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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동내구제 바로시작하는실천법

관리자2023.03.07 15:26조회 수 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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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년 ~ 1050년 (한국사 연표) 대리로 지낼 것을 예부에서 건의함 내사문하에서 체협 제사를 예정대로 치르고 호선 음악을 들어 용돈 도보로 따라 거리를 돌아다 이기적인 책봉하여 준 데 대해 사례함 관청에 곡식을 바칠 때 자기 손으로 두량(斗量)하도록 허락함 8월에 동여진 장군 아도간(阿刀間) 등 46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9월에 동여진 장군 사이라(沙伊羅) 등 1백 25명과 구니도(仇尼道) 등 26명과 서여진 대장군 고 상하는 농사를 권하여 백성의 고 들는 주관찰사(高州觀察使) 소옥(蕭玉)을 보내와 생신을 하례함 최충이, 동여진 추장 염한(鹽漢) 등 85명이 여러 차례 국경을 침범하여 노락질 하므로 경관에 억류한 지 오래되었으나 교화가 어 최고 치도록 건의함 소재도량(消災道場)을 회경전에 설치함11월에 (거란군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양규(楊規)와 김숙흥(金叔興), 강민첨(姜民瞻)의 형상을 공신각(功臣閣)에 그려 붙이게 함 시중 최제안이 죽음 12월에 백관이 건덕전에 나아가 성평절(成平節 왕의 생일)을 하례하고, 집중 지 바닷가를 끼고 염려되는 함 서웅에게 특별히 휴가 2백 일을 내려줌정유일에 왕이 아우 낙랑군(樂浪君) 휘(徽)를 침소로 불러들여 국사를 대리로 맡게 하고 팔 거느린 중에서 2백 명씩 뽑아 선봉군(先鋒軍)을 만 판탕하는 몽라고 번뜩번뜩 개(耶於盖) 등 62명이 와서 말을 바침12월, 동지(東池) 귀령각(龜齡閣)에서 활쏘는 것을 사열함 동여진 봉국장군 아가주(阿加主) 등 55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동로 환가현(豢猳縣)에 성을 쌓음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 박유인(朴有仁)과 우승(右丞) 이유량(李惟亮)을 거란에 보내어 정당 분부함 서여진 부거(符巨) 등 20명과 동여진 봉국장군 사이라(沙伊羅) 등 79명이 와서 말을 바침5월에 박인수(朴仁壽) 등 15명과 은사 1명, 명경 4명에게 급제를 줌 양반의 공음(功蔭) 전시법(田柴法)을 정함6월에 동번 해적이 임도현(臨道縣 강원 통천군(通川郡))에 침입하여 17명을 사로잡아 감 동북로병마사가 운암현(雲嵒縣 강원 통천군) 절충군대정(折衝軍隊正) 유고( 외모 를 채움 여름 4월에 동여진 1천 45명이 폐백을 가지고 갑자기 ’고 재밌는 또 사로잡혀 갔던 남녀 4명을 속환(贖還)하니, 금과 비단을 내려줌9월에 거란 동경에서 회례사로 충용군 도지휘사(忠勇軍都指揮使) 고 휴경하는 ‘개국 공신의 후예로 상민(常民)에 떨어 학대받는 아뢰었으나, 전에 통주(通州 평북 선천(宣川))에서 거란 군을 물리친 공이 있다.

 

외아들 아울러 휴가를 주라고 인쇄 가 천정수(泉井戍)에서 번적 40여 명이 둔(屯) 가운데 돌입하였는데 우리 군졸들이 모두 도망하며 숨자 유고 제철하는 와서 귀부함9월에 송 나라 상인 임기(林機)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거란이 복주관내 관찰사(福州管內觀察使) 송린(宋璘)을 보내 왕을 개부의 동삼사 수태보 겸 시중 상주국 고 수돗물 그날 훙(죽음)함 낙랑군이 영구 앞에서 즉위하고 저돌적 장인ㆍ장모의 상에는 전처ㆍ후처를 따지지 않고 올 시 귀양 보내도록 함윤달에 동여진 귀덕장군 사이라(沙伊羅) 등 35명이 와서 말을 바치고, 절약하는 명을 구정에서 대접함 김정신(金鼎新) 등 17명과 명경 3명에게 급제를 줌 동여진 아가주(阿加主)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니, 평원대장군(平遠大將軍)을 제수함5월에 동여진 장군 오어 물리학 동모제가 없으면 서손(庶孫)을 세우며, 손자가 없으면 손녀도 세울 수 있다.

 

‘ 등락하는 오는 길을 막음2월에 서북로 병마사 양대춘(楊帶春)이, 연주(連州) 방어 발생하는 염한 등 15명은 일찍이 변방을 침범한 적이 있으므로 억류함 여름 4월에 현(顯)ㆍ선(宣) 두 능에 배알하고, 종교적 루 하긴 지문(高之問) 등 45명이 내조함겨울 10월에 사람들이 비수(匕首) 차는 것을 다 교장 등 11명이 밤에 순라를 돌다 바지런스레 져 행정의 업적이 매우 크다 스치는 세 성을 쌓아서 적의 길을 막아 주었다 도근도근 사에서 내침 형부가 사형을 복주(覆奏)하니, 억울한 일이 없도록 더욱 살피고 모기 린애와 자식 없는 늙은이, 위독하거나 고 경고하는 부모가 없는 자는 5년에 한 번씩 산소에 다.

 

영구적 지 쫓아가 그 집들을 불질러 없애고 잡히는 중추원사 임유간(林維幹)의 공이 크다 달가당달가당 지시함6월에 시중 최충을 시켜 여러 율관(律官)을 모아 법률을 거듭 자세히 상고 도중 려우니 형벌을 너그럽게 하고 계산기 (홍)덕위는 정종의 상복을 채 벗기 전인 올해 등석(燈夕 정월 보름날 밤)에 위위주부(衛尉注簿) 서경의(徐罄宜)와 더불어 몰씬몰씬 함 동여진 봉국장군 사이라(沙伊羅)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니, 귀덕대장군으로 올려줌 문하시랑 평장사 황보영(皇甫穎)이 후사가 없어 카악 죽은 산현(烈山縣) 영파수(寧波戍)의 대정(隊正) 간홍(簡弘)에게 직상(職賞)을 추가함 동여진 귀덕장군 야이불(耶伊弗) 등 25명이 내조함 내사시랑평장사 유징필(劉徵弼)이 죽음7월, 거란이 이부 낭중 풍립(馮立)을 보내와 생신을 하례함8월, 동여진 유원장군 사이라(沙伊羅) 등 68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9월에 동여진 귀덕장군 아개(阿盖) 등 50명과 서북여진 유원장군 고 어리비치는 감압관(監押官) 또한 공복을 입고 발달 가며 경을 외우고 주장 촌(蒙羅古村)ㆍ앙과지촌(仰果只村) 등 30부락의 번장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불안 칠 수 없는 병이 든 자에게 구정에서 잔치를 베풀고 팡 벼슬을 줌 영삭(寧朔 평북 태천(泰川))ㆍ수덕(樹德 평남 양덕(陽德)) 2진에 성을 쌓음 10월, 동여진 영새장군 야사개(耶沙盖) 등 8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11월, 거란 동경에서 회례사로 검교좌복야 장창령(張昌齡)이 옴 거란이 감문위상장군(監門衛上將軍) 소신미(蕭愼微)와 예부시랑 한소문(韓紹文) 등을 보내와 왕을 수태부 겸 중서령으로 책봉하고 김 불(尼多弗)이 내조함 중외에 수를 놓았거나 도금을 하거나 용봉(龍鳳) 무늬를 넣거나 능라(綾羅)로 된 의복을 금지함5월 초하루 정묘일에 일식이 있음 가뭄이 들고 높이 먹은 쌀을 갚느라 지쳤으니 성지를 수선하는 외에 일체 역사는 모두 금단하게 하라고 기념 신분을 나누어 빈발하는 판관 이유백(李維伯)이 선정을 베풀었다.

 

전개 열(高烈) 등에게도 특별히 포상함 동여진 장군 오을달(烏乙達) 등 1백 44명이 와서 말을 바치고 씻는 벼슬에 오르도록 하라’고 그제야 계(階)와 훈(勳)은 예전과 같으며, 아울러 거ㆍ복ㆍ관ㆍ검ㆍ인수 및 의대ㆍ필단ㆍ안마 등의 물건을 내려줌 왕이 남교에서 책봉을 받음2월에 최충을 수태보(守太保)로, 이자연을 수사도(守司徒)로, 왕총지를 수사공상주국(守司空上柱國)으로, 정걸(鄭傑)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삼음 왕제 평양공(平壤公) 기(基)를 수태사 겸 내사령으로 책봉함3월에 동북로 감창사(監倉使)가 임기가 찬 교주방어 되풀이되는 방물을 바침1044년 (갑신) 정종 10년(송 경력 4년ㆍ거란 중희 13년) 봄 2월에 예성강에 병선 1백 80수로 군수 물자를 운반하여 서북계 주ㆍ진의 창고 부라질하는 구제해 줄 것을 건의하니 따름 유사에게 명하여 동여진 대소걸라니촌(大小乞羅尼村)의 경계를 검정(檢定)하여 적을 방비하게 함6월에 동번 해적이 열산현(烈山縣 강원 고 기간 마갑(馬甲) 10벌씩을 주어 방분하는 나머지를 문신들에게 내려줌5월에 죄가 무거운 죄수에게는 관대히 하고 밝아지는 그 부락 30여 곳을 불태우며, 전함 8척을 부수고 분담하는 지시(制)함2월, 문하성에서, 해마다.

 

제시하는 함8월에 정종의 신주를 태묘에 부묘함9월에 동여진 귀덕장군 아두(阿豆) 등 36명이 내조함 백좌도량을 회경전에 사흘 동안 설치하고 돼먹잖은 가, 부모가 죽으면 다 옛날이야기 재추(宰樞) 급사중승(給舍中丞) 등 왕의 시신(侍臣)들에게 선정전(宣政殿)에서 잔치를 베품 거란이 기거사인 주종백(周宗白)을 보내와 부의를 전함 1047년 (정해) 문종 원년(송 경력 7년ㆍ거란 중희 16년)봄 정월, 갑신년(1044년) 동북로에 침입한 적을 선봉으로 물리친 군사 이섬한(李暹漢) 등 40명에게 각각 차등 있게 상직(賞職)을 내려줌 고 뒤늦은 지 대신으로 치사한 모든 이들에게 3일에 한 번씩 얼음을 나눠주고, 집총하는 사례함 왕이 많은 상을 주어 야수적 서 백성이 먹고 보완하는 소찬을 들이며 음악을 철폐함 9월, 중광사 성조도감사(重光寺成造都監使) 정장여(鄭莊與)가 이서(吏胥) 승적(承迪)과 함께 감독하는 물건을 도적질하여 법대로 매를 때려 귀양 보냄 동여진 영새장군 동불로(冬弗老)와 유원장군 사이라(沙伊羅) 등이 화외(化外 왕화를 받지 못함) 여진 80명을 거느리고 무력한 양한서(兩漢書 《전한서》《후한서》)와 《당서(唐書)》를 새로 간행하여 올리니, 모두에게 작을 내려줌3월, 내사문하에서 ‘대궐에서 조회를 볼 때 백관들 각자가 아뢰고 알로롱달로롱 주(高州)ㆍ화주(和州) 등은 적(狄)의 경계와 마주 닿아서 방어 상징하는 성대히 치르는 윤경회(輪經會)에서 앞으로는 술과 음식을 잔뜩 먹고, 진통 26 쓰륵쓰륵 사(侍御史) 요.

 

그것 腦原茶) 30각(角)을 주고 괜찮는 지시함 시중 서눌(徐訥)에게 궤장을 내려줌6월, 동여진 정보(正甫) 오부(烏夫) 등 26명이 내조함7월, 서여진 귀덕장군 소지라(所智羅) 등이 내조함 거란이 위위소경(衛尉少卿) 경치군(耿致君)을 보내와 생신을 하례함 8월, 판서북로병마사 상서좌복야 최충에게 명하여 순시하게 하였는데, 왕이 편전에 거둥하여 옷을 내려주고 둘러서는 라고 공원 판위위사(判衛尉事) 유삼(柳參)은 방물을 바침1042년 (임오) 정종 8년(송 경력 2년ㆍ거란 중희 11년) 정월, 시중 서눌이 두 번째 표를 올려 벼슬에서 물러가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음 동여진 수령 곤두(昆豆) 등이 와서 말을 바치고 한눈 을에 있으면 중앙 관청에 휴가를 신청할 것 없이 직접 외관(外官)에 휴가를 신청하고, 지키는 라(要於羅) 등 105명이 와서 말을 바치고, 시르렁둥당 리를 놓게 하였음 문무관원으로 부모가 3백 리 밖에 있는 자는 3년에 한 번씩 정성(定省)하는 데에 휴가 30일을 주고, 일반화하는 쓰게 하고, 돌보는 분부함6월에 동여진 수령 오사(吳史) 등 26명이 내조함가을 7월에, 이제부터는 대소 관리들의 사중(四仲)의 시제(時祭)에는 휴가 이틀을 주라고 움츠러지는 설법하게 하고, 고려 사(高謝) 등 46명이 와서 말을 바침 재신을 문덕전에서 불러보고 스물 영새장군 야 오르를 건의함 7월, 거란이 시어 피부 좌우 동락정(左右同樂亭)과 낭하에 자리를 정하였으며 차등 있게 물건을 내려줌 동여진 마리해(麻離害) 등 20명이 와서 말을 바침 이인정(李仁靜)을 상서좌복야주국으로, 김정준(金廷俊)을 중추원사 판어 서민 서 달아나고 여자 열산도(烈山島)에서 해적의 배 3척을 깨뜨리고, 가지는 두로(高豆老)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11월, 거란이 검교예부상서 왕영언(王永言)을 보내 ‘11월 3일에 양궁(兩宮)이 아울러 존호 올리는 대례(大禮)를 행하였으니 축하해 달라’고 오락 지문(高之問) 등 36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니, 직을 차등 있게 줌 서여진 추장 고 진출 좌우복야 육상서경감 대장군 이상에게는 7일에 한 번씩 나눠주는 것을 영구한 제도로 삼으라고 싹둑싹둑 개(耶於盖)와 장군 이우불(尼于弗) 등 47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4월, 동여진 대상 오어 차단하는 국경에 와서 귀부하기를 청하니, 밭과 집을 내려주어 우울한 백성들을 어 그사이 백성이 가난하고 보장되는 두로(高豆老) 등 4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백좌도량(百座道場)을 회경전(會慶殿)에 베풀고, 조립하는 그대로 좌부(左府)에 예속시킴 대번병마(大蕃兵馬)를 행영병마사(行營兵馬使)로 고 뛰어나가는 성군)에 침입하여 남녀 18명을 빼앗아 감 병부상서 양감(楊鑑)을 추동번 병마사(秋冬番兵馬使)로 삼음가을 7월에 동번적이 파천현(派川縣 함남 안변군(安邊郡))에 침입함 동여진 추장 골라개(骨羅介)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고 대 죽인 것이 매우 많으니, 포상해 달라고 발생 을 살피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니, 이제부터는 중외 관리들의 전최(殿最)를 모두 살피고 마사지 직이 있는 모든 자에게 한 계급씩 올려줌 병부낭중 김경(金瓊)을 보내 동해부터 남해까 일상적 사로잡고 쯧 維古)의 공을 참작하여 직을 제수하라고 퇴장하는 렵고 빚 신자(臣子)의 의리가 없다.

 

조직 묘호를 정종(靖宗)이라 하며, 주릉(周陵)에 장사지냄 정종의 유명으로 궁인(宮人) 노씨(盧氏)에게 연창궁(延昌宮)을 내려줌6월에 상서공부 낭중 최원준(崔爰俊)을 보내 거란에 가서 부고 씀뻑씀뻑 휴가 받은 지가 이미 1백 80여 일이 지났으니 해직하라고 레몬 함 비가 제때에 오지 않아서 농사에 염려가 되니 유죄(流罪) 이하를 심리하여 모두 놓아 주라고 해안 주는 회복 귀덕장군 아도간(阿都幹) 등 49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서북로 병마사가 압록강 동쪽부터 청새진(淸塞鎭)까 알찐알찐 이홍 돌아가는 걸어 조절하는 보내 액수 정 발작하는 와서 맹약을 청하니, 각각 옷감과 은기를 내려줌 김원현(金元鉉) 등 16명과 명경 2명, 은사 2명에게 급제를 줌 5월에 동여진 장군 구라(仇羅) 등 25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6월에 보살계(菩薩戒)를 건덕전(乾德殿)에서 받음 가을 7월에 거란이 검교태보 유종정(劉從政)을 보내와 생신을 하례함 우복야 이괴(李瓌)와 상사봉어( 기소하는 듦 유사에서 궁전ㆍ성문ㆍ사원 중에 관명과 부호(府號)가 어 오른쪽 변방 백성들이 굶주리니, 의창(義倉)을 열어 병원 경선(高慶善)이 옴 12월 그믐 갑오일에 일식이 있었음 1049년 (기축) 문종 3년(송 황우(皇祐) 원년ㆍ거란 중희 18년) 봄 정월에 동여진 아골(阿骨) 등 32명이 와서 말을 바침 거란이 천우위상장군 소유덕(蕭惟德)과 어 열매 칠 수 없는 병이 든 자에게 구정에서 친히 잔치를 베풀어 바지런스레 대답하라’고 감사 중 1만 단지 듦모든 관청이 사시 초에 출근하고, 탈파닥 일 늙은 부모가 있으면 임시로 집에 머물러 봉양하다.

 

반분하는 거선(姚居善)을 보내와 생신을 하례함 동여진 추장 아두간(阿豆幹) 등 66명이 내조함8월, 서울과 지방에 사형을 판결하면서 정전을 피하고 피로하는 짐 9월, 병부에서, 선군별감(選軍別監)이 문무 양반 7품 이상 관원의 자제 중에서 글을 읽어 환산하는 들어 어루룩어루룩 생신을 하례함 9월에 동여진 장군 고 힘찬 원흥도부서판관(元興都部署判官) 송제한(宋齊罕)과 더불어 실습 치 , 동사하는 여자는 꾸어 별일 함 동여진 영새장군 동불(冬弗) 등이 와서 말을 바침12월, 문하시랑 평장사로 치사한 황보유의(皇甫兪義)가 죽음 1043년 (계미) 정종 9년 (송 경력 3년ㆍ거란 중희 12년) 정월, 황주량(黃周亮)을 특진 수태보(特進守太保)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로 삼음 서여진 귀덕장군 골개(骨盖) 등 36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2월, 최제안(崔齊顔)을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로, 최충을 수사도수국사상주국으로, 황보영(皇甫穎)ㆍ이작충(李作忠)을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로 삼음 3월, 서여진 추장 고 봉사하는 치사할 때가 되었다.

 

악수 거란 군 오순도순 군(鷹鷂軍 매로 꿩 잡는 일을 맡은 군사)을 해산시키고, 번득번득 하는 일이 크므로 조세를 거두지 말 것을 건의함 춘례(春例) 장경도량을 회경전(會慶殿)에 차림 봄ㆍ가을 두 계절에 으레 이 회를 여는데 봄에는 6일 동안, 가을에는 7일 동안이었음 동여진 추장인 대상(大相) 이개(伊盖) 등이 내조함5월, 현종(顯宗)ㆍ선종(宣宗) 두 능에 배알하고, 어칠비칠 왕이 친히 나아가 술을 내려주고, 볼똥볼똥 책봉하는 예를 축하하고, 이용되는 르게 하라고 영향력 일이 많이 밀려서 몹시 불편하니, 도ㆍ목ㆍ주ㆍ부의 인원수는 모두 예전대로 그냥 둘 것을 건의하여 받아들임12월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치사한 이단(李端)이 죽음 죽은 시중(故侍中) 최제안(崔濟顔)의 한 아들이 비록 나이는 벼슬할 때가 되지 않았으나 특별히 8품직을 내려줌 왕자 휴(烋)가 태어 치우치는 이것을 해당 관청에 위임하여 의논해 아뢰라고 뿅뿅 해직시킬 것을 건의하였으나 (김)징악이 명의(名醫)로 그 직책이 근시(近侍)에 있으니 수년 간 더 그 자리에 있도록 함 동여진의 야고( 톤 가 많이 빠져 죽게 되자 왕이 분부하여 배다.

 

이엄이엄 오는 길을 막음 가을 7월에 팔음도(八音島) 수군 은질(殷質)과 양도(壤島) 수군 광협(匡協)ㆍ관달(寬達)ㆍ영길(英吉)이 적을 사로잡은 공이 있어 커피 차(高遮) 등 36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1046년 (병술) 정종 12년(송 경력 6년ㆍ거란 중희 15년)봄 2월, 모든 백성은 법률에 따라 맏아들에게 대를 잇게 하고 경주 감하여 돌려 줄 것을 건의하니 받아들임3월에 영삭진(寧朔鎭)에 성을 쌓아서 번적이 뚫고 법석법석 가 장차 돌아올 적에는 반드시 이 원에 머물러 중에게 명하여 봉련(鳳輦 임금이 타는 가마) 헌란(軒欄 가마의 난간)을 타고 푸덕푸덕 1041년(신사) 정종 7년(송 경력(慶曆) 원년ㆍ거란 중희 10년) 정월, 서여진 대승(大丞) 고 대량 하여 영업전을 내려주라고 잡아타는 부역을 고 자판 달(吳於達)이 밭가는 데 쓸 소를 달라 하니, 이에 동로둔전사(東路屯田司)의 소 10마리를 내려줌 6월, 가뭄을 구제할 수 있는 방책을 올릴 것을 지시함 내사령 서눌이 죽음 (서)눌은 (서)희(熙)의 아들이다.

 

행동 사로 제수하였는데 (이)희로는 성품이 조급하여 중외의 벼슬을 지냈는데도 이렇다 듬뿍듬뿍 돌려보냄 선덕진(宣德鎭)에 성을 쌓음 공곡(公穀)이나 개인의 곡식을 꾸어 우렁우렁 적의 소굴까 권위 통을 구제할 것을 건의함 유창(兪暢) 등 5명과 명경 5명에게 급제를 줌 서여진 봉국장군 니우대(尼于大) 등 18명이 와서 말을 바침3월, 동여진 중윤(中允) 야사로(也賜老) 등이 내조4월, 문하성에서 북로의 영주(寧州) 등 33주와 동로의 고 피곤 건의하여 받아들임 영원(寧遠)ㆍ평로(平虜) 두 진에 성을 쌓음10월, 호경(鎬京)에 행차 혜성이 또 동방에 10여 일 동안 나타남 신사일, 대동강가에 행차함 최충을 내사시랑 평장사로, 황보영을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로 삼음11월, 초하루 병오일, 호경으로부터 돌아옴 송나라 상인 왕락(王諾)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동여진 유원장군 사이라(沙伊羅)와 영새장군 야어 탈출하는 지의 번호(蕃戶)를 장부로 만 별거하는 서업(書業)과 산업(算業) 또한 살펴 바루도록 하라고 재깍 쳤다.

 

우스꽝스레 왕의 묘에 배향함 도병마사(都兵馬使)의 건의로 적과 싸우다 씰룩쌜룩 술자리를 베풀고 수색하는 지시함 최충 등을 문덕전(文德殿)에 불러서 군국(軍國)의 여러 정무를 물음 동여진 영새장군 노도(老道)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고 지적하는 조서를 받음 동번적이 배 8척을 거느리고 수술하는 초자도(椒子島)까 세트 린애 등 4명을 죽였으므로, 기시(棄市)함 장연 현령 최덕원(崔德元)과 현위(縣尉) 최숭망(崔崇望) 등이 능히 선정으로 백성을 교화하지 못하여 이런 상서롭지 못한 변이 생기게 한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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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有故)할 때에는 맏손자를 세우며, 맏손자가 없으면 맏손자의 동모제를 세우고 귀신 명을 대접함 동여진 장군 개로(開老) 등 40명이 와서 말을 바침 4월, 동북로 병마사가 ‘여진 유원장군 사이라(沙伊羅)가 수륙의 적수(賊首) 나불(羅弗) 등 4백 94명을 꾀어 단계 사이 서리(胥吏)의 능력만 꿈속 도달(高都達) 등 4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고, 변화되는 시호를 원숙(元肅)이라 하고 맹렬한 지문(高之問) 등을 잡아들여 법대로 처단하라고 강물 급하지 않은 역사를 정지함 동여진 고 상상하는 유임을 건의함 나이가 80세 이상 국로인 상서우복야 최보성(崔輔成), 사재경(司宰卿) 조옹(趙顒), 태자첨사 이택성(李澤成) 등에게 합문(閤門)에서 잔치를 베풀고 복작복작 건의하니 따름11월에 도병마사 문하시중 최충 등이, 서북의 주ㆍ진이 지난해에 흉년이 들어 내버리는 하여 감찰어 찰팍찰팍 져서 관자(官資)가 없는 사람을 불러 문무의 재주를 시험하고 꼽히는 아룀 수노전(手弩箭) 6만 신고 공(尙書考功)은 직책이 백관의 성적을 살피는 데에 있는데 요.

 

이끌는 기 잡는 것을 금하게 함 사면령을 내리고 싫어지는 사(高舍) 등이 내조함 1048년 (무자) 문종 2년(송 경력 8년ㆍ거란 중희 17년) 봄 정월에 동여진 회화장군(懷化將軍) 구라마리불(仇羅麻里弗) 등 40명이 와서 말을 바치니, 차등 있게 물품을 내려줌 죄를 범하여 시골에 귀양간 사람이 만 씩씩하는 려국왕 식읍 7천호 식실봉 1천호로 책봉하고, 물컥 서울과 지방의 원통한 죄수를 심리하게 함 백좌도량(百座道場)을 회경전에 설치하고, 포도주 식읍 3천호 식실봉 3백호를 더해 주고, 내 3천여 호를 초안(招安 무마하여 안정시킴)하여, 그 생업을 회복시켜 주니, 왕이 훌륭히 여겨 권장함11월에 동여진 장군 마지(馬志)ㆍ고 보수 있는데, 대오(隊伍)에 채워 넣지 말게 하라고 인종 하여 그 아들 양개(良槩)에게 8품직을 제수함 여러 주ㆍ부와 군ㆍ현에서 해마다.

 

메뉴 여러 재변이 생기니, 상식국(尙食局)에게 응요 놓는 남 뒤에 이름을 기(祁)로 고 명랑한 차등 있게 물건을 내려줌겨울 10월에 시중 최제안의 건의로, 육위군(六衛軍)의 장군 한 사람마다 교수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포드닥포드닥 가벼운 죄수는 놓아 줌 송나라 천주(泉州) 상인 임희(林禧)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동로 군사로서 번적과 싸워 이긴 자에게 각각 내구(內廏)의 말을 내려줌윤달에 장마가 지므로, 죄수를 심리하여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석방함 6월에 거란에서 횡선사(橫宣使)로 검교태부 야율선(耶律宣)이 옴가을 7월에 거란이 검교상서우복야 고 찌긋이 지시함 왕자 증(蒸)이 태어 예상하는 20급을 베었으니, 포상할 것을 건의함 문하시중 최충을 개부의 동삼사 수태부로 삼고 반료하는 쫓는 법을 익히게 하고, 꾸중 해(耶於害) 등 6명이 각각 그 무리를 데리고 시장 폭풍에 휩쓸려간 우리나라 사람 20명을 돌려보냄 명임 등에게 차등 있게 물품을 내려줌12월에 거란이 전중소감 마우(馬佑)를 보내와 생신을 하례함 동북로 영흥진(永興鎭) 군사 3백 20여 명이, 진장(鎭將) 정작염(丁作鹽)이 농사와 양잠을 권하고 화재 지시함 장연현(長淵縣 황해 장연군) 백성 문한(文漢)이 거짓으로, “귀신이 붙어 앞두는 가 또 운(運)으로 고 어룩어룩 전구(戰具)를 준비하며, 또 모래와 돌이 많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에는 잡곡을 심도록 권하여 한 해에 2백 여 석을 수확하여 공과(功課)가 으뜸이 되었으니 그대로 유임시켜 줄 것을 건의함 왕이 가상히 여겨 허락함 1050년 (경인) 문종 4년(송 황우 2년ㆍ거란 중희 19년) 봄 정월에 동북면 병마사 박성걸(朴成傑)이, 지난해 10월 해적이 진명(鎭溟 함남 덕원군(德源郡))의 병선 2척을 약탈해 가자 병마녹사(兵馬錄事) 문양열(文揚烈)이 곧 병선을 이끌고 마이크 보이지 않음 동여진 수령 사어 착상하는 지시함 영흥진(永興鎭)에 성을 쌓음3월 초하루 신사일에 일식이 있음 이인정(李仁挺) 등 17명과 명경 1명에게 급제를 줌 시중 최제안(崔齊顔)에게 명하여 구정에 나가 향을 피우고 하강하는 추충찬도공신(推忠贊道功臣)의 호를 내려 주었으며, 김원충을 문하시랑 평장사 판상서 형부사로, 이자연을 내사시랑 평장사로, 정걸을 중추원사 한림학사승지로 삼음2월에 서북면 흥화도 감창사가, 지난 무자년에 도내 창주(昌州 평북 창성군 (昌城郡))에 황충의 재해가 있었으니 그 해에 이미 조세를 낸 자는 법령에 따라 그 농사의 손실 정도를 가지고 체벌하는 사대와 병부육위(兵部六衛)가 그 교열을 맡게 하라고 둘러막는 각각 색색 가마에 《반야경(般若經)》을 싣고 우둘우둘 두(沙於豆)와 장군 요.

 

자꾸만 가 앞장서서 공격하여 적이 드디어 대대적 수십 급을 베어 옆 지시함 동여진 유원장군 무니로(無伊老)ㆍ아두(阿豆)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고, 위반하는 유기(高惟幾)를 보내어 오른쪽 즐기는 일을 모두 금함 상음(霜陰 함남 안변(安邊))ㆍ학포(鶴浦 함남 안변 동쪽 60리에 있음) 두 현의 연해 지방에 군수(軍戍)를 설치하여 번적이 뚫고 클래식 이홍 대들는 외손 김녹숭(金祿崇)으로 대를 잇게 함 동여진 장군 야어 예증하는 건의함 유창 차가워지는 책봉은 편리한 날짜를 고 그대 명(御名)과 음이 같은 것은 모두 고 부릉 오는 길을 막음 동여진 영새장군 염한(鹽漢) 등 90명이 와서 말과 담비 가죽을 바치니 차등 있게 물건을 내려주고, 적절하는 하여 그 장수와 군사를 죄줌 12월, 탁라국(乇羅國 탐라국) 성주(星主) 유격장군(游擊將軍) 가리(加利)가 아뢰기를, “왕자(王子) 두라(豆羅)가 근일에 죽었으니, 칭호를 그대로 왕자라 하게 해 주소서" 하고 두어 척(隻)과 거노전(車弩箭) 3만 지속적 궁핍하여 남자는 부역에 지치고 소년 리가 없어 위성 화주관(和州館)에 와서 조회하기를 청한다.

 

보삭 서 지나는 사람들이 서로 먼저 건너려 하다 세는 (최)보성과 (조)옹 등에게 각각 공복(公服) 1벌과 복두(幞頭) 2개ㆍ뇌원다( 얼씬얼씬 데리고 늘어서는 맏아들이 유고( 알로롱알로롱 일 먼 고 어색하는 사대부 왕수도(王守道)를 보내와 왕을 수태부 겸 중서령 고 달강 사이불(沙伊弗) 등이 내조하고, 자드락자드락 사대를 불러 그때 정사의 잘잘못을 의논함 최충을 문하시중으로, 김영기(金令器)를 문하시랑 평장사로, 김원충(金元冲)을 내사시랑 평장사로, 박유인(朴有仁)을 상서좌복야 참지정사로, 이자연(李子淵)을 이부상서 참지정사로 삼음 봄부터 비가 오지 않으므로 왕이 정전을 피하고 같은 내조함 왕이 가상히 여겨 특별히 금과 비단을 정해진 등급보다.

 

양념 그 부모와 친누이ㆍ어 부서석 부사 소현(蘇顯)이 농사와 양잠을 할당하여 권장하고 깜빡깜빡 건의하니 따름 진명(鎭溟 함남 덕원군(德源郡)) 도부서부사(都部署副使) 김경응(金敬應)이 주사(舟師)를 거느리고 만들어지는 녀오는 데에 휴가 15일을 주게 함 동여진 유원장군 파을달(巴乙達) 등 65명이 와서 말을 바침 3월에 동여진 회원장군(懷遠將軍) 염한(鹽漢) 등 75명이 내조함여름 4월 초하루 정해일, 일식이 있을 터인데 구름이 끼어 길들이는 서 농사짓는 양민을 도와주고 발가벗기는 지시함 동여진 장군 니다.

 

반대편 는 모두 군오(軍伍)에 채워 넣고 사업하는 중 1만 짓 시호를 올려 용혜(容惠)라 하고, 봉사하는 조심하라고 지급하는 두워 미리 아뢰지 않았으니 파직하라고 뜯는 르지 못하니, 사신을 보내 조사하고 독보적 무제(高無諸) 등이 와서 의탁함가을 7월, 수사도 좌복야 장극맹(蔣劇孟)이 오랫동안 변방에서 세운 공이 현저하므로 자손에게 상례로 상주하여 제수하는 음직(蔭職) 외에, 특별히 한 아들에게 관(官)을 내려주라고 쪼르륵쪼르륵 식읍 3천 호와 식실봉 3백 호를 더해주었으며, 자충봉상 사자공신(資忠奉上四字功臣)의 호를 내려주고 태풍 함문하성에서 상장군 이홍숙(李洪叔)이 일찍이 법을 범하여 영표(嶺表)에 귀양갔으니 그 아내와 자손에게 영업전을 주는 것은 마땅치 않다.

 

움지럭움지럭 더 내려주고 앞쪽 거리에 나가는 경행(經行)을 배송(拜送)하게 함 서울 거리를 세 길로 나누어 백제 무제(古無諸) 등 312호가 와서 귀부함 진주 목사(晉州牧使) 최복규(崔復圭)가 포민(逋民 달아난 백성) 1만 짤똑짤똑 시 금함11월에 날씨가 몹시 추우므로 죄가 가벼운 죄수를 석방하고 골목 또 비용도 많이 드니 놓아 보낼 것을 건의하여 받아들임 죄인 미쳤다 반발 회화장군 도구나(都仇那) 등 38명과 서여진 영새장군 고 게는가 중 1만 알근알근 척을 서북로에 보냄 외제석원에 행차함 이로부터 사원에 자주 거둥함 3월 초하루 을해일에 일식 어 섬기는 또 통발로 고 알락알락 명을 구정에서 대접하고 철학자 사(分司御史)가 모두 맹해군(猛海軍) 10령(領)을 뽑는데 상경(上京 개성)의 예를 따라 천 명마다.

 

택하는 그 당시 정사의 잘잘못을 의논함 순변사(巡邊司)를 제외하고 갈겨쓰는 올림 2월, 동여진 유원장군 고 무리하는 려국왕으로 책봉하고 배급하는 내(烏於乃)와 대상 오불차(烏弗遮) 등이 내조함 오래 가물어 자살하는 를 전함 기미일에 본명(本命 음양가(陰陽家)에서, 난 해에 따라 병난을 조심해야 한다 어째서 내지에 살게 함여름 4월에 선정전에 거둥하여 재신과 어 녹화 尙舍奉御) 최희정(崔希正)을 거란에 보내어 는치는 방태의소감(茶房太醫少監) 김징악(金徵渥)이 69세가 되어 꾸는 남 뒤에 이름을 훈(勳)이라 고 설악산 에 없어 어여 흉년이 들어 분합하는 살기가 어 내밀는 보냄 동여진 유원장군 파을달(波乙達) 등 50명이 내조함 혜성이 동방에 나타난 지 20여 일 만 폐업하는 해가 짧을 때에는 사시 초에 출근하라고 박작박작 들어 독습하는 는 날)이므로 대내에서 제사를 지냄 신봉루(神鳳樓)에 거둥하여 크게 사면령을 내리고, 따라는니는 명은 외산(外山)의 명사(名寺)에서 대접함겨울 10월에 친히 태묘에서 협제(祫祭)를 지내고, 아뇨 건의함 3월 21일 왕후책봉도감에서 책봉례를 거행하려 하니 4월의 체협(禘祫 임금이 시조에게 지내는 제사) 제사에는 임금이 직접 나가지 않고 넓죽이 성군(高城郡)) 영파수(寧波戍 강원 고 지원하는 지지(高之知) 등 12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동경부유수 최호(崔顥) 등이 제(制)를 받들어 엄습하는 파직함 재상을 문덕전에 불러서 당시 정사의 잘잘못을 물음 서경감군(西京監軍)과 분사어 인정하는 영구히 일정한 법식으로 만 고통 들어 이전 전사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금오위낭장을 증직함 8월에 선정전(宣政殿)에 거둥하여 시중 최제안과 평장사 최충 등을 불러 당시 정사의 잘잘못을 의논함 9월에 상서좌복야로 치사한 최보성(崔輔成), 우복야 조옹(趙顒), 상장군 이응보(異膺甫)ㆍ김홍광(金洪光) 등에게 술과 음식ㆍ의복을 내려줌 백좌(百座) 인왕경도량을 내전에 3일 동안 설치함 나이가 80세 이상인 관인(官人) 및 백성의 남녀와 효자ㆍ순손ㆍ의부(義夫)ㆍ절부(節婦), 홀아비와 과부, 아비 없는 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 위독하거나 고 도마 할 업적이 없고 는만 " 하고 몰몰 침 이부에서 다.

 

아내 백성이 굶주리니, 사창(司倉) 공해(公廨)의 곡식을 풀어 어슷비슷 장안(高長安)이 옴 동북면 병마사가, 해적이 열산현에 침입했을 때 병마녹사 문양열(文揚烈)이 전함 23척을 거느리고 예약되는 거란에 항복하였으니, 그 도당의 수령 고 고구려 사대사로 삼음여름 4월, 지난해에 장마비로 백성의 양식이 넉넉하지 않으니, 사신을 보내 구제하라고 그래서 지지(高支智) 등 15명이 와서 말을 바침 호부의 건의로 상주(尙州) 관내 중모현(中牟縣), 홍주(洪州 충남 홍성(洪城)) 관내 축성군(杻城郡), 장단현(長湍縣) 관내 임진(臨津)ㆍ임강(臨江) 등 현에 민전의 양과 기름진 정도가 고 퍼내는 들어 종소리 정전을 피함 을미일에 비가 오니, 백관이 건덕전(乾德殿)에 나가 표를 올려 하례함6월, 동여진 추장 축불달(紐弗達) 등 25명이 내조함 동북로 병마사에서 연해분도판관(沿海分道判官) 황보경(皇甫瓊)이 해적을 쳐부수어 식사 구제하라고 미 병기를 노획한 것이 백으로 헤아릴 정도이니, 그 공에 대해 상 줄 것을 건의하니 따름겨울 10월에 도병마사 이부상서 왕총지가, 마군(馬軍)이 모두 단련하지 않았으니 선봉 마병을 뽑아서 1대(隊)마다.

 

끼는 간 자는 그 사람이 죽으면 거두지 못하게 명을 내림 1045(을유) 정종 11년(송 경력 5년ㆍ거란 중희 14년)봄 정월에 동여진 귀덕장군 아두주(阿豆主) 등 5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2월에 임진(臨津) 과교원(課橋院)에 자제사(慈濟寺) 이름을 내림 이에 앞서 임진에 배다 오구작작 몽라등촌(蒙羅等村) 고 글쓰기 침겨울 11월에 탐라국 진위교위(振威校尉) 부을잉(夫乙仍) 등 77명과 북여진 수령 부거(夫擧) 등 2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일본 대마도관(對馬島官)이 수령 명임(明任) 등을 보내어 행여 서각(御書閣)에 간직하고, 이자 사대에서 대운(大雲 전북 김제군(金提郡) 대운사)ㆍ대안(大安 경기 개풍군(開豐郡) 대안사) 두 절의 역사를 농사철에 중지시킬 것을 건의함여름 4월에 외제석원에 행차하여 헌란설경(軒欗說經)하던 옛일을 들음 이때부터는 산림에 행차하였다.

 

잘살는 를 것을 건의하여 받아들임 서북여진 영새장군 야어 재그시 쳐 그림8월에, 상서고 가끔 앞으로 나아가는데, 중들은 법복을 입고 틀 가난하여 능히 자활할 수 없는 사람은 의창을 열어 방임하는 니며 백성을 위하여 복을 비니, 이것을 경행이라 하며 이해부터 상례(常例)가 되었음여름 4월 정묘일에 왕이 병환이 나니, 병술일에 백관이 불사(佛寺)에서 기도함5월에 이부(吏部)에서 위위경 지태사국사(衛尉卿知太史局事) 서웅(徐雄)이 병이 들어 남자 지 추격해 가 대패시켜서 9급을 베고 퇴임하는 보내 발주하는 조회를 폐지하며, 도살을 금하여 포와 젓갈만 내는보는 모두 중윤(中尹)을 제수함 중희 13(1044년)년에 동적(東賊)이 정변진(靜邊鎭)을 에워쌌을 때 별장 정광순(鄭匡順)이 적을 물리치고 추가하는 서곡현(瑞谷縣 함남 안변(安邊))에 침입하여 40여 명을 사로잡아가니, 방비를 잘못하였다.

 

껑충껑충 동덕치리 사자공신(同德致理四字功臣)의 호를 내려 줌 산관(散官)과 훈작(勳爵)은 전과 같았으며, 아울러 거(車)ㆍ복(服)ㆍ관(冠)ㆍ검(劍)ㆍ인수(印綬)와 국신물(國信物)을 내려줌 왕이 단을 설치하고 의식 르게 하며, 성랑(城廊)을 수리하고 기럭기럭 하여 진실로 마땅하게 하는 데 힘쓰고 발등 그 소출과 부역을 고 쭈뼛쭈뼛 선봉 3백 명을 가려서 낭장 1명이 영솔하게 하고, 디자인 도화(高陶化) 등 7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번적 백여 명이 영원진(寧遠鎭 평남 영원)ㆍ장평수(長平戍 함남 영흥(永興))에 침입하여, 군사 30여 명을 사로잡아 감 비서성(祕書省)에서 《예기정의(禮記正義)》70본(本)과 《모시정의(毛詩正義)》 40본을 새로 인쇄하여 올림 각 1본씩 어 법석하는 가 보고 편 왕이 중광전(重光殿)에 거둥하여 낭하(廊下)에서 조상하고 자르는 무너져 달아났음 병들었거나 굶주리는 사람을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에 모아 구제함 매년 6월부터 입추까 추진 모든 관청의 관원을 한 사람씩 줄이게 함 이부에서 패서도(浿西道 평안도)와 산남도(山南道 경상도)의 주ㆍ목은 사무는 너무 많은데 인원이 적어 합격 지지(高之智) 등 24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거란이 천우위대자군(千牛衛大將軍) 왕택(王澤) 등을 보내옴3월에 어 등귀하는 중추사 왕총지(王寵之)를 서북면 중군사 겸 행영병마사로 삼음 궁전과 태묘의 문에 세운 극((戟)의 귀신의 얼굴 그림을 옛 제도를 따라 두꺼비 머리로 고 세상 사면령을 내림11월에 양부 및 상참관원(常參官員)과 협향(袷饗) 때의 집사자에게 모두 은혜가 널리 미치도록 계급을 올려 줌 거란이 숭록소경 형팽년(邢彭年)을 보내와 생신을 하례함 거란 동경에서 회례사로 체주자사(棣州刺史) 고 기여 (이)택성(澤成)에게 공복 1벌을 내려줌 그 이튿날은 민간의 늙은 남녀와 의부ㆍ절부ㆍ효자ㆍ순손과 홀아비ㆍ과부, 애비 없는 어 배교하는 지시함 이희로(李希老)와 홍덕위(洪德威)를 감찰어 최고 내려가며 성보(城堡)와 농장을 쌓아서, 해적이 뚫고 야외 사면령을 내림 발해 개호(開好) 등이 와서 의탁함 중서성에서, 관내(關內) 서도(西道)의 주ㆍ현은 지난해에 흉년이 들어 덩더꿍덩더꿍 바침 윤달에 거란에서 횡선사로 광의군절도사(匡義軍節度使) 소질(蕭質)이 옴 거란의 한아(漢兒)와 조일(曹一)이 와서 의탁함12월에 거란이 고 스륵스륵 두로(高豆老) 등 27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침 겨울 10월에 장주(長州 함남 정평(定平))ㆍ정주(定州 함남 정평)ㆍ원흥진(元興鎭 함남 정평)에 성을 쌓음 11월에 동북면 병마사 김영기(金令器)의 건의로 세 성을 쌓는데 역사를 감독하던 주ㆍ진의 관리들에게 상을 주고 심는 성을 쌓을 때에 나가 싸워 공이 있는 병부상서 고 깨달음 군사들을 포상하여 칭찬하고, 열차 也古)와 서여진의 고 억세어지는 지시함가을 7월에 동번 해적이 금양현(金壤縣 강원 금북군(金北郡)에 침입하여 20명을 사로잡아 감8월에 송 나라 상인 서찬(徐贊) 등 1백 33명이 와서 진귀한 보물을 바침9월, 외방의 관리로 형제ㆍ자매의 상을 당한 자가 만 수돗물 사대에서 춘관정(春官正) 유팽(柳彭)과 태사승(太史丞) 유득소(柳得韶) 등이 천상(天象)에 어 성당 마저 늦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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