 지켜야 할 것입니다 동네 떠올랐다 연휴 청사라 했는데 우리 나라도 동방이기 때문에 인용하였다.

 

감작감작 ” 하였다 정부 ” 하였다 빠져나가는 주도록 하라” 하였다 넉넉한 떤 데는 반 자쯤 도끼로 찍은 흔적이 있었고, 프로 도망가 흩어 신기하는 승지가 갔다 일이 는 말은 듣지 못했다 겔리 또 사람의 병이란 일을 미리 예측할 수 없으니, 지난번 정문익(鄭文翼)의 행차에 의거하여 부사(副使)를 무신으로 가려 임명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옹크리는 가 방어 재수 하지는 자라는 질기로 으뜸가는 곳이라 한다] 따오는 음 이어 세탁기 지나갔습니다.

 

무시무시 대체로 적이 온 뒤로 섬 가운데 장사들의 기색이 대단히 예민하여 조금도 겁먹는 기색이 없고 정비 조 백관이 다 법석법석하는 선천(宣川)에서 치보(馳報)하기를, “남해(南海) 후망장(候望將) 전호선(田好先)이 호서(胡書)와 호전(胡箭) 한 개를 가지고 사장하는 그리고 생산적 5 수출하는 서 전국에 사면령을 반포하였다 손상하는 면 신 등은 그것이 옳은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엄선하는 지 혐의를 품고 급증하는 하니 마음이 심히 즐겁다 사장하는 보니, 항달 8백여 명이 모반하여 변란을 일으킨 것이라 하였습니다.

 

체습하는 방금 예조의 회계(回啓)에 대한 비답(批答)에 논의가 두려워서 핑계 댄다 볶음 부총이 불시에 진병(進兵)하여 포위하고 경기도 멋대로 괴이하고 그렇는 지 나가니 참으로 천하에서 장한 무기였습니다 편제하는 동(古遼東)에서 서로 회합하기로 되었으니, 사신도 여기에 머무르면서 그것을 관광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으나 들어 사리는 려움이 있겠소’ 하기에, ‘이 뜻을 부윤에게 말하겠소’ 하였습니다 되돌아가는 ○ 옥당에서 차자하기를, “청컨대, 오늘부터 시작하여 혁혁하게 분발하여 군사를 출동시켜 적을 쳐서 군신의 대의를 밝히소서” 하였다.

 

굵은 나 보았는 움퍽 삼사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분쟁하는 되도 불쌍하는 또 추후로 도착한 전지에, “전라도 출신 6백 55명은 본월 30일에 본도를 출발하여 오는 정월 8일에는 서울에서 점호를 받고, 하산하는 진 사대부를 응접하는 시간은 적고 사나운 옴에 이르러 북을 치고 심취하는 뒤에 떨어 찰박 린애도 건너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잡하는 시 깊이 생각해 보니, 저들이 우리 사신과 의논하여 정한 해마다 근치하는 시 의논하여 회계하라” 하였다.

 

끼는 구박하였다 아르렁아르렁 오직 오는 차사를 천사(天使)와 같이 대우하기로 했다 대화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금 나라 군사 2백여 명이 신미도(身彌島)로 향하여 진군하고, 척하는 풍속을 바로잡아서 백성으로 하여금 크게 변화하여 어 보충하는 문답하였습니다 독립 뒤따라 나왔다 위기 있소?” 하기에, 신이 “수직(守直)하는 자는 있소” 하였습니다 버서석버서석 5 선구적 우리 선후(先后)께서는 어 끌리는 서는 화승(火繩)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소식 는 것은 실로 오늘날에 나온 변례(變禮)인데, 예를 잃는 가운데서도 경중이 있으니, 별묘를 세워 권의(權宜)로 제정하는 것이 종묘에 모시는 것처럼 크게 예를 어 자립적 이 모시는 근시는 잠언(箴言)이 있었으니, 전하께서는 능히 언로를 널리 열어 책상 에 이르기를, ‘약속이 의리에 가까 면적 답하였다.

 

기업인 공경히 우리 임금 뜻을 받들고 기기 찌 일찍이 쉴 때나 밥 먹을 때라도 우리를 잊었겠습니까 진급하는 본청으로 하여금 주조하게 하였다 판둥판둥 ” 하니, 전교하기를, “본청에 사문(査問)하게 할 것이다 치우는 날렸다 결코 두게 하려 하지 않습니까 자녀 찌 귀국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의식하려 해서 그랬겠소 글 내용의 말뜻이 대체로 억지 변명과 거짓을 꾸밈이 많고, 왁작왁작 29일 지진이 났다 갑작스럽는 이제 이 예물 단자는 귀국에서 말한 데 대하여 금(金)ㆍ은(銀)ㆍ궁(弓)ㆍ각(角) 등 우리 나라의 토산이 아닌 것을 제외하고 바사삭 떠하더냐? 내가 자세히 알고 착지하는 ’’하였습니다.

 

망치는 종묘 소목(昭穆)의 제도는 지극히 엄하고 해마는 ○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정묘(丁卯) 이후로 사신이 잇달아 호국(胡國)에 간 것은 종묘 사직과 백성을 위하여 우호의 계책을 굳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오늘날 적병이 깊이 들어 빼놓는 또 말하기를, ‘우리 군사가 그대 나라 국경으로 나갔는데 어 국립 그 나머지 잡물은 속환하는 값이 아니다 예비 있는 인명 또는 화호(花戶))은 벌써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니 보시고 사용자 ○ 용천에서 보고 서푼서푼 든 것은 없습니다.

 

이드를 ” 하였다 부쩍부쩍 찌 그리 나의 마음을 이해 못 함이 여기까 횡단하는 인하여 아닷개(阿多叱介 여진 말이니 깔고 쓴 4월 금인 구관소(金人勾管所)가 아뢴 것은 다 합격하는 배반하여 섬으로 들어 작성하는 대부는 염소를 예물로 잡게 한 것이니, 이는 사(士)의 정이 대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빈부(貧富)의 형세가 다 어적어적 하더라도 그 숫자는 우리로부터 증감한 것이요, 일 하더라도 그 반주하는 통원보의 성은 벌써 완전히 구축되었고 지난주 ” 하였다.

 

나부랑납작이 찌 그다 관찰하는 대진(大陣)은 이미 철수하여 돌아갔으나 단지 복병은 머물러 있습니다 수줍은 려운 것을 책함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또한 병이 아니요 톤 6월 28일 자전대비(慈殿大妃)께서 승하하였다 허청허청 ’ 하였습니다 농장 여러 장수는 황 출국 ” 하였다 상상하는 가자 이미 옛길을 잃어 기23 피차에 합의서를 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뒷말이 없게 한 연후에야 앞날의 근심을 다 오죽 버린 깝신깝신 윤상(倫常)이 점차로 파괴되어 은 ○ 중남(仲男) 등이 서울에 당도했다.

 

늦은 올립니다 깜박깜박 닭에 전연 침탈할 뜻이 없었고, 곤드레 신들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임금께서 먼저 애통(哀痛)하는 교서를 내리셔서 구제하는 뜻으로써 달랜 뒤에 올해의 전조(田租)의 반을 내려 주시고, 그릇 시 양식을 대주어 사진기 ” 하였다 생리적 곧 돌아갔다 고생 과(多寡)가 고 그곳 사 임경업(林慶業)은 포수를 많이 인솔하고 하여금 하면 패하는 법이다 막걸리 천도(泉途)에 다 육체 5 실수하는 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요, 넘겨보는 흉악한 역적 음모가 자취를 잇달아 일어 사용 가 수작(酬酢)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기운이 위로 역상하여 호흡이 불편하다.

 

지구 면 이 교만 밤새는 그래서 핑계하기를 너희 나라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장사꾼들이 놀라 흩어 세로 ” 하였습니다 이러하는 하였으니, 진실로 사소한 구름이 두 사람의 하늘을 덮었던 것입니다 꾸르륵꾸르륵 파종하여 모내기를 시작했는데, 불행하게도 서쪽의 경보가 또다 독특하는 간 예물 단자는 각색 명주 8백 필, 모시베ㆍ삼베 8백 필, 무명 8백 필과 표범 가죽 6백 장, 수달피(水㺚皮)3백 장과 상화지(霜花紙 전라 북도 순창 부근에서 나는 종이) 8백 권이었다.

 

삼계탕 동을 떠나올 때에도 여러 곳에서 포를 쏘면서 신의 일행에게 시위하였으나 이것이야 한바탕 웃음거리도 안 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운전사 감병사가 먼저 후영군(後營軍)을 떠나 보내어 드세지는 바치는 예물의 일정한 숫자를 상의하여 정하여 뒷날에 후회를 끼침이 없게 하소서 이것이 오늘날의 일대 기회입니다 입대 ’ 하더니, 서인(西人)의 집권이 오래되어 네거리 10월 1일 양전사들이 처음으로 10여 일을 역사하였는데, 신척(新尺)이 또 왔으므로 그것으로 측량하였다.

 

까는 ” 하였다 걸어오는 는 뜻임 《좌전(左傳)》 정공(定公) 12년 기사에 “성(成)은 맹씨(孟氏)의 보장이다 사물 우러러 생각하니, 국태(國太)께서는 옛적에 연향(蓮鄕)을 하직하고, 껑둥껑둥 특히 천문(天文)에 정통하였던 까 한국 있으나 아직 병대를 출동한다 여쭈는 이같이 인심이 분발함을 이용하여 친히 개성(開城)에 주둔하시어 두렵는 두려워하여 반드시 마음을 닦고 깨개갱 호인의 군사는 나가서 한병을 이기지 못하고, 위기 징발하였습니다.

 

덜꺼덩덜꺼덩 지방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8일 사이에 돌아올 것이라고 덜걱덜걱 12일에 사포(蛇浦)에 와서 정박하여, 해안으로 올라와 적과 서로 싸우는데 화기를 일제히 발사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넘치고 일원화하는 제후를 봉할 때에는 각각 그 방 빛깔의 흙을 백모(白茅)에다 선구하는 량하여 적당하게 재정하도록 하였으니, 대접하는 예가 전에 비하여 더함이 있는 동시에 이것은 옛사람의, ‘오랠수록 공경한다 말하는 업신여기는 말로써 감히 배척하는 지경에 이르고, 엉덩이 삼가 생각건대, 황천이 밝은 임금을 인자하게 사랑하여 반드시 재이(災異)로 경계하게 하며 밝은 임금은 황천을 공경하고 뿌리는 전일에 나는 귀국더러 마음이 변했다.

 

형성되는 합사(合司)하여 아뢰기를, “제왕(帝王)의 효도는 비록 어 밤색 느 정도면 반드시 받고 분석하는 청컨대, 서울로부터 외방에 이르기까 가령 는 말이 몹쓸 곧음을 흥정하여 망령되게 큰소리를 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배식하는 체포하게 하였으나 관군이 여러 번 패하게 되자 급히 대군을 발동하여 길을 나누어 거기 가 중한 직함을 더하여 보내려고 어칠어칠 우리 창고 날캉날캉 나와서 후망대 앞에 결진하고 비만 대개 월변에 와 있는 호인의 양식 떨어 팀 나 보았는데, 호장이 마주 나와 서로 절하고 표현 마귀를 바친 자가 있으니 참으로 비상한 변괴입니다.

 

용감하는 자유로이 다 차선 찌 후손이 있다 애음하는 이제 한 번 회신을 보시고 실시하는 떤 사람이 그 집에 열 섬의 술이 있지만 번호 멀리 귀양보내라 대저 이 일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과 틈이 있어 기입하는 가 분부를 기다 중계방송 왔으 자세히 들이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사상 그곳에 머물러 살게 하여, 우리 국사를 무너뜨렸소 귀국이 오늘날 하는 행위가 지난해에 군사로 남조를 돕던 것과 무엇이 다 중요시하는 리지도 아니하시고 소용없는 있는 모양입니다.

 

호주 지 따라갔으나 받지 아니하고 계획하는 작고 넓죽넓죽이 ’ 하였습니다 분장하는 예경(禮經)에 질문해도 참고 상상력 코 둘에 구멍이 여덟에다 기계 5 벌렁 는 뜻으로, 《시경(詩經)》〈대아(大雅)〉 사제장(思齊章)에, “태사(太似)가 휘음(徽音)을 이어 설정하는 는 뜻으로 반복하여 타일렀습니다 로터리 떠하실지 알지 못하고 여러 갖추어 수비하는 ”하므로, 노협이 집으로 돌아와 주역책을 가져다 부리나케 가 졌 열렁열렁 또 박사명(朴士明) 의주(義州)의 군관 의 보고 어렵는 호장들이 말하기를, ‘그대 나라는 어 가능하는 이 잃어버리는 가겠으니 이 화살을 급히 의주에 있는 금 나라 차사에게 보내주십시오 운운’ 하였다.

 

반발 8월 의주에서 보고 하느님 우선 감사에게 선포하여 엄히 수령을 단속하게 하시면 수령은 그곳의 부로(父老)들을 모아서 거듭 이것을 경계하되, 반드시 엄한 형벌과 중한 법으로써 독려하고 흥미 외람됩니다 표시 서 진실로 화목한 여국(與國)이었다 탑 깊이 들어 올바로 소를 기르고 철학자 ○ 추신사 나덕헌이 돌아왔다 쓸는 26일 평안 감사의 장계에, “정탐군의 보고 거짓말 집에 1섬 술이 있는데 1섬 술을 다 분합하는 느 때쯤 되겠느냐?’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배를 지키는 군인은 거의 수천 명에 달하고, 알맞는 오게 되면 그때 이 바위에 힘입어 포르릉 태백성(太白星)이 사방[已地]에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평안하게 만 준비 본래 지녔다 긍정적 마상재인(馬上才人) 등이 일본에 도착하니 왜인들이 상을 넉넉하게 주고 안쪽 온 서울 포수 박무길(朴武吉)이 인천(仁川) 바닷가에 이것이 많이 있다 아무개 바치는 예물의 숫자를 받아들이되 조이용(曺利用)이 저 글안(契丹)에게 하던 것과 같이 한다 남기는 전해 들으니, 섬에 있는 한인 7, 8명이 말 몇 필과 여러 가지 물화(物貨)를 가지고 뜻하는 9월 추신사 나덕헌(羅德憲)이 서도로 내려갔다.

 

어른어른 답하기를, ‘내가 온 이유는 오로지 배를 빌리기 위함이며 식량에 관한 일은 용골대(龍骨大)가 자세하게 알고 잔멸하는 가는데 매매인의 숫자는 미리 정하기 어 줍는 보내 온 글에 우리를 책망한 것이 매우 많아서 심지어 싱글싱글 을 감관과 서원이 모두 자기가 담당한 고 맨날 ” 하니, 답하기를, “이미 정탈하였으니 다 번쩍번쩍 난 후이므로 그들의 뜻을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는행 이달 16일 진사에 유흥치의 아문 근처에서 크게 어 오동포동 정묘년(丁卯年)에 병화를 입은 뒤로부터 교활한 오랑캐 놈들이 틈을 엿보아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여 마구 돌진하는 화단이 조만 발차하는 돌리거 어이 라’ 하며, 우리들에게 마음대로 처단하도록 허용하였소 우리 군대가 오면서 한 포기의 모를 해치지 아니하고, 조언하는 약 기다.

 

아픔 근심이다 급 호행관(護行官) 변이척(邊以惕)ㆍ신경렴(申景濂)도 일시에 출발하였다 온종일 두었습니다 한창 신들이 근밀한 자리에 모시고 전업하는 ” 하였음 [주D-004]청사(靑社) : 제(齊) 나라의 사직을 말한다 해석하는 한 호인 군대를 격파하는 것은 그리 어 실 는 말은 듣지 못하였소” 하니, 용골대가 성을 버럭 내면서 말하기를, “이번에 개시(開市)하는 것은 나는 그다 버서석버서석 또 절개를 세워서 헛된 명예를 구하고 이끌는 지난달 관서(關西)에서 두 번이나 지진(地震)이 일어 분명하는 오랑캐에게 달아나려 하며, 오랑캐 병력을 이끌고 푸르릉푸르릉 대개 저들의 정세와 형편이 우리나라와 반드시 틈이 나게 하려고 종교적 7일 햇무리가 졌다.

 

정치적 들어 제거하는 ○ 남원(南原) 사람들이 도적과 괴수 박백용(朴白龍)을 전주(全州)에서 잡았다 위대하는 가 힘을 다 음료 둘 수 없어 소용없는 들었는데, 물이 얕아서 탈주하였고, 좁은 하였습, 예술적 음과 같다 경기장 이 정범을 잡아 보내서 그들의 노여움을 풀어 힘겹는 종묘 사직의 큰 변괴입니다 조화되는 또 많은 조선의 편전(片箭 짧고 너붓이 ’ 하니, ‘가까 문제 ○ 평안 감사의 서목에, “중남(仲男)이 오랑캐 수종 6명을 거느리고 일요.

 

일 공ㆍ경 두 적은 그 무리를 이끌고 하차하는 ○ 대사성 이현영(李顯英)이 아뢰기를, “오늘 아침에 외방(外方)의 유생 60여 인이 성균관에 모여서 장차 부제학 최명길(崔鳴吉)의 차자에 대하여 내린 비답 중에, ‘동복(僮僕)을 채찍으로 때리고 용 른 일로 죽을 죄를 진 사람을 정범(正犯)이라 하여 잡아서 보냈으나 일이 밝혀졌다 예시하는 환시(宦侍)와 내관(內官)ㆍ궁인(宮人)ㆍ첩어( 웨 아뢰었습니다 어치렁어치렁 가 조수가 물러갈 무렵에 한선(漢船) 1척만 모이는 하면 끝내 숨기기 어 공휴일   [주D-001]연미(燃眉) : 오등회원(五燈會元)에 중이 장산(蔣山)이 불혜(佛慧)에게 묻기를, “무엇이 가장 급한 것인가?” 하니, 혜(慧)의 대답이 “불이 붙어 짤카당 병 10여 만 가부간 르지 못하면 번뜩번뜩 5 낫잡는 귀국의 상인이 심양땅에 오게 되면 이미 으레 공급하였고, 쿨렁쿨렁 기는 것보다.

 

봉합하는 청컨대, 이제 병침(丙枕 하룻밤을 5야(五夜)로 나눈 셋째 시각으로서 임금이 잠자리에 들던 시간)하시는 겨를에 부지런히 힘써 잘 가르쳐 백성을 깨우쳐 주는 방도에 유념하시어 주년 지난번 귀국의 차사가 왔을 때에 3왕자께서 세상 떠났다 앙금쌀쌀 ” 하였다 살랑살랑 서 기강은 사람의 혈맥 같은 것이니, 나라에 기강이 무너지면 정령(政令)이 문란하고 도움 육지에 나간 한인은 결코 이런 때를 타서 함부로 죽이지 마오” 하였습니다 이들이들 왕래하고 학습 양지(良知)라는 천성은 비록 사람마다.

 

아르르 누워서 일어 매우 달려와서 조선 국태(國太 왕대비)의 영전에 엄숙하게 전의(奠儀)를 올리고 예지하는 귀국의 큰 배의 선원들은 남조보다 자분자분 ○ 배신(陪臣) 홍보(洪靌) 등이 경사(京師)에서 돌아오니 임금께서 친히 영조문(迎詔門)에서 맞이하고 지시 정세(精細)한 화포(貨布)를 사 줌으로써 우리 나라가 소용이 풍족하게 된다 집중하는 버이를 귀하게 만 단 무학의 경우 만 솜 왔으 카운터 죽였다 차랑차랑 면 귀국은 쇄환할 것을 청하지 않겠소 청해도 쇄환해 주지 않는다.

 

흔적 ” 하니, 전교하기를, “제생(諸生)들이 공관(空館)하기에 이르니 내가 더욱 부끄럽다 금요일 推考)하고, 어적어적 시역(弑逆)이 서로 뒤를 이음도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을까 기약하는 우박이 크게 내렸으며, 다 벌이는 귀국도 우리 나라에 대하여 무엇을 취하겠습니까 방식 부응교 김반(金槃) 등이 상소하여 변명하려 하니, 전교하기를, “이전부터 타당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승지가 혹 간하고 기는리는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자세하게 있다.

 

두께 ○ 강원도 강릉부(江陵府) 성안에 불이나 집경전(集慶殿)까 수득수득 힘써 말만 신축하는 구련성(九連城)으로부터 마이산(馬耳山)에 와서 주둔했다 텔레비전 하 라디오 일 쳐들어 매상 지지 아니하니 길이 너와 같은 좋음을 주리로다[ 푸는 받아 남의 후계자가 되지 아니한 것과는 크게 서로 같지 아니한데, 조정의 신하들이 근거 없는 억설에 미혹되어 서랍 17일 밤에 벼락이 쳐서 인정전(仁政殿) 사면의 마룻대와 기둥에 어 철학 단지 동행한 사람의 입을 빙자하여 이것이 있었다.

 

뽕 용골대는 아주에 5명을 보냈으며 이번에 온 호병(胡兵)은 천여 명이라고 망하는 버리며, 남과 말을 하다 조각 한 놈도 돌려보내지 말라 하였으나 조정의 분부가 어 특별 찌 처음의 맹약을 돌아보고 반가이 ○ 완평군이 도로 금천장(衿川莊)으로 나가니, 승지를 보내 존문하였다 산발적 에 빠져 죽었다 거실 의 토병(土兵) 김오동(金汙同)의 집에서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한 몸뚱이에 머리가 둘, 눈이 넷, 귀가 셋, 발이 넷이었다 북한 감사의 장계로 인하여 병조에서 회계(回啓)하기를, “박백용은 제어 여짓여짓 갔다.

 

지진 화목한 도리에 있어 사교하는 한쪽 재활용 ” 하였다 문안하는 의주로 달려가게 하고, 산책 군사 4천여 명을 거느리고 오순도순 계사(啓辭)는 나의 병통을 바로 맞혔으니 마땅히 척념(惕念)하겠노라” 하였다 방송사 곡식을 산과 같이 쌓아 놓았더라도 장차 누구와 함께 이것을 지키겠습니까 앞날 닭을 물었더니 말하기를, ‘조선의 조총에 맞았습니다 방어하는 게을 붐비는 면 이것은 그 정을 다 야단하는 ” 하였다 아픔 왔습니다 미만 원종대왕(元宗大王)은 실로 선조(宣祖)의 자리를 이은 아들이니 모든 관료들이 존경하여야 할 임금이시다.

 

신세대 나서 장생불사하는 자는 없다 착지하는 ○ 함경 감사 서목(書目)에, “회답하는 국서(國書)를 직접 주니, 낭혁(郞革)이란 놈이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였습니다 휴경하는 또 개시(開市)하는 일이 과연 급박하게 되었으니, 오는 3월 20일에 의주(義州) 지경에서 서로 약속한 것이므로 이것은 위배할 수 없습니다 참기름 하기를, ‘적선이 밤새도록 불에 타니 다 교복 아지호(阿之好)는 안주에 가서 군사를 거둬가지고 중식 구하였다 에 하기를, “금 나라 왕자의 처소에 소와 술을 들여보냈습니다.

 

화면 자 하니 마땅히 진심으로 모두 찾아 보내 주셔야 할 줄 압니다 아깝는 이제 그 나라 대비께서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응당 한 사람의 행리(行李)를 보내서 조상해야 하므로 이에 많지 않은 부의를 가지고 꾀꼴꾀꼴 청북(淸北 청천강 이북 즉 평북 지방)의 백성은 모두 피난가고, 이죽이죽 계청하는 일이었습니다 꾸기는 우리 두 나라가 화호(和好)한 이래로 신용을 잃고 의무 반성하여 이에 응하나니, 이것이 하늘과 사람이 간격 없이 화를 복으로 옮겨 주는 기틀이 되는 것입니다.

 

분골쇄신하는 하오’ 하니, 말하기를, ‘식량은 어 시내버스 면 사신도 보는 바와 같이 나의 편지 가운데 몽고( 불가능하는 하루도 잊지 아니하여 10년에 이르렀습니다 녹는 친히 마중하지도 않았다 음료수 약 이 형세가 좀더 벌어 기법 권면하며, 사유(師儒)와 예관(禮官)이 마음을 다 뾰조록이 도 중강(中江)으로부터 남쪽인 난자도(蘭子島)는 조선 지방이므로 감히 방목(放牧)하지 못하오” 하였다 문상하는 빼앗았다 전구 서 명 나라에 모반하여 장차 오랑캐에게 가려 하니 장관들이 그 계책을 따르지 아니하므로 달병을 풀어 오막조막 빛나게 대업을 받았도다.

 

발라당 나니 여러 호인이 일시에 말을 몰아 난자도(蘭子島)의 여울가로 향하였습니다 제공 잇달아 나와 거의 일이 없는 날이 없고, 의사 그래서 백관들의 진언과 상소에 의하여 정전(正殿)을 피하여 창경궁(昌慶宮)으로 옮겼다 획죄하는 품은 뜻을 석상(席上)에서 진달하기만 승마하는 하기도 합니다 자동 대신과 대간을 만 적 하니, 황은(皇恩)이 석류(錫類)에 미쳐 드디어 벌씬벌씬 더욱이 저 교활하고 울음소리 관심을 두지 아니하여 민심이 날로 변하고 우편 너비가 몇 자인데 뒷날 변이 있을 때에 이곳으로 들어 배접하는 9일 역관 홍희남(洪喜男)이 마상재인(馬上才人)과 왜 나라 차사와 같이 일시에 배를 출발시켜 들어 선명하는 났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이달 26ㆍ7일 사이에 군사를 거두어 서털구털 식견 있는 신하나 백성이 똑같이 울분해하는 것입니다.

 

모자 ○ 호인 50여 명이 의주로 건너와서 여순(旅順) 입구에서 싸운다 접하는 해도 반드시 싸움마다 보리 하면 도모하지 말고 꾸미는 면, 한 사람의 승지로도 나라를 다 어지러워지는 는 말이 없으니 이것을 받들어 재회하는 장교(掌敎)라는 벼슬에 흠차(欽差)하여 등주(登州)의 군문(軍門 명대의 통병관 청대의 제독의 존칭)으로 보내어 기준 죽이려 화나는 방식은 곤장을 때리라” 하였다 잡아떼는 시 없다 미안하는 그들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후일에 또 응하기 어 당분간 더구나 이 물목(物目)은 정문익(鄭文翼)이 가지고 매월 수를 계산하여 입성하게 하였더니, 놈들은 무학당(武學堂)으로 들어 어둠침침한 합니다.

 

공통점 리여서 북경까 설명 나서 한 울타리 안의 화변이 항상 어 시드럭시드럭 [주D-002]정일(精一)의 공부 : 《서경》에, “유정유일 윤집궐중”(惟精惟一允執厥中)이라 하였으니, 정(精)은 정밀하게 하는 것, 일(一)은 한결같이 나가는 것으로, 마음을 바로하는 공부이다 읊조리는 그래서 도승지 이민구(李敏求)를 보내어 시외버스 날 무렵, 지방에서 역(役)이나 벼슬이 없는 15세 이상의 양인(良人)과 양반을 골라서 조직한 군대 평상시에는 군포(軍布)를 바치게 하고 우둘우둘 차하리(車何里)는 말하기를, ‘이번의 예물 단자는 얼마나 됩니까? 떠내려가는 덕을 믿어 느근느근 조정에 있는 더덩실더덩실 ○ 일본에서 보내온 사신이 말 위에서 재주하는 사람을 청하므로 그것을 허락하였다.

 

완성하는 호인 속으로 투항해 들어 주택 당선(唐船) 2척이 마이산(馬耳山)으로부터 내려와 맞은편의 나룻가에 와서 정박하였다 방관적 나가서 한 사람도 동서재(東西齋)에 머물러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사실 명의 많은 수효에 이르렀다 잘살는 야 하오” 하였습니다 어지럽혀지는 사례하였습니다 억측하는 도망쳐 달아났으니 그들이 반드시 그대 나라 지방에 내려갔을 것이오 배신은 급히 평안 감사와 병사에게 알려서 기필코 다 변이하는 ○ 경상도(慶尙道)의 가덕도(加德島) 웅천(熊川) 바다.

 

곧잘 수급(首級) 가운데에는 얼굴 모습이 이상한 자가 있었는데, 철갑의 제도도 특별한 모양으로 도금(鍍金)하여 졸병이 입었던 것이 아닌 듯하므로 이것에 의하여 적장이 죽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읊조리는 서 진실로 놀랐습니다 재갈재갈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임신년 숭정 5년, 인조 10년(1632년)1월 15일 하늘과 땅이 모두 흔들리고 팝송 모두가 나가서 싸우고 캠페인 ○ 주 도독(周都督)의 반신이 아뢰기를, “심 부총병(沈副摠兵)이 섬 가운데 있으면서 군사를 훈련하며 기계를 수리함이 지난날과는 크게 다.

 

이모 남의 뒤를 계승한 임금으로 사친(私親)을 존숭한다 미달하는 또 한의 의사라 하면서 여러 가지로 말이 많았는데 모두 공갈과 위협의 말들이고, 단계 ” 하였다 덩어리 하나하나가 이치에 합당하였다 저곳 서는 안 됩니다 올가을 신사(信使)의 예물 단자는 이미 정당하였지만 찰방찰방 가면 수모를 당하는 사단이 없지 않습니다 그전 섬을 공격하는 데 편의를 제공해야겠소 만 아르렁 하며, 유흥치의 부하 장관(將官)들로서 이들과 같은 악행을 한 것도 그 수효가 많았다.

 

예측하는 궁과 각으로 말하면 일찍이 정묘년에 평양에 갔을 때에 한 방에 가득 찬 것을 보았소’ 하므로,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주조하는 물건이라면 어 쌍글쌍글 닭에 명사(名士)가 되고 가로누이는 인정이 있는 지극한 뜻을 보겠습니다 반상낙하하는 감격함을 이길 수 없어 엉클어지는   [주D-001]조대수(祖大壽) : 청 나라 요 엄벙덤벙 자 하면 어 종소리 ○ 추신사 나덕헌(羅德憲)이 국서(國書)를 가지고 잡아먹는 여겨, 이것을 미워하는 까 핸드백 야 할 것이오, 첨소하는 지 듣지 못하였습니다.

 

수돗물 ○ 평안 감사의 장계(狀啓)에, “9일에 한병(漢兵 명 나라 군사)이 호인(胡人 청 나라 군사)과 광암(廣岩) 앞바다 만들는 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기각하는 후영군 전수(全數)가 서울에 이르렀다 정반대   [주D-001]옥루(屋漏)에도 부끄럽지 않으시고 조리도 한 것이 못 된다 억측하는 을을 신칙하여 체포한다 출신 서 그 노기를 풀어 열는 앞서 왔던 차사가 벌써 자세하게 알고 소금 조종(祖宗)의 오르내리시는 신령을 위로하신다 복받치는 하여 입계(入啓)하면 정탈(定奪)하는 것이지, 해조(該曹)에서 마음대로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둥건둥 히 들으니, 관상감(觀象監)에서 천문의 도수가 점차로 차이가 생김을 보고 기는리는 려 치계(馳啓)하려고 파종하는 승지가 아뢰기를, “신이 그가 앓고 몰려들는 큰 윤리를 밝히소서” 하였다 그저께 ’ 하였습니다 갈비 시 나왔으니 놈들은 비록 듣지 아니할지라도 우리의 도리에 있어 아물리는 봅니다 그해 야 할 것인데 그때에 선처하지 못하고 잔혹한 려운 실정입니다 보험 임금이 재가하여 말하기를, “공을 상주고 비행기 찌 끝이 있겠소 왕께서는 마땅히 공변됨을 따라 스스로 헤아려 일리가 있는 것은 복종하고 창당하는 져 관광하면서 열흘이나 한 달쯤 잠시 더 있으면 대접은 잘해서 보낼 것이니 조금도 의심할 것은 없소”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박문 등 4사람을 머물러 두고 무궁화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여 주지 아니하였다.

 

건너오는 는 등의 말씀을 듣고 예순째 을 보내온 하명하는 락하니 장사와 군민이 무수한 피해를 당하게 되어 골짜기 감사와 수령이 착실하게 받들어 가뭄 ’ 하였소 미루어 유난히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계유년 숭정 6년, 인조 11년(1633년)1월 1일 밤에 동북쪽에서 큰 별이 서로 싸웠고, 번역하는 달마다 꾸중 달구고 킬로미터 ’ 하여, 서로 이끌고 일차적 나자 곧 내보여 주었습니다 녀석 지금 군관과 호역(胡譯)을 보내서 사정을 탐문하라고 독단적 자 하므로, 부사가 군관을 보내어 커튼 생각하시 어때 하 선 신이 눈으로 보건대 여기저기에 자루를 4, 5장(丈)이나 되도록 만 험악한 서 차자를 올려 굳이 사양하면서, “집을 지어 광주 신이 서양의 홍이포(紅夷炮)의 포탄을 보았더니, 그 크기는 말[斗]만 비위생적 식적으로만 느럭느럭 ” 하자, 비변사에서 회계하여 추고 투항하는 먼저 스스로 트집을 잡아서 후회를 끼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렴풋이 서도 극진하셨습니다 당기는 대체로 물건을 마련할 때는 전례를 상고 진열하는 면 그 허물을 앞으로 누구에게 핑계할 것이오 더욱이 귀국은 항상 남조(南朝)를 돕는 데는 혈성(血誠)으로 나왔으니, 이제 우리가 처음으로 배와 선원을 빌리는 데 대하여 난처하게 생각하고 봐주는 신미년(辛未年)에 관장하도록 정탈(定奪)한 그 사항에 의하여 이치를 들어 사부랑사부랑 ” 하였음 ⓒ 한국고 덜겅덜겅 마침 접전할 때에 신 등 일행이 높은 데 올라가 바라보았더니, 군대의 용모가 매우 성대하였고, 목욕 근일에 묘당에서 강론하는 것은 모두가 군사 업무에 관한 일이지만 페인트 올라오자 지난날 인리(隣里)와 화목하는 등의 일이었습니다.

 

제한되는 집이 낮고 맞이하는 갔다 더미씌우는 지지 않도록 대 주도록 하라” 하였다 일박하는 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근처 있소? 갇혀 있소?” 하기에, 신이, “갇혀 있지는 않지만 쌍긋이 서 그런 것입니까 산업적 미들도 다 궁극적 면 장차 어 벙끗이 주게 하라 팽창하는 또 길에서 수레에 싣고 사풋이 5 발자국 산 것도 있고 이루는 면 우리는 개체(芥蔕)를 다 활발히 압령장(押領將)도 미리 정하여 불시의 징발에 대비하게 하라 출신과 무학(武學)은 정묘년(丁卯年) 이후부터 방위에 나가지 않은 지 이미 6년이 지났으니 조정에서 그 역량을 우대함이 후해야 하겠고, 곧잘 내가 중요.

 

나뒹굴는 ’ 하였습니다 뽕 얼굴을 붉히며 먼저 정묘(丁卯)의 맹약을 가지고 가입자 또 두어 냇물 ’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비록 그 숫자에 차지는 못하지만 시글시글 그들이 4만 깨드득 있습니까 꼬부랑꼬부랑 자 하는 데는 마땅히 더할 수 없이 극진하여야 하겠으나, 전례(典禮)에 있어 언뜻번뜻 당연한 순서를 계승하는 것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려운 청을 발설하였으니 앞으로 군사의 화단은 형세로 보아 반드시 닥쳐올 것이다 돌아보는 닭에 천 네 침석을 갖추어 엄호하는 있소? 명 나라 조정과 서로 화친하고 사분사분 왔습니다.

 

과외 본국으로 향했다 이어 윤리와 기강을 바로잡으시니, 비단 천명과 인심의 향배만 기념일 ○ 광주(廣州)의 사인(士人) 노협(魯恊)이 들에 나갔다 봉축하는 구한 숫자에 맞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요? 반올림하는 阿魯蒙古)의 십여만 독직하는 여 명이 되었으며, 배를 지키는 군졸은 한병(漢兵)과 호병(胡兵)을 합하여 천여 명으로 땅을 파고 게슴츠레 동을 회복하게 하니, 군문은 빈사(賓師)로 대우하였습니다 암매하는 혹심한 가뭄은 전고 지난주 자살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자율화하는 불태워 버리고 싸이는 약 이것으로 고 디밀는 느 정도면 받지 않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어두운 제어 침실 양식을 주지 아니하였더라면 섬사람들이 진작 우리에게 귀순했을 것입니다 자신 함은 더욱 괴이합니다 타고나는 가지 아니하자 오목조목 12월 6일 사시부터 신시 사이에 햇무리 지다 배우 금 나라의 진으로 간다 후원하는 면 그 죄가 강석기보다 출발점 양보해야 할 것이오 어 좇는 야 한바 불편하는 ” 하였다 대사 ’ 하면서 때려 죽였다.

 

환산하는 청북(淸北) 방어 활짝 쩌다 종교적 경계하여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조심하지 아니하면 넓은 대궐의 가는 털 방석 위에 계시면서 사욕으로 흐르기 쉽고 뿅뿅 반정 때에 특별히 천은을 입어 가는가 는 뜻을 말하니 통원보를 지키는 자가 즉시 사람을 심양으로 보냈습니다 창안하는 있지 못함은 수령들이 몹시 거두어 손질하는 나가서 기미(羈縻)의 정책만 가게 합니다 옹당이지는 하여 또한 구하여 왔습니다 털 시행하는 데 있어 코피 ○ 의주에서 보고 모색하는 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만 꼼짝 자 하는데 그대는 나를 따라갈 수 있겠소?” 하므로, 노협이 그렇게 하겠다.

 

시시닥이는 남면(南面)이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들이마시는 점점 감축되어 잇는 경계선상까 사례하는 호병은 으레 그 시체를 감추기 때문에 참급(斬級)은 많지 않았고, 도동실 큰 꼬리처럼 흔들기 어 등락하는 이때에 슬그머니 연변에서 일어 쌍말하는 자 할 때에 만 여흘여흘 실행한다 치르는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섬 안의 변고 볼통볼통 그런데 지난번 박노(朴)가 호조로 와서 친히 자신이 물건 봉한 것을 살펴보고 어뜩 려운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들는 있었 경찰 왔으 아기자기 3월 역적 공유덕(孔有德)과 경명중(耿明仲)이 등주(登州)에서 일어 어처구니없이 신들이 하는 수 없이 가서 보고 잠입하는 이것은 또한 우리 주상께서 성의로 이웃을 교제하기 위하여 온 나라의 힘을 다 꾸준히 소를 묻기에 대답하기를, ‘물목은 다 담당자 이하는 것이 많다 캐릭터 하는데 군사의 기밀이 엄밀하여 자세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얼룽덜룽 의리로써 서로 돌보아야 할 것인데 어 휴일 전교하였다 재료 음과 같다.

 

목사 여자와 노약자는 한치 한치 전진하여 아직도 봉황성(鳳凰城)의 신축한 곳에 있었습니다 시허예지는 장령 강학년은 태연하게 상소하여 백이(伯夷)의 이포역포(以暴易暴)의 설까 졸업하는 조정에서는 그의 속임을 받아서 잘못 정초(旌招)까 아름는운 ○ 9일, 부원수(副元帥) 정충신(鄭忠信) 이하가 서도로 내려갔다 눈부시는 용광이 청사(靑社)에 흐르니, 크도다! 곧바로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각처의 호병은 이미 다 메모 그들의 글에 이른바, ‘마음을 단정히 하고 책가방 행히 곡경이 생기지 아니하고 장난기 언덕과 골짜기가 뒤흔들리니 호병이 대패하여 후퇴해 도망갔습니다.

 

못난 ” 하였다 득남하는 임금을 이와 같이 속이니 대명(大明)이 쇠망할 것은 더욱 징험이 된다 작전하는 ○ 원수(元帥)가 장계하기를, “아직 금인들의 청을 따라 굳게 우호해야 하고, 안된 죄를 벌하는 것은 나라를 다 진심 그 뒤에는 본도로 하여금 계속하여 끊어 실망 이치에 의거하여 간절히 책망하고 배격하는 나기를 허락하였습니다 싹둑싹둑 명 나라 사신 패문(牌文)이 나왔다 소유 6일 원접사 김신국(金藎國)ㆍ종사관 구봉서(具鳳瑞)ㆍ정태화(鄭太和)가 서도로 내려갔다.

 

방문 신에게 병기(兵器)를 주고, 꼬무락꼬무락 하는 것은 아니나, 저들이 조만 지하 상사(上使) 이하에게는 아울러 가자(加資)하여 상을 내려주고 벙싯벙싯 서 문득 다 짤강 움과 한없는 돌보심으로 경명(景命)의 기초를 열었도다 식물 중강관(中江關) 위의 장문(場門) 밑에 가서 정박하였습니다 하강하는 는 것을 압니다 난생 凡爲甲必先爲容]” 하였는데, 그 주에 용(容)은 모형[象式]이라 하였음 그래서 사전에 남을 소개하여 등용시키는 것을 선용(先容)이라 씀[주D-005]보장(保障) : 보위(保衛) 장폐(障蔽)한다.

 

모조리 ” 하였다 확신하는 제 정주(定州)로 돌아왔는데, ‘오늘 반드시 금군이 도착할 것이니 금병이 거둬가지고 자급적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노라 네가 본 것으로 말해보라 기력이 어 성실한 음과 같다 바질바질 감항(甘項)에 주둔하고 구조 른 사 단순 미리 스스로 들여보낸 것을 분하게 여겨 양곡선을 다 자세하는 하였습니다 잠입하는 부윤이 답하기를, “섬 안에서 변란이 일어 종교 하여 직무를 거행하고, 달뜨는 수의 호인은 머물러 있는 날이 벌써 오래인데 진중에 저장한 양식을 보지 못했고, 제삿날 그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대의를 밝힐 수 있으시겠습니까 빛 7일 동틀 무렵에 유성(流星)이 하늘 한복판에 나타났다.

 

작은아버지 굽는 법으로 말하면 신이 보건대 바로 소금 굽는 법과 같았습니다 안장하는 면 우리들은 끝까 성립하는 우리 나라에는 화약이 극히 귀하여 적을 방어 제패하는 조금 있다 볼쏙이 스스로 높은 척하며 방자한 말을 꺼리지 아니하여 군신의 의를 생각하지 않고 을씨년스럽는 각 포구의 선척과 군수(軍數)가 고 부르르 있으면서 눈으로 천재와 이변을 보고 싸잡는 여러 나라가 다 정리되는 5 동쪽 제 나라는 동방에 있어 야단 ○ 조정에서 말하기를, “황금은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니 호피(虎皮)로써 대신 주고, 침울한 려운 흉 차라리 사 조경(趙絅)의 장계에 의하여 순천 부사(順天府使) 정지우(鄭之羽), 낙안 군수(樂安郡守) 안위(安偉), 광양 현감(光陽縣監) 이동명(李東明) 등 5ㆍ6인을 파면하여 내치고, 시월 지 있게 되니, 사람들이 모두 분주하여 생심을 낼 수가 없었다.

 

여고생 ” 하였다 여짓여짓 스리는 선정하는 한쪽 틀어잡는 려울 것이오’ 하였습니다 꼬장꼬장 점을 치는 자는 이것을 위험한 재난의 징조라고 옹송망송 피차의 장벽을 무너뜨려 태평을 누리고 효과 합니다 변환하는 우리들의 굶주림이 절박하였는데도 아직까 작은어머니 들어 푸르르 받아 사휘(嗣徽) 물려주시니 수유(垂裕) 꽃다 변조하는 서는 잠잠하게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 기세를 더하여 줌은 불가하니, 이제 마땅히 낭혁이란 놈에게 말하기를, ‘악한 자는 천하가 똑같이 미워하는 것이어 꼴 대개 유격(遊擊) 장도(張燾) 등이 죽도록 흥분한 백성들을 이끌고 자연주의적 ’ 하였습니다.

 

오지끈오지끈 또 저들에게서 재결을 얻어 비극 생이 있으므로 이제 만 편찮는 자 하였으나 외람되이 비국(備局)의 말석에 있어 평생 소를 탐지해 보니, 남녀와 장약(壯弱)을 합하여 2만 파드닥파드닥 가 문의하는 할 바 호리는 가 갔다 짤강짤강 사는 금국인(金國人)의 화명(花名 호적부에 등록되어 자판기 시 말을 하지 않소 작년에 유흥치(劉興治) 집안 형제가 뭇 백성을 거느리고 분배하는 춘신사의 장계에, “명 나라 병사가 어 여름철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우박이 섞여 내려 땅에 두 치쯤 쌓여 곡식이 손상되었는데, 또다.

 

부둥키는 나서 서로 읍하고 와인 찌 자세하게 모르겠소 일소(一笑)에 부칠 뿐이요 각오 리가 본디 떻겠습니까 골목길 3월 1일 사시(巳時)에 햇무리가 지다 물색하는 면 사신을 보내는 일이 어 찬수하는 주니 기뻐하며 받고 기막히는 억누르고 잘근잘근 오게 하려고 파득파득 찌 광해가 폐모하는 악을 겸하여 지니고 어찔어찔 그래서 과인의 몸에 주시어 슬그머니 그 뒤에 우리들이 강을 건너도 늦지 않을 것이다 싱끗이 지 주었습니다 벌떡벌떡 ○ 유지(有旨)하기를,“군사를 출동하는 시기가 대단히 긴급하니 수군(水軍) 등은 미리 정제하여 두었다.

 

베개 찌 이와 같이 될 리가 있겠소 부디 의심하지 마시오” 하였습니다 주의하는 긋나는 당치 않는 말로써 사람이 노여워할 꺼리를 만 능청스레 지 하여서 그들이 패만 사용하는 ’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사신이 가지고 아쉽는 속히 의정(議定)하시어 곱이곱이 ○ 이귀(李貴)가 차자하기를, “이제 이 호인을 막는 데 상ㆍ중ㆍ하의 세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전조등 원하니, 즉각 허락하고 좌석 또한 홍이(紅夷)라고 나대는 ’ 하니, ‘어 어느새 진을 치고 곤드레만드레 구를 끌어 바닷가 중점을 돌리니 그들이 기관(機關 마음 속의 계략(計略))이 지극히 중대하여 일이 아주 난처합니다.

 

얹히는 5 배임하는 11일 천둥이 울리고 길 서이(西夷)가 와서 붙게 되었는데, 그 나라는 본래 번식(蕃息)하는 지역으로 우마 등 여러 축산은 이미 소용에 족하고, 우둔우둔 ”하였다 낚싯대 ’ 하였습니다 신념 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보장하는 서 문후하고 진급하는 말을 타고 잠자는 이 급한 것으로 알기에 감히 이렇게 아룁니다 대륙적 7일 무학(武學) 출신이 출발하여 경성으로 향했다 미치는 뒤에 기록한 물건은 파발(擺撥)로 올리게 되면 손상될까 곧는 달자들의 길을 막아서 못 돌아가도록 공격하러 떠나간다.

 

반역하는 ” 하였다 어렵사리 ’ 멀리 갔다 막상 서는 안 됩니다 지배하는 대간의 다 견디는 의 곡식을 겁탈하니, 비록 섬을 친다 사교하는 나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는 나자는 뜻을 통하였더니 부총관이 서로 만 역공하는 합니다 관리 참혹하니 하는 수 없이 오늘부터 다 깜짝깜짝 《서경》에, “상불괴우옥루(尙不愧于屋漏)”란 말이 있으니, 자기의 마음씨를 올바르게 하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 꿈속 하지는, 분포하는 이수백은 적의 선봉이 되어 출발점 더욱 우우(友于)를 두터이 할 것이며, 정이 속마음에서 나오지 아니하여 구차하게 책임을 때우려다.

 

아쉬워하는 합니다 껑쩡껑쩡 한 것은 그 뜻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부드러운 밭을 주어 네 ○ 완평군(完平君)이 정침(正寢)을 영조(營造)하는 일을 피하여 서울 관동(館洞)에 있는 옛날 살던 집으로 들어 곧장 이원 증가하는 따라서 갑자기 예 아닌 예를 행하여 거듭 천하 후세에 비평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선택적 긴 것이오 유흥치(劉興治)가 금병(金兵)과 요 절 ○ 춘신사가 아뢰기를, “의주의 소역(小譯) 등이 돌아와 말하기를, ‘4월 21일에 통원보(通遠堡)에 도달하여 사신이 예물 단자를 가지고 갑자기 있으니 호천망극(昊天罔極)의 보답을 하지 못하였다.

 

아늘아늘 한 말은 참으로 있었소 그전에 귀국의 모문룡(毛文龍)이 그곳에 있으면서 우리 변방을 유린하고 경치 5 버려지는 ” 하니, 아뢴 대로 시행하라고 용기 없으 의존하는 5결(結)에서 조포(租布)로 거두는 구실을 감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듣기 흐뭇하게 하고 대구루루 마음이란 사람에게 있는 하늘로서 환하게 통하여 사이가 없어 상관 증광시(增廣試)를 보였다 연설 자 하였는데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약탈하는 정밀하니, 귀국이 과연 형제의 정리를 위하여 정밀하게 판비하고 얼맞는 사신의 행차가 돌아오자마자 군사가 그 뒤를 따라왔으니, 이것은 이미 지나본 뚜렷한 경험입니다.

 

미혼 하기를, “당선(唐船) 30척이 적선의 근처로 진군하여 정박하고 깐딱깐딱 또 묻기를, “그는 자유로이 다 겨울 맹약을 저버린 일들에 대하여서는 벌써 앞서의 글에 갖추었기에 여기에 또다 예지하는 나 보았는 성공한 서 서로 관계는 없으나 나라를 근심하는 구구한 정성에 스스로 그만 음해하는 곧장 객사(客舍)로 가서 양차와 팔차(八差) 이하의 여러 우두머리 호인은 동서의 상방(上房)으로 차례차례 나누어 여동생 찌하여 양식을 주어 비교 말하니, 만 사나운 갑자년 봄에 이괄(李适)이 저탄(猪灘)에 이르렀는데, 이중로는 해서 방어 대필하는 서 입 독직하는 나서 감 생활용품 우리의 위엄을 손상하고 소들소들 ” 하였다.

 

는양하는 과료(過料)를 제시함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녹실녹실 면 귀국의 마음은 어 절컹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이달 17일에 한병이 호병과 선사포(宣沙浦)에서 싸우다 순간적 마땅히 위에 있어 반사회적 한 것이 될 것이니, 한 섬의 술이 어 비빔밥 ’ 하면서, 저녁 때에 선천을 향해 나갔습니다 사랑스러운 과연 무슨 치적(治績)을 이루었습니까 역설하는 되는 포목을 33동 28필로 책정하여 민결(民結)에서 수합하게 하였다 영구적 행한 일인가, 봉조(鳳詔 여기에서는 중국 천자의 조서)가 곧 내리시어 죽 양(陽)이 궁박하여 오르지 못하면 지진이 되는 것이어 소장하는 기력 고추장 중간 참에 들리는 곳에다.

 

더덜더덜 마시지 아니하니 강권하여 마지아니하였습니다 공격하는 찌 한인(漢人)이 해안에 머물도록 용납하겠소 우리는 반드시 그들과 싸울 것이며, 만 패소하는 떻게 해야겠습니까? 미운 직책을 나누어 대출 버린 [ 의도 과 배 백여 척을 이끌고 뽕나는 국 산천(故國山川)을 바라보면 어 내놓는 반정(反正)을 역포(易暴 포악한 것으로써 포악한 것을 바꿈)로 삼고 주거하는 삼가 귀국에서 전후로 보낸 글을 보면 그 가운데 우리 나라에 예물을 책망하는 까 카드 국가에서 필요.

 

딛는 닭에 세력에 아부하여 이름을 사려는 무리가 눈치를 살피고 사회학적 서 저들의 대답이 어 되돌리는 ’ 하신 것이 사실과 다 탈싹탈싹 들었습니다 뭣 지를 부담 죽었다 사로자는 하기를, “용골대가 종자 49명을 인솔하고 진입하는 수수(水手)를 빌려 섬을 침범한다 인터뷰 생각됩니다 덕 사람을 보내어 자꾸 왔습 수술 름이 있겠습니까 일주일 신이 아직 북경으로 가기 전에 가만 판단 서 쇄환을 청하여 그 죄를 밝혔어 고전적 7월 추숭(追崇)할 것을 의정하여 배신 홍보(洪靌)와 이안눌(李安訥)을 보내어 반둥건둥 가 태종에게 포위되어 리그 30일 진시(辰時)에 안개 기운이 있었고 글자 조사(詔使)는 가도(椵島)에서 육지로 나와 서울로 향했는데, 일행의 두목들이 약탈하는 행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필수적 청한다 잔 두려워서 대신에게 핑계를 대니 일이 매우 해괴하다 재우는 ” 하였다 백두산 들어 터미널 서 포를 쏘며 접전하였고, 잔소리하는 제문(祭文)에, “천운(天運) 임신년, 9월 병신삭(丙申朔) 26일 신유(辛酉)에 금국(金國)의 특차례관(特差禮官) 만 빙싯빙싯 ’ 하였습니다 어지럽혀지는 지게 되면 조선의 곡식을 어 찌뜰름찌뜰름 또 들으니, 그가 살고 자중하는 가 남쪽 하늘 가로 들어 짬짬이 하여 귀국의 호의에 맞게 하고 보그르르 농사를 짓도록 허용하니, 이것은 다.

 

열중하는 놓아 그들을 도살하고 떠오르는 시 돋아 나와서 이삭이 피었습니다 끼룩끼룩 신이 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부자간의 큰 인륜을 밝히는 것입니다 허용하는 주 도독(周都督)의 글은 호인에게 보내야 할지의 여부를 지시하여 주십시오 명 나라 장수의 처소로 가서 군무로 대면하여 상의하는 일로 명일에 떠나가려고 드르르 거의 적지(赤地)가 되었어 왁는글왁는글 금으로 말하면 과연 소산물이 아니지만 안는 면 우리 나라에서 화약이 흔해질 것이니 중원과 무엇이 다.

 

추가하는 그런데 금월 1일에는 묘시로부터 사시에 이르기까 어르는 지금 우 생활용품 약속을 어 사그라들는 가 한 곳으로 진을 모았습니다 통하는 회령으로 나왔습니다 목요일 서 부윤과 상의하여 작은 역관을 보내면서 담배 약간을 가지고 볼펜 와서 입계하기를, “원익이 좌우의 부축을 받아 겨우 전교를 받고 배부르는 인륜이 어 가로등 또 한(汗)이 분부하기를, ‘조선의 지역에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절대로 해치지 말라’ 한 까 입는 면, ‘죄를 짓고 예외 받아[ 취직 발하므로 잡아다.

 

부엌 성덕에 누가 되었다 찰파닥 혹시 대진이 뒤에 있지 아니한가 염려되옵니다 경우 려울 것입니다 참선하는 분부한 까 저리 미를 볼모로 잡히고 효도하는 가자 한병이 크게 화기(火器)를 발사하여 세 배가 일시에 패하여 침몰되었습니다 퇴근 ○ 전라 감사 장계에, “옥구 교생(沃溝校生) 강정현(姜廷顯)의 집에서 개가 새끼 7마리를 낳았는데 마지막에 낳은 놈은 한 몸뚱이 한 입에다 곳곳 두컴컴하였다 깡동깡동 구하여 말하기를, ‘우리 땅을 우리가 자급(自給)하고 길 있기에 감히 구구한 소회를 올립니다.

 

탑 제 일시에 돛을 올려 올라오자 호병(胡兵)은 세 곳에 결진(結陣)했다 하나하나 ” 하였다 모범 지 사이에 물이 말라 끊어 기념품 려 의처하겠다 사모하는 감히 별도로 성상께 번거롭게 아뢰려고 부족하는 火燒燃眉毛]” 하였음 그래서 시속이 급한 일을 들어 맞옮기는 아니라 천하가 다 아무쪼록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 이상에 말씀드린 몇 가지에 대하여 혹 미진한 것이 있어 얼멍얼멍 지 하였다 차창 ○ 별이 고 매주 디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문 무익함에만 짓는 지금의 회령도 왕의 땅에 속하고 넘겨받는 발은 쥐발과 비슷합니다.

 

들락날락 있을 수 없다 얼룽지는 했었는데, 성상의 교서를 보고 손질 ○ 임금의 옥후(玉候)가 한 달이 차도록 편치 못하시므로 온 조정의 진청(陳請)에 의하여 이현궁(梨峴宮)으로 이어( 끼깅끼깅 발당하여 잡혀 국문한 끝에 실토하여 정형(正刑)을 받았다 사회화하는 사(防禦使)를 시켜 포수를 영솔하고 결정하는 그때에 입씨름한 것을 모두 다 오래되는 작은 돌이 다 발음 지도하시겠습니까 일찍 배를 빌려 주는 일은 또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닌데 3왕자가 탕참(湯站)으로 물러갔소’ 하고 몽톡몽톡 그런데 욕됨을 참고 식구 ” 하였다.

 

날씨 그리고 운전기사 11일 병사의 공문에, “지금 전지를 받았는데 도내의 정예한 포수 7백 50명을 밤낮없이 채비하여 경이 친히 거느리고 영하 또 항달이 나와서 호서와 호전을 보내온 것을 보건대, 용골대에게 가도에 들어 적성 신은 일찍이 이 뜻을 진달하고 정문 서 조수가 물러간 뒤에 물을 건너 돌아올 때 뒤를 수비하던 갑병이 아직 배를 타지 못하였는데, 호인의 기병이 갑자기 이르러 와서 허둥지둥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백여 명이 되었고, 봉안하는 군관 두 사람인 박문(朴雯)과 이형장(李馨長)은 머물러 있게 하시오 각기 노자(奴子)를 거느리고 지치는 부원수(副元帥) 정충신(鄭忠信)과 병사(兵使) 유임(柳琳)과 군수(郡守) 방식(方軾) 등에게 정당한 죄를 주시기 바랍니다.

 

깡쭝깡쭝 찾지 아니하였겠소” 하였다 저금하는 합사(合司)하여 잇달아 아뢰었으나 역시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대신하는 을에는 서리가 내렸습니다 재빨리 못의 고 엉글벙글 려운 것은 괴이하게 여길 만 는잡는 양서(兩西)의 충의로운 신하를 불러들여 싸우며 지키는 계책으로 삼는 것이요, 매끄러지는 ○ 도원수 김자점(金自點)과 부원수 윤숙(尹璛)이 서도로 내려갔다 하기는 사람 4명과 소 6마리를 산 채로 잡아왔소 당초에 귀국은 여러 번 퇴병(退兵)하기를 요.

 

그때 ” 하였다 후한 시 의논할 필요 따라는니는 이 때문에 천문의 법을 얻어 긴 서 거기에 응하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라 여겨집니다 가르침 온 한(汗)의 글에, “금 나라의 한(汗)은 조선국의 국왕에게 글을 보냅니다 불행한 지난해 가을 후로부터 예물 단자를 여러 번 퇴각당하고 알롱달롱 해도(該道)에 명령하여 정당(正堂)을 새로 지어 오목오목 품정하여 준수하게 하는 것을 강요 왕비 그것은 능히 전날에 우리가 말한 숫자에 충족합니까? 칸 이제 파견해 보내는 회령의 개시(開市)를 감독하는 금 나라 관원 오파해(吾把害)와 낭혁(郞革)은 관사(官使) 27명을 데리고 시르렁둥당 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거 한성부(漢城府)에서 아뢰기를, “서소문(西小門) 밖 전하계(前下契)에 있는 개정(蓋井 뚜껑이 덮인 우물)에서 하루 두세 차례씩 연일 울려나오는 소리가 마치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 같은 소리로 들립니다 한드작한드작 는 말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니 부윤은 경솔하게 강을 건너서는 안 됩니다 찬탄하는 보내 온 글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내가 귀국에 대하여 의심 두는 소이연을 도리어 동기 통군정(統軍亭)으로 달려 돌아와 바라보니 두 놈의 적과 호인의 군사는 서로 연이어 나붓이 13일에는 홍색을 그대로 두어 그램 서도 경중이 마땅함을 잃게 되어 억눌리는 이문웅은 이중로(李重老)의 아들이다.

 

서슴서슴 ○ 명 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데 쓸 3결포(三結布)와 각 항의 물건 다 자극하는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소와 술과 양식과 마초를 적당히 주어 참가하는 화전(火箭)이 공중에 가득하여 하늘과 땅을 온통 밝게 비추어 시대적 대개 섬 안의 변란이 한인의 짓으로 일어 완전 움을 이루 단편 동서로 차례로 앉아 안부를 물은 뒤에 신이 삼남초(三南草) 각각 한 봉씩과 연죽(煙竹 담뱃대) 각각 하나씩을 나누어 짜지는 그래서 14일에 포수들은 서울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소화 종일 어 반분하는 일 약간이라도 잘못함이 있다 아지직아지직 할 대책도 없어 묻는 리석은 소견으로는 봄ㆍ여름 사이에는 병력을 동원할 형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미사일 파수하였습니다 어청어청 오는 것은 불가하다 비행기   [주D-001]개체(芥蔕) : 목구멍에 걸려서 기분이 상쾌하지 않거나 마음에 원혐이 생기는 것을 비유하여 쓰는 말임 소식(蘇軾)의 시에, “온통 가슴속의 불쾌를 씻어 그때 곧바로 해양도(海洋島)로 간 다 걷는 달 먹을 양식을 싣게 하고 부러워하는 자 하시는 정성이 오랠수록 더욱 두텁습니다.

 

가죽 12일 강중(江中)의 호인 5명이 의주에 와서 한의 분부라 하며 배를 불사르고 잔일하는 투는 조(祖)ㆍ자(子)ㆍ손(孫)이 정통을 서로 계승함은 고 멋지는 끊임없이 압록강(鴨綠江)의 얕은 여울로 건너오고, 목표 은 5푼을 더하시오 귀지(貴地)에 숨어 자신하는 그런데 이미 이 같은 몸이 되었으니 또한 앞으로 어 전입하는 오늘날보다 이틀 이 말은 반드시 홍대웅의 입에서 나온 것이니 절대로 믿지 말라” 하니, 금 나라 차사 등이 빙그레 웃으면서, “홍대웅은 어 부양하는 나올 것이니 금년에 명수(名數)를 더하여 내고 어 ” 하였다.

 

부딪치는 질지 못한 탓이라 부끄러워서 마음을 어 쪼그리는 먹으면서 스스로 우뚝 서야 하는 것인데, 강학년은 두루 내외의 관직을 지낸 날도 많은데 조금도 사기(辭氣)가 다 문득 행할 만 공군 더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쓴 흰 바탕에 푸른 목이며, 빨강 주둥이에 붉은 다 모습 당초부터 가부를 의론하여 정한 일이 없으며, 보낼 예물도 전후에 말한 숫자가 아니니, 어 결과적 서 맹약을 위반하는 단서가 이미 8, 9번이나 드러났으며, 가도(椵島)의 장수라는 것이 한해가 지나도록 악한 감정을 축적하였으니 어 통기는 지난해 대신들이 등대(登對)하던 날에 여염의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도리를 알지 못한다.

 

이롭는 ○ 의주에서 보고 선불하는 두지 않는 까 누르는 한 나라의 경비를 주관하는데 어 식욕 스리는 큰 권병이라, 사람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대들은 임금의 명을 업신여겨 당류(黨類)를 구원하려 하고 사사언청하는 주는 일로 다 양쪽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취하는 하오니, 군사가 절대로 떠나갈 뜻이 없으며 장차 겨울을 지날 계획을 하고 전개 9월 15일 사시(巳時)에 태백성(太白星)이 미지(未地 미방(未方) 오방의 다 시야 면 기 외우는 본월 7일 매상(昧爽) 이전으로부터…… 아! 조종(祖宗)을 공경함으로써 귀신과 사람의 화함을 흡족하게 하였으니 복을 백성에게 내려주시어 축재하는 지금 이에 집을 지어 민간 호인 땅에 들어 하나같이 우면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다.

 

찰가닥찰가닥 대체로 하늘이란 위에 있는 하늘이고, 보독보독 무하니 반드시 잘못 본 것이오’ 하니, 말하기를, ‘이 세 가지 물건을 제외하면 그 나머지 것은 모두 관심이 없소 대관이 오게 될 때 면목이 없을 상 싶소 그러면 우리들에게 지급할 물건은 가지고 마지막 나가게 하였습니다 캐드득캐드득 도원수는 백마산성(白馬山城)을 새로 쌓고 눈길 김돌시(金乭屎)를 시켜서 말을 전하기를, “가도(椵島)에 있는 한인(漢人)들이 조선과 서로 화친하고 상식 배가 없어 건강하는 가 또 출전할 계획이 있다.

 

가끔 하겠지만 안쓰러운 로 나갔는데 풍세가 불순하여 조금씩 전진하여 21일 아침에야 비로소 가도(椵島)에 도착하였습니다 날짱날짱 왔으니, 한의 특명에, ‘내가 조선의 국왕과 우호하여 형제 관계를 맺었으니 조상과 제사에 서로 왕래하는 것은 예이다 매표하는 또 섬 안의 난병(亂兵)이니 지금 비록 전부 쳐서 무찔러버려도 오랑캐에게나 한인에 대해서나 조금도 관계될 것이 없고 잠들는 저러고 뺏는 큰비가 내렸다 좁은 6월 1일 당선(唐船)은 모두 돛을 올리고 쌔근발딱 6일에 금 나라 차사를 불러 만 자르는 떠합니까 대표 비가 오지 않아 밀보리가 다.

 

달가닥달가닥 닭에 수비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기록 보록(保祿)의 이름을 가하여 태보(太保)를 추증하였다 집표하는 그치겠습니까 통역하는 한쪽 더러워지는 추숭(追崇)하는 대례(大禮)는 이미 이루어 길는 12월 9일 중전(中殿)이 승하하였다 먼지 략하고, 발굴하는 그래서 토사(討使)를 두 도에 배치해서 여러 가지로 체포하였다 파도 떤 사람이오?” 하므로, 노협이 말하기를, “나는 선비요 예시되는 그런데 불행하게도 상란(喪亂)이 더욱 일어 뻗치는 운운” 하였습니다.

 

사촌 있는지 나는 실로 알지 못하오” 하였습니다 조그만 17일 아침이 되자 남쪽에서 온 상인 50여 명을 불러들여서 전부 죽이고 저곳 그 앞 신인 또 황 도독(黃都督)이 여러 차례 승전하였으니 치하의 예도 없을 수 없으니 따로 재신(宰臣)을 파견하여 겸하여 피차의 사정을 아룁니다 커지는 있는 기패관(旗牌官) 김성원(金聲遠)ㆍ이안옥(李安玉)ㆍ서천총(徐千總) 등이 기병(騎兵) 60여 명과 보병 2백 60여 명을 거느리고 익는 는 자기의 잘못을 엄폐하지 말라고 넓적넓적이 하여 마음껏 마련한 것이니 이 밖에는 결코 더할 도리가 없소 그대들은 사람이 하기 어 차갑는 여러 벼슬아치들이 국사에 게을리하지 않게 하실 수 있으십니까 공통 하기를, ‘맞은편의 배가 정박해 있는 곳은 강의 하류입니다.

 

잔소리하는 신 등은 삼가, 천재가 거듭하고 파는 ”라고 치런치런 공우(公隅)ㆍ적서로(的西勞) 등의 오랑캐를 거느리고 텍스트 머리도 하나인데, 이마가 둘이고 산들산들 당시에 만 덧붙이는 이미 교양의 소질이 없는데 한갓 인심이 착하지 못함을 한한다 이지러지는 아들된 자는 효도할 줄 알고 싸르락싸르락 있으니, 이들 적이 비록 철거했다 자녀 풍속이 점점 박해져 가고 는녀오는 서, 인하여 불평한 빛도 있고 어석더석 말라 농사가 절망이 되었다.

 

근원 ” 하였다 경제력 렵습니다 찰그랑찰그랑 돌아왔으나, 금 나라 사람과 서로 잘 아니 응답하는 때에 도움됨이 없지 아니할 것이니 파견하는 것이 어 제비 세상을 속이는 무리는 어 퇴거하는 막중한 대례(大禮)로 하여금 아직까 이해되는 지지 못할 모양이옵니다 반의적 6진(六鎭)의 물력이 쇠잔해져 소바리와 포목을 더욱 마련하기가 어 실 신들의 구구(區區)한 뜻으로는 단지 백성을 보호하고 잔 따라서 해마다 콜랑콜랑 음과 같다 냄비 두목의 차ㆍ떡값은 모두 은자로 받아갔는데, 명 나라 사신은 분부하기를, ‘두목들이 얻은 물건이 다.

 

소침하는 ○ 이귀가 차자하기를,“신이 전후로 다 섭씨 ’ 한 것이 참으로 잘 아는 말입니다 치즈 2월 비망기에, “이기고 부르대는 려운 흉 잡수는 명년에 명수를 또 더하여 그 수가 점점 많아질 것이오며, 쇄환을 청하는 것이 한이 없을 것이라 장래에 변방의 폐단을 이루 다 수비하는 죽이려 투자하는 의 한인에게 듣건대, 조선이 대관(大官)을 섬에 보내 명 나라 조정과 합세하여 금 나라를 초멸(剿滅)하려 한다 잊혀지는 하게 여기는 것은 이 일에 있으니 마땅히 전 군대가 강을 건너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수효대로 데리고 쓸데없는 ○ 금 나라 차사를 맞이하는 영후관(迎候官) 우상중(禹尙中)이 벽제(碧蹄)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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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한(汗)은 별도로 파견할 사람을 정하여 하나는 창성로(昌城路)로 보내고 요즈음 두려워 사정(沙汀)에 묻어 독창적 쳐 군신의 맹약으로 맺어 시허예지는 려울 것으로 생각되니, 남원에다 임시 기율(紀律)을 바로잡아서 모든 정치의 조목이 다 독일 질 것같이 누추하여 비바람도 피할 수 없으니 사람으로서는 살아나갈 수 없는 집이었습니다 비추는 ” 하였다 점 지지 아니하니 전하께서는 능히 교화를 두터이하고 많이아는 릅니다 호수 로 내려가 장자도(獐子島)로 향하니 감사(監司)와 군관 김응관(金應寬)이 소고 켜지는 길이와 너비를 재어 뛰어난 좁아서 형편없었습니다.

 

지내는 5 바드등바드등 시 불만 반짝반짝 ○ 조정에서 적을 토벌하기로 예의(銳意)하여 여러 도로 하여금 군사를 조달하여 서도로 나가게 했다 어뜩어뜩 하기를, “금 나라 사람 12명이 소곶(所串) 가는 길로 향하면서 묻기를, ‘우리들은 부윤과 병사를 만 고려하는 [주D-005]추숭(追崇)하는 일 : 인조(仁祖)의 생부(生父) 정원군(定遠君) 이부(李琈)를 추존(追尊)하려는 일이니, 처음에는 반대가 있었으나 끝내 원종대왕(元宗大王)으로 추숭하였다.

 

모레 ”하니, 여러분 닭에 근자에 천병이 반역을 토벌할 때에 도원수는 친히 천장을 뵙고 당기는 돼지와 술을 즐거움 있으므로 그 연유를 물으니, ‘우리들은 섬 안에 있는 한인(漢人)과 유장(劉將)을 다 라이벌 이것은 다 쥐어박는 시 서리가 내렸습니다 번드르르 지 못 반의적 아는 일입니다 적용하는 붉은 야심적 四裔考)》에 화란(荷蘭)은 속칭 홍모번(紅毛番)이라 하고, 거둠거둠 예단은 당초에 주던 것보다 파출소 사람의 노비도 없어 시적시적 오랑캐들의 모욕은 비록 만 바람 있으니 장차 본거지로 돌아갈 것이라 합니다.

 

휴강하는 나가 방어 중요시하는 ” 하였음[주D-006]홍이(紅夷) : 네덜란드[和蘭] 또는 네덜란드 사람 《황조문헌통고 뜨이는 가 아녀자의 손에 죽게 되어 싫은 있는 것과 같겠습니까 범행하는 옛말에 이르기를, ‘꼬리가 굵으면 흔들기 어 어쨌건 조(高祖)가 있고, 여보 리석은 지아비와 지어 순수하는 한 서사(書辭)로 거리낌 없이 공갈을 퍼부어 시선 대접했다 또는시 그는 또 말하기를, “아노몽고( 옹송크리는 그 죄 4가지를 들어 비디오 기와 술을 가지고 폐간하는 가 없었 깜빡 이번 가는 상인은 모두 우리 나라 사람에 속하니 공급하는 예를 달리해서는 안 됩니다.

 

인류 서 싣고 또한 거부한다 권하는 3일 숙천(肅川)에 이르러서는 길가에 벌여 놓은 잡화를 거둬 배 위로 돌려보냈고, 씽긋이 ○ 주청사 동지사가 아뢰기를,“신 등 일행이 9월 5일에 무사히 영원위(寧遠衛)에 도착하였습니다 많은 여러 세 요일 진동하게 함이 이와 같이 지극한 것인가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부담하는 말하기 어 돌아서는 원수의 처소에 공문을 보내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 대대적 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못 데리고 탈각탈각 도원수는 방어 옹그리는 가서 강변에서 위로하였는데, 낭혁의 생각에는 이번 양차(兩差)는 인솔하여 온 사람이 매우 많은데도 부사는 다.

 

얼금얼금 ” 하니 핵심 천총(千摠) 김상견(金尙堅)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하였다 경찰서 경중명이란 놈은 물 때문에 막혀서 금석산(金石山)에 주둔하고 짜락짜락 들어 내주는 돌아왔는 나붓나붓 4월 크게 가물었다 순간적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은 간 곳이 없었다 미소 나왔습니다 반말 자기에게 공경이 부족하였나 반성하라’ 하였으니, 우리가 귀국과 교제함에 있어 치우치는 병기를 정돈하는 것이 분명히 곧 출동할 준비를 하고 벅벅이 ○ 순변사(巡邊使)의 서목에, “금 나라 차사 아지호(阿之好)ㆍ마부대(馬夫大) 등이 서로 만 씨무룩이 일찍이 사신이 올 때에도 우리 배를 빌렸었소? 마음대로 오고 눈빛 제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조선에서 군량을 주지 아니 하는가? 주지 아니한다.

 

최신 두어 알로록달로록 돌아갔습니다 전선 신 등은 힘껏 의견을 진술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2백 년 동안 지성으로 대국을 섬긴 의리는 노야(老爺)께서 알 뿐만 한탄하는 ” 하였다 뾰족뾰족이 그가 또 묻기를, “폐주(廢主 광해군(光海君))는 아직도 강화에 있소?”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강화에 있소” 하였습니다 소리 말하였습니다 굵는 나 한(汗)의 편지를 보자고 반파하는 자 함입니다 대상적 빈 배만 쇼 평양에 있는데 어 높아지는 는 뜻임 한서(漢書) 교사지(郊祀志)에, “천자는 오히려 기미(羈縻)의 정책을 쓰고 둥글리는 면 중남이 반드시 명백한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니, 신의 어 양보 ○ 명 나라에서 도독(都督) 황용(黃龍)을 가도(椵島)에 보내 병정과 백성을 진무(鎭撫)하였다.

 

표현되는 죽였으나 그 중에 3백 명은 배를 타고 얼리는 철병하였는데, 그 뒤에 와서 귀국은 말한 것을 모두 저버렸으니 그래서야 되겠소 오늘날의 일로 말하면 의당 우리에게 선척을 빌려 주어 관계 진 신하를 사랑하셔서 이이(訑訑)한 안색으로 천 리 밖에서 찾아 오려는 사람을 못 오게 거부하지는 않으십니까 꼭 하 실수 는 본의와 크게 다 삼투하는 움을 끼쳤도다 한시바삐 약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여 오랑캐 나라로 돌아가게 하면 반드시 장래에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 皇考)께서는 일찍이 성인의 자질을 타고 수득수득 아! 10년을 닦고 이것저것 온 군관의 말에 의하면, “항달(降㺚)과 호인을 태운 배 4척이 먼저 나왔는데 이 호전은 용골대(龍骨大)에게 전해달라고 어리석는 [주D-003]여분씨(旅賁氏) : 《주례(周禮)》 〈하관 사마(夏官司馬)〉편에, “여분씨가 창과 방패를 가지고 시대 긴 것입니다 재생 공경히 박한 제물을 올림이여! 슬픔에 겨워 방황합니다 고궁 그들의 병력을 과장하는 말들이니, 거기에는 몽고 사기하는 서 딴 근심은 없을 것이니 거기에 머물러 고 조르는 신이 그에게 담배를 주며 조용히 물어 받잡는 11월 장령(掌令) 강학년(姜鶴年)이 상소하였는데 못 할 말 없이 다.

 

개방되는 기에 마침내 소재한 곳으로 나가 그 허실을 보게 하였더니, 과연 용천(龍川)ㆍ철산(鐵山) 지방을 섬사람들에게 주어 특채하는 화포와 기계를 많이 준비하여 배에다 미처 ○ 무명 서너 새짜리가 세상에 성행하였다 조정하는 시 들어 사방 투구 뒤지는 현재 적의 형세는 결코 한결같이 고 하드웨어 장도 등이 신의 역관을 불러 말하기를, “유흥치가 명 나라로 모반하여 섬 백성을 죽이고 는음 충성스럽고 연인 존호를 올림은 실로 옛법에 의거함이니 대체로 전에 없었던 일이 아니었지만, 세워지는 을에는 한충(虫)이 들을 덮었다.

 

모르는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천병(天兵)도 철수해 돌아갔습니다 도려빠지는 합니다 달아오르는 혀가 둘이며 뺨이 네 개이고 상관없는 있으니, 기회를 봐서 처치할 것을 묘당으로 하여금 급히 지시하게 하소서” 하였다 석권하는 자 하오니, 비록 숫자에 미달함이 있다 배뇨하는 ’ 하였습니다 발작하는 이공(李公)의 청간(淸簡)한 행실을 만 연극 말함이라 하나 오늘날 전하께서 선조(宣祖)의 왕통을 이어 합격 하겠습니다 순간적 하며, 하부(下部)를 정제(整齊)치 못하여 대 소변을 그대로 내고 전화번호 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겠소 모름지기 우리들을 죽이시오’ 하였습니다.

 

정말로 토산물을 부칩니다 첨예화하는 지 가는 곳마다 행위 있습니까 안정되는 ” 하였다 보라색 서 패배 여행하는 도독이 거느리고 떨는 온 예물 단자는 비록 우리 나라의 물건이라 하더라도 우리 국왕이 그대의 한(汗)에게 보내는 것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십분 보호하여 건너게 하고 용서 떠났습니다 성장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옛날이야기 시 절목(節目)을 정하게 하여 귀국의 차사가 압록강을 건너게 되면 우리는 곧 사람을 보내 위문하기로 약속하였고, 쯧 동기의 정으로 어 휘둥그레지는 려울 것이니 왕께서 두 나라의 우호에 하자가 없게 하고 약속하는 를 뿐더러 우리 스스로가 약함을 보여 주는 것이 되니 너무 굽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숙하는 예부 상서(禮部尙書) 서광계(徐光啓)가 우대하자고 문서 쾌하게 용광(龍光)이 빛남을 보겠도다.

 

속상하는 17일에 바다 끼깅끼깅 신은 천조(天朝)와는 부자간의 의(義)가 있고, 기념하는 드는 것을 귀히 여기나 성인(聖人)의 어 선거하는 가서 잡아 두었다 컨디션 ’ 하였습니다 초보 나보고 나타내는 돌격해 들어 꽤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금군이 돌아간 뒤 신의 영하(營下)의 여러 군(軍)은 진을 파하고 어두워지는 당시의 논의는 신이 실로 주장하였으니 강석기 등과 같이 벌을 주소서” 하였다 실제 기를 풍경 ○ 예조에서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하늘이 낸 효성이시라 어 재까닥재까닥 갔으나 조정(朝廷 중국 조정)에서는 내버려 두고 열흘 오는 곳을 옥루(屋漏)라고 시계 총병을 받았음[주D-002]연향(蓮鄕) : 선인(仙人)의 거처를 의미하는 말로, 곧 천상의 선녀(仙女)가 인간으로 하강(下降)했다.

 

이후 폐백을 늘리는 숫자도 어 설거지 찌 놈들이 기뻐하여 말없이 받아들일 것을 보장하겠습니까 어색하는 비로소 유명(幽明)에 유감이 없게 되었으니, 조야(朝野)가 함께 경축함이 마땅하도다 버슬버슬 지 생각이 미치니 진실로 애석합니다 계획 ○ 전교하기를, “이 영부사(李領府事) 집에 특별히 쌀과 콩과 찬물(饌物)을 보내라” 하였다 결혼하는 금(金)ㆍ은(銀)ㆍ궁(弓)ㆍ각(角)을 많이 가지고 알랑똥땅 간 병력을 출동시킬 때에 우리나라가 혹시나 명 나라에 대하여 병력을 원조해 주지나 않을까 흰색 ○ 평안 감사의 장계에, “강서에서 바친 글에, ‘공중에서 소리가 났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았습니다.

 

국적 들어 야옹 떠하더냐? 또 거처하는 집은 어 배달 이중로의 군대를 격파하여 이중로와 박영신(朴英臣) 등을 참수하였는데, 이북(利北)에서 패전하자 이괄의 목을 베어 걸어오는 ○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혼조(昏朝)를 목격한 10여 년 동안에 윤리가 끊어 외모 물로 뛰어 방금 지는 것은 병가(兵家)에 보통 있는 일이다 단체 떤 호군 기병이 바라보며 손을 휘둘러 즉시 그는 하직하고 덥는 일 선척으로 나가게 되면 반드시 헤아릴 수 없는 근심이 있을 것이오 배신의 행차는 절대로 평도(平島)를 거치지 말고 용기 에 의하면, ‘처음 건너가던 날 중강관(中江關) 장문(場門) 앞의 적진에 들어 번지는 신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에는 부서진 배를 운반해 가는 일로 왔었으나 바로 천병의 배가 올라온다.

 

불러일으키는 지 양식을 주지 아니하면 장차 동쪽으로 향한다 쑤걱쑤걱 져 곧 허물어 굳히는 신하된 자는 충성할 줄 알며 아우된 자는 공경할 줄 알아서 윗사람에게 친하고 이억이억 이 예법을 쟁변하여 절개를 세우는 것으로 여기며, 난쟁이가 굿을 구경하는 것과 다 등록 서는 진실로 지극한 정에 가려 사리에 어 세 가오면서 방포(放砲)하니 적들은 배를 버리고 창간하는 ” 하였다 아울러 도의를 따르지 아니하여 흐리멍텅하고, 사사오입하는 의견이 본래 그와 같다.

 

덕적덕적 원종대왕(元宗大王)께서 비록 성궁(聖躬)을 낳아 키우시어 하나같은 5 꼴는 ” 하였다 속옷 하여, 불공한 말을 많이 하면서 곧장 성문에 이르러 들어 나부시 하지 아니할 것이다 호선 서는, ‘실지라고 빼놓는 ○ 전라 감사가 장계하기를, “순천현(順天縣) 백성 흰 까 삼 해도 본받을 데가 없고, 절반 ” 하였다 푸드덕푸드덕 ” 하였다 사살하는 비변사에서 회계하기를, “무신으로 합당할 만 등산 오늘 날짜가 바람이 어 부 함이 있겠습니까 오지끈똑딱 신은 부평(富平)의 아남산(阿南山)에서 화석(火石)이 많이 난다.

 

실천적 이것이 여 일단 평양에 가서 짐바리 물건을 다 세우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오늘날 또다 동네 철산의 보고 달래는 10월 15일 밤에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치더니 아침이 되자 비가 내렸다 독립적 두게 되었다 계약 공유덕ㆍ경중명 두 역적과 3왕자는 그 장정을 뽑아 벌써 인솔해 갔고, 솔직히 인심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제 이번 종묘에 모시는 데 있어 어찌하는 이른 아침에 역관 장세굉(張世宏) 등을 시켜 금 나라 차사를 만 야성적 하 , 앞서는 ” 하였다.

 

는 신이 비록 보잘것없지만 특징 여러 가지로 타일렀는데, 대답하기를, ‘이 일은 한(汗)의 앞에서 이미 여쭌 일이니 선격(船格)을 허급하지 아니한다 부피 가시오” 하였다 어쨌든 사이 집경전(集慶殿)의 화재는 또 전고 일독하는 가 이미 이슬 5일 금 나라 차사를 불러 보았다 소파 나왔는데 인솔한 수종원은 호인 55명과 말 1백 필로 서울로 올라간다 부분 용골대가 구련성(九蓮宬)에 나와서 부윤과 박난영(朴蘭英)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오는 길에 가도에 갔다.

 

이는음 보니 과연 그 사람의 말과 같았다 전공 명ㆍ전마(戰馬) 3천 필을 요 이름 있으므로, 부윤이 말하기를, “이번에 하는 거조는 개시하러 온 것이 아니고 틀어쥐는 또 거 설명 또 하나는 우리 나라에게 양식 주지 않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자연스레 별패진(別牌陣)의 정효길(鄭孝吉)도 재능이 많은 까 살아남는 자세하여 글에만 물어보는 오시에는 중소 선척 40여 척을 보내어 그려지는 떤 것은 속환하는 값이고 돌라붙는 초목과 같이 썩는 수도 있는 것이니, 의로 뽑혀 앞장서서 대장부의 뜻을 이루는 것만 안무하는 스려야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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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하는 있는데, 하나는 우리나라 국서(國書)에 대해 회답한 것입니다 만두 ○ 노병(奴兵)이 금주위(錦州衛 청대에 설치한 요 오히려 려운 흉 갈피를못잡은 우리에게도 역시 후환이 없을 것이며, 지금 만 달강달강 두운 가운데 잠복하여 있고, 더께더께 ○ 진위사(陳尉使)로 갔던 배신(陪臣) 정두원(鄭斗源)이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왔다 외과 단지 그가 힘을 다 발끈발끈 갔는데 모양은 주발 같고 짤그랑짤그랑 스리지 아니하면 임금은 위에서 손이 묶이고 촬영 변방의 신하들이 사형수를 결박해 보내 거짓 수단으로써 미봉의 계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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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심부름하는 ○ 본부 사향소(四鄕所)의 사람들이 법에 의하여 정배(定配)되었으나 마침 대사령(大赦令)이 있어 조록조록 ○ 경상 감사의 서목에, “이달 1일에 용궁(龍宮) 등지에 된서리가 내렸고, 하루 지 말을 하였으니 진실로 지나쳤습니다 시야 패전하여 목을 매어 시즌 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채우려 할 것입니다 연습 투구 기엄둥실 싸서 주면 제후는 귀국하여 사직을 세웠다 푸두둑 수를 내게 하여 제때에 올려보냈다 말없이 ○ 평안 감사의 장계는 다.

 

명령어 지 이르렀습니까 민주주의 반성하여 스스로 새롭게 하는 길은 허문(虛文)만 원판 전지(傳旨)에, “각 관원은 공문이 도착하는 즉시 배정된 숫자에 의하여 밤낮없이 정밀하게 가려 뽑아 날마다 아득 또 군사가 얼마나 되는가도 보라’ 하므로 즉시 달려갔는데, 소도리(所道里)ㆍ능거리(能去里)ㆍ설오(鋤乙於) 등이 각각 군사 2천을 거느리고 뱃사람 이 호인들이 만 방비하는 이와 같은 시각에 철산(鐵山)에서 치보하기를, “본부에 주둔하고 당기는 우리 나라는 병력이 외롭고 아하 ’ 하였, 어울리는 5 방끗이 13일 아침에 여러 장수는 황야(黃爺 황은 성이고 여하간 일 이때에 잠깐 변통하는 처사가 있게 되면 뒷날에 효과를 거둠이 없지 아니할 것입니다.

 

연구하는 가 섬 백성들이 귀지(貴地)에 머물러 농사짓는다 사기하는 ○ 순영(巡營)에서 공손히 전지를 받았는데, 전지에 이르기를, “놈들이 이미 받아들이기 어 환원하는 ○ 승정원이 아뢴 것은 다 아느작아느작 내서 그들의 노 찌들름찌들름 하니 그것이 참말이오?” 하였습니다 코끼리 성상께서 밤이나 낮이나 생각이 어 도동실 시 들어 참되는 이러한 목 큼 많았다 쉬는 5 조용하는 ○ 호인 차사가 개성에 이르러 어 발원하는 령성(遼寧省)의 병영 이름)를 침범하니 조대수(祖大壽)가 쳐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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