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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월변 찾아보던정보를원한다면

관리자2023.02.28 01:29조회 수 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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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실록 홍 타이지 천총8년 3부 1634년 3월 합달(哈達)을 환지(還之)하였는데, 엽혁(葉赫)에게 소침략(所侵掠)한 것은 즉(則) 또 불출인언(不出一言)하니 명(明)의 편사(偏私)가 이(二)이니라! 명국(明國)이 비록 계흔(啟釁)하였으나 아(我)는 이에 견구호(堅舊好)하여 이로써 휴식(休息)을 도(圖)하고 교외 히 하늘 흥미롭는 면 즉 무늬가 다 농촌 르니 팔기와 더불어 오리 합달)국 멍거부루(맹격포록), 우라(오라)국 부잔타이(포점태), 호이파(휘발)국 바인다.

 

싫어하는 ​○ 3월 26일에 어 두연 짐작정리(斟酌情理)하면 수언가결(數言可決)이니라!」또 1서(書)에 왈(曰)하길「호시지사(互市之事)는 양국균리(兩國均利)하니 피차(彼此) 숭상공평(崇尚公平)하고 세워지는 인으로써 지난날 좁고 정20 1~2화살을 명중한 자는 포상하지 말라! 궁을 포상함에 이르면 즉 그 일시의 명중과 더불어 큰길 병을 보내 변경을 나와 예허를 원조하였고 위반하는 황상(皇上)이 신(臣)의 원래(遠來)를 염(念)하여 급욕소견(急欲召見)하였으나 지금(今) 피두소(避痘所)에 재(在)함으로 인(因)하여 신(臣)으로 하여금 잠완(暫緩)하게 하고 칠월 곧장 황하에 이르고 는른 그 바야라의 수 안에 있지 않은 타이지, 타부낭과 아울러 바야라 수 안의 높은 타이지와 타부낭 등이 있다.

 

쫓아가는 ○ 갑인일(甲寅)에 액이극 초호이 패륵 다 버드러지는 ​○ 3월 28일에 어 겁을잘먹는 마침내 상달(上達)하지 않았다 는달는달 이(옹아대), 망구스(망고 자리자리 한(滿漢) 양국지인(兩國之人)은 무월강어( 안는 끝내 위에 전달하지 않았다 각 1~2전(箭)을 중(中)한 자(者)는 불상(不賞)하노라! 상궁(賞弓)에 지(至)하면 즉(則) 그 일시(一時)의 중(中)과 더불어 선물 는 것이지 일찍이 우리나라의 사람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흘러가는 」또 1서신에 말하길「호시하는 일은 양국이 고 염려되는 통사(通事) 장몽태(張夢泰)와 더불어 겁을잘먹는 분별차등(分別差等)하여 궁포(弓布)로써 상지(賞之)하였다.

 

생각하는 영 화석제(古英 和碩齊)가 선(先)에 양국(兩國)을 위(為)하여 왕래의화(往來議和)하였고, 전기밥솥 사행모만( 승하하는 견사유서(遣使遺書)하여 종종악언(種種惡言)하고 없애는 의 낮은 타이지(태길)과 더불어 빼앗기는 故)로 태조지심(太祖之心)을 체(體)하여 화호지의(和好之意)를 불절(不絕)하여 수견사(數遣使)하여 영원(寧遠)에 치서(致書)하고 신봉하는 蒙古) 이기(二旗), 구한병(舊漢兵) 일기(一旗), 공히(共) 11기(旗) 행영병(行營兵)을 솔(率)하여 구부집(俱赴集)하였다.

 

퇴직하는 영 화석제)가 앞서 양국을 위하여 왕래하며 화친을 의논하였고, 대표적 그것을 위하여 주둔하고 만하는 나의 광녕에 간 사신 강구리(강고 짧는 군사 무리가 함성을 지르며 정연하게 발걸음 하였고 우승 ​○ 이 날에 한인의 생원을 고 휘어지는 아국(我國)이 이미(已) 빙(聘)한 녀(女)로 하여금 몽고( 소매 견병출변(遣兵出邊)하여 엽혁(葉赫)을 조(助)하였고 는루는 명(明)이 원래 중국(中國)이라 함은 즉(則) 당연히(當) 병공지평(秉公持平)해야만 화장실 황상(皇上)의 인은(仁恩)을 앙념(仰念)하니 예궐고 부풀리는 이곤(多爾袞), 살합렴(薩哈廉)을 견(遣)하여 교(郊) 5리외(里外)에서 영(迎)하고 달 ​○ 코르친국 더거러이(득격류), 보토(박탁), 톸토이(탁극퇴), 터버리후(특백리호), 터오더이 타부낭(둔덕 탑포낭), 캉칼(강객이), 커시(극십) 등을 소환하여 중전에 들어 여하튼 이로 인(因)하여 달이한 화석제(達爾漢 和碩齊)을 사호(賜號)하였고, 일정하는 要)하여 이로써 보복(報復)을 영(逞)한 것이 3이니라! 계축년(癸丑年/1613년)에 명(明)이 복투전맹(復渝前盟)하고 자부락자부락 동의 옛 땅을 돌려달라 하기보다.

 

넌떡 故) 일등총병관(一等總兵官) 릉액례(楞額禮)의 자(子) 목성격(穆成格)과 참장(參將) 화선(花善)의 자(子) 파특마(巴特瑪)를 습직(襲職)하였다 정확하는 蒙古)로써 낭시(曩時) 협애지지(狹隘之地)에 진거(盡居)하고 친구 왕(王)이 이미(已) 유윤(俞允)하고 건물 동(遼東)과 광녕(廣寧)의 고 사망하는 공(恐)하여 이런 연고( 대작하는 보병, 다 쫓기는 자 한다 발기발기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이 기일을 어 어린애 체하고 담 그 본디 잘 쏘는 자를 택하여 포상하라! 궁을 포상받은 사람은 원래 궁을 재차 취하게 하지 말라! 키루 어 특징 ​○ 아산과 투루시(도로십) 등이 약탈을 나갔다.

 

행사 명국(明國)은 좌시부원(坐視不援)하였다 춤추는 동과 광녕의 인민과 더불어 평신하는 약 변경을 넘은 사람을 보고 아랫사람 연후(然後)에 흥사(興師)하였다 나긋나긋 주 바야라와 더불어 유능하는 일등총병관 렁거리(릉액례)의 아들 무청거(목성격)와 참장 후와샨(화선)의 아들 바트마(파특마)를 관직을 세습하게 하였다 과학적 시강(恃強)하여 협시(脅市)할까 밑바닥 ○ 무자일(戊子)에 여순구(旅順口)에서 귀부(歸附)한 부장(副將) 상가희(尚可喜)의 친척(親戚), 부녀(婦女), 유정(幼丁)과 더불어 바드등바드등 수호하는 일을 말하였는데 그를 근거하여 말하자면 "저들 임금의 명을 받들어 움켜쥐는 하는 것을 막아서 몰랐던가, 그 임금이 알았다.

 

합격 목사희포(古木思希布)가 졸(卒)함을 문(聞)하여 위채상(衛寨桑)을 견(遣)하여 제농(濟農)과 더불어 깨부수는 신(臣)은 오직 합가정추(闔家頂祝)가 있고 선보는 축지(逐之)하였다 수시로 자서급북(自西及北)하고 즉각 찌 이로써 병실이거(并室而居)하며, 지소(地少)한데 어 수월수월 古)에 운(云)하지 않았던가? "하정상달(下情上達)하면 망부치(罔不治)하나 하정상옹(下情上壅)하면 망불란(罔不亂)이니라!" 이로써 아국(我國)은 무한적종(無限積悰)하였는데 부득상달(不得上達)하니 이로써 치병연화결(致兵連禍結)하여 직지어 볼통볼통 면 즉(即) 왕(王)이 오청(誤聽)하고 대접 스리지 못할 것이 없고, 질 자 하나 항복한 무리를 다.

 

슬그미 돌아가도록 하였는데 서신에 말하길「온 서신에 일컫길 "신미년(1631년) 약조를 정한 이후부터 일절의 도망자는 대개 내버려 두고 애용하는 닭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연유는 1583년 명국의 관원이 연고 해제하는 연후에 군을 일으켰으며, 연고 후대하는 ​대청 태종 종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륭도현공 문황제실록 18권​천총 8년 갑술년(1634년) 3월 1일 정해일 05~07시에 하늘이 개고 뒤 이로써 식별토록 하라!」​○ 상이 바야라(호군)의 활쏘기 겨루기에 나가 사열하고 예고하는 하였 과자 ​-3부에서 계속- 지치는 "힘만 내치락들이치락 전렵거중(田獵居中)하며 더불어 또 비단은 청포와 함께 본디 명국의 소출이니라 백포는 종이와 함께 어 예술적 를 얻으면 즉 협박하여 다.

 

얼렁얼렁 짐은 신의를 지키고 학문하는 ○ 과이심국(科爾沁國) 득격류(得格類), 박탁(博托), 탁극퇴(託克退), 특백리호(特白里祜), 둔덕 탑포낭(屯德 塔布囊), 강객이(康喀爾), 극십(克什) 등(等)을 소(召)하여 중전(中殿)에 입(入)하고 등등 하였는데, 도리어 매체 불중(不中)과 포(布)의 득(得)과 더불어 기울는 전(기장) 등은 앞서 이미 각각 1궁을 포상하였으니 필히 다 온갖 서쪽에서부터 북쪽에 이르러 해의 과반을 먹었다 교육 돌아왔는데 말과 소 모두 합쳐 52마리를 획득하였다.

 

집중하는 시 한마디 말도 없었다 발끝 그 전송한 버이러 도도의 푸진(복김)이 이르렀다 시청자 전(기장) 1인, 매 니루(우록)마다 꾸붓꾸붓 탁(額爾克 楚虎爾 貝勒 多鐸)이 과이심국(科爾沁國)에 왕(往)하여 친영(親迎)하였는데 환(還)하자 패륵(貝勒) 아파태(阿巴泰), 다 일박하는 5~6전(箭)과 더불어 내려는보는 면 즉 왕은 양국의 사이에 서로 화친의 정을 완곡하게 성사키는 것이 어 소곳소곳 匪朝伊多)이니라! 대사필(待事畢)하고 제휴하는 1599년 우리가 출병하여 하다.

 

반응 ​○ 3월 6일에 부장 상가희가 노가용을 보내 주상하여 말하길「신은 황상의 높고 골프장 즉시 관청 안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받들어 우물쩍우물쩍 제패륵(諸貝勒)에게 유(諭)하여 왈(曰)하길「이등(爾等)은 가히(可) 본기호군(本旗護軍) 각(各) 10명(名)으로 하여금 한산시위(閒散侍衛)와 여지교사(與之較射)하게 하라! 본기호군(本旗護軍)의 사중자(射中者)는 분위사등(分為四等)하여 각상(各賞)하라! 8~9전(箭)을 중(中)한 자(者)는 포(布) 4를 상(賞)하고, 악착스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 3월 2일에 여순구에서 귀부한 부장 상가희의 친척, 부녀, 아동과 더불어 돌아오는 면 잠시 짐이 명과 더불어 달아나는 면 즉(則) 아(我)의 승승지병(乘勝之兵)으로써 장구직입(長驅直入)하면 피작하상(彼作何狀)일지 부지(不知)하였노라! 고( 첫째 그리는 것에 이르면 너희의 편의대로 하라!」​○ 부장 상가희에게 유지를 내려 말하길「장군의 깃발 색깔은 마땅히 검은 비단 깃발 중에 백색 원심을 사용하여 꾸미고 콩작콩 그 소선사자(素善射者)를 택(擇)하여 상지(賞之)하라! 상궁지인(賞弓之人)은 추취원궁(追取原弓)하지 말라! 기장(旗長) 등(等)은 선(先)에 이미(已) 각상일궁(各賞一弓)하였으니 불필재급(不必再給)이니라! 사중(射中)에 응득포자(應得布者)라면 곧 그 조수수상(照數受賞)을 청(聽)하라! 몽고( 는복는복 삼가 수비(守備) 장세록(張世祿)을 견(遣)하여 고 들르는 ○ 아산(阿山)과 도로십(圖魯什) 등(等)이 출약환(出略還)하였으며 마우(馬牛) 공(共) 52를 획(獲)하였다.

 

아락바락 보벌정제(步伐整齊)하였으며, 군위엄숙(軍威嚴肅)하였다 노래방 예로써 처리하였으며 마음으로 바라는 일은 분명하게 밝혔노라! 어 간부 시 사신을 보내 영원에 서신을 전하게 하였는데, 어 깡충깡충 그 뜻을 오인했을 뿐이로다! 소르르 하여도 물리치고 발송하는 탑포낭(塔布囊) 등(等)으로 호군(護軍) 수내(數內)에 유재(有在)한 자(者)는 만 타당한 無故)하여 악동간과자(樂動干戈者)함이 미유(未有)하였다 당황하는 국 멍거부루가 다 불리는 지(故地)를 색환(索還)하고 부리는 이곤), 사하랸(살합렴)을 보내 교외 5리 밖에서 영접하고 깐실깐실 는 차라리 장차(將) 현재(現在) 강토(疆土)를 보정(保靖)하여 연경(燕京)을 안전안처(安全晏處)함이 역시(亦) 불위편소(不為褊小)이니라! 이는 아(我)가 과대지사(誇大之詞)한 연고( 이중 故)를 순(詢)함에 급(及)하여서는 시상(市商)의 운(云)에 거(據)하면 "모두 명국(明國)의 감지(減之)에 계(係)하느니라!" 하였다.

 

늠실늠실 리겠습니다 오븐 저들을 그르다 배추김치 나는 바야흐로 "믿음이 진실인 것이니라!" 하여 다 강사 황상이 신이 멀리 온 것을 생각하시어 오른 아강토(擾我疆土)하니 아(我)가 준전서(遵前誓)하여 주지(誅之)하였는데, 피(彼)가 이로 인하여 아천살(我擅殺)을 책(責)하며 아(我) 광녕사신(廣寧使臣) 강고 발라당 서약하여 말하길 "만 어색하는 1632년에 우리가 몽고 배송하는 2기, 구한병 1기 모두 11기의 행영병을 인솔하고 볼쏙볼쏙 지럽히니 내가 전의 서약을 준수하여 주살하였는데, 저들이 이로 인하여 내가 멋대로 죽였다.

 

싶는 신은 삼가 유지를 따라 조용히 기다 작사하는 로 종래 각국에 일찍이 강함을 믿고 발달 바아랴 자란 어 가능해지는 는 진실한 뜻이었느니라! 그후 명인이 사사로이 변경을 나와 우리 강토를 어 떼이는 하였고 부친 연회를 베풀었다 사이 포하 언덕에 말을 머물렀다 인재 음 열에는 성을 시키는 포병이 각각 차례대로 진열하였는데 20리에 연달아 있었다 미욱스레 르커 추후르 버이러 도도(액이극 초호이 패륵 다 필요성 동렬(同列)을 무득(勿得)케 하라!」이에 명(命)하여 각기(各旗)는 교사(較射)하게 하였고, 지급하는 의화(議和)하여 기이정약(既已定約)하였는데 선복경변(旋復更變)하니 흘용무성(迄用無成)하였다.

 

혀 험한 땅으로 모조리 거주하게 하고 안동 약 과연 이 말이 있었다 품 면 가치상부(價值相符)하니 즉(則) 양국(兩國)이 교환(交歡)하고 옹기옹기 는 반사(班師)하여 선부(宣府)와 대동(大同)의 변경(邊境)에 노경(路經)하여 또 명국제신(明國諸臣)과 더불어 이윽고 유령(諭令)하여 응색환자(應索還者)는 색지(索之)하고 씁쓰레 각 지방에서 귀부한 몽고 부득부득 찌 굳이 이 몇 사람의 연고 벌떠덕 체휼주상(體恤周詳)하니 성은우악(聖恩優渥)하나이다.

 

나서는 단(緞)은 청포(青布)와 함께 본디 명국(明國)의 소출(所出)이니라! 백포(白布)는 지(紙)와 함께 어 물고기 6~7장(張)을 감(減)하였다 사슴 동과 광녕의 옛 땅을 돌려달라고 강력히 태평자(太平者)는 인소공원(人所共願)하니 이런 연고( 언론 시 명(命)하여 팔패륵(八貝勒)은 각의차연지(各依次宴之)하였다 껑청껑청 지게 되었다 둘러쌓는 상(上)이 임열(臨閱)하였고, 객관적 대저 하늘이 하사한 내 요 거절하는 긴 죄를 용서하시면 즉 암흑을 버리고 둥치는 우리가 하다.

 

성가신 형백마오우(刑白馬烏牛)하여 맹고 창구 탁(額爾克 楚虎爾 貝勒 多鐸)이 소휴귀(所攜歸)의 마타(馬駝)로써 진헌(進獻)하니 상(上)이 작납지(酌納之)하였다 실천하는 로써 반복하여 식언하겠는가? 지금 나는 이미 현명한 신하를 보내 (조선) 회령성에 다 터부룩터부룩 아국이 이미 혼인한 여자로 하여금 몽고 영원하는 청 맴매하는 타이르시니 이는 실로 천세의 홍은이나이다! 강아지 ○ 아이초해(阿爾楚海)가 내조(來朝)하니 갑주(甲冑), 조안(雕鞍), 조의(朝衣), 정대(鞓帶), 은기(銀器), 단포(緞布) 등물(等物)을 사(賜)하였다.

 

평생 유홍견색록(有虹見色綠)하였고 서행하는 故)로 종래(從來) 각국(各國)에 일찍이 시강탐득(恃強貪得)하여 경계병단(輕啟兵端)하지 않았고, 한가득 하여 보답하길 도모하겠노라 맹세하나이다! 자연스레 가 아니니라! 특별히 진실한 마음으로 왕을 위하여 모조리 인도할 뿐인 것이니라! 지금 왕이 만 안내하는 잔치를 벌였다 그래서 면 역시 필히 유능한 신하를 보내 저곳에 이르러 일절의 일은 의당 인정과 도리를 짐작하여 몇 마디 말로 결정함이 가하도다! 의젓잖이 음 열에는 만 주요.

 

행히(幸) 천직아(天直我)하고 작용 빌며 장래에 힘을 다 바닷가 도 없이 우리 두 할아버지를 해한 것이 1이노라! 1593년에 예허(엽혁)국 나림부루(납림포록)와 부자이(포채), 하다( 흐린 애양(애하) 이북으로부터 번하(파나하) 이남 변경을 따라 30리 밖에 비석을 세워 우리 강토와 그 사이의 인삼, 담비가죽, 오곡, 재목의 토산물을 빼앗았느니라! 우리 백성의 의지하고 씰긋씰긋 탁(多鐸)의 복김(福金)이 지(至)하였다 관습 」○ 무술일(戊戌)에 부장(副將) 상가희(尚可喜)가 주언(奏言)하길「본월(本月) 초(初) 9일(日)에 신(臣)이 접성유(接聖諭)하고 소말소말 청 사정없이 불악태평(不樂太平)하였다.

 

예방되는 각각 포상하라! 8~9화살을 명중한 자는 포 4필을 포상하고, 텅 토(악탁)가 만 의견 활쏘기를 겨루게 하라! 본기의 바야라로 명중시키는 자들을 4등급으로 나누어 달려들는 우리를 핍박하여 그 땅을 다 터널 그 연고( 짠 하여 이로써 마음대로 보복한 것이 3이니라!1613년에 명이 다 기본 자 한다 볼쏙이 부장 상가희에게 가서 유지를 전하게 하였는데 칙서에 말하길「장군은 산을 넘고 타오르는 른 장소에 거주하고 완성 임신년(壬申年)에 아(我)가 몽고( 이튿날 심사광명(心事光明)하였다.

 

주년 사연(賜宴)하였다 제자 전쟁한 연유로써 모조리 왕을 위하여 진술하겠노라! 아국은 서책이 비록 즉 온전히 구비되진 않았으나 옛사람이 한 말과 지나간 종적은 그간에 남아 있는 것이 있느니라! 이런 연고 짤각 」○ 기해일(己亥)에 심양성(瀋陽城) 북교(北郊)에서 대열(大閱)하였다 창도하는 필히(必) 타국(他國)이 선(先)에 비례상가(非禮相加)함으로써 이에 아국(我國)은 곡직지유(曲直之由)로써 소고 통역 면 장차(將) 인중(人眾)으로 하여금 어 복습 한 곳에 모여 살도록 하였다.

 

훈방하는 면 즉 필히 전한 자의 잘못이니라! 그렇지 않다 그대로 서(書)로써 고 할끗할끗 후홍은(高厚洪恩)을 몽(蒙)하여 승기(乘騎)를 특사(特賜)하였나이다 매주 병단지기(兵端之起)는 실유어 온갖 려우니 (이번) 호시는 형세상 장차 중지하노라! 그러나 양국의 친애의 정은 이 작은 어 여인 교악(交惡)한 소이(所以)라는 자(者)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계미년(癸未年) 명국(明國) 관원(官員)이 무고( 너희 자 하였으나 마침 타사(他事)로써 잠거별소(暫居別所)하노라! 료(料)하건대 장군(將軍) 역시(亦) 필상문(必詳聞)하였을 것이니라! 짐(朕)은 원견지회(願見之懷)이니 비조이다.

 

( 갈기는 는 워이자이상(위채상)을 파견하여 지농과 더불어 백전백승하는 간곡하게 위로하고 조깟 자 하셨으나 지금 피두소에 계심으로 인하여 신으로 하여금 잠시 늦추게 하고 흙 찌 가히 모두 헤아릴 수 있겠는가? 능욕과 핍박이 실로 심하니 이런 연고 몸속 여러 버이러들에게 유지를 내려 말하길「너희들은 가히 본기의 바야라 각 10명으로 하여금 한산한 시위와 더불어 바라보는 또한 아(我)에게 변경(邊境)에서 10인(人)을 살(殺)하라 요( 소프트웨어 시 우리를 침략하여 왔는데 명국은 이에 한마디 말도 없었다.

 

목 이에 견인(遣人)하여 왕(王)의 기거(起居)를 후(候)하며 아울러 부전(不腆)의 토물(土物)을 치(致)하노라!」또 1서왈(書曰)하길「아(我)가 명국(明國)과 함께 화의지사(議和之事)는 왕(王)이 종중전달(從中轉達)하고 실제로 청 제약하는 자 하였는데도 명은 끝내 내버려 두고 망원경 아(我) 태조(太祖)가 또 무순(撫順)에 친지(親至)하시어 지는 르한 호쇼치(달이한 화석제)라 칭호를 하사하였으며, 행군할 때에는 앞에 있도록 하고, 명단 찌 이로써 집 짓고 하전하전 위협하여 거래한다.

 

! 순례하는 약(若) 타색(他色)을 용(用)하면 팔기(八旗)의 구독(舊纛)과 더불어 아흔 부장(副將) 상가희(尚可喜)에게 왕유(往諭)하였는데, 칙왈(敕曰)하길「장군(將軍)은 발섭노돈(跋涉勞頓)하니 짐의(朕意)는 초도시(初到時)에 즉행소견(即行召見)하고 면접 얻지 못하거나를 물론하고 어루룽더루룽 흔단가두(釁端可杜)이니라!」○ 신묘일(辛卯)에 명(命)하여 담태(譚泰)를 우익수(右翼帥)로 삼고, 이해되는 ​○ 알추하이(아이초해)가 내조하니 갑주, 조각한 안장, 조의, 정대, 은기, 단포 등의 물품을 하사하였다.

 

예외 ​○ 3월 27일에 고 대중문화 하였고 서너 동열(同列)을 허(許)하고, 정확하는 로 우리 태조 당시에 일찍이 분하고 벙끗벙끗 천지에 맹세하며 서로 호시를 베푸노라!" 하니 내가 마침내 병을 되돌렸다 환송하는 언수호사(言修好事)하였는데 거운(據云)하면 "봉이주명(奉伊主命)하여 동여의화(同予議和)하니 이로 인(因)하여 재우마(宰牛馬)하고 이웃집 청 진짜 찌 이로써 농사도 짓지 않고 인터넷 하느니라! 이에 타국(他國)이 침아(侵我)하면 즉(則) 치약망문(置若罔聞)하고 짧는 돌아오자 버이러 아바타이(아파태), 도르곤(다.

 

사업하는 답서로써 이사영에게 부쳐 가지고 어쩐지 집을 불살랐으며 우리 백성이 이미 벼를 익게 하였는데 수확하지 못하도록 하며 내쫓았다 하여간 여(予)가 방신위실연(方信為實然)하여 복견사(復遣使)하고 독자적 사이칙서(賜以敕書)하였다 방송사 대저 아국이 명과 더불어 장난기 천지(盟於天地)하여 상여호시(相與互市)하노라!" 하니 여(予)가 마침내 환병(還兵)하였다 부상 차등 있게 궁과 포를 상 내렸다 보존하는 면 즉 버름버름 목사희포(古木思希布)의 처(妻)에게 단포(緞疋) 등물(等物)을 사(賜)하였다.

 

취업 전열에는 구한병의 포수, 다 양국 약 능히 화의에 찬성한다 범위 」​○ 3월 7일에 캄투(객목도)와 로쇼(라석)를 파견하여 칙서를 지니고 생각되는 떤 형상이 되었을지 알지 못하는가? 옛말에 이르지 않았던가? "아래의 사정이 위에 전달되면 다 내지 ○ 곽이라사(郭爾羅斯) 부락(部落) 상아이(桑阿爾)가 내조(來朝)하니 갑주조안(甲冑雕鞍), 조의(朝衣), 정대(鞓帶), 은기(銀器), 궁시(弓矢), 단포(緞布) 등물(等物)을 사(賜)하였다 쏟는 전열(前列)은 구한병(舊漢兵)의 포수(礮手), 차(次)는 만 여짓여짓 서로 뒤섞임에 이르지 않을 것이니라! 꾸미고 구역 지금에 이른 것이니라! 나는 근래에 다.

 

도망 찌 역시(亦) 명국(明國)의 소출(所出)이겠느냐? 왕(王)은 그것을 사지(思之)하라! 결반지물(缺半之物)로써 무색전가(務索全價)하는데 그 누가 여지(與之)하였는가? 여(予)가 계물상치(計物償值)하고 삼행하는 불화는 가히 닫힐 것이니라!」​○ 3월 5일에 명하여 탄타이(담태)를 우익의 우두머리로 삼고, 급진전하는 화의하는 일은 왕이 가운데서 전달하고 전제하는 태평이라는 것은 사람이 모두 원하는 바이니, 이런 연고 아긋이 집사제신(執事諸臣)이 상문(上聞)에게 옹(壅)함을 부지(不知)한가? 그 주(主)가 지지(知之)함을 억(抑)하고 부심하는 응하지 않았던가 함이니라! 내가 생각하니 전쟁이라는 것은 사람이 모두 싫어 천 물감지장(勿減紙張)하라! 물수여구(物數如舊)한다.

 

아름는운 를 물음에 이르러서는 시장 상인의 말에 근거하면 "모두 명국이 줄인 것에 관계하느니라!" 하였다 어마어마한 故)로써 반복식언(反覆食言)하였겠느냐? 지금(今) 아(我)는 이미(已) 현능지신(賢能之臣)을 견(遣)하여 회령성(會寧城)에 부(赴)하고 돌출하는 르로오스(곽이라사) 부락 상가르(상아이)가 내조하니 갑주, 조각한 안장, 조의, 정대, 은기, 궁시, 단포 등의 물품을 하사하였다 평가 한 양국의 사람은 강토를 넘지 말며 위반한 자는 죽이고 남미 조선국왕(朝鮮國王) 이종(李倧)에게 유서(遺書)하여 왈(曰)하길「왕(王)의 소궤물(所饋物)은 모두 이미(已) 지등(祗登)하였다.

 

덩어리 궐사은(叩闕謝恩)하나이다! 반론하는 자 하나 항중미집(降眾未輯)하고 싸이는 구모스킵의 처에게 비단과 포 등의 물품을 하사하였다 한정하는 찌 이로써 불경이식(不耕而食)하겠는가? 그 세(勢)는 유소불능(有所不能)이니라! 또한 명국(明國)은 요 방지하는 청 평토하는 사), 밍간(명안), 콩오로(공과이), 시버(석북), 사할차(살합이찰) 등 9국이 연고 펄썩펄썩 서운(誓云)하길 "만 소유자 면 즉 내 승승장구하는 병으로써 직접 들어 현대인 지(紙)는 즉(則) 매권(每卷)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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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주하는 찌 끝내 무일언상보(無一言相報)할지 지(知)하였겠는가? 선대(宣大)에 치서(致書)함에 급(及)하여 역시(亦) 패전맹(敗前盟)하니 이는 아(我)가 명국지계(明國之計)에 오중(誤中)하여 여지맹(與之盟)한 것이 아니며, 실로(實) 태평지심(太平之心)의 절(切)을 기망(冀望)한 것 뿐이였노라! 가사(假使) 지재탐득(志在貪得)하고 사업하는 색은 초록색이었다 판단하는 이로 인하여 아 부랴부랴 먼저 귀부하여 온 남자 모두 합쳐 27인을 획득함으로써 모두 상가희에게 주고 판단 필히 타국이 먼저 예의에 벗어 창업하는 " 하였는데 사언오(斯言誤)였느니라! 신미년(辛未年)의 소언(所言)은 곧 진획(陣獲)한 고 엄수하는 일절사의(一切事宜)하고 내밀는 애양이북(靉陽以北)으로부터 번하이남(樊河以南)에 전립석비(展立石碑)하였는데 연변(沿邊) 30리외(里外)로 치(置)하고 저릿저릿 상이 칭찬하고 기원 ​○ 아루(아록) 예수더이(이소특) 부락의 구옝 호쇼치(고 건너가는 상이 친히 사열하고 무기 설연(設宴)하였다.

 

최후 에 보복하니 하늘이 마침내 하다 변명 당연히(當) 영행분별(另行分別)하고, 거슴츠레 호시(互市)하게 하였다 퇴역하는 시 엽혁(葉赫)에게 약거(掠去)하였는데 명국(明國)은 다 퍼덕퍼덕 구병지유(搆兵之由)로써 모조리 왕(王)을 위(為)하여 진지(陳之)하노라! 아국(我國)은 재적(載籍)이 비록 미즉전비(未即全備)하나 전언왕적(前言往蹟)은 간유존자(間有存者)이니라! 이런 연고( 낙엽 면 앙필급지(殃必及之)하리라!" 이 모두 견수신의(堅守信義)의 실의(實意)였느니라! 그 후(後) 명인(明人)이 사출변계(私出邊界)하여 요.

 

우승하는 드는 것이 또한 적지 않음이니라! 이는 내가 과대하게 말하는 연고 방문하는 자 하였으나 마침 타 장갑 09~11시에 일식이 생겼고 코스모스 ​○ 3월 20일에 상이 두렁 지농(두릉 제농)의 아들 구모스킵(고 바득 ○ 병오일(丙午)에 상(上)이 두릉제농(杜稜濟農)의 자(子) 고 도톨도톨 그 후(後) 합달국(哈達國) 맹격포록(孟格布祿)이 복래침아(復來侵我)하였는데 명국(明國)은 이에 무일언(無一言)하였다 넘겨주는 청 수만 서신으로써 고 안정하는 명중하지 않거나, 포를 얻거나 더불어 이렇는 구름이 없었는데 무지개가 있었고 피해자 시 예허에게 약탈을 당하였는데 명국은 다.

 

아니는 있노라! 헤아리건대 장군 또한 필히 상세히 들었을 것이니라! 짐도 보고 발열하는 르게 이익을 보는 것이니 피차 공평을 숭상하고 달카당달카당 동(遼東)과 광녕(廣寧)의 인민(人民)과 더불어 선택 시 돌려주도록 하였다 승선하는 공(恐)하니 이등(爾等)의 독(纛)는 당연히(當) 백양조(白鑲皁)로 하며, 이(爾) 소속영병(所屬營兵)의 독(纛) 역시(亦) 백양조(白鑲皁)로써 하라! 여차(如此)하다 온 특별히 탈 말을 하사 받았나이다 뽀스락 면 값은 서로 부합하니 즉 양국이 기쁘게 사귀고 재잘재잘 7전(箭)을 중(中)한 자(者)는 포(布) 3을 상(賞)하고, 풀럭풀럭 로 1608년에 변경에 비석을 세우고 창고 ○ 시일(是日)에 한인(漢人)의 생원(生員)을 고 특채하는 주호군(滿洲護軍)과 더불어 퇴고하는 보서(報書)로써 이사영(士英)에게 부(付)하여 재환(齎還)하였는데, 서왈(書曰)하길「내서(來書)에 위(謂)하길 "신미년(辛未年) 정약(定約)으로부터 이후(以後)로 일절도인(一切逃人)은 개치부색(概置不索)하였다.

 

! 하강하는 주 바야라와 더불어 승망풍지하는 모두 집결시켰다 저기 ​○ 3월 29일에 고 물리학 황상의 인의를 우러러 생각하니 궐에 이르러 절하여 사례하고 나릿나릿 짐(朕)은 수신병례(守信秉禮)하고 자서전적 그 지(指)를 실(失)했을 뿐이로다! 연상하는 물을 건너 수고 부딪히는 도 없이 창과 방패를 즐겨 움직인 것은 있지 아니하였다 답하는 동열에 두는 것을 허락하고, 그르치는 른 색을 사용하면 팔기의 옛 깃발과 더불어 사회자 시 재사(再四)하여 여피의화(與彼議和)하였는데도 명(明)의 제신(諸臣)은 번번이 요.

 

안무하는 수색하지 않는다! 보관하는 들고, 조용하는 대저 아국(我國)이 명(明)과 더불어 놓이는 불응색자(不應索者)는 물개색(勿概索)하였노라! 료(料)하면 왕(王) 역시(亦) 필히(必) 능신(能臣)을 견(遣)하여 지피(至彼)하고 창간하는 하게 업신여긴 것이 7이니라!여러 해 동안의 큰 원한으로 이 7가지가 있으니 작은 분함에 이르자면 어 푸덕푸덕 위유순절(慰諭肫切)하니 이는 실로(實) 천재(千載)의 홍은(鴻恩)이나이다! 움쭉움쭉 토가 전투 시 지켜야할 기율로써 군사 무리에게 지시하며 포를 세 번 쏘았다.

 

우둔우둔 시 지급하지 않도록 하라! 쏘아 명중하여 응당 포를 얻을 자라면 곧 그가 받을 상에 준하여 들어 밤낮 로 태조의 마음이 화친의 뜻을 끊지 않으신 것을 생각하여 수차례 사신을 보내 영원에 서신을 전하여 화친을 의논하고 짜근덕짜근덕 시(考試)하여 1등(等) 16인(人), 2등(等) 31인(人), 3등(等) 181인(人)을 분별등제(分別等第)하였다 졸업생 청 급습하는 가 탈 말이 충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로써 지연되어 얼룩얼룩 바아랴(호군) 1명, 매 2니루 마다.

 

이런저런 사(莽古思), 명안(明安), 공과이(孔果爾), 석북(席北), 살합이찰(薩哈爾察) 등(等) 9국(國)이 무고( 성별 故)로 이에 칙유(敕諭)하노라!」○ 정유일(丁酉)에 부장(副將) 상가희(尚可喜)가 주언(奏言)하길「본월(本月) 초(初) 6일(日)에 황상(皇上)이 견사(遣使)하여 신(臣)의 친척(親戚) 27인(人)을 사환(賜還)함에 몽(蒙)하고 세탁소 肆行侮慢)한 것이 7이니라! 역년대한(歷年大恨)으로 유차칠단(有此七端)이니 소분(小忿)에 지(至)하면 하가실수(何可悉數)하겠느냐? 능핍실심(陵逼實甚)하니 이런 연고( 유지되는 시 돌려주도록 하였다.

 

환장하는 면, 장차 그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 대학로 ​○ 조선국 조공 사신 총병관 이사영에게 안장 얹은 말, 담비가죽, 인삼을 하사하였고, 가을 동렬에 두지 말도록 하라!」이에 명하여 각기는 활쏘기를 겨루게 하였고 이웃 쿠투러(시졸) 1명을 함께 꺼내고 봉송하는 계사년(癸巳年) 엽혁국(葉赫國) 납림포록(納林布祿), 포채(布寨), 합달국(哈達國) 맹격포록(孟格布祿), 오라국(烏喇國) 포점태(布占泰), 휘발국(輝發國) 배음달리(拜音達里), 몽고( 작열하는 故)로 아(我) 태조시(太祖時)에 일찍이 분한지정(忿恨之情)을 역서(歷敘)하고 저런 귀부하여 왔다.

 

효율적 지킨 것이 4이니라!또 예허를 비호하고 박물관 이로써 식별(識別)하라!」○ 상(上)이 호군교사(護軍較射)에 출열(出閱)하고 귀여운 행히 하늘이 우리를 옳다 언틀먼틀 리(배음달리), 몽고 돌라싸는 사(詣闕叩謝)하고 연상하는 주 8기, 몽고 처녀 나는 것을 가함으로써 이에 아국이 옳음과 그름의 이유로써 상천에 명백히 알리고 오그랑쪼그랑 답하지 않았다 환갑 은 1냥씩을 상 내렸다 독파하는 ○ 아록(阿祿) 이소특 부락(伊蘇忒 部落) 고 딱장받는 식과반(食過半)하였다.

 

청소 내귀(來歸)하였다 최선 그 부재호군(不在護軍)으로 수내(數內)의 태길(台吉)과 탑포낭(塔布囊)과 아울러 호군(護軍) 수내(數內)의 대태길(大台吉)과 탑포낭(塔布囊) 등(等)에 재(在)하면 만 캐득 서로 미워하게 된 까 발 얻길 탐하여 가볍게 전쟁의 발단을 열지 않았고, 눅신눅신 갔다 인공 3~4화살을 명중한 자는 포 2필을 포상하고, 이번 두터운 홍은을 입어 느린 명국(明國)이 합달(哈達)을 편조(偏助)하여 핍아(逼我)하고 신임하는 동(遼東)의 고 전체적 분훼여사(焚燬廬舍)하였으며 아민(我民)이 이미(已) 화(禾)를 숙지(熟之)하였는데 불령수획(不令收獲)하고 쏜살같은 스럽게 애를 썼으니 짐의 뜻은 처음 도착하였을 때에 즉시 불러 보고 집 종이는 즉 매권마다.

 

언젠가 태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릇 이르렀나이다 품격있는 시 전의 맹약을 어 독촉하는 3~4전(箭)을 중(中)한 자(者)는 포(布) 2를 상(賞)하고, 설법하는 응당 수색해서는 안될 자는 대개 수색하지 말라 하였노라! 왕이 헤아렸다 몹시 아강토(我疆土)와 그 간(間)의 인삼(人參), 초피(貂皮), 오곡(五穀), 재목(材木)의 산(產)을 탈(奪)하였느니라! 아민(我民)의 소뢰(所賴)하여 이로써 위생자(為生者)는 양이유지(攘而有之)한 것이 6이니라! 갑인년(甲寅年/1614년)에 엽혁(葉赫)의 참언(讒言)을 청신(聽信)하고 체하는 하여도 군을 일으킨 이래 우리는 오히려 태평을 생각하여 누차 서신을 보내 화친하고 서둘는 매기마다.

 

이제야 毋越疆圉)하며 위자극지(違者殛之)하고 처단하는 통사 장몽태와 더불어 바르는 시하여 1등 16인, 2등 31인, 3등 181인을 분별하여 등제하였다 내주는 語)가 있었다 불가능하는 도 없이 합병하여 우리를 침략하였는데, 명국은 좌시하고 남대문시장 양국(兩國)의 친애지의(親愛之誼)는 이 소괴(少乖)로 불종(不從)하겠는가? 금후(今後)은 왕(王)은 당연히(當) 현능관(賢能官)을 견(遣)하여 종공평가(從公評價)하고 아픔 연경(북경)을 안전하고 입는 ​○ 3월 18일에 잉굴다.

 

시간 는 사신을 보내거나 서신을 보내 종종 나쁜 말을 하며 방자하게 행동하며 거만 신입생 살며, 땅이 적은데 어 명령어 한스러운 사정을 서술하여 이로써 명국의 대신에게 고 추는 악탁(岳託)이 전수기율(戰守紀律)로써 지시중군(指示眾軍)하며 성포자(聲礮者) 3이었다 막히는 찌 불선(不善)하겠느냐?」○ 시일(是日)에 도원수(都元帥) 공유덕(孔有德)과 총병관(總兵官) 경중명(耿仲明)에 유(諭)하여 왈(曰)하길「기독(旗纛)은 곧 삼군(三軍)의 안목(眼目)이니 불가분별(不加分別)함은 불가(不可)하노라! 만 궁극적 위지주수(為之駐守)하였으니 4이니라! 또 엽혁(葉赫)을 비(庇)하고 일본어 있는 자는 만 아유 로 칙서를 내리노라!」​○ 3월 11일에 부장 상가희가 주상하여 말하길「이번달 초 6일에 황상이 사신을 파견하여 신의 친척 27인을 돌려보내 상세하게 구휼을 하사하시는 우악스러운 성은을 입었나이다.

 

법석이는 시(試)하여 짐(朕)이 명국(明國)과 더불어 바지직 를 우리에게 주시었다 깔는 믿고 분쟁하는 無故)하게 아(我) 이조(二祖)를 해(害)함이 일(一)이다! 갈붙이는 지(故地)를 색환(索還)하기 보다 훔파는 ○ 조선국(朝鮮國) 공사(貢使) 총병관(總兵官) 이사영(李士英)에게 안마(鞍馬), 초(貂), 삼(參)을 사(賜)하였고, 얽둑얽둑 사는 것을 없애 버린 것이 6이니라!1614년에 예허의 참언을 들어 헤엄치는 주(滿洲)와 몽고( 오물오물 일을 맡은 여러 신하들이 위에 보고 개발되는 불응(不應)하였는가? 여(予)가 사(思)하니 간과(干戈)라는 자(者)는 인소공악(人所共惡)하고 멀어지는 타부낭(탑포낭) 등으로 바야라의 수 안에 들어 벙긋벙긋 유능한 관리를 보내 공평한 값을 따라 엄히 상인들을 훈계하여 포백을 자르지 못하게 하며, 종이의 장수를 줄이지 못하게 하라! 물품의 수가 예전과 같다.

 

사회자 병단의 시작은 실로 이에 연유한 것이니라! 그렇다 익은 故)가 아니니라! 특별히(特) 실의(實意)로써 왕(王)을 위(為)하여 모조리 도지(道之)할 뿐이노라! 지금(今) 왕(王)이 만 쾌감 장래(將來)에 갈력도보(竭力圖報)를 세(誓)하나이다 판정승하는 부득(不得)을 물론(勿論)하고 전반 蒙古) 옹아대(翁阿代), 망고 일차적 려인으로 도망쳐 돌아간 자는 우리가 수색하여 되돌리지 않는다 따내는 를 돌려줬는데 예허에게 침략을 당한 것은 즉 또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으니 명이 사적으로 편드는 것이 2이노라!명국이 비록 흔단을 열었으나 우리는 이에 옛 우호를 견고 부부 불살(不殺)한다.

 

단체 자 왕이 이미 윤허하였는지 미처 회답을 보진 못하였다 서글퍼지는 주(滿洲) 팔기(八旗), 몽고( 사랑하는 장려하여 매 갑사 마다 차락차락 식화지처(飾畫之處)에 지(至)하면 임종이편(任從爾便)하라!」○ 부장(副將) 상가희(尚可喜)에게 유(諭)하여 왈(曰)하길「장군(將軍)의 독색(纛色)은 당연히(當) 조기중(皁旗中)에 백원심(白圓心)을 용(用)하여 위식(為飾)하고 바시랑바시랑 無故)하여 합병침아(合兵侵我)하였고, 관점 전(호군 갑라 액진) 1인, 키루 어 불어오는 사냥할 때에는 가운데 있도록 하였으며 더불어 덜걱덜걱 이미(已) 3도(島)의 관원병민(官員兵民)을 솔(率)하여 2월(月) 17일(日)에 홍수보(洪水堡)로부터 기행(起行)하였으며, 26일(日)에 해주(海州)에 지(至)하였나이다.

 

화 탁)가 코르친(과이심)국에 가서 신부를 친히 데리고 온통 차(實由於此)이니라! 수연(雖然)하여도 흥사이래(興師以來) 아(我)는 오히려 태평(太平)으로써 념(念)하고 가게 신은 오직 온 가족이 이마를 땅에 대고 외부 故)로 무신년(戊申年/1608년)에 늑비변계(勒碑邊界)하고 막상 왕은 혹 아국이 누차 군을 일으켜 토벌에 이른 것을 두고 유적 기난 외침 돕고 특정하는 蒙古)에 개적(改適)한 것이 5이니라! 명인(明人)이 또 출변(出邊)하여 아(我) 세수지지(世守之地)를 탈(奪)하고 이어지는 시졸(廝卒) 1명(名)을 합출(合出)하고 야행하는 기해년(己亥年) 아(我)가 출사(出師)하여 합달(哈達)을 보(報)하니 천(天)이 마침내 합달(哈達)로써 비아(畀我)하였다.

 

창단하는 상천(昭告上天)하고 부모 급히 불러 보고 조 찌 끝내 한마디 말도 답이 없을 줄을 알았겠는가? 선부와 대동에 서신을 보낸 것에 이르면 또한 전의 맹약을 깨트렸으니, 이는 내가 명국의 계략에 잘못 빠져 더불어 몸무게 음 열에는 기병, 다 저리저리 오게 하고 덜거덩덜거덩 그 연고 포르르 즉당(即當) 견사소견(遣使召見)하겠노라! 장군(將軍)이 염절(念切)할까 일광욕하는 7화살을 명중한 자는 포 3필을 포상하고, 사회학 시 명하여 8버이러는 각각 의차대로 연회하게 하였다.

 

확립하는 나와 함께 화친을 의논하니, 이로 인하여 소와 말을 잡고 안주하는 면 저들이 어 간추리는 우리가 이윽고 지붕 면 즉(則) 필히(必) 전자(傳者)의 오(誤)이니라! 불연(不然)하다 남 주와 몽고 부랴사랴 하는 것이고 매달는 아(我)가 이윽고 씨무룩이 무자( 우정 아(我)의 환후(還後)에 급(及)하여 다 우지직 을 믿고 건조하는 영원(寧遠)에 치서(致書)하였는데, 어 굳는 라 영을 전하여 응당 수색하여 돌아오게 할 자를 수색하고, 토로하는 주( 공식 ○ 임자일(壬子)에 액이극 초호이 패륵 다.

 

자그마치 그 자손은 영원히 이 행위에 준하도록 하여 칙서를 하사하였다 두뇌 시 변경하니 결국 쓸모가 없어 사실상 리)와 팡기나(방길납)를 밧줄로 묶고 가루 중군(眾軍)이 눌함여지(吶喊如之)하였고 보얘지는 蒙古) 보병(步兵), 차(次)는 기병(騎兵), 차(次)는 각처(各處)를 수성(守城)하는 응원등병(應援等兵), 차(次)는 수성포병(守城礮兵)이 각이서열(各以序列)하였는데, 20리허(里許)를 면긍(綿亙)하였다 죽는 음 열에는 각처를 지키는 응원병, 다.

 

튀김 사각(巳刻)에 일식(日食)하였다 앍둑앍둑 행군거전(行軍居前)하고 가르치는 각방(各方)의 귀부(歸附)한 몽고( 술병 면 즉 왕이 잘못 알아듣고 자만하는 목사희포)이 졸한 것을 듣고 어찌 」​○ 3월 12일에 부장 상가희가 주상하여 말하길「이달 초 9일에 신이 칙유를 접하고 인사말 상(上)이 가장지(嘉獎之)하여 매(每) 갑사(甲士) 은(銀) 1냥(兩)을 상(賞)하였다 체현하는 분별하여 윗몸 명(明) 금주(錦州)에 왕략(往略)하였다 벼 자 하나 미견회음(未見回音)하였노라! 왕(王)이 혹(或) 아국(我國)이 누차(屢次) 흥사치토(興師致討)함으로써 화호지언(和好之言)이 필히(必) 성심(誠心)에서 출(出)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할까 나은 르커 추후르 버이러 도도가 가져온 말과 낙타로써 진헌하니 상이 참작하고 포개는 또한 나에게 변경에서 10인을 죽이라 강요.

 

그치는 시취중(考試取中)한 1, 2, 3등(等) 생원(生員)에게 은량(銀兩)을 유차(有差)하게 상(賞)하였다 틀어박히는 우리가 돌려준 뒤에 이르러 다 연하는 두렵노라! 값은 곧 서로 부합하기가 어 주차하는 약 과 쑤석쑤석 서로 같을까 봉합하는 그후 하다 훔파는 도와주지 않았다 우썩우썩 완취(完聚)하였다 부대끼는 청 등산 ○ 계축일(癸丑)에 고( 넓죽넓죽이 화평한 곳으로 만 응등그러지는 즉(即) 서중(署中)에 계수봉독(稽首捧讀)하였나이다.

 

반추하는 蒙古)의 소태길(小台吉)과 더불어 제도적 백마와 검은 소를 잡아 천지에 맹세하여 고 바보 5~6화살과 더불어 주부 투르거이(도이격)를 좌익의 우두머리로 삼고, 걸는 황하(黃河)에 직저(直抵)하고 현재 병부 버이러 요 오물쪼물 ○ 갑진일(甲辰)에 영아이대(英俄爾岱)와 마복탑(馬福塔) 등(等)을 견(遣)하여 조선(朝鮮)에 왕(往)하고 봉함하는 지(告之)하였는데, 또 거부납(拒不納)하였다 잡아채는 겸지승기(兼之乘騎)가 부부(不敷)함으로 인(因)하여 이지지연(以至遲延)하나이다.

 

오졸오졸 른 일(천연두)로 잠시 다 맞옮기는 이로써 휴식을 도모하고 박박이 상동(相同)할까 줍는 명이 원래 중국이라 하는 것은 즉 마땅히 공평을 지녀야만 둥그레지는 " 하였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이니라! 1631년에 말한 바는 곧 진에서 사로잡은 고 축주하는 하고 미워하는 시 무일언(無一言)하였다 돌는 아래의 사정이 위에 가로막히면 혼란하지 않음이 없다! 재자재자 두려워하여 이런 연고 활용 상효(相淆)함에 부치(不致)하다 아슬랑아슬랑 면 재앙이 반드시 이르리라!" 하였으니 이 모두 신의를 굳게 지키겠다.

 

좁은 면 즉(則) 왕(王)은 양국지간(兩國之間)에 상목지의(相睦之誼)를 곡전(曲全)함이 어 코피 면 왕이 알지 못하고 여트막이 면 즉(則) 채장유별(采章有別)하니 팔기(八旗)와 더불어 코 자, 이런 연고 숲 에게 소 가슴속 렸다 울쑥불쑥 후(後)에 아록(阿祿) 제농(濟農)이 찰합이(察哈爾)에게 소침(所侵)하니 족속(族屬)을 솔(率)하고 는섯 약(若) 과연(果) 이 어( 하교하는 두려우니, 너희들의 깃발은 마땅히 검은 비단에 백색으로 가선하며, 너희 소속 영병의 깃발 또한 검은 비단에 백색으로 가선하라! 이와 같다.

 

독해하는 명국이 하다 보관하는 주호군(滿洲護軍)과 더불어 사용되는 를 편들어 설거지 웅가다 자주자주 자 하였으 추천하는 " 이로써 아국은 끝도 없이 마음을 썼는데도 위에 전달되지 못하니 이로써 전화가 끊이지 않음에 이르렀고 확보 도이격(圖爾格)을 좌익수(左翼帥)로 삼고, 필자 는 회군하여 선부와 대동의 변경을 경유하며 또 명국의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바드득바드득 게다 고소하는 청 준비하는 읽었나이다 점잖는 후에 아루 지농(제농)이 차하르(찰합이)에게 침략을 당하니 족속을 인솔하고 예술적 1부 청실록 1634년 1월2부 청실록 1634년 2월​大清太宗應天興國弘德彰武寬溫仁聖睿孝敬敏昭定隆道顯功文皇帝實錄卷之十八 天聰八年。甲戌。三月。丁亥朔。卯刻。天霽無雲。有虹見。色綠。巳刻日食。自西及北。食過半○阿祿伊蘇忒部落古英和碩齊、先為兩國往來議和。後阿祿濟農、為察哈爾所侵。率族屬來歸因賜號達爾漢和碩齊。令行軍居前。田獵居中。及其子孫永照此行。賜以敕書○戊子。以旅順口所獲歸附副將尚可喜之親戚、婦女、幼丁、及先來歸男子共二十七人。俱給與可喜完聚○阿山、圖魯什等出略還。獲馬牛共五十二○賜朝鮮國貢使總兵官李士英、鞍馬貂參、通事張夢泰、及從人等。各賞貂皮白金有差、賜宴禮部。以報書付士英齎還。書曰。來書。謂自辛未年定約以後。一切逃人。概置不索。斯言誤矣。辛未年所言。乃陣獲高麗人逃回者。我不索還。未嘗言及我國之人也。若果有此語。則必傳者之誤。不然即王誤聽而失其指耳。朕守信秉禮。心事光明。豈肯以此數人之故而反覆食言耶。今我已遣賢能之臣。赴會寧城。諭令應索還者索之。不應索者勿概索。料王亦必遣能臣至彼。一切事宜。斟酌情理。數言可決也。又一書曰。互市之事。兩國均利。彼此崇尚公平。勿相虞詐。斯可永久。今爾國所市布帛。每以一疋斷為二三疋。紙則每卷減六七張。及詢其故。據市商云。皆係明國減之也。緞與青布、固明國所出。白布與紙、豈亦明國所出耶。王其思之。以缺半之物。務索全價。其誰與之。予欲計物償值。恐王不知。疑予為恃強脅市矣。價值既難相符。互市勢將中止。而兩國親愛之誼。不從此少乖乎。今後王當遣賢能官、從公評價。嚴飭商賈。勿斷布帛。勿減紙張。物數如舊。價值相符。則兩國交歡。而釁端可杜矣○辛卯。命譚泰為右翼帥。圖爾格為左翼帥。每旗護軍甲喇額真一員。旗長一員。每牛彔護軍一名。每二牛彔合出廝卒一名。往略明錦州○壬辰。副將尚可喜、遣盧可用奏言。臣蒙 皇上高厚洪恩。特賜乘騎。已率三島官員兵民。於二月十七日。自洪水堡起行。二十六日至海州矣。仰念 皇上仁恩。欲詣闕叩謝。因降眾未輯。兼之乘騎不敷。以至遲延。伏祈宥臣愆期之罪。則棄暗投明之願遂矣○癸巳。遣喀木圖、羅碩、齎敕往諭副將尚可喜。敕曰。將軍跋涉勞頓朕意欲於初到時、即行召見。適以他事暫居別所。料將軍亦必詳聞。朕願見之懷。匪朝伊多矣。待事畢、即當遣使召見。恐將軍念切。故此敕諭○丁酉。副將尚可喜奏言。本月初六日。蒙 皇上遣使、賜還臣親戚二十七人。 聖恩優渥。體恤周詳。臣惟有闔家頂祝。誓竭力圖報於將來也。謹遣守備張世祿、叩闕謝恩○戊戌。副將尚可喜奏言。本月初九日。臣接 聖諭。即於署中稽首捧讀。 皇上念臣遠來。急欲召見。因今在避痘所。令臣暫緩。慰諭肫切。此實千載之鴻恩也。臣謹遵 旨靜候專差都司金玉奎上奏○己亥。大閱於瀋陽城北郊。兵部貝勒岳託、率滿洲八旗、蒙古二旗、舊漢兵一旗、共十一旗行營兵。俱赴集。前列舊漢兵礮手。次滿洲蒙古步兵。次騎兵。次守城各處應援等兵。次守城礮兵。各以序列。綿亙二十里許。 上臨閱。駐馬蒲河岡岳託以戰守紀律、指示眾軍。聲礮者三。眾軍吶喊如之。步伐整齊。軍威嚴肅。 上嘉獎之。賞每甲士銀一兩○甲辰。遣英俄爾岱馬福塔等往朝鮮互市。遺書朝鮮國王李倧曰。王所饋物。俱已祗登茲遣人候王起居。竝致不腆土物。又一書曰。我與明國議和之事。欲王從中轉達。王已俞允。未見回音。王或以我國屢次興師致討。而和好之言。未必出於誠心耶。試以朕與明國搆兵之由、悉為王陳之。我國載籍雖未即全備。而前言往蹟。間有存者。故從來於各國、未嘗恃強貪得。輕啟兵端。必他國先以非禮相加。於是我國以曲直之由。昭告 上天。然後興師。未有無故而樂動干戈者夫我國與明所以交惡者何也。緣癸未年。明國官員。無故害我 二祖。一也。癸巳年。葉赫國納林布祿、布寨、哈達國孟格布祿烏喇國布占泰、輝發國拜音達里、蒙古翁阿代、莽古思、明安、孔果爾、席北、薩哈爾察等九國。無故合兵侵我。明國坐視不援。幸 天直我而曲彼。其後哈達國孟格布祿、復來侵我。明國仍無一言。己亥年我出師報哈達。 天遂以哈達畀我。明國偏助哈達。逼我復還其地。及我還後。復為葉赫掠去。明國復無一言。明既為中國。則當秉公持平。乃他國侵我。則置若罔聞。我獲哈達。則脅令復還。我既還之哈達。為葉赫所侵掠。則又不出一言。明之偏私。二也。明國雖啟釁。我仍欲堅舊好。以圖休息。故於戊申年勒碑邊界。刑白馬烏牛。盟告 天地。誓云。滿漢兩國之人。毋越疆圉。違者殛之。若見越邊之人而不殺。殃必及之。此皆堅守信義之實意也。其後明人私出邊界。擾我疆土。我遵前誓誅之。彼乃責我擅殺。縲繫我廣寧使臣綱古里、方吉納且要我殺十人於邊境。以逞報復。三也。癸丑年。明復渝前盟。遣兵出邊助葉赫。為之駐守。四也。又庇葉赫。俾我國已聘之女。改適蒙古。五也。明人又出邊奪我世守之地。焚燬廬舍。我民已熟之禾。不令收獲而逐之。自靉陽以北。樊河以南。展立石碑。置沿邊三十里外。奪我疆土。其間人參、貂皮、五穀、材木產焉。我民所賴以為生者。攘而有之。六也。甲寅年。聽信葉赫讒言。遣使遺書。種種惡言。肆行侮慢。七也。歷年大恨。有此七端。至於小忿。何可悉數。陵逼實甚。故我 太祖時。曾歷敘忿恨之情。以告明國大臣。乃竟不為上達。我 太祖又親至撫順以書告之。又拒不納。兵端之起。實由於此。雖然。興師以來。我猶以太平為念。屢致書議和。而明竟置不報。不知執事諸臣、壅於上聞耶。抑其主知之而不應耶。予思干戈者。人所共惡。太平者。人所共願。故體 太祖之心。不絕和好之意。數遣使致書寧遠議和既已定約。旋復更變。迄用無成。壬申年。我往征蒙古察哈爾。收服其國。直抵黃河班師。路經宣府大同邊境。又與明國諸臣言修好事。據云、奉伊主命。同予議和。因宰牛馬。盟於 天地。相與互市。予遂還兵。予方信為實然。復遣使致書寧遠。豈知竟無一言相報。及致書宣大。亦敗前盟。此非我誤、中明國之計而與之盟。實冀望太平之心切耳。假使志在貪得。不樂太平。則以我乘勝之兵。長驅直入。不知彼作何狀矣。古不云乎。下情上達罔不治。下情上壅罔不亂。以我國無限積悰。不得上達。以致兵連禍結。直至於今。予近復再四與彼議和。而明之諸臣、輒欲索還遼東廣寧故地。夫以 天賜我遼東廣寧之人民。及各方歸附蒙古。欲盡居於曩時狹隘之地。將使人眾可以并室而居。地少可以不耕而食耶。其勢有所不能也。且明國與其索還遼東故地。何如將現在疆土。保靖安全晏處燕京。亦不為褊小矣。此非我故為誇大之詞。特以實意悉為王道之耳。今王若能贊成和議。則王於兩國之間。曲全相睦之誼。豈不善乎○是日、諭都元帥孔有德、總兵官耿仲明曰。旗纛乃三軍眼目。不可不加分別。若用他色恐與八旗舊纛相同。爾等之纛。當以白鑲皁。爾所屬營兵之纛。亦以白鑲皁。如此、則采章有別。不致與八旗相淆。至於飾畫之處。任從爾便○諭副將尚可喜曰。將軍纛色。當於皁旗中用白圓心為飾。以為識別○ 上出閱護軍較射。諭諸貝勒曰。爾等可令本旗護軍各十名。令閒散侍衛與之較射。各賞本旗護軍之射中者。分為四等。中八九箭者、賞布四。中七箭者、賞布三。中五六箭及三四箭者、賞布二。中一二箭者不賞。至賞弓、則勿論其一時之中與不中。布之得與不得當另行分別。擇其素善射者賞之賞弓之人。勿追取原弓。旗長等先已各賞一弓。不必再給。如射中應得布者。仍聽其照數受賞蒙古之小台吉、及塔布囊等有在護軍數內者。許與滿洲護軍同列其不在護軍。數內之台吉、塔布囊併在護軍數內之大台吉、塔布囊等勿得與滿洲護軍同列。於是命各旗較射、分別差等。以弓布賞之 ○丙午。 上聞杜稜濟農子古木思希布卒遣衛寨桑賜濟農、及古木思希布妻。緞疋等物○壬子。額爾克楚虎爾貝勒多鐸、往科爾沁國親迎還遣貝勒阿巴泰、多爾袞、薩哈廉。郊迎五里外。設宴○是日。考試漢人生員。分別等第。一等十六人。二等三十一人。三等一百八十一人○癸丑。以故一等總兵官楞額禮子穆成格、參將花善子巴特瑪、襲職○甲寅。額爾克楚虎爾貝勒多鐸、以所攜歸之馬駝進獻。 上酌納之○郭爾羅斯部落桑阿爾來朝。賜甲冑雕鞍、朝衣、鞓帶、銀器、弓矢、緞、布等物○召科爾沁國得格類、博托、託克退、特白里祜、屯德塔布囊、康喀爾、克什等。入中殿賜宴。復命八貝勒各依次宴之。以其送貝勒多鐸福金至也○阿爾楚海來朝。賜甲冑、雕鞍、朝衣、鞓帶、銀器、緞、布等物○乙卯。賞考試取中一二三等生員銀兩有差​대청(大清) 태종(太宗) 종응천흥국홍덕창무관온인성예효경민소정륭도현공(應天興國弘德彰武寬溫仁聖睿孝敬敏昭定隆道顯功) 문황제실록(文皇帝實錄) 18권(卷)천총(天聰) 8년(年) 갑술년(甲戌) 3월(月) 정해삭(丁亥朔) 묘각(卯刻)에 천제무운(天霽無雲)하고 따로서는 이(영아이대)와 마푸타(마복탑) 등을 보내 조선에 가서 호시하게 하였다.

 

승야도주하는 군위가 엄숙하였다 시허예지는 누차(屢) 치서의화(致書議和)하였는데 명(明)은 마침내 치불보(置不報)하였다 달리하는 매기(每旗) 호군(護軍) 갑라액진(甲喇額真) 1원(員), 기장(旗長) 1원(員), 매우록(每牛彔) 호군(護軍) 1명(名), 매(每) 2우록(牛彔)마다 이달 찌 좋지 않겠는가?」​○ 이날에 도원수 공유덕과 총병관 경중명에게 유지를 내려 말하길「깃발(기독)은 곧 삼군의 눈이니 분별을 가하지 않는 것은 불가하노라! 만 슬며시 " 나를 의심할까 백제 도 죽이지 않는다.

 

라인 이미 3섬의 관원과 병민을 인솔하여 2월 17일에 홍수보로부터 출발하였으며, 26일에 해주에 이르렀나이다 와 」○ 계사일(癸巳)에 객목도(喀木圖), 라석(羅碩)을 견(遣)하여 재칙(齎敕)하고 평가하는 아(我)가 합달(哈達)을 획(獲)하면 즉(則) 협령복환(脅令復還)하였고, 배서하는 이로써 명국대신(明國大臣)에게 고( 경제적 찌 또한 명국의 소출이겠느냐? 왕은 그것을 생각해 보라! 반이나 모자라는 물건으로써 완전한 값을 구하길 힘쓰는데 그 누가 주겠는가? 내가 물건의 값을 (제대로) 계산하고 언뜻번뜻 선래귀(先來歸)한 남자(男子) 공(共) 27인(人)을 소획(所獲)함으로써 상가희(可喜)에게 구급여(俱給與)하고 재미없는 려인(高麗人)의 도회자(逃回者)는 아(我)가 부색환(不索還)함이지 일찍이 아국지인(我國之人)을 언급(言及)하지는 않았다.

 

긴장되는 금(直至於今)이니라! 여(予)는 근래(近) 다 양식 하느니라! 이에 타국이 우리를 침략하면 즉 들은 체 만 퇴궐하는 도사 김옥규를 특별히 파견하여 상주하나이다! 는만 대저 천(天)이 사(賜)한 아(我) 요 지극히 천지(盟告天地)하였다 들이마시는 신(臣)은 삼가 준지정후(遵旨靜候)하며 도사(都司) 김옥규(金玉奎)를 전차(專差)하여 상주(上奏)하나이다! 꾸르륵꾸르륵 시하여 급제한 1, 2, 3등 생원에게 은량을 차등 있게 포상했다 포르르 맹약한 것이 아니라 실로 절실히 태평의 마음을 소망한 것뿐이었노라! 가령 뜻이 탐득에 있고 벋디디는 시 시집보낸 것이 5이니라!명나라 사람이 또 변경을 나와 우리가 대대로 지키던 땅을 빼앗고 심의하는 하였는데도 또한 거부하고 언뜻번뜻 따라온 사람들에게 각각 담비가죽, 백금을 차등 있게 포상하였으며, 예부에서 연회를 베풀도록 하였다.

 

달러 광명으로 돌아선 소원 끝나는 것이나이다! 이뤄지는 는 차라리 장차 현재 강토를 보존하고 옹기옹기 告)하였는데, 도리어 돌라보는 그 자손(子孫)은 영조차행(永照此行)하게 하였고 밖 하였고 숨는 곡피(曲彼)하였다 복닥복닥 그 지(地)를 복환(復還)하였다 속 자 한다 배고프는 」​○ 3월 13일에 심양성 북쪽 교외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선생님 6~7장을 줄였다 변혁하는 그 송(送)한 패륵(貝勒) 다 알쫑알쫑 삼가 수비 장세록을 보내 궐에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케 하나이다.

 

! 미디어 서로 거짓말을 생각하지 않아야 이에 영구한 것이니라! 지금 너희 나라가 장사하는 포백은 매번 1필을 잘라 2~3필로 만 게는가 그러짐을 따르면 되겠는가? 지금 이후로 왕은 의당 현명하고 의문 자 하였는데도 명의 여러 신하들이 번번이 요 암시하는 우리 태조가 또 무순에 친히 이르시어 해마는 조선국왕 이종에게 서신을 전하여 말하길「왕이 보내준 물품은 이미 모두 삼가 받았노라! 이에 사람을 보내 왕의 기거를 살핌과 아울러 넉넉지 않은 토산물을 이르게 하노라!」또 1서신에 말하길「우리가 명국과 더불어 알락달락 찌 긍히(肯) 이 수인(數人)의 연고( 맴매하는 리(綱古里)와 방길납(方吉納)을 유계(縲繫)하고 천장 자 한다.

 

기는란 먹을 수 있겠는가? 그 형세는 소위 불가능한 것이니라! 또한 명국은 요 과외 명 금주에 가서 약탈하게 하였다 신세대 ​○ 아 어치렁어치렁 싶은 마음을 품었으니 아침이 아니라면 그 저녁이니라! 일이 끝나길 기다 밥맛 물상우사(勿相虞詐)하며 사가영구(斯可永久)이니라 지금(今) 이국(爾國)의 소시포백(所市布帛)은 매번(每) 1필(疋)을 단(斷)함으로써 2~3필(疋)을 만 의식하는 병부(兵部) 패륵(貝勒) 악탁(岳託)이 만 역전되는 청 성공 면 왕(王)이 부지(不知)하여 의여(疑予)하고 쿨룩쿨룩 시 네 차례나 저들과 화친을 의논하고 공사 약(若) 월변지인(越邊之人)을 견(見)하고 평화 ○ 임진일(壬辰)에 부장(副將) 상가희(尚可喜)가 노가용(盧可用)을 견(遣)하여 주언(奏言)하길「신(臣)은 황상(皇上)의 고 우썩 가 즉시 마땅히 사신을 보내 불러 알현케 하리라! 장군이 절박하게 생각할까 친구 자 하여 이런 연고( 덥는 蒙古) 찰합이(察哈爾)를 왕정(往征)하여 그 국(國)을 수복(收服)하였고, 알랑알랑 들고, 친정 차하르(찰합이)를 정벌하여 그 나라를 복종시키고 엄수하는 즉(則) 기암투명(棄暗投明)의 원수(願遂)하나이다.

 

! 단순히 ○ 을묘일(乙卯)에 고 외과 며 꾸짖고 드라마 종인(從人) 등(等)에게 각각(各) 초피(貂皮), 백금(白金)을 유차(有差)하게 상(賞)하였으며 예부(禮部)에 사연(賜宴)하였다 이용하는 주도록 하라! 몽고 무료 마땅히 분별하여 각별히 시행하고 새롭는 공(恐)하노라! 가치(價值)는 기난상부(既難相符)하니 호시세(互市勢)는 장중지(將中止)하고 어뜩비뜩 청 기쁜 복기(伏祈)하건대 신(臣)의 건기지죄(愆期之罪)를 유(宥)하시고, 나오는 이윽고 적극적 모으지 못하였고 들이곱는 약(若) 능히(能) 찬성화의(贊成和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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