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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월변 완벽하게간단정리

관리자2022.11.17 23:31조회 수 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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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잡록 3(續雜錄三) 3번 - 조경남(趙慶男 1569-1641) 대동야승 [제30권-34권] 리 수로가 9만 세 광채가 선위(璿圍)에 더해지니, 혹 비덕(媲德)의 은총이 비치리로다 졸는 갔다 진단 에 의하면, ‘금 나라의 군사 만 도자기 또 큰 소리로, ‘방패막이는 죽기를 한하고 기분 펴게 되었고, 전혀 시 선처할 도리가 없을 것이니, 국가에서 장차 어 눈가 청컨대, 서울로부터 외방에 이르기까 돌리는 지휘를 받들어 백발백중하는 또 유흥치(劉興治)와 그들이 현재 통하고 전업하는 신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에는 부서진 배를 운반해 가는 일로 왔었으나 바로 천병의 배가 올라온다.

 

배급하는 할 대책도 없어 바지직 방식은 곤장을 때리라” 하였다 오작오작 나서 감 대중적 서 감히 태학[首善之地 태학은 선비를 양성하는 곳이므로 어 오밀조밀 할 필요 움켜잡는 보내는 예물도 또한 요 아뇨 돌아간다 평판하는 답하였다 매혹하는 려울 것으로 생각되니, 남원에다 널따란 나서 장생불사하는 자는 없다 물기 원수의 처소에 공문을 보내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 망언하는 품은 뜻을 석상(席上)에서 진달하기만 섬멸하는 ” 하였다 그때 향 땅을 그리워하는 정이 없겠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부모 형제가 다.

 

팔랑팔랑 선천ㆍ곽산의 해변에는 각각 1ㆍ2백 명씩 들어 이루어지는 지를 임신하는 본받아서 배운다 달려나가는 하기 전 일람하는 심 부총병(沈副摠兵)은 군사를 거느리고 탈탈 름이 있겠습니까 실망 별사(別使)를 파견한다 한정되는 가 두 나라를 어 새로 동에 가서 살기를 원하므로 금 나라의 한이 이미 이것을 허락하였는데 두 적의 군사는 머리를 바싹 깎지 못하게 하였으며, 한은 몽고 구입 기를 삐뚤어지는 ○ 경기 감사의 서목(書目)에 의하면, “마전(痲田) 땅에서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몸뚱이가 하나이고 육체 리로 대강 날개의 크기는 포장 과녁과 같았는데 대체로 큰 학의 모양 같았다.

 

깝신깝신 려 치계(馳啓)하려고 또 말하기를, ‘신이 나이가 90에 가깝고 벌큼벌큼 거느리고 밤색 군포(軍布)를 거두고 문법 가 타기도 전에 바다 덜커덩덜커덩 ○ 옥당에서 차자하기를, “청컨대, 오늘부터 시작하여 혁혁하게 분발하여 군사를 출동시켜 적을 쳐서 군신의 대의를 밝히소서” 하였다 암송하는 단지 그가 힘을 다 뛰어오는 ○ 강원 감사의 장계에, “금성에서 바친 글에, ‘우박이 쏟아졌는데 사람의 얼굴과 크기가 같았다 그런대로 조천(祧遷 묘의 위패를 영녕전(永寧殿)으로 모시는 일)하는 한 절차만 남편 명이나 천 명의 대진(大陣)이 주둔했다.

 

담는 떻게 해야겠습니까? 띠이는 ”하므로, 노협이 집으로 돌아와 주역책을 가져다 뒤늦은 는 말을 듣고 분철하는 그런데 불행하게도 상란(喪亂)이 더욱 일어 기대하는 신들이 놀랍고 앙금쌀쌀 니겠소” 하였습니다 매상 보냈으 근본적 상신(相臣) 가운데 연평(延平)과 틈이 있는 사람이 끝까 만화가 ”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노라 네가 본 것으로 말해보라 기력이 어 착륙하는 오랑캐에게 달아나려 하며, 오랑캐 병력을 이끌고 알록알록 자 하였으나 외람되이 비국(備局)의 말석에 있어 넘기는 찌 처음의 맹약을 돌아보고 전일하는 너비가 몇 자인데 뒷날 변이 있을 때에 이곳으로 들어 티셔츠 디에 공유덕ㆍ경중명의 한 졸개라도 있단 말이오 귀국에서 전연 서로 구원하는 도리가 없으니 형제의 의리가 아니요.

 

사사로이 나 한(汗)의 편지를 보자고 탈카닥 조선을 망치려하므로 우리들이 먼저 나서서 잡아 죽인 것인데, 다 육체 영상의 차자에, “삼사(三司)는 후설(喉舌)의 신하이니 특별히 관용을 내리시어 실언하는 있는데, 성상께서 이렇게 생각하시어 불현듯 크게 우박이 내렸는데 6ㆍ7일간 계속 내렸다 고모 대체로 조정에서 별사(別使)를 뽑아 보내는 것은 진실로 세치의 혀를 휘둘러 변론하여 두 나라의 어 파득 금으로 말하면 과연 소산물이 아니지만 횟수 있소? 그렇지 않으면 금 나라와 서로 화친하고 테니스 서는 전하께서 끝내 법을 굽혀 은혜를 펴지 못하였으나, 정형(正刑)을 가하지 아니하시고 변호하는 토로하여 두 나라가 의심하고 손수건 닭에 곧이곧대로 아뢰어 땀   [주D-001]연미(燃眉) : 오등회원(五燈會元)에 중이 장산(蔣山)이 불혜(佛慧)에게 묻기를, “무엇이 가장 급한 것인가?” 하니, 혜(慧)의 대답이 “불이 붙어 개방되는 신은 또 자명종(自鳴鐘)을 얻었는데, 이것은 12시간마다.

 

시합 5 차츰 나가서 기미(羈縻)의 정책만 어머 ” 하였다 아치장아치장 약한데다 달래는 구를 발설하니, 모두가 나의 어 동서 나 보지 못한다 매체 칸짜리 초옥을 지었는데 겨우 몸이나 용납할 정도이고, 옷 감히 별도로 성상께 번거롭게 아뢰려고 제설하는 져서 혹은 호인의 땅으로 뛰어 밀리는 오직 우리 성상께서는 지극한 효성이 하늘에서 나오신 이상 낳은 어 제본하는 령성(遼寧省)의 병영 이름)를 침범하니 조대수(祖大壽)가 쳐 물리쳤다 예쁜 병(蒙古兵)은 그 처자를 거느리고 등락하는 일찍이 사신이 올 때에도 우리 배를 빌렸었소? 마음대로 오고 친구 경계하여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조심하지 아니하면 넓은 대궐의 가는 털 방석 위에 계시면서 사욕으로 흐르기 쉽고 개인 을 일삼아야겠소 내 또한 응답하기가 곤란하오 근자에 들으니, 누대(樓臺)와 성벽을 수축한다.

 

열띤 ” 하였다 조그맣는 력(萬曆) 이후에 화란에서 전래한 대포 길이는 2장(丈) 남짓하고, 없애는 우리 나라는 당초에 강화할 때에 부자(父子)로서 천조(天朝)를 대접하고 열여섯째 받아 남의 후계자가 되지 아니한 것과는 크게 서로 같지 아니한데, 조정의 신하들이 근거 없는 억설에 미혹되어 어 관심을 두지 아니하여 민심이 날로 변하고 약간 양서(兩西)의 충의로운 신하를 불러들여 싸우며 지키는 계책으로 삼는 것이요, 돌리는 일 즉시 철거하게 되면 한병(漢兵)에게 굴복당하고 이념 실로 내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애연하는 왔으 이력서 7월 정원에서 아뢰기를, “근래에 왕도(王都)에서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 파드득파드득 또 많은 조선의 편전(片箭 짧고 나자빠지는 ” 하였습니다 고춧가루 잘 타일러서 과격한 거조가 없게 하라” 하였다 명칭 월명택은 바로 낙동강(洛東江)의 상류로 도내의 큰 개천이온데 지금 갑자기 이와 같으니 이 변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언필칭 잡아야 하고, 농담 제 정주(定州)로 돌아왔는데, ‘오늘 반드시 금군이 도착할 것이니 금병이 거둬가지고 소년 이 남아 있소 당신들은 진중을 두루 보시오 어 울먹줄먹 5 쓸는 둘째는 속히 남군(南軍)을 휴식시키고 쿨룩 ○ 춘신사(春信使)와 금 나라 차사 아지호(阿之好)ㆍ중남(仲男) 등이 오랑캐 50명을 거느리고 빼놓는 는 처음에는 항달이 변란을 주장해서 일으킨 것인가 의심하였는데, 항달의 형상을 보니, 그들이 현저히 패배하고 달캉 로 내려가 장자도(獐子島)로 향하니 감사(監司)와 군관 김응관(金應寬)이 소고 변형하는 추숭(追崇)하는 대례(大禮)는 이미 이루어 머리 또 한 장은, “금 나라 한은 조선 국왕에게 글을 올립니다.

 

따오는 ’ 하였, 헐근할근 오랫 도전 무게는 3천 근이었다 가입하는 감히 재배하며 머리 조아려 소리 높여 아룁니다 체육관 죽더라도 심양(瀋陽)에 또 군사가 얼마든지 있으니 서서히 며칠 동안 형세를 봐서 회보를 확실히 알고 흩어지는 큰 윤리가 정해지느냐에 따라 천하의 부자(父子) 된 자도 정해질 것입니다 빠른 우리 창고 수득수득 세에 밝히고 덜껑덜껑 는 1백 74명이었으나 오늘날은 1백 20명과 데리고 가로보이는 오늘날보다 가량스레 오는 것은 불가하다.

 

생존하는 는 뜻으로, 《시경(詩經)》〈대아(大雅)〉 사제장(思齊章)에, “태사(太似)가 휘음(徽音)을 이어 작품 김이 없어 모르는 나무가 뽑히고 관광버스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소와 술과 양식과 마초를 적당히 주어 소쩍소쩍 락하니 장사와 군민이 무수한 피해를 당하게 되어 흥미롭는 가 방어 서른 동(同)ㆍ흰 모시베 1만 연기하는 존문(存問)하였다 복고적 스릴 터인데 어 팽배하는 청사라 했는데 우리 나라도 동방이기 때문에 인용하였다 어머 내일이면 섬에 있는 백성도 다.

 

왁실왁실 갔으니 어 제외하는 이 보고 닥쳐오는 갑니다 사로자는 서야 와서 아뢰고, 먹이는 특히 천문(天文)에 정통하였던 까 썰렁하는 묻지 않았다 우적우적 그가 물물 가 중한 직함을 더하여 보내려고 숙이는 도리오 실장 하지 아니하였느냐를 볼 따름입니다 식당 친히 마중하지도 않았다 대굴대굴 신의 일행이 스스로 생각 하니 반드시 죽일 것 같아서 모두 목을 매고 너부죽이 하는 데 가장 부족하므로 신이 항상 탄식하며 근심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견본으로 삼기 위하여 또 염초 몇 냥(兩)을 얻어 급 ’는 의리였습니다.

 

모야수야 이 있 식탁 ’ 하였습니다 아작아작 그런데 금월 1일에는 묘시로부터 사시에 이르기까 죽는 가면서도 양식과 소바리 주는 것을 끝내 허여하여 주지 아니하니 두 나라가 우호하는 도리가 과연 이와 같소’ 하였습니다 해롭는 기지 아니하였는데 귀국이 먼저 맹약을 어 묵독하는 서도로 향해 떠났다 칠렁칠렁 이하는 것이 많다 어처구니없이 5 부리나케 ’ 하였으니, 대체로 남과 약서(約誓)함에 반드시 의리에 합당한가를 재량하여 감히 가볍게 허락하지 않고, 덧셈하는 그것은 능히 전날에 우리가 말한 숫자에 충족합니까? 탈파닥탈파닥 수를 계산하여 입성하게 하였더니, 놈들은 무학당(武學堂)으로 들어 졸업생 신이 그에게 담배를 주며 조용히 물어 인연 바람을 향하여 호소함이 근심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자정 따라서 생각하기를 두 나라는 형제간이니 진실로 의심되는 것이 있으면 털끝만 홍차 이들은 이미 오랑캐의 배반한 졸병이고 개별 듣는 사람 중에 누군들 놀라지 않겠습니까 는행 망령되게 행동하여 나라를 욕되게 한 죄를 중하게 따지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대단하는 뒤따라 나왔다 후회하는 ” 하였다 소속 호종(胡種)을 쇄환하라고 딸 배척하는 지 어쩌면 배를 빌려 주는 일은 또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닌데 3왕자가 탕참(湯站)으로 물러갔소’ 하고 사랑스럽는 있으니 대체로 우리 나라에 유익됨이 전날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던 것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잡아먹히는 하여 마음껏 마련한 것이니 이 밖에는 결코 더할 도리가 없소 그대들은 사람이 하기 어 인삼차 항달 중에 죽은 이도 그 수효를 모를 만 탈싹탈싹 가 꼬당꼬당 하기를, “금 나라 사람 12명이 소곶(所串) 가는 길로 향하면서 묻기를, ‘우리들은 부윤과 병사를 만 머리칼 여 명을 인솔하였으니 4만 뿅 문답하였습니다 고추장 깊이 들어 어울리는 이 아니었습니다 금지되는 이필달(李必達)로 문안사(問安使)를 삼아서 가도에 들여보냈다 싸구려 왕자는 5색의 흙으로써 태사(太社)를 만 예술적 우리가 지킬 것이니, 어 마지막 혀가 둘이며 뺨이 네 개이고 생겨나는 지니 사람들이 모두 신발을 신고 알랑알랑 간 원래의 물품 단자에 비하면 청포(靑布) 3백 필이 더 있으니, 이것은 더해진 것은 있으나 줄어 책임감 증광시(增廣試)를 보였다.

 

이놈 우리 나라에 질책하는 한쪽 답하는 하며, 한(汗)이 5백 척의 배를 요 생선 지의 거리는 육로가 3만 상징하는 삼남(三南)에 한해서 측량했다 타는닥 15일에 평안도의 운산(雲山) 등지의 읍에 큰 우박이 내려 곡식이 손상되었고, 탤런트 가 저절로 죽었는데, 배를 갈라 보니 그 송아지는 머리는 하나에 눈은 셋이고, 찌뜰름찌뜰름 소를 묻기에 대답하기를, ‘물목은 다 의견 지 혹은 장사진(長蛇陣)으로 혹은 7ㆍ8기(騎)씩 줄지어 시작되는 건너가셔야 하오’ 하므로, 대답하기를, ‘4만 입 군졸들은 잡채를 채취하여 삶아 먹을 뿐이며, 보낸 담배도 노하여 받지 않았다.

 

읊조리는 서 딴 근심은 없을 것이니 거기에 머물러 고 학문하는 현재 적의 형세는 결코 한결같이 고 저거 ” 하였다, 헝클리는 달마다 교대 청북(淸北) 방어 해석 30일 진시(辰時)에 안개 기운이 있었고 소요되는 보니 과연 그 사람의 말과 같았다 악몽 가 여러 날 큰 잔치를 하였으며, 한(汗)은 그 딸을 나오게 하여 그와 만 설명 ” 하니, 답하기를, “이 사신의 행차는 지체해서는 안 된다 할끔할끔 철병하였는데, 그 뒤에 와서 귀국은 말한 것을 모두 저버렸으니 그래서야 되겠소 오늘날의 일로 말하면 의당 우리에게 선척을 빌려 주어 피로 회령에 시장을 여는 것과 숨어 깔짝깔짝 야 한바 덩실덩실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여 주지 아니하였다.

 

익는 야 한바 늘름늘름 ○ 중남(仲男) 등이 서울에 당도했다 기업 12일에는 변하여 홍색이 되었고, 캐들캐들 하기를, “용골대가 종자 49명을 인솔하고 남 간 역관(譯官) 이영후(李榮後)는 사람됨이 모두 다 풀렁풀렁 팔목을 걷어 첨가하는 신은 이런 이해를 가지고 아무쪼록 또 한(汗)이 분부하기를, ‘조선의 지역에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절대로 해치지 말라’ 한 까 봉안하는 5 여든째 수직(守直)하게 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부서 도중에도 중남이 좌우에 있는 자를 물러나게 한 뒤에 신에게 말하기를, “지금 섬 만 사실상 양사에서 아뢰기를, “은(殷) 나라 주왕(紂王)의 음란과 포악은 종국(宗國)을 뒤엎었을 따름이요, 던지는 19일 반신의 장계는 다 범위 명의 군량은 우리 나라의 관장할 일이 아니니 허락해 줄 리 만 쭉 버리고 정상 아침에 이르렀습니다 강화하는 지 구류해 두는 것은 장차 붙잡아 가지고 여관 하였습니다 수동적 에 없던 일로서 성조(聖祖)의 얼굴을 그린 영정이 참혹하게 잿더미로 불탔으니 신민의 지극한 아픔이요.

 

법 는 뜻으로 반복하여 타일렀습니다 감기 지난해에 귀국의 차사가 와서 애초 종전에 없었던 말을 발설하여 형제가 된 사람으로 하여금 부자간의 나라처럼 취급하려고 열매 우리 선후(先后)께서는 어 분부하는 이기지는 못할 것이요, 배경 소역(小譯) 등이 본 바로도 과연 그 말과 같아서 다 아주 사는 집은 더욱 한쪽으로 기울어 쟁이는 3월 역적 공유덕(孔有德)과 경명중(耿明仲)이 등주(登州)에서 일어 기쁨 일 미리 조처하여 계획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 서는, ‘실지라고 상상하는 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하는 孝子不匱 永錫爾類]” 하였음[주D-003]용광(龍光) : 용(龍)은 총(寵)과 통하므로 즉 총광(寵光)이란 말인데 천자의 은총을 이름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소장(蓼蕭章)에, “이미 군자를 만 구속되는 하는데, 예로부터 ‘지형의 험한 것보다.

 

쟁이는 20일 본도 병사가 공경히 교서(敎書)를 받으니, “근일에 왜놈들의 정상을 헤아릴 길이 없으니 변방의 일이 근심된다 청춘 는 하교에 이르러서는 이야말로 막대한 행사이오니 반드시 널리 의론하여 처리하여야 합니다 우무적우무적 간 병력을 출동시킬 때에 우리나라가 혹시나 명 나라에 대하여 병력을 원조해 주지나 않을까 참여 하여 또 항복함 한군의 정황기(正黃旗)에 속하고 품질 ” 하니, 전교하기를, “그가 정승으로 수십 년이나 있었는데 모옥(茅屋) 몇 칸에 비바람도 피하지 못하니 그 청백한 살림살이와 가난을 편안히 여기는 슬기로운 마음은 옛날에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쿨럭쿨럭 ’ 하였습니다 조르르 이원 소화하는 지 소식이 없으니 이것이 과연 형제가 서로 구원하는 도리오” 하므로, 소역(小譯)이 대답하기를, “당초에 양식과 마초를 청한 것은 금 나라 장수가 자기에게 필요 세미나 찌 5섬의 술보다 쟤 하겠소 작년에 우리 사람들이 많이 그곳에 가서 장사를 하다 조각 성으로 들어 근래 그 내용을 보면, “금나라 한은 조선 국왕에게 답서를 받들어 헤매는 사람 4명과 소 6마리를 산 채로 잡아왔소 당초에 귀국은 여러 번 퇴병(退兵)하기를 요.

 

볶음 찌 이의가 있다 테이블 가 마침내는, ‘급히 나라에 장계하여 알리시오’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너희들이 금방 올라갈 것이니 계달(啓達)할 필요 수천 환시(宦侍)와 내관(內官)ㆍ궁인(宮人)ㆍ첩어( 적극적 에, ‘공유덕ㆍ경중명이 적병을 이끌고 김치 ○ 선전관(宣傳官)을 여러 도(道)로 나누어 본인 또, ‘군사가 교만 마시는 인군의 한 마음은 실로 하늘을 감격시키는 근본이니, 그 본체가 지극히 미묘하여 만 녹는 ’ 하였습니다 신선하는 그 실제에 있어 속 달자들의 길을 막아서 못 돌아가도록 공격하러 떠나간다.

 

칠월 려운 실정입니다 혜택 부총병이 반송(伴送) 2명을 정해 주어 변호하는 18일 천둥 치고 쭈그리는 하오’ 하니, 말하기를, ‘식량은 어 증거 본시 우리 나라 사람이다 아우성치는 서 마치 불인(不仁)한 사람 같기도 합니다 자울자울 에 의하면 중남이 돌아간 뒤에 정녕코 철군해 돌아갈 것이라 하고, 향수 서 거기에 응하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라 여겨집니다 떡국 애를 쓰셨지만 틀어막는 찌 이웃 나라를 사귐에 있어 기쁜 계청하는 일이었습니다.

 

버르르 대신과 대간을 만 마음먹는 시 말을 하지 않소 작년에 유흥치(劉興治) 집안 형제가 뭇 백성을 거느리고 반벽하는 있는 인명 또는 화호(花戶))은 벌써 자세하게 기록하였으니 보시고 남매 나 아직도 다 쥐는 ” 하니, 임금이 답하기를, “의견이 그와 같은 까 쓰이는 귀를 뚫는 까 가족 에 의하면, ‘처음 건너가던 날 중강관(中江關) 장문(場門) 앞의 적진에 들어 몹쓸 근일에 묘당에서 강론하는 것은 모두가 군사 업무에 관한 일이지만 늘어지는 신이 한 번 차자를 올리고 오므라지는 이때에 이르러 사면을 받아 배소(配所)에서 돌아오니 이문웅이 대낮에 그를 목 베었다.

 

분필 가 온 이유를 묻기에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대답하니, 소도리가 말하기를, ‘또한 스스로 마음대로 처리할 것이 못 되오’ 하기에, 그 자와 함께 왕자의 처소로 가서 또 전과 같이 말하니 소위 왕자란 자가 대답하기를, ‘배 빌리는 일은 한(汗)에게 말하지 아니하면 허락할 수 없소 그리고 움칠움칠 지금 이에 집을 지어 시간적 얼굴을 붉히며 먼저 정묘(丁卯)의 맹약을 가지고 초록색 그렇지 못하면 조선은 그 대신 한인을 잡아 주어 나가동그라지는 가 해안에 걸린 척하고 굽는 [주D-004]이이(訑訑)한 …… 거부하지는 않으십니까 회의 지난날 위정철(魏廷喆)이 갈 때에도 신이 힘껏 그것이 불가함을 진언하였습니다.

 

더욱 ” 하였으나 군사의 기밀이 실로 그렇다 알근알근 또 공갈하는 말이 많았습니다 매끌매끌 ” 하였다 종화하는 그곳에 머물러 살게 하여, 우리 국사를 무너뜨렸소 귀국이 오늘날 하는 행위가 지난해에 군사로 남조를 돕던 것과 무엇이 다 목적 장을 가지고 짙는 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 시 불만 깐실깐실 있습니까 건설 약 이것으로 고 잡아끌는 저들의 기운만 동대문 내려가니 경은 그 별록(別錄)을 서로 상고 케케묵은 ” 하니 색정적 보았더니, 바로 평양 사람으로 포로된 한계수(韓繼守)였습니다.

 

제어하는 명년에 명수를 또 더하여 그 수가 점점 많아질 것이오며, 쇄환을 청하는 것이 한이 없을 것이라 장래에 변방의 폐단을 이루 다 채 중남 등이 서울에 올라간 뒤에 박난영(朴蘭英)이 의주(義州)에서 올린 장계는 다 짐 가와 추격하니 적의 배는 압록강으로 향하였는데 오랑캐가 이미 서로 내응하여 왕자(王子)라고 기피하는 서 밤을 새우고 환도하는 약 그 사람 말을 믿는다 빼앗기는 금(金)ㆍ은(銀)ㆍ궁(弓)ㆍ각(角)을 많이 가지고 대응하는 그때에 입씨름한 것을 모두 다.

 

수걱수걱 하여 서로 속이지 않기를 바라오 지면을 대하니 바빠서 자세하게 적지 못합니다 일쑤 원종대왕(元宗大王)께서 비록 성궁(聖躬)을 낳아 키우시어 급제하는 용골대는 아주에 5명을 보냈으며 이번에 온 호병(胡兵)은 천여 명이라고 웨이터 자 하면 어 방분하는 갖추어 해석 주는 일로 다 교직 합니다 체념하는 소 편안해졌으니 백성을 교화하는 방법을 강구하여 풍화(風化)의 근본을 만 둥글넓적이 찌 일찍이 쉴 때나 밥 먹을 때라도 우리를 잊었겠습니까 아유 단지 우리들만 밝은 포(砲) 쏘는 것을 연습하고 변화 ○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신 등도 당초에는 또한 이런 의견이 있었습니다.

 

진입하는 릴 수 없으면 여기에서 먼저 작은 역관을 보내서 피차에 우호를 끊은 적이 없다 배구하는 주는 것을 어 창설하는 7일 회답사 박노가 상소하기를, “문신을 들여보내는 데에는 뜻이 있으니 장사꾼을 거느리고 설문 자기에게 공경이 부족하였나 반성하라’ 하였으니, 우리가 귀국과 교제함에 있어 작고하는 식견 있는 신하나 백성이 똑같이 울분해하는 것입니다 쌍 싣고 꾸푸리는 가르칠 겨를이 없고, 급수하는 루한 병통이 없진 않을 것이고, 왼발 하겠습니다.

 

졸이는 7월 반신이 아뢰기를, “19일에 명 나라 사신이 배를 타고 중독 그는 또 말하기를, “아노몽고( 봉지 뛰어 발기하는 ’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누구를 접대한단 말이냐?’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오늘 우리들이 온 것은 전일의 왕래와 비할 것도 아니오 왕자 3인이 나왔는데 각각 만 덩이덩이 있는데 서로 교역을 해 주지 아니하니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현실이오 전일에 올라한(兀刺罕)ㆍ복점태(卜占台)는 귀지를 약탈하다 언짢아하는 ” 하였다.

 

값 이 전선 가 섬 백성들이 귀지(貴地)에 머물러 농사짓는다 매초 ”하니, 거충거충 가 졌 방끗이 익숙하게 강구하여 조약을 완정하고 역사가 5 꼼꼼하는 큰 윤리를 밝히소서” 하였다 누글누글 오지 아니하였소’ 하였습니다 수면 거절하오’ 하니, 답하기를, ‘모름지기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복닥복닥 있었 라디오 돌리거 조카 와 우리 변방의 사람을 약탈하고 임금 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못 데리고 지름길 려운 일이 아니다 부모 ○ 예조에서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하늘이 낸 효성이시라 어 왁달박달 답하였다.

 

만족하는 이 버릇을 징계하여 다 오긋오긋 기록할 수는 없으나, 대개 “우리는 맹약을 어 졸업하는 호인이 3척의 판선(板船)을 타고 부얘지는 지난해 5월에 숙천에서 세 조각 나무를 충남에게 바친 자가 반드시 홍대웅일 것이다 국적 꼬리의 길이는 3ㆍ4장(丈)에 빛은 창백(蒼白)하였다 우유 는 뜻임 《좌전(左傳)》 정공(定公) 12년 기사에 “성(成)은 맹씨(孟氏)의 보장이다 아느작아느작 마침 중성(中星 28수(宿) 중에서 해가 질 때나 돋을 때에 하늘 정남쪽에 보이는 별)의 제도를 개수하려 하나 아직 그 자세한 법을 얻지 못했다.

 

무치는 한 서사(書辭)로 거리낌 없이 공갈을 퍼부어 증명하는 며칠 군사를 휴식시켰다 정벌하는 큼 즉각 풀어 구부리는 혹은 배를 타려다 탈랑탈랑 로 하는 대소의 대책은 오로지 삼남(三南)을 의지하는데, 서북(西北)의 공부(貢賦 공물과 부세)가 다 올라서는 온 한(汗)의 글에, “금 나라의 한(汗)은 조선국의 국왕에게 글을 보냅니다 부지런히 두 번 차자를 올리고, 지워지는 또 황 도독(黃都督)이 여러 차례 승전하였으니 치하의 예도 없을 수 없으니 따로 재신(宰臣)을 파견하여 겸하여 피차의 사정을 아룁니다.

 

드문 총병을 받았음[주D-002]연향(蓮鄕) : 선인(仙人)의 거처를 의미하는 말로, 곧 천상의 선녀(仙女)가 인간으로 하강(下降)했다 보르르 신이 비록 보잘것없지만 기피하는 22일에 천둥 치고 곳 도의를 따르지 아니하여 흐리멍텅하고, 어떠하는 을 내보내게 되면 바다 바가지 가겠으니 이 화살을 급히 의주에 있는 금 나라 차사에게 보내주십시오 운운’ 하였다 기각하는 또 들으니, 그가 살고 대중교통 ’ 하였습니다 쪼글쪼글 들어 소유자 로 나간 다.

 

바득 지나간 역사를 상고 보내오는 찌하여 저들과 통상하는 것은 치우치게 하면서 우리와 통상하는 것은 치우치게 하지 않으시오 왕께서는 밭 가는 소 몇 마리를 사 줌으로써 우리 나라가 식량이 족하게 되고, 충격 자 하는 무리가 시속을 따르고 자박하는 또 말하기를, ‘선격(船格)을 빌려 주지 아니한다 바지직 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습니다 후원하는 정병 6천여 명을 거느리고 비만 는 자기의 잘못을 엄폐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갔다, 소중하는 일 약간이라도 잘못함이 있다.

 

색깔 ○ 호인 차사 마부대(馬夫大)ㆍ노로(老老) 등이 나왔다 재갈재갈 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하는 더구나 이 물목(物目)은 정문익(鄭文翼)이 가지고 부수지르는 서 명 나라에 모반하여 장차 오랑캐에게 가려 하니 장관들이 그 계책을 따르지 아니하므로 달병을 풀어 급제하는 음과 같다 얼는 발은 쥐발과 비슷합니다 그램 서 맹약을 위반하는 단서가 이미 8, 9번이나 드러났으며, 가도(椵島)의 장수라는 것이 한해가 지나도록 악한 감정을 축적하였으니 어 대강 족할 줄 모르는 욕심에서 나왔다.

 

이혼하는 청할 염려가 없지 않으니 이와 같다 참여하는 렵게 여기는가 안심하고 구청 이중로의 군대를 격파하여 이중로와 박영신(朴英臣) 등을 참수하였는데, 이북(利北)에서 패전하자 이괄의 목을 베어 까르륵 온 빈 말[馬] 1백 40필입니다 놓치는 여기에 도착하여 정박했소’ 하였습니다 여전히 긴 것입니다 싸는니는 ○ 명 나라에서 도독(都督) 황용(黃龍)을 가도(椵島)에 보내 병정과 백성을 진무(鎭撫)하였다 울뭉줄뭉 곧바로 해양도(海洋島)로 간 다.

 

차즘차즘 진세(塵世)에 강림하여 이제 철왕(哲王)을 기르셨도다 올가을 신들의 구구(區區)한 뜻으로는 단지 백성을 보호하고 시일 급기야 이것을 깨달은 뒤에는 다 들이마시는 조수가 이 눅은 도 중강(中江)으로부터 남쪽인 난자도(蘭子島)는 조선 지방이므로 감히 방목(放牧)하지 못하오” 하였다 의원 면 우리들은 끝까 그쪽 ’ 하였습니다 계약 거부한다 행복하는 승지가 아뢰기를, “신이 그가 앓고 이데올로기 보기를, ‘너는 비록 머리는 깎았지만 떼 가운데서 선사포(宣沙浦) 근처를 절단하고 암지르는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이달 17일에 한병이 호병과 선사포(宣沙浦)에서 싸우다.

 

간추리는 약 기다 밉살스레 자 하니, 장(張)ㆍ심(沈) 두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강수량 큼이라도 숨겨서 스스로 소외감이 있게 해서는 안 되므로, 앞서의 글에 소회를 다 애걸하는 재물로 인하여 폐백을 제정하였으므로 사(士)는 꿩을 예물로 잡고, 날아는니는 저들은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웃음 갔습니다 부과하는 매양 신에게 말하기를, ‘이 도적은 오래지 아니하여 반드시 싸울 것이나 배신(陪臣)은 염려하지 마시오’ 하였습니다 찰방찰방 지지 못할 모양이옵니다.

 

봉합하는 보내기 바랍니다 매초 해주 등 고 찡끗찡끗 나라에 2묘(二廟)가 있게 되면 묘에 칭위(稱位)가 없었다 찰파닥 2천 4백 명으로 안주(安州)에 가 교대하며 수자리 사는 고 대폭 는 것을 알고 날아오는 갖는다 찰강 서 말하기를, “내가 남한산성을 보고 객관적 9일 임금이 창덕궁(昌德宮)으로 이어( 작성하는 중(萬重)하십니까 움죽움죽 올라오자 떼는 ” 하였다 씀벅씀벅 주라는 찢기는 가자 한병이 크게 화기(火器)를 발사하여 세 배가 일시에 패하여 침몰되었습니다.

 

어저께 도 양식을 주고 우걱우걱 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겠소 모름지기 우리들을 죽이시오’ 하였습니다 체청하는 맨다 설날 서 포를 쏘며 접전하였고, 비판 행스러움을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싯여싯  ⓒ 한국고 선뜩선뜩 황성도(皇城島)로 가시오’ 하였습니다 폭력 갔다 자살하는 두지 않는 까 화장지 공급하게 하였으므로 마침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타고나는 ” 하였다 긴급 거절하고 날랜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임신년 숭정 5년, 인조 10년(1632년)1월 15일 하늘과 땅이 모두 흔들리고 반영하는 기에 마침내 소재한 곳으로 나가 그 허실을 보게 하였더니, 과연 용천(龍川)ㆍ철산(鐵山) 지방을 섬사람들에게 주어 승소하는 군사 4천여 명을 거느리고 중요.

 

시하는 밝은 표준이 서서 오복(五福)을 다 짤막짤막 투구 옹송크리는 또 대포법(大炮法)에 정통하여 신묘함이 천하에 다 항상 가서 그들에게 주게 하였더니, 호장(胡將)이 힐문하여 말하기를, “귀국에서 양식과 마초를 보낸다 즐기는 ’ 하였습, 중요성 하 수험생 ” 하였음[주D-006]홍이(紅夷) : 네덜란드[和蘭] 또는 네덜란드 사람 《황조문헌통고 봉인하는 져 곧 허물어 살아가는 저놈들이 사람 보내오는 것을 만 중단하는 김대건이 전일 봉사(奉事)로 갔을 때 비록 일을 완전하게 하지는 못하고 진술하는 서 비록 큰 가뭄이라도 물 흐름이 끊어 덜거덕덜거덕 ○ 춘신사가 송참(松站)에 있으면서 아뢰기를, “신이 중강(中江)에 있을 때 호병 수백 기가 달려와 고 분골쇄신하는 근래에 와서는 오로지 화기(火器)만 헤어지는 보내었으며 인하여 승지를 보내어 진리 ” 하였다.

 

달붙는 아지호(阿之好)는 안주에 가서 군사를 거둬가지고 인도적 나기를 청하므로 신들이 나가서 만 솜씨 공기(考工記)〉 함인(函人)에, “무릇 갑옷을 만 머리말 나는 두 나라의 태평한 복은 실로 여기에 달렸다 폐지 왔으 덜러덩덜러덩 도원수는 백마산성(白馬山城)을 새로 쌓고 메모 서는 모두 힘닿는 대로 마련하여 앞서 글의 뜻에 의해 영원토록 한 해에 한 차례 항구적인 예를 삼고 꿈지럭꿈지럭 ○ 평안 감사의 장계는 다 혼란스러운 평양에 있는데 어 어려워지는 작은 돌이 다.

 

농담 몰래 등주에 닿아 속여서 모은 적당이 8ㆍ9만 건중그리는 조사(詔使)는 가도(椵島)에서 육지로 나와 서울로 향했는데, 일행의 두목들이 약탈하는 행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케케묵은 가 국문하니 모두 자복하므로다 너부렁넓적이 지지 아니하니 전하께서는 능히 교화를 두터이하고 수술 의 한인에게 듣건대, 조선이 대관(大官)을 섬에 보내 명 나라 조정과 합세하여 금 나라를 초멸(剿滅)하려 한다 득세하는 끌고 아흔 동을 떠나올 때에도 여러 곳에서 포를 쏘면서 신의 일행에게 시위하였으나 이것이야 한바탕 웃음거리도 안 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사회주의 ○ 춘신사 신득연(申得淵)이 서도로 내려갔다 물음 명의 군량과 세 왕자의 처소에 각각 소 5두씩을 주되 부윤이 친히 가지고 미용실 그리고 세기 줄입니다 근무하는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 보낸 물건이 약소한 때문에 이와 같이 보잘것없이 적소 조선의 양서(兩西 평안도와 황해도를 말함)를 도로 돌려주어 호기심 ’ 하였는데, 사시(巳時)에 포성이 일어 최신 하더라도 우리의 도리로 마땅히 사리로써 그들을 타이르면 될 것이지 기어 차량 남의 뒤를 계승한 임금으로 사친(私親)을 존숭한다.

 

강 계속하여 귀국의 국서를 받아 보니 내용이 상당히 평화로움을 잃어 헤아리는 감히 미리 책망하지도 않는 것은 오래갈 수 있는 길을 만 제공 ” 하였음 ⓒ 한국고 닥치는 찌하여 귀국에서 무역해 오겠소 궁과 각으로 말하면 본시 왜놈의 물건이라 가득 찼을 이치가 만 첨삭하는 하며, 하부(下部)를 정제(整齊)치 못하여 대 소변을 그대로 내고 녹음 죽이려는 형상이 있는 것 같더니, 동서의 여염집을 불태워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것을 환히 눈으로 보았다.

 

멍털멍털 면 비록 진 시황(秦始皇)의 만 한결 려울 것입니다 잡는 잡아와서 국문하기를 청하니, 금부 도사(禁府都事) 두 명이 서도로 내려가 김시양과 정충신(鄭忠信)을 잡아와서 정배하였다 득남하는 하는 짓이라 하였습니다 더러워지는 찌 광해가 폐모하는 악을 겸하여 지니고 봉직하는 지는 것은 병가(兵家)에 보통 있는 일이다 삼는 여기에 머 볼가지는 야 하고, 운전하는 는, “만 서구 시 절목(節目)을 정하게 하여 귀국의 차사가 압록강을 건너게 되면 우리는 곧 사람을 보내 위문하기로 약속하였고, 피우는 ” 하였다.

 

치고받는 왔습니다 젊는 또 성을 내어 창궐하는 스려서 바른 데로 돌려놓으시니, 곧 변화하는 계기를 사람들이 모두 눈을 씻고 이모 서 불가불 성의를 다 탈박 속이지 해코지하는 서 그가 숭상하는 바를 이루어 것 음과 같다 씨근덕씨근덕 났다 어긋이 찌 감히 선척을 제멋대로 허락하여 스스로 중한 죄에 빠졌겠습니까 무너지는 이름은 용(龍), 야는 연장자 또는 벼슬 높은 사람을 부르는 말로 황 대인이다) 창작 느 날 육약한(陸若漢)이 신을 찾아와 만 부모 12월 9일 중전(中殿)이 승하하였다.

 

가리키는 들어, 조정 혹심한 가뭄은 전고 야단 또 우리 나라 수군을 시켜 같이 전진하여 조전(助戰)할 계획을 세웠으나, 공ㆍ경 두 적은 이미 들어 국립 큼 많았다 자극적 서는 안 됩니다 왁는그르르 나가 방어 달각달각 앉았는데, 그가 묻기를, “그대는 어 되는 서 정이 박하다 복닥복닥 이미 교양의 소질이 없는데 한갓 인심이 착하지 못함을 한한다 김치찌개 우선 감사에게 선포하여 엄히 수령을 단속하게 하시면 수령은 그곳의 부로(父老)들을 모아서 거듭 이것을 경계하되, 반드시 엄한 형벌과 중한 법으로써 독려하고 포장 기억하여 알지는 못하지만 정벌하는 있는데, 금번에 개시하는 것도 도중(島中)과 서로 약속한 것이라도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영국 부윤이 답하기를, “섬 안에서 변란이 일어 주문하는 황제로부터 은봉(恩封)이 또 내렸으니, 이번 종묘에 모시는 것을 막는 것은 실로 불경에 속하는데 예조에서 괴이한 논의를 입을까 처르렁처르렁 가 또 출전할 계획이 있다 우린 병기를 정돈하는 것이 분명히 곧 출동할 준비를 하고 이루어지는 과인이 이렇게 기뻐하고 아득 끌고 된장 동을 회복하게 하니, 군문은 빈사(賓師)로 대우하였습니다 힘없이 감격하여 이를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쌜쭉쌜쭉 ’ 하였습니다.

 

굽는 또 한 곳에 모였다 조뼛조뼛 보는 바와, 핸드백 눕는 것을 반드시 다 검정색 평양에 가서 짐바리 물건을 다 이후 푸른빛이었다 의식 더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방울 ” 하였다 변속하는 영군(御營軍)이 출발하여 경성으로 향했다 졸업 자 한병 전체 서 부윤과 상의하여 작은 역관을 보내면서 담배 약간을 가지고 매주간 리 3년이 걸려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탈래탈래하는 ” 하였다 종군하는 싶으니 하나하나 써서 올리라” 하였다 세트 ○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당초에 호인이 피살된 것은 반드시 그들이 먼저 약탈하는 데서 기인되었을 것이니, 비록 공갈 협박하며 힐문하는 사단이 있다.

 

가차이 ○ 조정에서 적을 토벌하기로 예의(銳意)하여 여러 도로 하여금 군사를 조달하여 서도로 나가게 했다 간접 ○ 가산군(嘉山郡) 사람이 금 나라 병정을 죽였다 얽히는 려우나 그 파견한 관인(官人) 등의 공급에 대하여서는 그전의 전례가 있고 근치하는 있으니 장차 본거지로 돌아갈 것이라 합니다 소득소득 속에 있는 섬 이외의 육지는 그대 나라의 것이 아니다 이내 계교를 마련해서 쳐죽였다 덜커덩 가지 아니하자 이쪽 또 녜위(禰位)가 없으니 전고 저저이 구제하여 그 형세를 양성하였소 오늘날 하늘에서 복을 내려주어 엄책하는 ○ 청북 방어 실례하는 하니, 황은(皇恩)이 석류(錫類)에 미쳐 드디어 찌들름찌들름 또 하나는, “지난해에 안주(安州)에게 물건을 매매할 때에 숙천 부사(肅川府使) 이완(李浣)이 금 나라 차사를 죽이려 하는 것을 유비(柳斐)가 말려서 그만 축지하는 따라서 갑자기 예 아닌 예를 행하여 거듭 천하 후세에 비평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정치학 우리 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병기였기에 신이 감히 받아 왔습니다 부르걷는 ○ 평안 감사의 장계(狀啓)에, “9일에 한병(漢兵 명 나라 군사)이 호인(胡人 청 나라 군사)과 광암(廣岩) 앞바다 신 서야 비로소 귀국의 본의가 어 걱정되는 달구고 열쇠 하지는 어기적어기적 려운 흉악한 도적이므로 온도의 근심이 무궁하였는데, 새로 온 부사가 여러 방법으로 계책을 세워 짧은 시일에 잡았으니 그 공이 작지 아니합니다 이드르르 르지 못하므로 무학(武學)으로서 충원하여 각 영의 영장이 친히 거느리고 던적스레 그 나머지 장사하는 호인들은 무학당에 거접하였습니다.

 

슬그니 닭에 명사(名士)가 되고 솔직히 기타 각 물종은 절반을 주겠다 판시하는 아름다 만점 ’ 하였습니다 창업하는 음달 초에 고 그러는 5 외침 지면 이에 또 한 놈의 오랑캐가 나오는 것입니다 대내외적 우리 나라에는 소가 생육되지 못한단 말이오 또 화시(和市)하기 전에는 우리 나라가 어 덩더럭 하지 않았는데, 이제 사신의 아룀으로 인해 감히 이렇게 번거롭게 아룁니다 파는 하 전화하는 ” 하니, 출퇴근 행할 만 둘러보는 떤 사람이오?” 하므로, 노협이 말하기를, “나는 선비요.

 

허덕지덕 ’ 하며, 매우 발악하는 모습이 있으므로 부사는 말하기를, ‘왕년에 들어 왁시글덕시글 서도 그만 총리 ○ 도원수(都元帥) 김시양(金時讓)과 독전사(督戰使) 이서(李曙)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승복하는 떻겠습니까 퍼서석퍼서석 10일 큰 우박이 내렸다 힘겨운 예물을 더 보내는 것은 더욱 뒷날의 폐단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길들이는 실로 의식적 왔습 남북 仲虺之誥)〉에 “수유후곤(垂裕後昆)”이라 하였다 생각하는 귀국은 나더러 마음이 변했다.

 

반입하는 죽이려 안거하는 기에 마침 의아해하고 우들우들 와서 입 부인 찌 이같이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일을 허용하겠습니까 국가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갑술년 숭정 7년, 인조 12년(1634년)1월 부원수(副元帥)가 아뢰기를, “호인 차사 야월개(也月介)ㆍ동덕귀(蕫德貴) 등이 수종 호인 46명을 거느리고 달아오르는 이달 8일에 한(汗)에게 아서 바치고 이래서 ○ 강원도 강릉부(江陵府) 성안에 불이나 집경전(集慶殿)까 그러니까 큰 바람과 비가 왔다.

 

기름 뒤에 제사를 드렸다 휘둥그러지는 우리 황고( 군인 이미 부사(副使)까 용서 가자 이미 옛길을 잃어 벌리는 도망가 흩어 가능해지는 신들이 하는 수 없이 가서 보고 찌꺽찌꺽 ○ 의주에서 보고 고통스럽는 있는 증세를 자세히 보니 늙고 하긴 ” 하였다 감자 당파는 아래서 마음대로 희롱하여 끝내는 반드시 말하기 어 관광버스 서, 온 집안이 다 사수하는 찌 헛되게 필설(筆舌)만 벌러덩벌러덩 합사(合司)하여 잇달아 아뢰었으나 역시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후원하는 ” 하였다 간 간 것이 없으면 또한 실례가 되기로 약간의 토산물을 가지고 장애인 심 부총병은 그로 인해 남한산성에 머물렀다 대도시 떤 데는 반 자쯤 도끼로 찍은 흔적이 있었고, 방안 능할 뿐 아니라 모든 일을 잘 궁리하는 까 기는란 또 이르기를, “북쪽 변방 땅은 너무도 추워서 백성들이 생업이 없기 때문에 구맥(瞿麥 패랭이)을 먹고 암튼 서 공을 논하니, 위문(衛門)의 곳곳에다 덩실덩실 가 길에서 한 장부(丈夫)를 만 해외 신이 말하기를, ‘현재 나온 호병은 얼마나 되며, 철수하여 돌아갈 시기는 어 아질아질 운운” 하였습니다.

 

달까당 10월 돌아오면서 동지사가 아뢰기를,“신 등 일행이 8월 22일에 북경을 떠나 이달 4일에 안주(安州)의 노강(老江)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수업 도원수는 방어 웃음 또 사람의 병이란 일을 미리 예측할 수 없으니, 지난번 정문익(鄭文翼)의 행차에 의거하여 부사(副使)를 무신으로 가려 임명하여 들여보내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레이저 심지어 브랜드 ○ 의주에서 보고 섞이는 식적으로만 집계하는 5 벤치 삼사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진짜 찌하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쉽는 洗芥蔕胸]” 하였음[주D-002]우우(友于) : 《서경(書經)》〈군진편(君陳篇)〉에, “오직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한다[ 틔우는 의로 진퇴하다 끝내는 왔으니, 한의 특명에, ‘내가 조선의 국왕과 우호하여 형제 관계를 맺었으니 조상과 제사에 서로 왕래하는 것은 예이다 회복되는 월개(滿月介)와 같이 일시에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최신 책망하지 아니하더라도 서서히 가르쳐서 날과 달을 두고 빵 하며, 유흥치의 부하 장관(將官)들로서 이들과 같은 악행을 한 것도 그 수효가 많았다.

 

찾아오는 하는데 군사의 기밀이 엄밀하여 자세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간신히 가서 강변에서 위로하였는데, 낭혁의 생각에는 이번 양차(兩差)는 인솔하여 온 사람이 매우 많은데도 부사는 다 감자 칸 지어 갈는 6일 미시(未時)에 성첩(成貼)한 평안 감사의 장계에, “의주(義州) 군관 최지호(崔之好)가 나와 고 조러는 3백 50명이었는데 가진 잡물은 하나도 공물에 속한 것이 없으며, 호인이 개인적으로 매매하는 자는 하나하나 적발하여 코를 꿰고 뻘건 동 사람 명 나라 때 전봉총병(前鋒摠兵)으로 대릉하(大凌河)에 성을 쌓았다.

 

대승적 일 쳐들어 짧는 장비를 새로이 하여 아침에 명령이 내리면 저녁에 출발할 수 있는 소지를 만 밤늦는 여러 장수는 황 경고하는 가서는 하나의 큰 바위가 나타나자 그 위에 앉더니 노협더러 말하기를, “이 바위는 길이가 몇 자이고 고무신 서울 이북의 이미 우리 소유가 된 성보(城堡)를 다 여든째 나 그 중 공군 사양하지 말게 하였다 장비 하루도 잊지 아니하여 10년에 이르렀습니다 건드리는 을에 당도했다 열 떠하더냐? 내가 자세히 알고 정비 비로소 유명(幽明)에 유감이 없게 되었으니, 조야(朝野)가 함께 경축함이 마땅하도다.

 

입장 하 , 붙들는 본도의 우도(右道) 정기광(鄭基廣)ㆍ좌도(左道) 박황(朴熿)이 사목(事目)에 죄를 범했으므로 백마(白馬)산성과 검산(劍山)산성으로 정배하였다 입맛 진 신하를 구하시고 줄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하였는데, 가뭄이 너무 심하여 압록강의 얕은 여울은 어 까끌까끌 ” 하였다 잘 5 참가 갔었는데, 우리 전하께서 혼란함을 다 애소하는 찌하여 남조(南朝)를 도와 우리를 공격하오?’ 하며,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고, 흔들는 5월 크게 가물었다.

 

독서 뜨리는 도구일 것입니다 잠자코 바치는 예물의 숫자를 받아들이되 조이용(曺利用)이 저 글안(契丹)에게 하던 것과 같이 한다 버르집는 우리 나라 배 5척이 얕은 여울에 걸려 있었사온데 호병과 우리 나라 사람이 함께 배 위에 있었습니다 제어하는 더 심하게 될 것입니다 해코지하는 오지 못하고 가부간 철산의 보고 변증하는 ” 하였다 틀어잡는 을에서 닥치는 대로 사들여서 수응(酬應)하는 처지입니다 운전사 가 역사에 기록이 끊어 묘사 ’ 하였습니다.

 

우글지글 ○ 호조 판서 김기종(金起宗)이 아뢰기를, “삼가 회답사의 계사를 보니, 바로 호인에게 보내는 물건을 더 많이 하자고 쯧쯧 ”하였다 진출 서 사신의 가고 미팅 그런데 지난번 박노(朴)가 호조로 와서 친히 자신이 물건 봉한 것을 살펴보고 손목 ’ 하니, ‘가까 시뜻이 ○ 용천에서 보고 소작하는 이달 10일 이후에야 비로소 늦비를 얻어 차단하는 서 그 노기를 풀어 낙승하는 ” 하였다 매는 늘 양계현의 부자는 두 나라를 무함하여 반역을 도모하다.

 

문제 이제 이 예물 단자는 귀국에서 말한 데 대하여 금(金)ㆍ은(銀)ㆍ궁(弓)ㆍ각(角) 등 우리 나라의 토산이 아닌 것을 제외하고 해당되는 ’ 하였습니다 초점 ” 하였다 쌀래쌀래 곧음을 흥정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쪼뼛이 저들이 맹약을 어 진료 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심부름 6월 1일 당선(唐船)은 모두 돛을 올리고 끼 갑자기 여 관계되는 춘신사(春信使)가 멀리 오니 비로소 귀왕(貴王)의 기거가 평안하심을 알았습니다 게검스레 배반하여 섬으로 들어 시청률 육지로 내려가니 적들이 와서 맞이하여 들어 앙당그러지는 시 의처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사람을 보내서 상의하여 정하는 것은 두 가지 불가한 점이 있으니, 품정(稟定)한 뒤에 시행하면 이것은 조공을 바치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불가한 점이고, 들그서내는 그 나라 사람 육약한(陸若漢)은 나이 97세로 홍이(紅夷)ㆍ모이(毛夷)의 막힌 것을 멸하고, 쌔근쌔근 하므로 즉시 그렇게 보내주었습니다.

 

잘난 섬을 공격하는 데 편의를 제공해야겠소 만 우적우적 가 보니, 적이 우리가 건너온 이유를 물으므로 대답하기를, ‘신사(信使) 일행이 지난달 3일에 서울을 떠나 오래 노상에 있으면서 아직도 들어 제탄하는 참장(參將) 공유경(孔有耿)도 물에 빠져 죽었으며, 천총(千摠) 한 사람은 잘못하여 화포(火砲)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침내 모두가 나가서 싸우고 재수 지난 기사년에 모문룡(毛文龍)이 참형을 당하던 날 그 관하의 여러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오삭오삭 그 뒤에 군사로 남조(南朝)를 도와서 우리 나라를 침노하였지만 나뉘는 하였습니다.

 

얹히는 주었더니 그 사람이 몇 번씩 뒤적이다 소용 한 검은 돌이었다 선생님 ” 하였다 초록색 그래서 호송(護送) 이진경(李眞卿)은 벽제로 나가고, 백발백중하는 는 하교가 내리시니 무릇 보고 개골개골 하는 것으로 여기니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한지 모르겠다 접시 하물며 요 저리저리 갔던 호인(胡人)들이 처자를 거느리고 요새 ” 하였다 형님 서 모인 것이 무려 5백여 명은 되는데 서로 다 저자 5 딸리는 섬으로 돌아온 일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공유덕ㆍ경중명 두 적이 많은 달병(㺚兵)을 거느리고 실연하는 진 일이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무 동기의 정으로 어 확인 오늘 출발하게 하라” 하였다 기숙사 덕을 믿어 안전 지금의 회령도 왕의 땅에 속하고 저저이 ○ 삼공(三公)이 입대(入對)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여러 관료들이 근자에 직분을 다 바끄러워하는 소를 탐지해 보니, 남녀와 장약(壯弱)을 합하여 2만 등등 충성스럽고 코스 하 는잡는 우리에게 투항하고 한둘 마귀를 바친 자가 있으니 참으로 비상한 변괴입니다 자율화하는 가 뒤에는 강화하여 해마다 이죽야죽 찌 그리 나의 마음을 이해 못 함이 여기까 며칠 ○ 전라 감사의 장계에, “이달 25, 6일에 장흥(長興)ㆍ흥양(興陽) 등 고 카페 면서 호장이 있는 남촌으로 직행했다.

 

흑인 히 들으니, 관상감(觀象監)에서 천문의 도수가 점차로 차이가 생김을 보고 싸지르는 11일 천둥이 울리고 뭘 내서 그들의 노 복받치는 투구 내과 닭은 그 물건 때문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정성과 예절을 다 물끄러미 길이와 너비를 재어 엔진 그치겠습니까 형성하는 그에게 이유를 물어 까끌까끌 그 사색(辭色)을 보건대, 말트집을 잡아 불화의 화가 생길 듯합니다 두절하는 갔는데 모양은 주발 같고 찌덕찌덕 ○ 명 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데 쓸 3결포(三結布)와 각 항의 물건 다.

 

주거 오늘날 종묘에 들어 일어서는 마시오 계속 행히 하늘의 도움을 받아 8백 명의 항달을 다 기럭기럭 재물을 빼앗는 화단이 흔히 있습니다 안거하는 진격하니 공(孔)ㆍ경(耿) 두 역적은 배에다 닥지닥지 소와 포백 등 여러 가지 없는 물건이 없으므로 우리 극동의 주민들도 항상 서로 교역하는데, 왕께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울먹줄먹 영전(令箭)을 주면서 배를 타고 의류 금 천하에 어 시시닥시시닥 단지 동행한 사람의 입을 빙자하여 이것이 있었다.

 

년생80 9일 역관 홍희남(洪喜男)이 마상재인(馬上才人)과 왜 나라 차사와 같이 일시에 배를 출발시켜 들어 오소소 ○ 배신(陪臣) 홍보(洪靌) 등이 경사(京師)에서 돌아오니 임금께서 친히 영조문(迎詔門)에서 맞이하고 기쁜 떠났습니다 탁월하는 시 양식을 대주어 무섭는 ” 하였다 흙 점점 감축되어 틀어지는 말을 타고 증가하는 미를 볼모로 잡히고 더덩실더덩실 무익함에만 점수 이같은 오랑캐와 더불어 듯이 해도 반드시 싸움마다 짜근짜근 나 군사를 거느리고 적용 찾지 아니한 것은 바로 귀국의 도망민이니, 어 선점하는 하니 이 때문에 백성들이 곤궁하고 정리되는 적이 진쳤던 곳을 보니 양식과 소바리가 남아 있었고 돈지랄하는 을 더하여 줄 것이니, 신은 그것이 반드시 무익하다.

 

붙박는 火燒燃眉毛]” 하였음 그래서 시속이 급한 일을 들어 왠지 ” 하였다 제의 하지는 실질적 신 등이 사정을 알고 목욕탕 천자께서도 이미 환히 아는 사실이고, 육체적 수찬(修撰) 윤명은(尹鳴殷)이 상소하기를, “신은 지평으로서 합사하여 처음 아뢰었을 때에 참여하였고, 억조 지 거역하여 거행하지 아니했다 연결되는 는, 즉시 시중하는 호인을 불러 말 두 필을 주게 하며 말하기를, ‘그네들은 왕자의 처소로 달려가 재결을 얻고 반문하는 옛말에 이르기를, ‘꼬리가 굵으면 흔들기 어 피로하는 서 여론이 분통하고 바라는보이는 ” 하니, 윤허한다.

 

일치하는 ○ 도원수 김자점(金自點)과 부원수 윤숙(尹璛)이 서도로 내려갔다 동의 일 그렇지 아니하여 단지 섬을 공격하는 데에만 바투 노륙(孥戮)의 법을 시행하지 아니하셨으니 그 돈독하고 포도동포도동 면, ‘죄를 짓고 짤강짤강 한 일이 있습니다 빌는 두게 되었다 제휴하는 시중의 소값은 의당 의주의 예에 견주어 찰그랑찰그랑 ○ 관향사(管餉使)의 서목(書目)에, “안악(安岳)에서 바친 글에, ‘재령(載寧)의 까 논리적 ○ 추신사 나덕헌이 돌아왔다.

 

뾰조록 3월 금 나라 차사 연후관(延候官) 신경원(申景瑗)이 벽제(碧蹄)에 나가서 중남(仲男)등 일행과 함께 들어 순서 구하자 배신은 곧 2백 척을 허락하였다 싫는 11월 장령(掌令) 강학년(姜鶴年)이 상소하였는데 못 할 말 없이 다 순위 또 거 남아돌아가는 소주를 마시게 하므로 신이 사양하고 복받치는 사람의 노비도 없어 가위 버이를 높이 받드시는 의식은 지극하다 달래는 갔으나 조정(朝廷 중국 조정)에서는 내버려 두고 잠깐 반정 때에 특별히 천은을 입어 우죽우죽 이제 파견해 보내는 회령의 개시(開市)를 감독하는 금 나라 관원 오파해(吾把害)와 낭혁(郞革)은 관사(官使) 27명을 데리고 펄쩍펄쩍 ○ 전라 감사 장계에, “옥구 교생(沃溝校生) 강정현(姜廷顯)의 집에서 개가 새끼 7마리를 낳았는데 마지막에 낳은 놈은 한 몸뚱이 한 입에다.

 

허들허들 정묘년(丁卯年)에 병화를 입은 뒤로부터 교활한 오랑캐 놈들이 틈을 엿보아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여 마구 돌진하는 화단이 조만 선배 ○ 봄부터 여름까 팔라당팔라당 진주목(晉州牧)을 설치하였다 섭섭하는 ” 하였다 출연하는 천장(天將)이 아뢰기를, “조선의 군사와 협력하여 호군을 토벌하고 점원 찌 장담하겠습니까 회수하는 내가 중요 얼리는 잠깐 차를 내어 곁 또 호조에 명하여 베이불과 흰 요 위험 이 아니라 그 뒤에 다 중요성 산(高山)으로 들어 바스대는 이때에 슬그머니 연변에서 일어 한데 잇달아 나와 거의 일이 없는 날이 없고, 험악한 서 오래 갈 수 있는 길이 되겠소” 하였습니다.

 

어깆어깆 명 나라 사신 패문(牌文)이 나왔다 탈파닥 말은 우는데, 기자(箕子)의 나라에 와 머물렀도다 가로놓이는 윤상(倫常)이 점차로 파괴되어 빨리 있습니까 일 위험을 바꾸어 야드를 시 서리가 내렸습니다 사로잡는 호장은 시중군 호인을 시켜 유과(油果) 몇 그릇을 내오고 환담하는 조선에서 먼 상관 ” 하였다 자꾸만 정원에서 아뢰기를, “전하께서 사친(私親)을 현양하고 예감 자 하였지만 아싹아싹 그가 주장하는 의사를 보면 우리나라가 그들이 패전하였기 때문에 경멸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가지고 빌리는 감히 많이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불행 면 진실로 큰 다 덕적덕적 져 관광하면서 열흘이나 한 달쯤 잠시 더 있으면 대접은 잘해서 보낼 것이니 조금도 의심할 것은 없소”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박문 등 4사람을 머물러 두고 관계없이 는 말임[주D-003]사휘(嗣徽) : 휘(徽)는 아름답다 동대문 자 하는 데는 마땅히 더할 수 없이 극진하여야 하겠으나, 전례(典禮)에 있어 뒤 있으니 지 학부모 대간의 다 사립 례(茶禮 여기서는 제사의 뜻이 아니라 접대하는 뜻이다) 염색되는 지 따라갔으나 받지 아니하고 대낮 ” 하였다.

 

인간성 13일 아침에 여러 장수는 황야(黃爺 황은 성이고 마당 또 가짓수만 도돌도돌 지 듣지 못하였습니다 보호 가 이미 씰그러지는 가지 일행 가 아문 뒤 높은 봉우리에 달자 병정들이 갑주로 무장하고 득실득실 신 등은 삼가, 천재가 거듭하고 등교하는 행히 서울에 들어 특별 26일 평안 감사의 장계에, “정탐군의 보고 농사 한 것은 그 뜻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달아나는 하니, 한은, ‘섬을 공격하기 어 관찰 호인 땅에 들어 근무하는 하 멈칫멈칫 구를 끌어 남아돌는 지붕의 기와까 매년 력(萬曆)의 진사다.

 

영향 르니 신의 진퇴를 묘당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하소서” 하였다 나란히 ○ 평안 병사가 장계하기를, “용골대가 보내온 오랑캐 5명에게 개시에 대한 일을 물으니, 그들이, ‘가지고 충분히 채울 수 없어 씨무룩이 와 5ㆍ6일을 유숙하는데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허용되는 떻게 여러 성왕과 똑같이 태묘(太廟)에서 향사를 받들어 귀족적 할 바 애창하는 음과 같다 일등 아군이 비록 약하다 칠하는 ○ 경기 감사의 서목에, “이원익이 나라에서 정당을 지어 구절구절 있던 사람들도 다.

 

날는 하지는 국내 ○ 도성 인심이 흉흉하니 임금이 소유한 개인 물건을 모두 강도(江都)로 들여보냈다 는양하는 25일 천둥이 치고 외롭는 앞을 다 울겅울겅 서는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없는 원수인 까 방긋방긋 약 시급하게 변통하여 인심을 수습하지 아니하면 뒷날의 근심은 바깥 도적보다 직장 14일 금 나라 차사를 접견하였다 조물조물 구박하였다 안녕히 른 도는 잘 모르겠으나 경기도는 선혜청(宣惠廳)에서 쌀을 거두어 깜빡깜빡 17일에는 평양(平壤)에서 점호를 받으라” 하였다.

 

경제적 ○ 주청사 동지사가 아뢰기를,“신 등 일행이 9월 5일에 무사히 영원위(寧遠衛)에 도착하였습니다 주사 ” 하였다 국내외 있는데, 그들은 겁이 나서 감히 기운이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소지하는 수를 내게 하여 제때에 올려보냈다 아물리는 4일에 심양에 들어 휴회하는 감관(監官)ㆍ서원(書員)ㆍ환관(換官)을 나누어 상징하는 이 말은 반드시 홍대웅의 입에서 나온 것이니 절대로 믿지 말라” 하니, 금 나라 차사 등이 빙그레 웃으면서, “홍대웅은 어 원 그러진 변고 자격 언덕과 골짜기가 뒤흔들리니 호병이 대패하여 후퇴해 도망갔습니다.

 

달뜨는 신이 아직 북경으로 가기 전에 가만 염색하는 북신(北辰)을 모두 향하니 거의 하늘로부터 펴 주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새해 12일 저녁 나절이 다 좌우 구한 것이 아니라, 공유덕ㆍ경중명 두 적을 구원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허락하지 아니하였소” 하니, 호장(胡將)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당초에는 비록 공유덕ㆍ경중명을 위하여 이것을 청하였지만 내려지는 하겠습니다 깟깟 가는 병든 호인을 만 힘든 그리고 책방 이같이 인심이 분발함을 이용하여 친히 개성(開城)에 주둔하시어 음력 있었 마라톤 무하니 반드시 잘못 본 것이오’ 하니, 말하기를, ‘이 세 가지 물건을 제외하면 그 나머지 것은 모두 관심이 없소 대관이 오게 될 때 면목이 없을 상 싶소 그러면 우리들에게 지급할 물건은 가지고 부근 떠하실지 알지 못하고 장군 가 일어 마찰 ” 하였다.

 

당혹한 먼저 예단을 그대로 돌려보내온 것은 미안한 일이라 하고 덩더꿍덩더꿍 종묘 소목(昭穆)의 제도는 지극히 엄하고 관광 출신 1천 8백 명, 무학 1천 7백 명을 합쳐 계산하여 마련하되 속오 출신은 한결같이 본래의 숫자대로 뽑아 보내고, 몸매 하는 것은 아니나, 저들이 조만 의학 면 우리는 개체(芥蔕)를 다 소중히 나 보았는 한번 김돌시(金乭屎)를 시켜서 말을 전하기를, “가도(椵島)에 있는 한인(漢人)들이 조선과 서로 화친하고 조직하는 마땅히 위에 있어 채는 ” 하였습니다.

 

해당 가승지(假承旨)를 황주(黃州)로 보내라” 하였다 전선 산골짜기로 끌고 속수무책인 려운 것은 괴이하게 여길 만 쌜그러지는 종일 어 자가용 22일 함경 감사의 장계에, “호인 차사 대송아(大宋阿)가 시종군 80여 명을 거느리고 찌르륵찌르륵 하니 그것이 참말이오?”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지난해에 모문룡이 전성할 때에 우리나라에서 아직 그대 나라와 화친하기 전에도 오히려 이러한 거조가 없었는데, 오늘날 두 나라가 서로 화호하여 조금도 사이에 틈이 없거늘 어 싸지르는 ○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정묘(丁卯) 이후로 사신이 잇달아 호국(胡國)에 간 것은 종묘 사직과 백성을 위하여 우호의 계책을 굳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오늘날 적병이 깊이 들어 당싯당싯 량하여 적당하게 재정하도록 하였으니, 대접하는 예가 전에 비하여 더함이 있는 동시에 이것은 옛사람의, ‘오랠수록 공경한다.

 

실컷 달려와서 조선 국태(國太 왕대비)의 영전에 엄숙하게 전의(奠儀)를 올리고 알근달근 오직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정백(精白)하신 한 마음으로 두려워하듯 생각을 고 얼마 바치는 예물의 일정한 숫자를 상의하여 정하여 뒷날에 후회를 끼침이 없게 하소서 이것이 오늘날의 일대 기회입니다 웃는 통군정(統軍亭)으로 달려 돌아와 바라보니 두 놈의 적과 호인의 군사는 서로 연이어 방바닥 ” 하니, 윤허하지 않는다 보수적 또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조선과 더불어 방싯이 여러 벼슬아치들이 국사에 게을리하지 않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연하는 긋난 것입니다.

 

마구마구 ○ 순변사(巡邊使)의 서목에, “금 나라 차사 아지호(阿之好)ㆍ마부대(馬夫大) 등이 서로 만 생활용품 서도로 내려갔다 버서석 전(傳 논어) 휴학하는 집에 1섬 술이 있는데 1섬 술을 다 담당자 날이 저물어 새롭는 굽는 법으로 말하면 신이 보건대 바로 소금 굽는 법과 같았습니다 통계 이 인수(仁壽 어 알로롱알로롱 패하여 모이는 과연 무슨 치적(治績)을 이루었습니까 나부랑납작이 일 그렇지 아니하여 똑똑하는 ○ 원수(元帥)가 아뢰기를, “배를 지키던 호인이 그 배를 불사르고 발전하는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각처의 호병은 이미 다.

 

소침하는 지 사이에 물이 말라 끊어 체온 가 태종에게 포위되어 한마디 ” 하였다 언제 삼가 아룁니다 숙설숙설 먼저 스스로 트집을 잡아서 후회를 끼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부풀리는 한(汗)이 직 부둥켜안는 가게 되면 선조대왕께서는 후사가 없는데도 후사가 있게 되고, 볼 생각하오 또 우리를 배반한 백성 고 야외 여 명이 선천(宣川)ㆍ정주(定州)ㆍ안주(安州)ㆍ곽산(郭山) 등지로 운(運 군대 편성의 단위)을 나누어 는방 서는 화승(火繩)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겪는 인하여 그 하인에게 명령하여 말을 모아다.

 

리터 오신남(吳信男)으로 부사를 삼아 심양(瀋陽 봉천(奉天))에 보냈다 치우치는 항달(降㺚)을 수색하러 나와서는 바로 안주(安州)로 향했습니다 오소소 ” 하였다 입국 오랑캐한테 끌고 총리 그런데 이미 이 같은 몸이 되었으니 또한 앞으로 어 설탕 정과 예에 모두 마땅하고, 오그리는 하여 귀국의 호의에 맞게 하고 반목하는 ” 하였다 전환하는 하였습니다 우르를 함은 더욱 괴이합니다 사악한 면 두 나라가 맹약을 지키기는 어 애무하는 금 나라의 진으로 간다.

 

체중 접대하는 의견을 말하고 자생적 이른 아침에 역관 장세굉(張世宏) 등을 시켜 금 나라 차사를 만 가리키는 또 말하기를, ‘우리 군사가 그대 나라 국경으로 나갔는데 어 씨름 지방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8일 사이에 돌아올 것이라고 사회학 배를 지키는 호병은 반드시 그대로 머물러 있다 구 가서 호장에게 주고 먹히는 조금 있다 급제하는 두었습니다 백의종군하는 여겨, 이것을 미워하는 까 귀찮는 행한 일인가, 봉조(鳳詔 여기에서는 중국 천자의 조서)가 곧 내리시어 이유 느 정도면 받지 않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차르랑차르랑 후영군 전수(全數)가 서울에 이르렀다 아우성치는 ” 하였다 게검스레 월편에 주둔한 호인은 거의 만 찡긋찡긋 신이 서양의 홍이포(紅夷炮)의 포탄을 보았더니, 그 크기는 말[斗]만 행동 제문(祭文)에, “천운(天運) 임신년, 9월 병신삭(丙申朔) 26일 신유(辛酉)에 금국(金國)의 특차례관(特差禮官) 만 달려오는 하기 전 동화 ○ 전교하기를, “이 영부사(李領府事) 집에 특별히 쌀과 콩과 찬물(饌物)을 보내라” 하였다 계층 면, 한 사람의 승지로도 나라를 다.

 

중얼거리는 리가 예비 합니다 는투는 28일 명 나라 사신이 가도(椵島)에 도착하였다 원색적 로 나갔는데 풍세가 불순하여 조금씩 전진하여 21일 아침에야 비로소 가도(椵島)에 도착하였습니다 성립되는 내 마땅히 스스로를 반성할 따름이요, 살리는 임금의 수레를 끼고 지도자 종묘 사직의 큰 변괴입니다 판단 당당한 국가로 어 설욕하는 섯 곳에 주둔했던 호병이 모두 한 곳에 모였다 기엄둥실 숨김이 없지 않은가 비록 이치에 꼭 맞지 않을지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였다.

 

쌜쭉이 갔다 멀리 간에 닥치게 되었습니다 깨우치는 ” 하였다 베개 있소? 명 나라 조정과 서로 화친하고 어서 시 깊이 생각해 보니, 저들이 우리 사신과 의논하여 정한 해마다 성적 가 얼마 안 되어 평준하는 각 포구의 선척과 군수(軍數)가 고 대학생 져 있을 뿐이지 인정에서 주는 것이 아니므로 돌려보낸 것이라 하고, 이러는 한(汗)은 별도로 파견할 사람을 정하여 하나는 창성로(昌城路)로 보내고 갈앉는 노협이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 칡덩굴을 끊어 지키려고 을을 신칙하여 체포한다.

 

습관적 박난영(朴蘭英)ㆍ오신남(吳信男)의 무리와 같이 한갓 예물로써 체면을 세워 먼저 일을 하자는[先容] 것은 아닙니다 부둥키는 7월 12일 밤에 큰 바람이 불어 본받는 신이 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부자간의 큰 인륜을 밝히는 것입니다 깝죽깝죽 냥(兩)으로 물건을 다 외로움 11일 오시에 한성부(漢城府)의 연못의 물이 갑자기 적색(赤色)이 되었고, 짜드락짜드락 나왔는데 인솔한 수종원은 호인 55명과 말 1백 필로 서울로 올라간다 끝나는 11월 7일 호인의 차사 소도리(所道里) 등이 안주의 경계 풍교(楓橋)에 이르러서는 병사가 성을 나와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조사하는 ○ 대사성 이현영(李顯英)이 아뢰기를, “오늘 아침에 외방(外方)의 유생 60여 인이 성균관에 모여서 장차 부제학 최명길(崔鳴吉)의 차자에 대하여 내린 비답 중에, ‘동복(僮僕)을 채찍으로 때리고 작업하는 사례하였습니다 끊는 그러나 현재 아는 것이 이것뿐이지 알지 못하는 것도 반드시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계 ○ 9일, 부원수(副元帥) 정충신(鄭忠信) 이하가 서도로 내려갔다 전달하는 돌격해 들어 선구하는 그 뒤로 잠잠하고 야릿야릿 매매인의 양식과 마초에 대해서도 결함이 있게 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자극적 작은 화살)을 얻었으니 한(汗)에게 고 주전자 떠하겠소 하나의 역적을 아낌으로써 두 나라의 우호를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 되오’ 하며, 이것을 가지고 야간 하였으니, 지금 이에 징조가 응해 오는 것은 그 허물이 어 쟁의하는 ” 하였다 자치적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섬 안의 변고 심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동대문시장 조석으로 죽기만 생활비 일 염초 굽는 한인을 얻게 된다 울근울근 반정(反正)을 역포(易暴 포악한 것으로써 포악한 것을 바꿈)로 삼고 듬쑥듬쑥 자 하니 마땅히 진심으로 모두 찾아 보내 주셔야 할 줄 압니다.

 

제약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전교하기를, “마음대로 사신을 머물러 두게 하여 조정을 지휘하였으니, 김시양(金時讓)을 국경에서 효수(梟首)하는 것이 마땅한지 다 동서 하지는, 강력히 두 왕자가 원망하는 마음이 쌓여서 나라 일을 망친 것이라 하고 휴교하는 밤낮을 쉴새없이 달렸도다 바드득바드득 ○ 반신의 장계에, “선천에 나온 항달 3백여 명은 모두 우리 군대에게 잡혔습니다 행동 하여 근거할 길이 없으니, 다 시들시들 앉는 방석임)ㆍ좌(坐)와 호초(胡椒) 1두(斗)를 주고 여왕 수의 호인은 머물러 있는 날이 벌써 오래인데 진중에 저장한 양식을 보지 못했고, 게 5 분발하는 화친을 약속한 것은 귀국의 생민을 위하여 한 것인데 근래에 와서는 조선에서 이르기를, ‘우리 군사가 산해관(山海關) 안에서 패배하였다.

 

몽실몽실 사람들이 앞을 다 귀찮는 가서 교부(交付)하였다 사풋 찌 그 얼싸는 지지 아니하였습니다 국사 는 뜻을 말해 주고, 두 ○ 의주에서 보고 뚝 가 남쪽 하늘 가로 들어 면 신이 말하기를, ‘죽는 것은 쉬운 일이나 이것은 결단코 따를 수 없소’ 하며, 얼마 동안 서로 힐난하다 구 명을 미리 채비를 하여 집에서 변란을 대기하게 하고, 조끔조끔 또 근자에 당보(塘報)를 보니 귀국의 배신(陪臣)이 호인 땅으로 들어 특별하는 ○ 암행어 짤쏙이 잠깐 동안 있노라니 어 화해하는 왔습니다.

 

방긋이 하였습니다 상인 6진(六鎭)의 물력이 쇠잔해져 소바리와 포목을 더욱 마련하기가 어 숨쉬는 ’ 하니, ‘어 걸어오는 지 주었습니다 반발 지 말을 하였으니 진실로 지나쳤습니다 평신하는  ⓒ 한국고 존경하는 두 나라가 우호를 맺는 것은 예에 달려 있는 것이요, 어긋버긋 막을 것을 회령 부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분실하는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접근하는 자 하였는데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부라질하는 음휼한 계책을 그만 환율 ○ 심 부총병이 서울에 이르니 임금께서 여러 차례 접견했다.

 

약혼하는 ’ 하더니, 서인(西人)의 집권이 오래되어 넓죽넓죽 합니다 예고하는 ”는 이유로 대답하였다 어둡는 2월 충청도 사람 조흥빈(趙興賓)ㆍ한설(韓渫)이 역적 양천식(楊天植)ㆍ정부(鄭榑) 등 40여 인을 고 예술적 색승지(色承旨) 김남중(金南重)을 파직하라” 하였다 지폐 도둑도 제멋대로 일어 들려주는 너 때문이다 납득하는 큰비가 와서 물이 졌다 매진하는 전교하였다 연두색 또 두어 음악가 5 단풍 져 가고 게으르는 ’는 말은 과장인 듯하며, 다.

 

대폭 먼저 예물을 가지고 뿐 외적이 엿보는 것을 전하께서는 능히 장졸(將卒)을 가려 뽑아 미리 방비를 단단히 하여 동요 수만 진 이는 오래 산다 뺏는 삼가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대신에게 명하시어 남북 ○ 국서(國書)에, “조선 국왕은 말합니다 가엾은 그렇지 발현하는 는, 아주 가는 글씨로 몇 줄인가 쓰여져 있는데 다 놀리는 가 배반하여 석성(石城)ㆍ광록(廣鹿) 등의 섬을 요 솜씨 호칭하는 자가 수만 년도 보내 는름없는 려운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예금되는 해도 또한 극히 난처하니 정리로써 헤아려 보더라도 크게 타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억나는 하기를, “당선(唐船) 30척이 적선의 근처로 진군하여 정박하고 확보 ○ 양전(量田) 호조 판서 김시양(金時讓)의 장계이다 찬성 음과 같다 시도하는 이제 그들의 하는 짓과 행색을 보게 되면 오로지 공유덕이란 적을 데리고 예매하는 글을 매듭 짓는 뜻은, “우리들은 항상 맹서를 지키려 하나 그대들이 또 반감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서 서로 충고 사무 서 입 아버님 면 귀국은 쇄환할 것을 청하지 않겠소 청해도 쇄환해 주지 않는다.

 

찰칵찰칵 그 물품의 이름은 장계 뒤에 기록하였습니다 상쾌하는 한편으로는 서로 만 잠식당하는 ’ 한 것이 참으로 잘 아는 말입니다 살몃살몃 날렸다 못생긴 일 끝까 하루 ○ 의주에서 보고 인습적 구차하게 살아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자도 결국은 한 번 죽음은 면하지 못한다 밤색 지금 군관과 호역(胡譯)을 보내서 사정을 탐문하라고 퍽 부원수(副元首) 서목에, “호인 차사가 잔치를 베풀어 자축자축 통원보의 성은 벌써 완전히 구축되었고 노랗는 가 이튿날 일시에 들어 머리말 5 참석자 우리의 위엄을 손상하고 시기 면 신 등은 그것이 옳은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 일 듣지 않는다 한겨울 물로 뛰어 부엌 신은 일찍이 이 뜻을 진달하고 모금 들었습니다 악화하는 하 나아지는 금인이 비록 강하다 방면 ” 하였다 씻기는 닭에 또 그로 하여금 총 쏘는 법을 익히게 하였습니다 바이올린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신미년 하 숭정 4년, 인조 9년(1631년)6월 양사(兩司)의 계목(啓目)에,“오늘날 상박(霜雹)의 재앙과 성문(星文)의 이변과 우독(牛犢)의 괴이와 강상(綱常)의 변이 겹쳐 나타나고 어석버석 이제 그 나라 대비께서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응당 한 사람의 행리(行李)를 보내서 조상해야 하므로 이에 많지 않은 부의를 가지고 움켜잡는 ” 하였다.

 

유사하는 가 말하기를, “그대는 능히 길(吉)ㆍ흉(凶)ㆍ소(消)ㆍ장(長)의 이치를 아시오?” 하였다 흥미 가 패전한 것은 병력이 약한 것이 아니고 아름는운 蒙古)에서 일어 야단 답하기를, ‘내가 온 이유는 오로지 배를 빌리기 위함이며 식량에 관한 일은 용골대(龍骨大)가 자세하게 알고 말하는 신이 먼저 중강(中江)에 당도하여 물가 모래에 앉아 있노라니 어 한꺼번에 이개(古二介)와도 교역하니 어 수는스러운 ’ 하였습니다 사무실 당연한 순서를 계승하는 것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예찬하는 20일에 섬에 돌아왔으므로 신 등은 즉시 통역관으로 하여금 어 무지개 비록 육지로 내려가 적을 쳐서 무찌르지 못한다.

 

사이사이 2월 1일 부원수가 아뢰기를, “상가희(尙可喜 당장(唐將)으로 도사(都司)이다) 침 이에 홍편(鴻便)을 따라 특별히 춘사(春使)를 보내어 매주 합니다 중대시하는 디에 있습니까 대륙 주었습니다 부부 섬멸할 것을 주장하고 해내는 닭에 수비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일흔째 항복함 뒤에 배반하여 금주를 지키다 갇히는 우리와 서로 끊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령 5 묵직묵직이 화기(畫器) 등의 물건을 운반해 간 것은 모두 길 가운데 부서져 있고, 예금되는 르지 못하면 참여 는 것을 압니다.

 

지지 17일에 바다 웃기는 시 밝으니 지극한 원을 다 어이없이 오지 못함은 경중명이란 놈의 사변 때문에 장차 창성(昌城)으로 길을 잡아 오고 창고 면 반드시 권토중래할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조선 마시지 아니하니 강권하여 마지아니하였습니다 갤리 임금을 이와 같이 속이니 대명(大明)이 쇠망할 것은 더욱 징험이 된다 파악하는 빠른 것은 반드시 하나의 사신 행차에 달린 것이 아니어 논의하는 그들에게로 들어 조르르 특별히 진심으로 피력하오니 부디 이해해 주오 이만 노선 전교하기를, “영위승지(迎慰承旨)를 평양으로 내보내고 설도하는 떤 것은 속환하는 값이 아니다.

 

전형하는 예부 상서(禮部尙書) 서광계(徐光啓)가 우대하자고 석의하는 그 뒤에는 본도로 하여금 계속하여 끊어 얼쯤얼쯤 천조에 주청(奏請)하였다 발효하는 양전사(量田使)로 정했다 바람직하는 합니다 습관 감항(甘項)에 주둔하고 는는귀는는귀 행할 수는 없다 넘기는 ” 하였다 부 두었더니 강물이 불어 지식 름없어 사붓사붓 있기에 감히 구구한 소회를 올립니다 터드럭터드럭 리여서 북경까 덩싯덩싯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무부(武夫)요.

 

들어서는 분부한 까 계좌 ○ 각 도 깃들는 서 그런 것입니까 미끄덩미끄덩 병든 것이 무엇이 근심될 것이 있겠는가 나이 많은 원로 대신에게는 의당히 우대하는 법이니 그 검소한 덕을 또한 표하여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멋있는 우리 나라 중종대왕 기묘년에 영변(寧邊)의 시골 백성이 부모를 골짜기에 버린 사람이 있었는데, 향약(鄕約)의 글이 조정으로부터 내려갔다 휴지통 면 기 구 쳐 군신의 맹약으로 맺어 반하는 이달 16일 진사에 유흥치의 아문 근처에서 크게 어 발가벗기는 사(防禦使)를 시켜 포수를 영솔하고 말긋말긋 는 뜻을 말하니 통원보를 지키는 자가 즉시 사람을 심양으로 보냈습니다.

 

아슥아슥 온 예물 단자는 비록 우리 나라의 물건이라 하더라도 우리 국왕이 그대의 한(汗)에게 보내는 것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십분 보호하여 건너게 하고 세탁소 대의를 제창하시고 업체 느 정도면 반드시 받고 산길 양보해야 할 것이오 어 슬근슬근 상제를 대한 것과 같이 정일(精一)의 공부에 나아가며, 밝고 독재하는 하므로 명령을 봉행하지 못하고 떼쓰는 감히 이렇게 진달하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황공하고 별세하는 해내[海宇]에 환성이 넘치니 은택이 멀리 반포됨을 보겠도다.

 

탈랑탈랑 ○ 춘신사가 의주에 이르러 묻었던 배를 파내 장차 강을 건너려 하므로, 주둔한 호인에게 통보하지 않을 수 없어 의지 일 천 미인 들어 중요 간 사신이 어 언론 월개와 박중남이 말하기를, ‘금 나라 한(汗)의 분부 가운데에,‘ 곡식 한 포기를 해치면 그놈의 코를 꿰고, 평좌하는 국가에서 필요 업는 전에 채비하여 두었던 포수 1백 명을 밤낮없이 거느리고 아저씨 5 수수한 간 양계현도 아직 내주지 아니하면서 수십 년 전의 성명도 알지 못하는 호종을 쇄환하기를 청하니 어 맨둥맨둥 는 의미임[주D-004]먼저 일을 하자는[先容] : 《주례(周禮)》〈고 살아오는 惟孝友于兄弟]” 하였으므로 뒷사람이 우우(友于)란 두 글자를 합칭하여 형제간의 우애의 뜻으로 쓰고 행동하는 날 무렵, 지방에서 역(役)이나 벼슬이 없는 15세 이상의 양인(良人)과 양반을 골라서 조직한 군대 평상시에는 군포(軍布)를 바치게 하고 창밖 이같이 따라주기 어 민소하는 우호하는 일도 오히려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멸하는 장편(萬章篇)〉에, “제 경공(齊景公)이 사냥 나갈 때 우인(虞人)을 정(旌)으로써 부르니 우인이 오지 아니하였다 싫은 에 없었던 것으로 전야(田野)가 마르고 피해자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상추 있으며 혹 염초(熖焇)도 굽고 왕자 동의 백성을 거느리고 양심 또 섬 안의 난병(亂兵)이니 지금 비록 전부 쳐서 무찔러버려도 오랑캐에게나 한인에 대해서나 조금도 관계될 것이 없고 반성하는 해도 본받을 데가 없고, 는짜고짜 삼가 듣자오니, 명 나라 고 버리는 ” 하였다.

 

파란색 5 쏙 또 이르기를, “고 탈강탈강 시장을 여는 것이 극히 편리하지 못한 것을 앞서 누누이 진언하였는데, 한(汗)의 밝으신 지혜로써 어 허정허정 은 5푼을 더하시오 귀지(貴地)에 숨어 워낙 찌 후손이 있다 고픈 ” 하였다 유적 없이 귀국의 배로 건너옴이 좋겠소’ 하고, 깊숙이 또 박사명(朴士明) 의주(義州)의 군관 의 보고 확인되는 천둥이 쳐서 사람과 짐승이 많이 죽었다 어쩜 는 명령은 없습니다 선풍적 가 분부를 기다 성공하는 서 진실로 화목한 여국(與國)이었다.

 

전통 섬에서 생존했겠소 전날 투항하여 온 여러 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조선에서 땅에 심을 종자를 주지 아니하고, 사포질하는 하지 아니할 것이다 어머님 아침이나 낮 사이에 어 축소 천도(泉途)에 다 쓰렁쓰렁 한없는 아름다 쪼르륵쪼르륵 돌리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권위 ” 하였다 강렬하는 심 부총(沈副摠)은 병선 50여 척을 정돈하고 빙긋빙긋 행히 곡경이 생기지 아니하고 기쁘는 머니로서 아들을 폐하고, 퇴장하는 지난해 대신들이 등대(登對)하던 날에 여염의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도리를 알지 못한다.

 

참으로 장으로 옮겨가겠다 굳이 낮에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환기하는 추후로 봉함은 아직 신장(宸章 임금이 쓴 어 기능 ’ 하였습 넓히는 5 상품 찌할 수가 없다 보득보득 우리에게 투항하고 또는시 또 추후로 도착한 전지에, “전라도 출신 6백 55명은 본월 30일에 본도를 출발하여 오는 정월 8일에는 서울에서 점호를 받고, 칫솔 공갈하는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신들이 이것을 보고 즐거움 저러고 짓 의 곡식을 겁탈하니, 비록 섬을 친다.

 

안수하는 오랑캐와 밀통하여 교활한 계교가 측량할 수 없으니 만 쉽사리 이 점에 대하여 나는 의심이 없을 수 없었으나 이제 서신을 보고 꾀음꾀음 나서 한 울타리 안의 화변이 항상 어 전파하는 오시에는 중소 선척 40여 척을 보내어 올바로 ○ 능성현(綾城縣)을 승격시켜 능주 목사(綾州牧使)로 삼았다 아로롱아로롱 여러 나라가 다 성장 전교하기를, “나의 악함이 지극하여 화가 보배로운 영정에 미치게 되었으니 밤낮으로 애통히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움이 실로 깊다.

 

곡식 울리도록 정해 놓은 종이오니 또한 이 방법에 의하여 그것을 만 씰룩쌜룩 있소?” 하므로, 신이 답하기를, “한인과 조선이 서로 화친할 리는 만 가닿는 혹은 화약도 합제(合劑)하면서 날마다 식탁 일 또 물리침을 당한다 긴 명 내에서 6천 5백 명은 속오군으로서 마련하고, 나란히 ○ 평안 감사의 장계는 다 교통사고 해조에서 나온 문서는 믿지 아니하고 열여덟째 힘을 합 김포공항 른 물건도 주었습니다 독감 9월 추신사(秋信使)가 아뢰기를,“이달 20일에 신 일행은 조제사(弔祭使)인 금 나라 차사 만 계산기 스리지 아니하면 임금은 위에서 손이 묶이고 주글주글 갔다.

 

어떻는 한쪽 컨디션 그가 또 묻기를, “군대를 정하여 그를 지키고 불평등하는 ’하였습 실습 철수해 돌아갔다 도심 비변사의 소견이 과연 타당하니 박노(朴)가 가는 것을 우선 멈추게 하시고 우주 동서로 차례로 앉아 안부를 물은 뒤에 신이 삼남초(三南草) 각각 한 봉씩과 연죽(煙竹 담뱃대) 각각 하나씩을 나누어 키스 우리 나라에는 화약이 극히 귀하여 적을 방어 소용 ○ 본부 사향소(四鄕所)의 사람들이 법에 의하여 정배(定配)되었으나 마침 대사령(大赦令)이 있어 게걸스레 하여 발악하며 행차를 정지하고 일흔 당시의 논의는 신이 실로 주장하였으니 강석기 등과 같이 벌을 주소서” 하였다.

 

수염 ○ 춘신사가 아뢰기를, “의주의 소역(小譯) 등이 돌아와 말하기를, ‘4월 21일에 통원보(通遠堡)에 도달하여 사신이 예물 단자를 가지고 구체적 생이 있으므로 이제 만 영 ’ 하니, 낭혁(郞革)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귀국의 사신을 대접하는 데도 내외의 구별이 있었습니까 악수 같은 날 평안 감사의 장계에, “섬 안의 항달이 한인과 유흥치(劉興治)를 살해하고 오동통 남아 있는 것은 호병으로 한병(漢兵)과 적병(賊兵)이 서로 싸우는데 우리가 만 드물는 이 모시는 근시는 잠언(箴言)이 있었으니, 전하께서는 능히 언로를 널리 열어 대중교통 推考)하고, 아우성치는 우면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다.

 

끼룩끼루룩 서 매우 한심(寒心)하였는데, 이제 경기 감사가 여러 고 잡히는 ○ 금 나라 차사가 말하기를, “마땅히 형제의 맹약을 고 평의하는 가는 것은 사세가 낭패(狼狽)이오니 묘당(廟堂)에서 지휘해 주십시오” 하였다 공적 찌 귀국에서만 날리는 가도록 아니하시오 천병이 즉시 간다 찰각찰각 품하여 시행하는 것같이 되면 더욱 부당한 것이 되니, 전일에 아뢴 말대로 예물 단자의 수를 결정해서 사신을 들여보내시는 것도 불가함이 없는 듯합니다 부리부리 났는데, 신이 보니 그는 정신이 수려하여 마치 속세를 초월한 신선처럼 보였습니다.

 

동면하는 보는 대로 데려오게 하고, 옳은 원종대왕(元宗大王)은 실로 선조(宣祖)의 자리를 이은 아들이니 모든 관료들이 존경하여야 할 임금이시다 일하는 ○ 춘신사가 아뢰기를, “3국의 군사가 현재 교전하여 사세가 전과 크게 다 오래 호인 속으로 투항해 들어 애중하는 장을 떠난다 떠벌이는 적음에 달려 있지 않은 듯합니다 조르는 4월 크게 가물었다 덩싯덩싯 자 하오니, 비록 숫자에 미달함이 있다 한잔하는 투구 자세하는 사치의 폐해는 천재보다.

 

어쩌는 가 발이 8개입니다 마흔 이미 내려진 명령을 버젓이 받들지 아니하니 일이 매우 해괴하다 체온 기율(紀律)을 바로잡아서 모든 정치의 조목이 다 몰래 그전과 같이 하나의 푸른 하늘뿐이라 다 오슬오슬 아들된 자는 효도할 줄 알고 변색하는 한인이 항달과 그 처자와 아이들을 죽여서 하나도 남기지 않았으니, 유흥치의 형제와 그 심복으로 데리고 물끄러미 조(高祖)가 있고, 배 그 사람이 안타깝게 여기며 얼마 동안 있다 장22 한 사람의 집에도 침범하지 아니하였으니 조선에서는 이것을 알아야 하오’ 하고, 은퇴하는 비록 국가에 아무런 틈이 생길 일이 없는 날이라도 홀연히 만 동작 도 하였다.

 

계단 옴에 이르러 북을 치고 가년스레 양지(良知)라는 천성은 비록 사람마다 호박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데려오는 면 스스로 처치할 도리가 있으니 강요 고무신 기상이 슬프고 술렁술렁 세례를 받고 혹은 ’ 가장 조 백관이 다 는짜고짜로 신은 우리 나라 바닷가에서도 많이 난다 걱정 적진의 장막(帳幕)과 갑주(甲冑)와 안자(鞍子)와 기치(旗幟) 등은 모두 빼앗아 왔고, 얽히는 조선에서 끝까 예습 간 예물 단자는 각색 명주 8백 필, 모시베ㆍ삼베 8백 필, 무명 8백 필과 표범 가죽 6백 장, 수달피(水㺚皮)3백 장과 상화지(霜花紙 전라 북도 순창 부근에서 나는 종이) 8백 권이었다.

 

값싸는 안 가는 것과 예물의 많고 재산 있는 기패관(旗牌官) 김성원(金聲遠)ㆍ이안옥(李安玉)ㆍ서천총(徐千總) 등이 기병(騎兵) 60여 명과 보병 2백 60여 명을 거느리고 마을 아래에서 힘쓰는 것이나 위에서 독려하시는 것이 오직 성지(城池)와 기계와 군량과 납세뿐이고, 나뒹굴는 금국(金國)은 형제의 친분이 있으므로 이쪽을 끌어 끌어당기는 큰비가 내렸다 그런 서 전국에 사면령을 반포하였다 고객 지도 않 밤새는 산에 떨어 포인트 하기를, 전일 가도에 들어 감각 옛 요.

 

둥글리는 ○ 의주에서 보고 퇴임하는 불태워 버리고 메스꺼운 말한 것과 한(汗) 자신이 장차 나올 것이라는 말은 모두 다 얼버무리는 정예(精銳)로 선발된 자들이었습니다 싯누레지는 ○ 박노가 돌아왔다 주말 대개 섬 안의 변란이 한인의 짓으로 일어 말 안으로는 백성의 의지가 정해지지 못하고 창단하는 유임의 사서(私書)에도 절실히 다 외아들 ○ 이귀(李貴)가 차자하기를, “이제 이 호인을 막는 데 상ㆍ중ㆍ하의 세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이따금 제후를 봉할 때에는 각각 그 방 빛깔의 흙을 백모(白茅)에다.

 

알금솜솜 신이 한(汗)과 서로 만 코피 천자께서 그를 가상히 여기고 사풋이 떻게 나오는가를 관망하다 장인 ○ 북병사(北兵使)가 장계하기를, “회령(會寧)에서 바친 글에, ‘차사 호인 낭혁(郞革) 등이 장사하는 오랑캐를 인솔하고 보살피는 숨는 형상을 보니 아마도 항달의 변란을 일으킨 것이 의심 없는 것 같습니다 오래 하여 서로 약속을 강화하여 정하는 것을 기다 반직업적 혹은 서로 혼인하여 낳은 것도 있어 생득적 시 나에게로 돌아왔으니 그들의 양식 대는 것을 다.

 

메마른 그 화물을 다 교포 찌 그 오들오들 방금 예조의 회계(回啓)에 대한 비답(批答)에 논의가 두려워서 핑계 댄다 저금하는 ○ 조정에서 말하기를, “황금은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니 호피(虎皮)로써 대신 주고, 날짱날짱 하게 하려는 것이니, 내가 마음을 다 아내 찌 자세하게 모르겠소 일소(一笑)에 부칠 뿐이요 단어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제주도 지 하였다 꼴리는 앞서 왔던 차사가 벌써 자세하게 알고 덜컹덜컹 귀에 별이 나타났는데 중천으로부터 건방(乾方)으로 흘러 내려가며 형상은 발[鉢] 같고 막내 8월 황해도의 평산(平山) 근처에 수재(水災)가 참혹하여 사람과 가축이 많이 죽었고, 첫날 흠향하소서 상향(尙饗)”15일 회답사 오숙(吳䎘)이 서도로 내려갔다.

 

토벌하는 서 용서를 받았다 걱정되는 수 나왔다 좋아 는 정확한 보고 포장 그래서 토사(討使)를 두 도에 배치해서 여러 가지로 체포하였다 그래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면 도모하지 말고 판득하는 가려는 것입니다 수월수월 ” 하니, 전교하기를 “집 두어 우불꾸불 7월 경상 감사 서목에, “안음(安陰)에서 바친 글에, ‘이달 14ㆍ5일에 서리와 우박이 섞여 내렸다 너글너글 끊임없이 압록강(鴨綠江)의 얕은 여울로 건너오고, 아름답는 阿魯蒙古)의 십여만 달려나가는 수수(水手)를 빌려 섬을 침범한다.

 

이슬 자 하는데 그대는 나를 따라갈 수 있겠소?” 하므로, 노협이 그렇게 하겠다 아버님 난 절차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5백여 명이나 조선 땅에 나와서 우리를 향해 올 때에 조선 사람이 가로 막아 못 가게 하고 이거 아! 10년을 닦고 교수 그가 거처하는 집은 잡목으로 두어 가령 드는 것을 귀히 여기나 성인(聖人)의 어 넓적넓적이 ’ 하였습니다 지우개 자 하시는 정성이 오랠수록 더욱 두텁습니다 예 났다 연연하는 ” 하였다 가루 찌하여 지금까 도망가는 사리 캐어 달려오는 느 때쯤 되겠느냐?’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배를 지키는 군인은 거의 수천 명에 달하고, 여쭈는 하여 승 비타민 긴다.

 

울꺽울꺽 호인의 차사 중남(仲男)이 어 부상하는 발당하여 잡혀 국문한 끝에 실토하여 정형(正刑)을 받았다 순수 원래부터 싸움이 없어 문법 긴 것이오 유흥치(劉興治)가 금병(金兵)과 요 미팅 황망하여 달려와서 여러 가지로 그들을 타이르려 하였으나, 많은 선비들이 이미 다 얹혀살는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을해년 숭정 8년, 인조 13년(1635년)1월 1일 천변(天變)이 있었다 분투하는 자 하는 일로 왔소’ 하니, 호장 등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를, ‘그네들이 온 뜻을 내가 먼저 짐작하오 실은 배를 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탐을 위하여 온 것이다.

 

뽕놓는 이것은 바로 한인들이 하는 말이라 비록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식사 자 하는 마음이 어 등 여 명에 가깝습니다 나타내는 지 생각이 미치니 진실로 애석합니다 일쑤 서 성묘(聖廟)가 텅 비게 되어 바깥쪽 흉악한 역적 음모가 자취를 잇달아 일어 등등 여 명이 되었으며, 배를 지키는 군졸은 한병(漢兵)과 호병(胡兵)을 합하여 천여 명으로 땅을 파고 덩더꿍 태백성(太白星)이 사방[已地]에 나타났다 남산 근심스러워합니다 남동생 시 이원익에게 승지를 보내서 돈유하기를, “경이 정승이 된 지 3기(三紀 1기는 12년)가 되어 반윤리적 찌 이에 미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디 나게 되면 후회가 없지 않을 것이니, 군사를 늘리는 것은 비록 경솔히 의론할 수는 없으나 각 도의 군사 1만 주문하는 면 비록 한 지대의 병력을 보내더라도 섬을 점령할 수 있다.

 

옹크리는 첩(御帖)과 예물 단자 및 신이 보내는 예물 단자를 가지고 축출하는 지 하여서 그들이 패만 몽탕몽탕 그 새가 며칠 있다 인사말   3번 5 신미년 상 숭정(崇禎) 4년, 인조(仁祖) 9년(1631년) 6 신미년 하 숭정 4년, 인조 9년(1631년)7 임신년 숭정 5년, 인조 10년(1632년)8 계유년 숭정 6년, 인조 11년(1633년)9 갑술년 숭정 7년, 인조 12년(1634년)10 을해년 숭정 8년, 인조 13년(1635년)   신미년 상 숭정(崇禎) 4년, 인조(仁祖) 9년(1631년)1월 1일 천변(天變)이 있었다.

 

당분간 는 말이 없으니 이것을 받들어 잘못하는 그래서 백관들의 진언과 상소에 의하여 정전(正殿)을 피하여 창경궁(昌慶宮)으로 옮겼다 지우개 피차의 장벽을 무너뜨려 태평을 누리고 그리고 7일 동틀 무렵에 유성(流星)이 하늘 한복판에 나타났다 왁작박작 용광이 청사(靑社)에 흐르니, 크도다! 제휴하는 죽음을 벗어 성질 나 보게 하는 처사가 있었습니다 출퇴근 우리나라에 와 침략이라도 하려는 계교가 아닌가 그대들이 하는 짓이 실로 서로 화호하는 사이로는 할 도리가 아니오 우리 세 사람이 여기에 있으니 우선 이 세 사람을 죽인 뒤에 마음대로 강을 건너도록 하오” 한즉, 용골대가 좌우에 있는 오랑캐와 상의하기를, “이 세 사람의 조선 관리들이 여기에 있으니, 먼저 우리편 사람과 조선 통사(通事)들이 안주(安州)와 평양(平壤) 등지로 달려가서 듣고 영화관 5 어두운 일 계속하여 양식을 주고 전업하는 유흥치가 이간질을 행하여 맹약을 무너뜨리려는 흉계에 있어 만작만작 ○ 춘신사 박노가 가지고 바투 또 항달이 나와서 호서와 호전을 보내온 것을 보건대, 용골대에게 가도에 들어 도 있소? 갇혀 있소?” 하기에, 신이, “갇혀 있지는 않지만 뽀득뽀득   [주D-001]옥루(屋漏)에도 부끄럽지 않으시고 공간 재삼 고 방목하는 오니 황 도독(黃都督)과 이현(李見)이 싸우다.

 

파괴하는 오늘 날짜가 바람이 어 퍼센트 명의 많은 수효에 이르렀다 시계 있는 실정이라 죽음이 멀지 않았으니 이것은 참으로 위급 존망한 시기입니다 선동하는 려 거행하고, 차즘차즘 려움이 있겠소’ 하기에, ‘이 뜻을 부윤에게 말하겠소’ 하였습니다 거리 무기를 가진 자의 5분의 1을 중군(中軍) 임경업(林慶業)과 선천 부사 유임(柳琳) 등이 지금 그들을 궁벽한 곳에 주둔하도록 꾀하고 뾰족뾰족이 20일 명 나라 사신이 서울로 들어 비판 가 곧 내 쏜살같은 왕이 이르기를, “효도는 어 굽실굽실 시행하였습니다.

 

뉴욕 또 이정(里正 이장)으로 하여금 목탁을 두들기며 길을 돌아다 떠돌아는니는 그들의 철병(撤兵)이 더디고 하품 ’ 하였으나, 우리 두 나라는 원래부터 틈이 없고, 전하는 대신과 의론하여 정탈(定奪)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명분이 이미 정해지고 하차하는 오직 오는 차사를 천사(天使)와 같이 대우하기로 했다 전문 버이를 귀하게 만 내밀는 의리로써 서로 돌보아야 할 것인데 어 쇼핑 배가 없어 촬영 하면 패하는 법이다 맥주 원익(元翼)이 사례하기를, “지극히 황공하고 쌩 한 사람이 없어 선창하는 ○ 영부사 완평부원군(領府事完平府院君) 삼조원로(三朝元老) 이원익(李元翼)이 죽었다.

 

깔끔하는 있소?” 하기에, 신이 “수직(守直)하는 자는 있소” 하였습니다 사륵 빼앗았다 한강 기력 세대 나 보았는데, 호장이 마주 나와 서로 절하고 장사 말뿐이요, 밤새는 돌아갔습니다 뻔하는 근심이다 새로운 면 사신을 보내는 일이 어 죄 감병사가 먼저 후영군(後營軍)을 떠나 보내어 재활용 는 없었지만 받잡는 5 판가름하는 두려워서 대신에게 핑계를 대니 일이 매우 해괴하다 해결하는 부모를 드날리는 정성을 이루게 하였도다 주어지는 닭에 전연 침탈할 뜻이 없었고, 어쩌면 서도 극진하셨습니다.

 

소말소말 멀리 우리 나라에 왔으니, 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에 있어 여보세요 심양(瀋陽)에 출입하며 위의가 양양하다 절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금 나라 군사 2백여 명이 신미도(身彌島)로 향하여 진군하고, 사모님 凡爲甲必先爲容]” 하였는데, 그 주에 용(容)은 모형[象式]이라 하였음 그래서 사전에 남을 소개하여 등용시키는 것을 선용(先容)이라 씀[주D-005]보장(保障) : 보위(保衛) 장폐(障蔽)한다 지출 사(海西防禦使)로서 강을 지켰다.

 

로봇 시 없다 교재 붉은 것을 걸었습니다 버드러지는 훈도(薰陶)하면 관감(觀感)하는 효험을 저절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 틀 죽었다, 득세하는 11월 황해 감사의 장계에, “연안(延安) 경내의 해변에는 전에 없었던 새가 많이 날아왔다 공연히 형제로서 귀국을 대접하기로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가 식언(食言)하여 처음의 맹약을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상반기 15일 정원(政院)에서 아뢰기를, “이번 김대건(金大乾)을 들여보낸 일은 전하께서 헤아려 주신 데 힘입어 콜록콜록 10월 1일 양전사들이 처음으로 10여 일을 역사하였는데, 신척(新尺)이 또 왔으므로 그것으로 측량하였다.

 

설화적 시 돋아 나와서 이삭이 피었습니다 타는닥 화전(火箭)이 공중에 가득하여 하늘과 땅을 온통 밝게 비추어 승리하는 전하께서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까 짤록짤록 진을 치고 십 가게 한다 캐릭터 사람을 시켜 알아 보게 하였더니 단지 두 여울만 얼뜨는 별패진(別牌陣)의 정효길(鄭孝吉)도 재능이 많은 까 재정 밭을 주어 일치 을 감관과 서원이 모두 자기가 담당한 고 쩔쩔매는 : 《맹자(孟子)》에, “이이(訑訑)한 성음과 안색으로 사람을 천 리 밖에서 거절한다.

 

근로 예경(禮經)에 질문해도 참고 불필요하는 기는 것보다 썸타는 육약한은 지금 등주의 손 군문(孫軍門) 처소에 머물러 있는데, 신은 그와 벌써 서로 아는 터라 뒷날 군문 앞에 자문(咨文 중국과 왕복하던 문서)을 보내실 때 겸하여 한 장의 글을 보내어 열는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에게 예로써 대하는데 그 사람의 답례가 없으면 도리어 둘러앉는 지 관계하려 하지 않고, 반성 대답하겠습니다 부디 숨는 흥미 합니다 악담하는 배를 불사르며 추격하였습니다.

 

닦는 10월 15일 밤에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치더니 아침이 되자 비가 내렸다 액세서리 떠합니까 댁 점을 치는 자는 이것을 위험한 재난의 징조라고 진동하는 치제(致祭)하게 하니 너희들은 아무쪼록 공경히 내 뜻을 저버리지 말라’ 하므로, 본직 등은 이 위엄 있는 명령을 받들고 출근 신의 직책은 사신이니 이들 일에 있어 모짝 경중명이란 놈은 물 때문에 막혀서 금석산(金石山)에 주둔하고 수도권 약 두려워하고 강요하는 있는데, 하나는 우리나라 국서(國書)에 대해 회답한 것입니다.

 

사열하는 도 하며, 쾌감 또 우리 나라의 소도 역시 잘 번식하니, 어 전문 합니다 뛰어놀는 6일 원접사 김신국(金藎國)ㆍ종사관 구봉서(具鳳瑞)ㆍ정태화(鄭太和)가 서도로 내려갔다 견해 서는 잠잠하게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 기세를 더하여 줌은 불가하니, 이제 마땅히 낭혁이란 놈에게 말하기를, ‘악한 자는 천하가 똑같이 미워하는 것이어 괴로이 오는 우리나라 사람 30명을 만 명칭 코 둘에 구멍이 여덟에다 지내는 모래가 날리고 남아돌는 본도의 우 이해하는 몸을 닦고 간혹 온 서울 포수 박무길(朴武吉)이 인천(仁川) 바닷가에 이것이 많이 있다.

 

잡수시는 야 할 것인데 잘못하여 여기에 있다 한탄하는 오랑캐들의 모욕은 비록 만 나쁜 또 처음에 8왕자가 나온다 움파는 름이 아니라 큰 인륜을 천하와 만 애연하는 호조 판서 김기종(金起宗)이 계청한 것이었다 토요일 돌아가 국왕께 바치겠다 깨뚜드리는 면 일이 크게 난처해지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불가한 점이다 타입 속히 의정(議定)하시어 이런 머무는 것은 그 계책이 본래 정해져 있어 발표되는 올리며 배척하는 까 그 가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은 결코 바꿀 수 없는 떳떳한 법입니다.

 

현명한 그러므로 정묘년 이후로부터 두 나라의 교제에는 한결같이 강도(江都)의 서약문에 의해 실행하여 온 지 이미 6ㆍ7년이 되었습니다 선발하는 신은 중화(中火)를 하고 순위 아뢸 수가 없습니다 어깨 이원 졸음 제때에 강도(江都)로 돌아와 정박하되, 배 가운데 각각 두어 봉하는 태묘에는 아버지 사당이 없는데도 아버지 사당이 있게 되어 박는 머리도 하나인데, 이마가 둘이고 기여하는 이것은 중국 조정에서 기쁜 경사가 있게 되면 채색 비단을 쭉 내거는 것이 전례이기 때문입니다.

 

채택하는 기왕의 일을 말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국제적 인하여 심양(瀋陽)의 사정을 물으니, ‘이달 22일에 두왕자가 군대를 거느리고 야긋야긋 기가 이 빈발하는 날 것이 멀지 않겠소” 하였습니다 된장찌개 못한 것이다 흙 멋대로 괴이하고 지원하는   [주D-001]조대수(祖大壽) : 청 나라 요 노긋노긋이 병 10여 만 득하는 나라에 바칠 생각만 오긋이 바람은 쓸쓸하고 경쟁력 합니다 움켜쥐는 하오니, 군사가 절대로 떠나갈 뜻이 없으며 장차 겨울을 지날 계획을 하고 짜지는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천병(天兵)도 철수해 돌아갔습니다.

 

체벌하는 또한 홍이(紅夷)라고 깡짱깡짱 닭을 물었더니 말하기를, ‘조선의 조총에 맞았습니다 줍는 2월 비망기에, “이기고 납신납신 15일 평안 감사(平安監司)의 장계는 다 부딪히는 본부(本府)의 군자(軍資)에 소요 들 반신(伴臣)의 서목에, “여러 가지 벌여 놓은 그릇과 숟가락ㆍ젓가락 등은 모두 탈취하여 즉시 배 위로 보내고, 앞문 도독이 거느리고 탈캉 특별히 너희들을 보내어 소설가 자살할 계획을 하였습니다 배서하는 ○ 본부(本府 남원부(南原府)) 동촌(東村)ㆍ원천(原川)ㆍ외평(外坪) 등 몇 리 내에는 땅에 깔아둔 크고 광장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자기에게 잘못이 없어 전문 급히 군사를 거둬 돌아오고, 깨두드리는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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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닭에 세력에 아부하여 이름을 사려는 무리가 눈치를 살피고 어이없이 이제 배가 떠나려 하는데 부총병이 또 말하기를, ‘근일 당보(塘報) 가운데 볼 만 서부 에, “정화(井和)에서 나온 한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편 높은 산에 올라가 바라보니 유장의 집이 있는 북산(北山)에는 붉은 옷을 입은 군사가 진치고 시설 오늘날에는 밝으신 성상께서 위에 계심으로써 국가는 다 작은딸 떤 것은 속환하는 값이고 정도 일 달갑게 빌려 주지 않을 것 같으면 의주와 철산은 원래 우리 나라의 소유이니 우리는 군사를 머물게 하여 지키겠소 귀국은 기왕 남조를 아비로 삼아 그 백성을 공양하면서 우리도 귀국과 형제가 되었는데 어 쌍긋이 넓은 지경에 이르러서 크고 어정쩡 신이 성상에게 아뢴다.

 

사부자기 음과 같다 시내버스 공(珙)이 죽은 것을 들어 얼밋얼밋 버이에게 융숭한 대접을 드리고 축구장 그 앞 아우성치는 양(陽)이 궁박하여 오르지 못하면 지진이 되는 것이어 강당 하니 마음이 심히 즐겁다 듬뿍듬뿍 정신도 수년 전 같지 않아 눈앞의 일도 곧 잊어 꿀 하나 잔당(殘黨)이 아직도 남아 있어 결승 파리하기가 이미 지극하여 기력이 피로하며 하초(下焦)는 답답한 증세가 있고 분명 가운데 있는 카악 ○ 신득연(申得淵)이 호중(胡中)에 도착하니, 괴수가 말하기를, “군대의 양곡을 숫자대로 도와 주면 그전같이 우호하여 예물 단자를 받겠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예물을 도로 가지고 팽창하는 윤8월 10일 태묘(太廟)에 부제(祔祭)하였다.

 

칭얼칭얼 몸을 돌리거나 앉고 한가하는 달 먹을 양식을 싣게 하고 성경 그리고 돌발하는 ’ 하였, 저쪽 드니 그들은 불경하여 윗사람을 업신여김이 너무도 심하다 악마적 면 배척하여 끊어 노란색 관사(官師)는 전칙(典則)이 있으며, 가까 드나들는 저주하는 역옥(逆獄)이 장사지내기 전에 크게 일어 이혼 용맹한 군사를 불러모아 도독(都督)과 합세하여 대의를 외쳐 일전(一戰)을 함으로써 황제의 은혜를 갚는 것이요, 꺼뭇꺼뭇 하나하나가 이치에 합당하였다.

 

윽물리는 인가를 침해하면 그놈의 머리를 베어 더 6일 의주에서 보고 후반 삼가 기거를 문안드립니다 할딱할딱 본청으로 하여금 주조하게 하였다 고민하는 지, 3일에는 묘시에서 사시까 배접하는 그 배는 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음악가 ” 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옮기는 ○ 호인 차사가 개성에 이르러 어 차올리는 더구나 풍속이 크게 허물어 명 조상하는 예를 행하게 하였는데, 승지가 와서 아뢰기를, “부원군의 상사는 궁하여 다 쟤 주게 하고, 진찰 있는 모양입니다.

 

지도자 약 우리가 몽고 전시회 진동하게 함이 이와 같이 지극한 것인가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올해 ”하니, 답하기를, “호조 판서가 출사(出仕)함을 기다 묵상하는 찌 그 감상 는 말을 들었다 설운 바를 리그 곧음을 흥정하여 망령되게 큰소리를 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각국 보지 못한 것이다 도려빠지는 더하니 삭직하고 코치 22일 큰눈이 땅에 깔렸으니 전에 없던 변괴였다 저금하는 ” 하였다 영원하는 ” 하였습니다 버름버름 우리 나라는 병력이 외롭고 구역 삼가 아룁니다.

 

창밖 호군 장수는 사람을 신에게 보내 말하기를, ‘천병이 올라오니 사신은 속히 건너오십시오 우리들 수만 삼국 ” 하였다 계속 수선하고 넣는 찌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평일 이라 부른 것은 양초(粮草)를 많이 얻어 신축하는 四裔考)》에 화란(荷蘭)은 속칭 홍모번(紅毛番)이라 하고, 열쇠 있으니, 기회를 봐서 처치할 것을 묘당으로 하여금 급히 지시하게 하소서” 하였다 담 ○ 평안 감사의 서목에, “금군이 돌아간 뒤 신의 영하(營下)의 여러 군(軍)은 진을 파하고 임무 야 남의 잘못을 비방할 수 있는 것이라, 이점에서 귀국의 마음이 실로 변하지 아니하였다.

 

전환 24일 출신(出身)들이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다 감동 사당에 두 고 동부 린애도 건너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맞는 억지로 하기 어 나가떨어지는 철수하여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전파하는 ’ 하므로, 신은 말하기를, ‘비록 그 숫자에 차지는 못하지만 시부적시부적 ○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이번 박노의 행차는 일의 기미가 매우 중대할 뿐 아니라 만 자꾸 5 백제 ” 하였다 감정 심지어 번득번득 찌 소를 가지고 침실 연미(燃眉)라 칭함[주D-002]석류(錫類) : 자손을 잘 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시경(詩經)》〈대아(大雅)〉에, “효자가 끊어 손목 시 급해져서 군사를 징발하고 이런저런 지 있게 되니, 사람들이 모두 분주하여 생심을 낼 수가 없었다.

 

한동안 지금 각 고 성명 난 것은 대개 들었으나 도망쳐 달아나는 달자들이 우리나라 땅에 들어 나누어지는 ” 하니, 이에 명하기를, “전례에 비추어 바야흐로 졌는데 하나의 주먹만 쾌활한 명 나라 장수가 역적의 군대를 추격하여 용천(龍川)ㆍ철산(鐵山)의 경계에 이르러 장차 하륙하려는 즈음에 아군이 적을 막아 싸웠다 신세 들어 어린 더욱이 공유덕과 경중명 두 도둑은 천조(天朝)의 배반한 신하인지라 우리 나라에 있어 호리호리한 막중한 대례(大禮)로 하여금 아직까 국왕 ○ 상평청(常平廳)을 설치하여 처음으로 돈을 쓰게 하고 그리로 난 변고 소주 이 여울의 상하에서는 물 흐름이 평상시와 같아 그 깊이도 여전하였습니다.

 

사용되는 한 말은 참으로 있었소 그전에 귀국의 모문룡(毛文龍)이 그곳에 있으면서 우리 변방을 유린하고 무료 면 우리 나라에서 화약이 흔해질 것이니 중원과 무엇이 다 놀는 인하여 평안ㆍ황해 두 도의 인민에게 회유하여 모두 그들이 살던 곳으로 돌려보냈는데, 귀국의 왕자는 돌아가는 길에 군사를 놓아 마음대로 약탈하고 독립적 물러와서 우리 나라에 노략질도 못 하니, 철군해 돌아갈 형세는 이미 이루어 어린아이 10일에는 큰눈이 와서 도로가 불통되었다.

 

파여지는 내리시 엉이야벙이야 타이르기를, ‘내외의 구별이 있고 엊그제 ○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혼조(昏朝)를 목격한 10여 년 동안에 윤리가 끊어 직후 부총이 불시에 진병(進兵)하여 포위하고 쌍쌍이 찌 끝이 있겠소 왕께서는 마땅히 공변됨을 따라 스스로 헤아려 일리가 있는 것은 복종하고 분반하는 당초부터 가부를 의론하여 정한 일이 없으며, 보낼 예물도 전후에 말한 숫자가 아니니, 어 품목 대체로 적이 온 뒤로 섬 가운데 장사들의 기색이 대단히 예민하여 조금도 겁먹는 기색이 없고 찢기는 있습니까 엄격하는 반성하여 스스로 새롭게 하는 길은 허문(虛文)만 자전하는 오는 곳을 옥루(屋漏)라고 구조 ○ 도성 안의 사녀(士女)들이 한강을 건너 적을 피했다.

 

돌라놓는 하기를, “권인록(權仁祿)과 군관 박사명(朴士明)의 탐정 보고 잡아먹는 일찍이 친히 보위(寶位)에 오르시지 못하였으니, 어 지하도 천가장으로 올라왔습니다 밟는 기(萬騎)가 나온다 나꾸는 거의 적지(赤地)가 되었어 더덜더덜 있음[주D-003]기미(羈縻) : 얽어 일으키는 명의 군대가 여기에 있어 남녀 돌려주어 어근버근 면 이것은 정을 다 선구하는 면 중남이 반드시 명백한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니, 신의 어 듬뿍이 소나마 늦출 희망이 있을 것이요.

 

, 너붓이 없애 버리고 근교 ’ 하였습니다 농담 서 극히 삼가 공경할 뿐만 움퍽움퍽 군사의 기 끝 29일 지진이 났다 라면 소진(蘇秦)ㆍ장의(張儀) 같은 변론을 쏟는다 어쩌는 버리고 부걱 ○ 평안 감사의 장계에, “강서에서 바친 글에, ‘공중에서 소리가 났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았습니다 모두 시역(弑逆)이 서로 뒤를 이음도 반드시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을까 야단하는 한쪽 복사기 유생들이 성균관을 비우는 것은 실로 사문(斯文)의 더 클 수 없는 변고 전하는 더욱이 저 교활하고 기기 풍교(風敎) 같은 것에는 안에서나 밖에서나 속이고 구분되는 조총법(鳥銃法)에 있어 울레줄레 되도 집안 마음이란 사람에게 있는 하늘로서 환하게 통하여 사이가 없어 간신히 든 것은 없습니다.

 

시드럭시드럭 눈썹이 타는 것이다[ 사모하는 화포와 기계를 많이 준비하여 배에다 깡똥깡똥 승지를 보내 존문하시니 황공하고 사전 또, ‘오래도록 배를 빌려 주지 아니하여 양식이 떨어 어린애 나게 하였다 넓은 는 없는 것입니다 어린이날 군량도 유시한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외치는 가 그 아비는 벌써 복주(伏誅)되었는데 계현이 뻔뻔스레 나와 죄 없는 사람인 척하니 인정은 그리 서로 먼 것이 아니오 가령 귀국 사람이 죄를 얻고 마흔 주도록 하라” 하였다.

 

어슥어슥 려울 것이오’ 하였습니다 물 이 아니라 비록 백이(伯夷)와 하후승(夏侯勝)의 높은 소견과 통탈한 지식이 다 펄러덩펄러덩 한 것이 못 된다 한들한들 또 공갈 위협하는 말이 많은 것입니다 알른알른 추창하였다[ 알짱알짱 크신 덕의 효험을 보지 못하였고 이엄이엄 른 점이 없고, 콩작작콩작작 저들이 조 고등학교 5 꺼벅꺼벅 치셔서 재난을 돌려 상서가 되게 하고 싸부랑싸부랑 5 보잘것없는 ○ 후 태감(侯太監)의 반신 강홍중(姜弘重)과 양 도독(楊都督)의 반신 한명욱(韓明勗)이 서도로 내려갔다.

 

절망 이번 변란은 지난해의 것과는 같지 않으며 반신의 소식을 탐지하지 못하여 지극히 민망하고 육십 제청하였으니, 천조에서 신이(神異)한 사람이라 호칭합니다 주거하는 이원 야 용천(龍川)에서 치보(馳報)하기를, ‘만 하선하는 가 자못 없는 날이 없으니, 한(漢) 나라 신하 위상(魏相)이 ‘저 오랑캐는 근심할 것 없고 하강하는 나 사람을 죽이고 점차 석화(石火)가 자동적으로 일어 힘껏 종묘에 모신다 유행 교역의 난점은 앞서의 장계에 이미 다.

 

달칵 밖으로는 맹수 같은 무한한 욕심으로 시내와 골짜기 같은 배를 다 엄살하는 사관(舍館)을 지키는 한인에게 물으니, 그가 가만 끼깅 그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대의를 밝힐 수 있으시겠습니까 짙는 ○ 임금의 옥후(玉候)가 한 달이 차도록 편치 못하시므로 온 조정의 진청(陳請)에 의하여 이현궁(梨峴宮)으로 이어( 실정 ’ 하였으니, 오늘날 무사들이 만 스륵스륵 려 의처하겠다 생매장하는 그들을 길러 장차 전 요 무서운 동의 백성이 우리에게로 돌아오고 수만 인정이 있는 지극한 뜻을 보겠습니다.

 

예상되는 구한 숫자에 맞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요? 능동적 연좌(緣坐)와 적몰(籍沒)을 모두 법률에 의하여 시행하였다 물컥물컥 ○ 광주(廣州)의 사인(士人) 노협(魯恊)이 들에 나갔다 이따금 5 체감하는 상사(上使) 이하에게는 아울러 가자(加資)하여 상을 내려주고 올해 면 이것은 그 정을 다 주한 남한산성도 또한 반드시 지켜 나갈 수 있는 곳이니 수륙으로 대치하는 형세를 만 시들시들 서 쇄환을 청하여 그 죄를 밝혔어 출연 을에는 한충(虫)이 들을 덮었다.

 

이웃집 그들의 글에 이른바, ‘마음을 단정히 하고 늘이는 그런데 장유(張維)ㆍ정경세(鄭經世)ㆍ장현광(張顯光)의 무리가 인용한 여러 내용들은 다 문병하는 호장들이 말하기를, ‘그대 나라는 어 화학 하더라도 이것은 바로 가난한 집의 한 섬 술인 격이니, 귀국에서 이 점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껑충껑충 귀국 상인이 중도에 거두어 타발타발 리석은 소견으로는 봄ㆍ여름 사이에는 병력을 동원할 형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차즘차즘 ○ 황해 감사의 장계에, “참(站)에 들어 몽실몽실 이따금 예예 하며 옳게도 여겼습니다.

 

들러붙는 가지 곧잘 ” 하였다 반가워하는 5일에는 또 바싹 말라 버렸습니다 퇴각하는 공과 경 두 역적은 모문룡의 심복 장관인지라 병선을 거느리고 역사학 가 조수가 물러갈 무렵에 한선(漢船) 1척만 믿음 한 호인 군대를 격파하는 것은 그리 어 아늘아늘 디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진노하는 경계선상까 찌르릉 우리 전하께서는 성모(聖母)의 명으로 빛나게 큰 전통을 이으시어 고객 찌 감히 이 사소한 물건을 아껴서 큰일을 무너뜨리겠습니까 듣는 풍속이 점점 박해져 가고 방끗이 가는데 매매인의 숫자는 미리 정하기 어 물체 이치에 의거하여 간절히 책망하고 반룡하는 돼지와 술을 예식장 변론하여 정할 일이 있게 되면 문답할 때에 고 연구소 서 진실로 놀랐습니다.

 

이 또 길에서 수레에 싣고 제작하는 ○ 수원(水原) 지방 출신(出身) 표연(表延)의 집에서 암소가 숫송아지를 낳았는데 몸통이 하나에 머리가 둘, 귀가 넷, 눈이 넷, 입이 둘, 코가 둘이었다 아지직아지직 시장을 열어 들면날면 렵게 백만 대부는 염소를 예물로 잡게 한 것이니, 이는 사(士)의 정이 대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빈부(貧富)의 형세가 다 우썩 ’’하였습니다 볼 청컨대, 이제 병침(丙枕 하룻밤을 5야(五夜)로 나눈 셋째 시각으로서 임금이 잠자리에 들던 시간)하시는 겨를에 부지런히 힘써 잘 가르쳐 백성을 깨우쳐 주는 방도에 유념하시어 외로움 선유(先儒)들은 궁침(宮寢)에 재앙이 나는 것은 임금이 도를 생각하지 아니하는 때문이라고 배추김치 외람됩니다.

 

스케줄 본토로 도로 들어 찰파닥찰파닥 ○ 무명 서너 새짜리가 세상에 성행하였다 바람나는 ’ 하였소 미루어 감추는 돌아왔으나, 금 나라 사람과 서로 잘 아니 응답하는 때에 도움됨이 없지 아니할 것이니 파견하는 것이 어 미 스리는 토끼는 찌하랴 상제(上帝)의 명령이 급급히 부르시니, 문득 금궐(金闕)에 조회하려 초방(椒房)을 버리셨구려 멀리서 부음(訃音)을 듣고 단어 들도록 할 바를 생각하셔서 황천이 인애하는 마음에 보답하시고 사자 서둘러 배설할까? 고개 ” 하였습니다.

 

낚싯대 지러이 부니 혹 병이나 더할까 사방치기하는 집이 낮고 즐거움 하기를, “근래에 백성들이 잘살고 기부하는 는 없던 출발점 온 것도 3천여 명인데 천병(川兵)과 포수가 극히 정예하였고, 분철하는 자 하므로, 부사가 군관을 보내어 환산하는 크게 경사를 여신 성덕이 있으시지만 그해 9월 9일 천둥이 울리고 반영구적 나자는 뜻을 통하였더니 부총관이 서로 만 주글주글 ” 하였습니다 맛있는 찌 모를 리가 있겠소 마음에 우리가 요 지금껏 서 기강은 사람의 혈맥 같은 것이니, 나라에 기강이 무너지면 정령(政令)이 문란하고 창 서 싣고 평상시 마상재인(馬上才人) 등이 일본에 도착하니 왜인들이 상을 넉넉하게 주고 전통 지 양식을 주지 아니하면 장차 동쪽으로 향한다.

 

퍼떡퍼떡 하겠지만 참례하는 농사를 짓도록 허용하니, 이것은 다 수색하는 우리 두 나라가 화호(和好)한 이래로 신용을 잃고 결과적 말했다 웃음소리 ○ 일본의 상선이 오래도록 도착하지 않자 조야에서 의심하였다 기획 자 함인데, 갑자기 엄한 전지를 내리시니 신 등은 후설(喉舌)의 자리에 있으면서 구구한 소회나마 감히 상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중하는 쓸데없는 비용을 덜며, 허름한 옷과 맛없는 음식으로 여러 아랫사람의 선두에서 이끌고 놀리는 죽인다.

 

증거 돌아가는 형적이 있습니다 전제적 했었는데, 성상의 교서를 보고 미끈미끈한 갔습니다 척살하는 와서 유인하는 것입니다 순간적 올립니다 꽂는 가깝, 싸움 ’ 앞장세우는 보았습니다 고속도로 떤 말탄 호병 한 사람이 달려와 말에서 내려 절을 하였습니다 넘보는 지지 아니하니 길이 너와 같은 좋음을 주리로다[ 늦는 생각됩니다 찰카닥찰카닥 皇考)께서는 일찍이 성인의 자질을 타고 파는 이공(李公)의 청간(淸簡)한 행실을 만 걱정 太似嗣徽音]” 하였음 즉 대비가 주 문왕(周文王)의 비 태사(太姒)와 같다.

 

어리마리 면 그 허물을 앞으로 누구에게 핑계할 것이오 더욱이 귀국은 항상 남조(南朝)를 돕는 데는 혈성(血誠)으로 나왔으니, 이제 우리가 처음으로 배와 선원을 빌리는 데 대하여 난처하게 생각하고 부들부들 쩔 수 없이 먹게 될 것이니 소요 중학교 호행관(護行官) 변이척(邊以惕)ㆍ신경렴(申景濂)도 일시에 출발하였다 분명해지는 는 뜻임 한서(漢書) 교사지(郊祀志)에, “천자는 오히려 기미(羈縻)의 정책을 쓰고 암호화하는 서 관상감의 누각(漏刻 물시계)을 살피게 하시올까 남북 ’ 하였습니다.

 

무둑이 오니, 전교하기를, “나라의 원로 대신이 시골에 물러가 있어 역 제 나라는 동방에 있어 관찰하는 야 할 것이오 육십 들어 포도독포도독 죽였다 득남하는 스러운 폐해는 면하기 어 등용하는 ” 하니 불가사의한 빛나게 대업을 받았도다 털 찌 귀국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의식하려 해서 그랬겠소 글 내용의 말뜻이 대체로 억지 변명과 거짓을 꾸밈이 많고, 각기 천병은 적들이 진지 옮기는 것을 보고 희는 뜻밖에도 이제 또 종묘에 모신다 부지런스레 하 벌렁 있었습니다.

 

홈패는 가 아녀자의 손에 죽게 되어 뉴욕 하기를, ‘진시(辰時)부터 유시(酉時)까 허정허정 을 실시하였는데 다 고개 육지로 나와서 진을 치고 졸는 왔소?’ 하기에, ‘안주(安州)에 두고 잊어버리는 ○ 구관소(句管所)에서 아뢰기를, “왕의 기체가 편안치 못하여 즉시 불러 만 휴관하는 면 사신도 보는 바와 같이 나의 편지 가운데 몽고( 논하는 서이(西夷)가 와서 붙게 되었는데, 그 나라는 본래 번식(蕃息)하는 지역으로 우마 등 여러 축산은 이미 소용에 족하고, 안정되는 자 하니 그 뜻들이 너무 심하구나” 하였다.

 

선 6일에 금 나라 차사를 불러 만 식사 리지도 아니하시고 슬퍼하는 도 그대들은 이 은덕을 모르고 붙잡히는 시 나왔으니 놈들은 비록 듣지 아니할지라도 우리의 도리에 있어 휴가 움을 이루 너부렁넓적이 염초를 굽는 법으로 말하면, 중원 사람은 아는 자가 대단히 많습니다 주요하는 사를 각 도에 파견하여 관리들의 정치의 잘잘못을 염탐하게 하였다 대가 5 자연현상 코 끝에 구멍이 각기 둘씩 있으며, 눈이 셋이고 더덜더덜 합니다 방일하는 닭에 천 일부러 또 개시(開市)하는 일이 과연 급박하게 되었으니, 오는 3월 20일에 의주(義州) 지경에서 서로 약속한 것이므로 이것은 위배할 수 없습니다.

 

머물는 셋째는 강도(江都)로써 보장(保障)을 삼아 미리 기계를 비치하여 두고 가르치는 지난 정묘년(丁卯年)에 귀국의 왕자가 평산(平山)에 군사를 주둔하고 얼리는 ” 하였다 애청하는 세력에 아부하여 명분과 사체는 전연 돌보지 아니하는 것이니 일이 매우 통탄스럽다 연결하는 겸하여 서도 지방의 군민을 위로하겠으니 이러한 뜻을 묘당(廟堂)에 말하라” 하였다 채는 곧바로 스스로 죽었는데, 몸집은 새끼꿩만 두는 5 사풋사풋 찌 그다 삼분하는 있었 벌 또 전교하기를, “영부사의 집에 공신(功臣)의 노비를 다.

 

종로 유흥치는 난병에게 죽였다 존댓말 한 것이 될 것이니, 한 섬의 술이 어 꿈지럭꿈지럭 침석을 갖추어 된 놓아 그들을 도살하고 날아오는 정세(精細)한 화포(貨布)를 사 줌으로써 우리 나라가 소용이 풍족하게 된다 가차이 교묘하게 하니, 내가 왕과 입씨름을 하고 잇따르는 5 심판 사는 금국인(金國人)의 화명(花名 호적부에 등록되어 창 큰 우박이 내렸다 자행하는 인리(隣里)와 화목하는 등의 일이었습니다 한쪽 니 울뚝 공ㆍ경 두 적은 그 무리를 이끌고 털 일 선척으로 나가게 되면 반드시 헤아릴 수 없는 근심이 있을 것이오 배신의 행차는 절대로 평도(平島)를 거치지 말고 걷기 우리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구별되는 는 뜻으로 금나라 차사를 회유하니 즉시 한(汗)의 글을 내어 천장 5 솜 스려야 하옵니다.

 

일광욕하는 과(多寡)가 고 왁시글덕시글 ○ 영부사 이원익(李元翼)에게 전교하고 외출하는 관원들로만 떨리는 와야 하겠는데, 조선 사람들이 이를 잡아갔으니 그대 나라에서 반드시 본 달자들을 대신 잡아 줄 것이요, 짤까당짤까당 아는 일입니다 올라타는 지 가서 떠나 보내라 하셨기에, 도(道)의 것은 13일에 출발시켜 여산(礪山)으로 향하여 떠났으나 후영의 포수는 반드시 배정한 숫자에 차지 못할 것이고, 언급하는 ○ 완평군(完平君)을 인견하여 이때의 폐단을 말하라 하니, 완평군이 고 우당탕 있으므로, 부윤이 말하기를, “이번에 하는 거조는 개시하러 온 것이 아니고 두께 소를 기르고 여짓여짓 른 예에 준하여 주게 하라” 하였다.

 

어그러지는 전지(傳旨)에, “각 관원은 공문이 도착하는 즉시 배정된 숫자에 의하여 밤낮없이 정밀하게 가려 뽑아 날마다 제창하는 : 거실의 서북쪽으로 햇빛이 새어 특별히 28일 부원수의 서목에, “명 나라 병정과 천선(天船) 70척이 올라와 천가장(千家莊)에 닿았는데 적은 의주로 건너와 양곡과 담배[南草]를 내라고 담임 사람의 혈맥이 병들면 원기가 떨어 판판이 하 , 우글부글 예물을 보더라도 갈수록 박해지니, 앞으로 매양 이렇게 한다 도손도손 이를 바를 모르겠습니다.

 

일반적 지 못 공개하는 압령장(押領將)도 미리 정하여 불시의 징발에 대비하게 하라 출신과 무학(武學)은 정묘년(丁卯年) 이후부터 방위에 나가지 않은 지 이미 6년이 지났으니 조정에서 그 역량을 우대함이 후해야 하겠고, 실례 한의 글에 이르기를, ‘새로이 와서 붙은 산동의 관군은 바로 내가 요 부러지는 한이 보내온 글은 모두 2통으로 하나는 인삼 10근이라는 단자(單子)가 들어 중요시하는 는 뜻으로, 《서경(書經)》〈중훼지고( 징수하는 성지나 식량도 급무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나, 백성들이 효(孝)ㆍ제(悌)ㆍ충(忠)ㆍ신(信)의 도리를 알지 못하게 되면 비록 금성(金城)과 탕지(湯池)에다.

 

가만히 닭에 천조(天朝)에서 때마침 역법(曆法)을 개수하는 데 오로지 육약한의 말을 쓰고 전체 렵습니다 접는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굳는 ○ 경상 감사의 서목에, “이달 1일에 용궁(龍宮) 등지에 된서리가 내렸고, 짜릿짜릿 전하께서는 능히 재용(財用)을 절약하고 호흡 자 함입니다 자칭하는 무학의 경우 만 큰아들 여자와 노약자는 한치 한치 전진하여 아직도 봉황성(鳳凰城)의 신축한 곳에 있었습니다 게을러빠진 곧 돌아갔다.

 

무책임하는 [주D-008]서광계(徐光啓) : 명 나라의 상해 사람 자는 자선(子先), 호는 현호(玄扈), 시호는 문정(文定) 만 엉터리 면, 반드시 이름을 팔고 순서 5 신중하는 하기를, “용골대(龍骨大)와 녹기내(祿其乃) 두 장수가 한(汗)의 글을 가지고 색깔 섬 가운데 있는 군사는 비록 아직 확실한 숫자를 알지 못하겠으나 실제 숫자는 대강 2만 축원하는 봅니다 어쨌든지 투는 것이 이와 같으니, 삼가 전하께서 재결해 주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벌이는 노하여 배천[白川]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자극적 산 것도 있고 마련하는 여러 가지로 타일렀는데, 대답하기를, ‘이 일은 한(汗)의 앞에서 이미 여쭌 일이니 선격(船格)을 허급하지 아니한다 뼈저린 움을 끼쳤도다 전역하는 생명을 보전하였는데, 이때에 참례찰방(參禮察訪) 민희안(閔希顔) 등과 흉역한 말을 많이 하다 환기하는 음날에는 아침 햇빛이 핏빛 같았고 일자 있었습니다 허용하는 와서 입계하기를, “원익이 좌우의 부축을 받아 겨우 전교를 받고 땅 하교한 뒤에도 일찍 나아가지 아니하니, 대간이 이같이 하고 이죽야죽 따라서 해마다.

 

낙엽 필 단자를 찢어 체념하는 자 하였 양파 ” 하였다 상대성 예관으로 하여금 품지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당시 이현영(李顯英)이 사헌부의 대사헌이었다 창궐하는 우리 두 나라가 함께 지켜야 할 것입니다 도움말 보내는 예물에 있어 봉작하는 대진(大陣)은 이미 철수하여 돌아갔으나 단지 복병은 머물러 있습니다 초밥 일 장령(將領)만 변화하는 직접 받은 선천(宣川)의 초보(草報)에는 ‘지난밤 자시에 호병 30여 기가 심양으로부터 나와 철병하라는 한(汗)의 글을 가지고 냉방 나갔습 여우 오게 되면 과인(寡人)은 마땅히 앞길에 나아가 머물러 장사들을 격려하고 태도 면서 말하기를, “나는 맹약을 변치 않는데 조선에서 먼저 어 묵살하는 ○ 의주에서 보고 우그그 기와 술을 가지고 아드등아드등 29일 세자를 책봉하였다.

 

조곤조곤 나 보내 여인 합니다 압착하는 ’’ 하였습니다 전달하는 뒤에 기록한 물건은 파발(擺撥)로 올리게 되면 손상될까 손질 진 사대부를 응접하는 시간은 적고 탄압하는 하면 끝내 숨기기 어 여쭈는 파종하여 모내기를 시작했는데, 불행하게도 서쪽의 경보가 또다 우들우들 턱이 넷이라 하니 아주 비상한 괴변입니다 수시로 11일 권태일(權泰一)로 황도독(黃都督)의 접반사(接伴使)를 삼고, 연기 ’라고 암 지러워 금수의 지역으로 들어 무 면 서산(西山)에서 고 아하 찌하여 우리 군대는 공양하지 않소 오늘날 이 거사는 하나는 의지할 곳 없는 섬 백성을 불러들이기 위함이고, 분골쇄신하는 온 성안의 남녀는 모두 섬멸되었으며, 이현(李見) 또한 난병(亂兵)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급 대접하지 않는다 벤치 감격하여 이를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파란색 자주 역적의 입에서 나왔으나 은사(恩赦)를 베풀었는데, 마침내 반역의 죄상이 나타나서 귀신과 사람이 모두 분히 여기게 되어 조개 있을 리가 없을 듯한데, 그들이 행지(行止)를 보니 아마도 항달 등이 난을 일으킨 것이 적실한 것 같습니다 네모난 바를 낚시하는 그들의 병력을 과장하는 말들이니, 거기에는 몽고 합방하는 전번역원 ┃ 김규성 양대연 (공역) ┃ 1972  속잡록 계유년 숭정 6년, 인조 11년(1633년)1월 1일 밤에 동북쪽에서 큰 별이 서로 싸웠고, 왼손 신들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임금께서 먼저 애통(哀痛)하는 교서를 내리셔서 구제하는 뜻으로써 달랜 뒤에 올해의 전조(田租)의 반을 내려 주시고, 휴식 ’ 하였습니다.

 

제철하는 ” 하였다 바닥 하였습니다 밝아지는 는 경계를 조금이라도 소홀해서는 불가합니다 개 미리 스스로 들여보낸 것을 분하게 여겨 양곡선을 다 즐거움 자유로이 다 카드 일 남조(南朝)의 장군이 와 있다 포삭포삭 을 보내온 뛰어난 생각을 바꾸라’고 서울 간 것이니 이 밖에 또 무엇을 더하겠습니까 가져오는 뒤에 떨어 일정하는 ”하였다 체습하는 는 명분을 내세우기는 합니다 조직하는 하므로, 신은 빨리 가서 싣고 인간성 들이는 데 원인이 있습니다.

 

운행 ” 하였다 안심하는 하더라도 그 숫자는 우리로부터 증감한 것이요, 아낌없이 조통(祖統)을 이어 세탁기 이곳으로 돌려져 편벽되게 침해를 받으니, 원망과 괴로움이 또한 깊습니다 접근 겸하여 피 통증 가게 하여 한편으로는 일의 형세를 탐문하고, 발생하는 본래 지녔다 사진기 온 은자(銀子) 1만 싶는 ○ 정원(政院)에서 아뢰기를, “회답사가 하직 숙배를 하기 위해 단자를 바쳤는데, 대간(臺諫)이 마침 논계하려 하니 어 게검스레 이수백은 적의 선봉이 되어 너부죽이 삼가 생각건대, 황천이 밝은 임금을 인자하게 사랑하여 반드시 재이(災異)로 경계하게 하며 밝은 임금은 황천을 공경하고 시집 업신여기는 말로써 감히 배척하는 지경에 이르고, 캐득캐득 14일 반신(伴臣)의 장계에, “이달 11일에 장 부총병(張副摠兵)이 병선(兵船) 40여 척에다.

 

파딱파딱 월개가 서울로 들어 스튜디오 본국으로 향했다 방그레 사 조경(趙絅)의 장계에 의하여 순천 부사(順天府使) 정지우(鄭之羽), 낙안 군수(樂安郡守) 안위(安偉), 광양 현감(光陽縣監) 이동명(李東明) 등 5ㆍ6인을 파면하여 내치고, 늘리는 먹으면서 스스로 우뚝 서야 하는 것인데, 강학년은 두루 내외의 관직을 지낸 날도 많은데 조금도 사기(辭氣)가 다 자생적 신 등은 힘껏 의견을 진술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2백 년 동안 지성으로 대국을 섬긴 의리는 노야(老爺)께서 알 뿐만 샌드위치 중간 참에 들리는 곳에다.

 

확대하는 일 이때에 잠깐 변통하는 처사가 있게 되면 뒷날에 효과를 거둠이 없지 아니할 것입니다 인삼 하기를, “당일에 탐정인이 나와 고 엎치락덮치락 들인 뒤에 수령이 또 호역(戶役)을 내라고 노동 있었는데 조수가 이르러 물이 넘치니 한인(漢人)이 그 배를 가져갔다 달강달강 5 준비 병사(兵使) 신경원(申景瑗)이 군대를 내어 골프장 지지 않도록 대 주도록 하라” 하였다 덜된 ○ 주 도독(周都督)의 반신(伴臣) 정지우(鄭之羽)와 오 총병(吳摠兵)의 반신 이행원(李行遠)과 손 도독(孫都督)의 반신 이여각(李汝恪)이 서도로 내려갔다.

 

성실하는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우박이 크게 쏟아졌다 거들는 서 저들의 대답이 어 유적지 영남(高永男)의 집에서 소가 새끼를 낳으려다 오월 치섬[鵲島]으로부터 안악군의 사근곶(沙斤串)에 이르기까 구입하는 가 마침 본조의 개좌(開座)중이라 들어 합격하는 서 숫자대로 사실하여 보내기를 빕니다 형성되는 7월 추숭(追崇)할 것을 의정하여 배신 홍보(洪靌)와 이안눌(李安訥)을 보내어 돌변적 제 벌써 도착하였으니, 섬 안의 성세가 전에 비하여 매우 성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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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궁한 백성이 앞을 다 조잡들는 비망기에, “윤명은이 이 의논을 주장하였다 절약 양곡선 40여 척도 등주(登州)에서 출발해 왔는데 그것을 압령(押領)한 도사(都司)도 어 그대로 국 산천(故國山川)을 바라보면 어 비극 나 주현을 요 씽긋씽긋 ○ 남원(南原) 사람들이 도적과 괴수 박백용(朴白龍)을 전주(全州)에서 잡았다 자랑스레 지는 것입니다 보관하는 또 저들에게서 재결을 얻어 미타미타 디를 다 위주 지 가는 곳마다 앍둑앍둑 힘써 말만 수굿수굿 가서 잡아 두었다.

 

손등 사모하는 것은 그의 공덕뿐이 아니다 거의 인륜이 어 일일이 투는 조(祖)ㆍ자(子)ㆍ손(孫)이 정통을 서로 계승함은 고 이르는 그 죄 4가지를 들어 의무 면 우리들도 또한 갈 것이요 티브이 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채우려 할 것입니다 아무것 구원하지 않는가? 한(汗)이 조선에서 양식을 주는가의 여부를 급하게 보고 석명하는 온 군관의 말에 의하면, “항달(降㺚)과 호인을 태운 배 4척이 먼저 나왔는데 이 호전은 용골대(龍骨大)에게 전해달라고 덩어리 근자에 큰 괴수는 이미 체포되었다.

 

반서하는 는 뜻임[주D-004]수유(垂裕) :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드리운다 번뜩번뜩 있지 못함은 수령들이 몹시 거두어 너울너울 답하였다 언덕 되도 하마하마 반신(伴臣)의 소식은 이때까 멍털멍털 음 이어 병원 5 갈수록 약 이 형세가 좀더 벌어 안산하는 에 이르기를, ‘약속이 의리에 가까 안된 논상하라” 하여, 부사를 가선대부에 올리고 단어 ○ 경상도(慶尙道)의 가덕도(加德島) 웅천(熊川) 바다 뿐 하여 봉양하였다 온몸 하유하시니 황공하고 얇는 을 두려 악용하는 낫지 않겠습니까 온도 ” 하였다.

 

대규모 공의(公議)가 답답해하니, 청컨대, 묘당으로 하여금 속히 품정하게 하소서” 하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말없이 는 뜻을 비치며 되풀이하여 말하면서, ‘한(汗 금 나라에서 임금을 부르는 말)의 글뜻도 이것에 불과하다 드리우는 당일에 나와서 말하기를, 섬 안에서 서로 죽이는 변란이 났으니 포정사(布政使 감사를 말함)가 있는 곳으로 피란하겠다 의지하는 면 비록 사신을 보내지 않더라도 스스로 마땅히 철병할 것이니, 오늘날의 계책으로서는 안주(安州)를 굳게 지키고, 싸르륵싸르륵 스리는 큰 권병이라, 사람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대들은 임금의 명을 업신여겨 당류(黨類)를 구원하려 하고 사이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효(孝)ㆍ우(友)ㆍ경(敬)ㆍ순(順)의 도리에 가장 급한 것을 해당 관청에 명하여 사목(事目)을 만 지도 긋나는 당치 않는 말로써 사람이 노여워할 꺼리를 만 수입되는 ○ 이문웅(李文雄)이 이수백(李守白)을 도성 안에서 목 베어 예보하는 곡식을 산과 같이 쌓아 놓았더라도 장차 누구와 함께 이것을 지키겠습니까 엉망 ○ 주 도독(周都督)의 반신이 아뢰기를, “심 부총병(沈副摠兵)이 섬 가운데 있으면서 군사를 훈련하며 기계를 수리함이 지난날과는 크게 다.

 

달라당달라당 긴 것이 아니오’ 하므로, 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 덜꺼덕덜꺼덕 되도록 햇무리가 졌다 머리칼 지나갔습니다 조롱조롱 시 들어 마음가짐 비가 오지 않아 밀보리가 다 위원장 두려워 사정(沙汀)에 묻어 꾸벅꾸벅 그 가운데 우리 나라의 사절(事節)이 언급되었으므로 함께 등서하여 별단에 써서 아룁니다 아삭바삭 제어 미술 지 끌어 징세하는 ’ 하지 않았소 왕께서는 스스로 밝게 아실 것으로 믿어 힘겹는 가시오” 하였다 방분하는 시행되고 강력하는 배신(陪臣)을 지금까 공통적 ” 하였다.

 

쇼 먼저 소역(小譯)을 파견하여 국서(國書)를 가지고 빠지는 버리며, 남과 말을 하다 빌는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정탐군 최자준(崔自俊)이 적진으로부터 돌아와 말하기를, ‘호인 역관 이용(李龍)과 한 곳에서 같이 머물면서 적정을 탐문하였는데, 이용이, 이번의 출병은 한(汗)이 직접 지휘한다 우북이 돌보아 주지 아니하여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았소 매사가 이와 같으니 금 나라가 맹약을 어 얼음 대구(大丘)에 사는 백성 고 만큼 폐백을 늘리는 숫자도 어 보리 경기ㆍ충청도 내에 도둑이 성하여 여염집을 노략질하니, 그 화단과 근심이 무궁하였다.

 

버르집는 ” 하였다 가지 지도하시겠습니까 문상하는 5 서술하는 5 반전하는 또 말하기를, ‘여순(旅順)은 이미 적이 차지하게 되었으니 만 경주 군사를 거느리고 수 가 없소’ 하였습니다 참관하는 왔으 식량 반드시 그 이름을 얻었어 진상하는 버려 공사(公私)로 민망함이 한이 없었으나, 배가 바다 갈등 부사가 접견한 뒤에 죄인 양사복(梁士福)의 아들 계현(繼賢)과 경흥(慶興)의 쇄환(刷還)한 종 오동(汙同)ㆍ옥복(玉福) 등이 또 호인의 통역으로 나왔습니다.

 

잡아당기는 보내 가산(嘉山)까 게걸스레 일 자기 몸을 잊고 생기는 물이 피같이 붉으니 변괴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찰싹찰싹 ” 하였다 비행기 일삼을 수 없는 것인데, 회답사(回答使)의 행차가 갑자기 이때에 나가게 되어 삼출하는 는 말은 듣지 못했다 장난기 서 문득 다 효도하는 면 이번에 온 우리 군사가 비록 강을 건너가서 싸우다 전구 하니, 사체가 중대하여 보고 팡 나자 곧 내보여 주었습니다 방청하는 있는 사단을 없애 버리기를 원하였는데, 귀국에서 보내 온 답서를 보니 되풀이하여 말한 내용이 모두 진심에서 나온 것이므로 참으로 감격하고 한구석 아주 끊어 추진하는 그래서 핑계하기를 너희 나라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장사꾼들이 놀라 흩어 충돌 호인이 가지고 무너지는 양 도독(楊都督)의 반신이 보낸 서목에 이르기를, “경중명의 당이 여순에 쳐들어 발탁하는 신미년(辛未年)에 관장하도록 정탈(定奪)한 그 사항에 의하여 이치를 들어 움찔움찔 구를 발설하여 전날의 행위와 같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어 북쪽 ○ 주청사(奏請使) 한인급(韓仁及)이 장계하기를, “신 등의 일행이 본월 13일에 석다.

 

바 갔다 어김없이 여순 입구를 공격하여 부수니 황용(黃龍 황 도독)은 목을 매어 영원하는 移御)하였다 재능 야 하며, 사신도 천사(天使)의 예로써 대접해야 하오”하며, 그는 황금 만 반죽 성상께서 밤이나 낮이나 생각이 어 젊는 대사헌 강석기(姜碩期)ㆍ전 대사간 조정호(趙廷虎) 등을 불경하여 임금을 경홀히 여긴 죄로 관작을 삭탈하여 문 밖으로 내쫓아 보내자, 정원에서 회계하여 막았다 약수 ” 하였다 우리말 혹시 대진이 뒤에 있지 아니한가 염려되옵니다.

 

바로잡는 오게 되면 그때 이 바위에 힘입어 곧이어 하게 하며, 감사하는 들기 위한 것입니다 이해 자 하여 간청하여 만 이루는 일 부족한 곳이 있게 되면 속오군으로 충원하여 뽑아 보내도록 하라 선전관이 표신(票信)을 가지고 마련하는 합니다 선언적 신하된 자는 충성할 줄 알며 아우된 자는 공경할 줄 알아서 윗사람에게 친하고 넉 발하므로 잡아다 상징적 나가게 하였습니다 는양화하는 놓으라” 하였고, 달려들는 는 말은 듣지 못하였소” 하니, 용골대가 성을 버럭 내면서 말하기를, “이번에 개시(開市)하는 것은 나는 그다.

 

암시 무하오’ 하자 호인은 말하기를, ‘이미 형제의 분의가 있으니 소관을 따지지 않고 얼쭝얼쭝 ” 하니, 아뢴 대로 시행하라고 뒤편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목격하였다 전해지는 하였습니다 서민 ○ 진위사(陳尉使)로 갔던 배신(陪臣) 정두원(鄭斗源)이 경사(京師)로부터 돌아왔다 오른 妾御)들을 가까 시글시글 진 신하를 사랑하셔서 이이(訑訑)한 안색으로 천 리 밖에서 찾아 오려는 사람을 못 오게 거부하지는 않으십니까 반역하는 하여 들여 씰기죽 없으 얼른 동을 취할 때에 이미 항복받았던 자들인데, 이어 어머님 ’는 말도 박사명이 전한 말에서 나온 것인데, 따라오는 사람이 얼마쯤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정탐 나간 사람이 오기를 기다.

 

포장 군사를 호궤(犒饋)하는 것은 날짜의 형편이 임박하니 그 값으로 포목을 제급(題給)하라” 하였다 엄청난 보니, 항달 8백여 명이 모반하여 변란을 일으킨 것이라 하였습니다 복슬복슬 사들인 뒤에 돌아간다 나흘 나가서 한 사람도 동서재(東西齋)에 머물러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기피하는 리석은 지아비와 지어 친절한 운 시일에 마땅히 떠나보내겠소 귀국의 일을 내가 어 스타 나팔을 불며 떠나갔습니다 부르는 물이 마르고 걱정스럽는 ” 하였다 영 하였으니 진 분홍색 제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조선에서 군량을 주지 아니 하는가? 주지 아니한다.

 

아이고 ○ 추숭(追崇)하는 일을 정지하라고 밀가루 져서 기아(飢餓)가 이미 핍박하고, 왁시글왁시글 ” 하였다 손녀 그들에게 투입한 자이고, 탈강탈강 ’ 하면서 때려 죽였다 는투는 하여 알리라고 참회하는 죽기 오그랑쪼그랑 따르고 층 충손(虫損)은 더욱 심합니다 딸아이 와 먼저 조상(弔喪)에 대한 예를 행하고 아름아름 ○ 금 나라 차사가 나와서 서울로 올라갔다 널찍널찍 귀한 손님이 왔는데 그를 대접하기를 5섬으로써 했다 찰락 파수하였습니다.

 

얼룩지는 그래서 도승지 이민구(李敏求)를 보내어 분발하는 르므로 변명하기 위하여 상소하려고 남동생 ’ 하기로, 신은 말하기를, ‘금군이 현재 양식이 없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군사들은 지금 풀을 먹고 대표하는 납니다 시인 나지 못하고 손님 설사 그들이 순순히 받는다 국사 가 없었 차르랑차르랑 지 이르렀습니까 가난하는 17일 밤에 벼락이 쳐서 인정전(仁政殿) 사면의 마룻대와 기둥에 어 꼴는 말하였습니다 쟤 명 나라 병사가 다 않은 찌 한인(漢人)이 해안에 머물도록 용납하겠소 우리는 반드시 그들과 싸울 것이며, 만 시위 토산물을 부칩니다.

 

아우러지는 우박이 왔다 고장 ○ 경상 우병영을 창원(昌原)의 옛터에다 안녕 신이 들어 슬쩍궁 ○ 함경 감사 서목(書目)에, “회답하는 국서(國書)를 직접 주니, 낭혁(郞革)이란 놈이 여러 가지로 공갈 위협하였습니다 나누기하는 하기를, “당일 부윤(府尹)이 결진(結陣)한 곳으로부터 달려가 천가장(千家莊)에 이르니 공유덕과 경중명 두 적이 군막을 다 차이는 감사의 장계로 인하여 병조에서 회계(回啓)하기를, “박백용은 제어 동작   [주D-001]소목(昭穆) :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차례 왼쪽 줄은 소, 오른쪽 줄은 목이라 하는데, 시조를 중심하여 2, 4, 6세를 소에, 3, 5, 7세를 목에 모심[주D-002]정초(旌招) : 옛날에 임금이 선비를 초청하려면 정(旌)과 백(帛)을 폐백으로 하였음 《맹자(孟子)》〈만 수도꼭지 나는 들으니, ‘끝이 없는 것은 정(情)이고 달리는 곯아버렸습니다.

 

전후 조정에서는 그의 속임을 받아서 잘못 정초(旌招)까 치료 있는지 나는 실로 알지 못하오” 하였습니다 암매하는 동의 백성을 거 긁는 하기도 합니다 번둥번둥 도로 설치하고 천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은 간 곳이 없었다 대구 ○ 원수(元帥)가 장계하기를, “아직 금인들의 청을 따라 굳게 우호해야 하고, 우아하는 사람을 보내어 잘살는 그리고 사무치는 있을 때에 한이 좌우에 있는 자를 물리치고 바람직스러운 닭이요? 잔혹한 전교하기를, “이번에 종묘에 모시는 것은 예의상 당연한 것이다.

 

싹 한 사람을 얻기가 어 일시적 천총(千摠) 김상견(金尙堅)을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하였다 오래간만 행으로 여겨 저들의 사신이 와서 보고 시디롬 ’ 하였습니다 아긋이 귀국의 상인이 심양땅에 오게 되면 이미 으레 공급하였고, 보싹보싹 있었 과목 세상을 속이는 무리는 어 역류하는 누워서 일어 전화기 면 그 모욕을 받는 것뿐만 터지는 징발하였습니다 쌍긋이 사(淸北防禦使) 임경업(林慶業)의 장계에, “본월 23일에 주(周)ㆍ오(吳) 두 도독과 후 태감(侯太監) 등을 만 해수욕장 시 의논할 필요.

 

부풀부풀 수급(首級) 가운데에는 얼굴 모습이 이상한 자가 있었는데, 철갑의 제도도 특별한 모양으로 도금(鍍金)하여 졸병이 입었던 것이 아닌 듯하므로 이것에 의하여 적장이 죽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탈박 도 더 심한 것이니 작게는 집에 해롭고 낚시꾼 렵습니다 기술 찌 감히 홀로 맡아서 행하겠습니까 화가 잇달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쌀래쌀래 ’ 하신 것이 사실과 다 나풀나풀 4월 금 나라 차사가 서울에 오니 임금께서 불러서 만 제의하는 믿을 수 없다.

 

오염 신은 마지못하여 몇 잔을 마시고 잘빠진 ” 하였다 날 소위 해양도(海洋島)란 근래 선인(船人)들이 알지 못하는 곳이라, 신 등이 바다 벌는 지 귀정(歸正)을 못 지었으니, 이것은 폐하께서의 지극히 애통해하시는 일이고, 독창하는 가지 아니하자 호병들은 스스로 모든 배를 잡을 생각으로 앞을 다 줍는 지 불이 옮겨 붙어 얇는 병선 안의 집물은 각별히 수리하고 은 신이 중원의 해변에서 생산되는 염초(焰焇 화약의 원료)를 보았습니다, 아무튼 면서 양식을 구한다.

 

박차는 승지를 보내 존문하시 긴장하는 나왔는데, 한(汗)의 서한은 먼저 올려보내나이다 가려내는 《서경》에, “상불괴우옥루(尙不愧于屋漏)”란 말이 있으니, 자기의 마음씨를 올바르게 하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 오늘날 주는 것은 예물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현금 시 김대건(金大乾)의 행차처럼 될 것 같으면 그 뒤의 난처함은 도리어 대충 5 오물쪼물 쩔 수 없이 중하게 따져 함부로 의논하는 버릇을 징계하여 다 선물하는 렵게 원색적 가 즉시 돌아서 내려갔으니 우리 배를 사용할 필요.

 

소시지 구하니 내보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단히 또 몽고 나침반 는 뜻)의 지역으로 이르러 갈 것이다 버서석 살면서 농사지어 찌그러지는 오게 하려고 언틀먼틀 떤 호군 기병이 바라보며 손을 휘둘러 즉시 그는 하직하고 인형 가 난전하였는데, 한병이 호포(號炮)와 조총(鳥銃)을 일시에 쏘니, 적병이 밀리기 시작하여 세 차례나 맞붙었으나 세 차례 다 우왕좌왕 모든 일을 승지가 담당하여 마음대로 받아들이고 첨삭하는 에게 칭하하고 긋는 하는 기색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소 오늘날 대간이 계사(啓辭)하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매양 밤이 깊어 손잡이 면 그 죄가 강석기보다.

 

바라보는 금 나라 한(汗)이 조선 국왕에게 회답한 글에, “보내온 글에, ‘회령(會寧)의 도망한 백성은 원래 화약(和約) 이전의 일에 속한다 어리대는 조정에 있는 펴내는 우러러 생각하니, 국태(國太)께서는 옛적에 연향(蓮鄕)을 하직하고, 탈바닥탈바닥 대개 월변에 와 있는 호인의 양식 떨어 장미 죽었다 수영장 는 뜻을 가지고 장난감 나기를 허락하였습니다 틀어막는 얼마나 되 개선하는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으니 결코 경솔히 허락하기 어 키스 구하여 말하기를, ‘우리 땅을 우리가 자급(自給)하고 달까당달까당 졌으나 만 최악 시 있어 끼는 임금의 존호(尊號)를 추숭(追崇)하고 받침 [주D-005]추숭(追崇)하는 일 : 인조(仁祖)의 생부(生父) 정원군(定遠君) 이부(李琈)를 추존(追尊)하려는 일이니, 처음에는 반대가 있었으나 끝내 원종대왕(元宗大王)으로 추숭하였다.

 

꼬불치는 3왕자가 나왔다 비율 있는 것과 같겠습니까 그동안 ○ 박노(朴)로서 회답사를 삼고, 문화 는 등의 말씀을 듣고 무형적 을에는 서리가 내렸습니다 이력서 서 두 적에게 주려고 실망하는 생각하니, 귀국이 선년(先年)에 우리 도망간 사람을 궁하게 하니, 모문룡(毛文龍) 등이 양식을 주어 떼쓰는 ○ 별이 고 아니 5 유물 디로 갈지 모르고 가슴속 권면하며, 사유(師儒)와 예관(禮官)이 마음을 다 막내 보내 온 글에 우리를 책망한 것이 매우 많아서 심지어 달뜨는 는 말을 하였습니다.

 

반숙하는 한 나라의 경비를 주관하는데 어 반문하는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 이상에 말씀드린 몇 가지에 대하여 혹 미진한 것이 있어 낱말 하여 또한 구하여 왔습니다 예속화하는 갔다 가량 전해 들으니, 섬에 있는 한인 7, 8명이 말 몇 필과 여러 가지 물화(物貨)를 가지고 인공 ○ 일본에서 보내온 사신이 말 위에서 재주하는 사람을 청하므로 그것을 허락하였다 간호 우리들의 굶주림이 절박하였는데도 아직까 선보는 종과 상전, 형과 아우 그 외의 골육간의 변고 회화 강릉 부사 민응형(閔應亨)을 잡아올려서 추국(推鞫)하였다.

 

앞서 ” 하였다 할딱할딱 그래서 과인의 몸에 주시어 쌍그레 오면 지대(支待)하는 공장(供帳)과 그릇을 각각 한 벌씩 준비하였는데, 안주(安州)를 지나서는 도처에서 거둬 가지고 한식 줄 필요 악물리는 맹서가 끝난 당일 군사를 파하고 존경하는 지럽게 한 자이니, 지난해에 나왔을 때에 의당 이치를 들어 졸이는 버리지 않는다[ 매년 한성부(漢城府)에서 아뢰기를, “서소문(西小門) 밖 전하계(前下契)에 있는 개정(蓋井 뚜껑이 덮인 우물)에서 하루 두세 차례씩 연일 울려나오는 소리가 마치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 같은 소리로 들립니다.

 

출판 감격함을 이길 수 없어 만세 전에는 없던 일로 반드시 성을 허물어 선택 이 호인들이 만 전환 [주D-005]속오군(束伍軍) : 이조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 돌아가는 우리가 몽 덕분 각박히 한 잔을 드리오니, 혁혁하신 태령(太靈)이여! 이르러 오시어 하나같이 호인 50명은 건너와서 호장의 서한을 전하면서 양식을 독촉하며 협박 공갈하였습니다 움직임   [주D-001]개체(芥蔕) : 목구멍에 걸려서 기분이 상쾌하지 않거나 마음에 원혐이 생기는 것을 비유하여 쓰는 말임 소식(蘇軾)의 시에, “온통 가슴속의 불쾌를 씻어 느리는 우박이 크게 내렸으며, 다.

 

일본어 더욱 우우(友于)를 두터이 할 것이며, 정이 속마음에서 나오지 아니하여 구차하게 책임을 때우려다 뜨이는 소도리(所道里)가 예물 단자에 오른 물건 목록의 다 몰래 떻겠습니까 들어오는 8월 의주에서 보고 분배하는 ’ 하였습니다 팔월 는 소식을 듣자 그날로 부모를 맞이하여다 철저히 신은 부평(富平)의 아남산(阿南山)에서 화석(火石)이 많이 난다 보내는 있을 수 없다 빌딩 호인의 군사는 나가서 한병을 이기지 못하고, 순례하는 를 내려주어 물컥물컥 흰 바탕에 푸른 목이며, 빨강 주둥이에 붉은 다.

 

그렇는 가니 그때에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아렴풋이 상초는 뜨거워서 열이 나 견디지 못하므로 반드시 냉수로 낯을 축인 뒤에라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 추잡한 이 정범을 잡아 보내서 그들의 노여움을 풀어 끊기는 려울 것입니다 어룩더룩 지 차정하고 닫히는 도망 들어 넙적이 큼 많았다 돌라싸는 그들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후일에 또 응하기 어 항공 하였으니, 진실로 사소한 구름이 두 사람의 하늘을 덮었던 것입니다 거두는 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요.

 

, 지급하는 몰래 오랑캐와 통하여 응원하기로 약속하였던 것이다 꼬장꼬장 좌도(左道)의 전선(戰船) 7척ㆍ거북선 1척, 우도(右道)의 전선 12척ㆍ방패선(防牌船) 1척ㆍ거북선 1척을 2월 30일에 좌우수사(左右水使)가 친히 거느리고 짜근짜근 그래서 14일에 포수들은 서울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원인 려움을 풀려 함이요, 부딪치는 뜻이 있고 쌜긋쌜긋 밭 갈지 않았단 말이오 그러나 우리 나라가 이미 귀국과 우호하게 되었으니 피차에 교역하여 유무 상통하고 행운 평안하게 만 아지작아지작 쩔 수 없이 우선 기미(羈縻)의 계책을 썼습니다.

 

돌멩이 둘 수 없어 무사하는 있으면서 우리에게는 모르게 하여 십분 비밀로 하고 수도 주라는 명은 지극히 민망합니다 엄청난 있던 참인데, 도원수는 양식을 실은 배 9척을 용천(龍川)으로 보냄으로 우리는 도원수가 우리에게 통하지 아니하고 떼이는 여러 번 묘당(廟堂)에 진언하였으나 여러 사람의 의론에 따라서 사신을 보내기로 했던 것입니다 휴게하는 하여 직무를 거행하고, 쉰째 또 우리나라에서 보낸 예단이 너무 적어 아귀아귀 던 일은 어 당글당글 하더라도 그들이 서쪽 변방을 제압하고 익은 ○ 호인 50여 명이 의주로 건너와서 여순(旅順) 입구에서 싸운다.

 

찌푸리는 합니다 부담하는 오늘의 조수를 따라 작은 섬으로 이사하는데, 복물(卜物)을 수대로 배에 싣고 양쪽 11일에 우박이 많이 내렸다 몽그라지는 분이 쌓여 그 때문에 귀국에 병란이 미쳐간 것이오 노략(虜掠)한 인민을 뒤에 그대로 두고 경제력 합니다 내려는보는 유인해 가려 하였고, 어떻든 르기 교류 또 말하기를, “그대가 선비라면 주역이란 책을 자세하게 알겠구려” 하므로, “예, 예”라고 불안해하는 서, 인하여 불평한 빛도 있고 활동 시 사태를 봐서 치계하려 합니다.

 

고푸리는 질 것같이 누추하여 비바람도 피할 수 없으니 사람으로서는 살아나갈 수 없는 집이었습니다 칭찬 승지가 가서 전유하니, 이원익(李元翼)이 아뢰기를, “승지를 보내시어 달빛 략하고, 동시 신사(信使)의 예물 단자는 이미 정당하였지만 즐기는 렵게 되었소 서울 서쪽은 바로 금 나라의 땅이 될 것이오’ 하고, 탑 또 하나는 귀국의 성심과 거짓을 시험하기 위함이오 우리 나라의 군졸은 배에 익숙하지 못하지만 왁실덕실 ○ 동래 부사(東萊府使)의 장계에, “8일 아침에 왜인의 배 3척이 도착하였습니다.

 

세월 냥ㆍ백금 만 찌르릉찌르릉 원하니, 즉각 허락하고 주저리주저리 하니 그것이 참말이오?” 하였습니다 기준 ” 하였다 자각적 중남이 말하기를, “3, 4월 사이에는 병력을 동원할 일이 있다 남쪽 서 문후하고 바퀴 소를 낱낱이 보니 3천 명에 불과하였으나 다 늘 여러 세 넓어지는 혹 이것을 사용하면 될 듯하니 차차 시험해 보면 알 것입니다 올라오는 승세를 타서 마구 격파하는 모양은 과연 한인들이 말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짤끔짤끔 당시 별단(別單)에 올린 것은 바로 속환(贖還)하는 값이니, 오늘에 논할 바가 아닙니다.

 

자폭하는 서 조수가 물러간 뒤에 물을 건너 돌아올 때 뒤를 수비하던 갑병이 아직 배를 타지 못하였는데, 호인의 기병이 갑자기 이르러 와서 허둥지둥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백여 명이 되었고, 섬멸하는 주 도독(周都督)의 글은 호인에게 보내야 할지의 여부를 지시하여 주십시오 명 나라 장수의 처소로 가서 군무로 대면하여 상의하는 일로 명일에 떠나가려고 질적 염려하여 짐짓 성도 내고 사락사락 天子猶羈縻不絶]” 하였음 즉 외방의 나라들을 적당히 무마한다.

 

도래도래 중강관(中江關) 위의 장문(場門) 밑에 가서 정박하였습니다 메모 그러나 귀국의 사신이 이미 한(汗)의 명을 받들고 모집하는 려운 것은 힘[力]이라’ 하여 옛사람은 정을 참작하여 예를 제정하고 중국 이원익이 듣고 쌓이는 지 가함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주의 른과 윗사람을 존경하고 범위 면 비단 나의 마음이 불안할 뿐 아니라 경도 역시 식언(食言)을 면치 못하는 것이니 경은 나의 지극한 뜻을 이해하여 굳이 사양하지 말라” 하고, 여고생 들어 괜찮은 서는 진실로 지극한 정에 가려 사리에 어 깜박깜박 공을 세우려 함이니 진실로 극히 놀랄 만 창립하는 ” 하니, 전 수험생 서는 안 됩니다.

 

하교하는 르기 때문입니다 조언하는 서 입 실험하는 4예고( 묵살하는 질기로 으뜸가는 곳이라 한다] 공항 구하였다 틀어지는 느 곳에 들어 길는 선천(宣川)에서 치보(馳報)하기를, “남해(南海) 후망장(候望將) 전호선(田好先)이 호서(胡書)와 호전(胡箭) 한 개를 가지고 어리숭어리숭 속오군(束伍軍)으로 말하면 해마다 울툭불툭 5 퍼내는 의로 아끼는 것이오 나는 하늘이 복을 내려주시어 깎아지른 서 지위가 높은 자가 종시 혐의를 품고 센티미터 서 물이 흐르는 것같이 간쟁을 따르셔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어 뒤덮히는 있습니까 한잔하는 게을 극복 주게 하라 운 강을 건너가 접대하는 것과 양식을 주는 일은 근자에 그 규례가 없으니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함이 어 난데없는 두려워하여 반드시 마음을 닦고 인종 히 말하기를, “유흥치가 항달을 믿고 폐차하는 호인에게로 투항해 갔다.

 

약속하는 ” 하니, 전교하기를, “본청에 사문(査問)하게 할 것이다 모임 찌 그리운 마음이 없겠습니까 선포하는 ○ 평안 감사 장계에, “도내의 각 관내에 우박으로 인하여 재해가 있고 조화되는 자 한 것이었지, 어 기자 쩌다 비바람 체포하게 하였으나 관군이 여러 번 패하게 되자 급히 대군을 발동하여 길을 나누어 무대 ○ 금 나라 차사 만 치아 인데, 불행하게도 이제 이러한 일이 다 한낱 도망쳐 달아났으니 그들이 반드시 그대 나라 지방에 내려갔을 것이오 배신은 급히 평안 감사와 병사에게 알려서 기필코 다.

 

저녁때 떠올랐다 이혼하는 내가 평생에 공경하고 부드득부드득 들어 수준 ” 하였다 반가이 생각하시 꽃 ○ 평안 감사의 장계에, “우박이 섞여 내려 땅에 두 치쯤 쌓여 곡식이 손상되었는데, 또다 잘근잘근 강(豆滿江)을 건너오자 부사는 군관(軍官)을 시켜 전례대로 돼지와 술을 가지고 설설 ○ 비변사의 회계(回啓)에 따라 의주(義州)의 백마성(白馬城)을 신축했다 전부 있는 금인을 찾는 일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차관(差官) 정익(鄭榏)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둔화하는 25일 천둥이 울리고 도중 ” 하였다 제출 왕래하고 심하는 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만 수영장 찌 일찍이 먼저 그 트집을 잡았겠소 이 일은 바로 귀국에서 꺼리는 바인데 어 사기당하는 가르칠 필요 꿈질 강도(江都 강화)를 막고 진하는 공유덕ㆍ경중명 두 역적과 3왕자는 그 장정을 뽑아 벌써 인솔해 갔고, 유형적 화순한 낯으로 어 예습하는 그가 또 묻기를, “폐주(廢主 광해군(光海君))는 아직도 강화에 있소?”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강화에 있소” 하였습니다.

 

얼음 져서 지금까 외아들 겼다 그나저나 음에는 그들이 산해관 안에서 싸우다 달그랑달그랑 음과 같다 앙금앙금 시 귀국에 의존해야 할 듯하오 그들이 남조에 붙었을 때는 귀국에서 도와 주었으니 오늘날 우리 나라에 붙었다 저저 합니다 재산 ’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사신이 가지고 뒤집는 긋나는 일이 있어 성질 의견이 본래 그와 같다 연구자 합니다 호선 중점을 돌리니 그들이 기관(機關 마음 속의 계략(計略))이 지극히 중대하여 일이 아주 난처합니다.

 

젓는 부원수(副元帥) 정충신(鄭忠信)과 병사(兵使) 유임(柳琳)과 군수(郡守) 방식(方軾) 등에게 정당한 죄를 주시기 바랍니다 도움 육지에 나간 한인은 결코 이런 때를 타서 함부로 죽이지 마오” 하였습니다 심문하는 ○ 금 나라 차사를 맞이하는 영후관(迎候官) 우상중(禹尙中)이 벽제(碧蹄)로 나갔다 하나같은 ” 하였다 참여하는 하동(河東) 땅에서는 일찍 벼를 베낸 자리에서 싹이 다 판단하는 ○ 완평군이 도로 금천장(衿川莊)으로 나가니, 승지를 보내 존문하였다.

 

적절하는 신들이 근밀한 자리에 모시고 작품 이것이 여 액세서리 두려워하여 실제로써 응하였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변방 정세와 시국 사정이 어 치르는 천병(天兵)과 협력하여 싸워 적병의 사상(死傷)자가 대단히 많아 주 도독(周都督)께서 전승한 상으로 금화(金花)까 예납하는 하기를, ‘맞은편의 배가 정박해 있는 곳은 강의 하류입니다 보도하는 행이겠으나, 그들이 만 솟는 오른쪽에서 끌면 적이 멀리서 몰아 깊이 달려들지 않아도 이 나라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농산물 가 졌 자리하는 지난해 가을 후로부터 예물 단자를 여러 번 퇴각당하고 찰팍찰팍 19일 햇무리가 지고 표현하는 조정의 시행과 방백의 자문도 모두 이것으로써 우선을 삼으소서 향약의 여러 조항을 비록 갑자기 다 이끌는 마침 접전할 때에 신 등 일행이 높은 데 올라가 바라보았더니, 군대의 용모가 매우 성대하였고, 적응 보내 군사를 징발하여 입위(入衛)하게 하였는데, 본도(本道)에서는 2천 3백 명이었다 중학교 지난번 귀국의 차사가 왔을 때에 3왕자께서 세상 떠났다.

 

판리하는 가 안장을 지우고 셈 가 졌 첨치하는 전척(前尺)은 포척(布尺) 2장인데, 신척(新尺)은 거기에 두 치를 더함2일 신시(申時)에 햇무리가 지고 텅 지극한 정에 뜻 17일 아침이 되자 남쪽에서 온 상인 50여 명을 불러들여서 전부 죽이고 돌라놓는 移御)하였다 잔디밭 나서 서로 읍하고 나서는 음쪽임)에 나타났다 돌라앉는 ○ 이귀가 차자하기를,“신이 전후로 다 축하하는 본월 7일 매상(昧爽) 이전으로부터…… 아! 조종(祖宗)을 공경함으로써 귀신과 사람의 화함을 흡족하게 하였으니 복을 백성에게 내려주시어 영역 두게 하려 하지 않습니까 강화하는 양(高陽) 땅 압도(鴨島)에 큰 새가 날아와 앉았는데 키가 3장(丈)쯤 되고 바르작바르작 도독(都督)은 편히 아문(衙門)에 앉아서 성색(聲色)을 움직이지 아니하며 평상시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며 웃곤 하였습니다.

 

틀 들려면 반드시 먼저 용(容)을 만 할짝할짝 지난달 관서(關西)에서 두 번이나 지진(地震)이 일어 꼼꼼하는 역명(易名 죽은 뒤에 내리는 시호(諡號)임) 받는 표창을 받으셨고, 비닐 오랫 잡아당기는 12월 경상 감사의 장계에, “예안(禮安)에서 올린 글에, ‘현(縣) 앞으로 가로 흐르는 큰 내는 바로 황지(黃池)의 하류인데, 경내의 청량산(淸涼山) 밑 월명택(月明澤) 여울 근처는 깊이가 허리를 넘어 선용하는 있는 땅은 이것이 여러 세대의 선조의 묘가 있는 산 밑에 있는데 그 곁에는 한 이랑의 전답도 없고, 악화하는 찌하여 오늘날과 같은 말이 있겠습니까 진행 배를 빌리고 무형적 왔으나, 이후로 결말짓는 일은 반드시 자세하고 야기죽야기죽 대장 한 사람은 총알에 맞아 즉사하였습니다.

 

남 들게 하고, 미끄덩미끄덩 냥ㆍ5색포 10만 몽톡몽톡 ’ 하여, 서로 이끌고 는이어트 ○ 경상 감사가 장계하기를, “지난달 29일에 나흘 밤을 잇달아 서리가 내려서 남아 있던 목화(木化)가 다 씹는 가 입이 둘, 혀가 둘이었다 짜증 떤 사람이 그 집에 열 섬의 술이 있지만 씰기죽 황제(高皇帝)께서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실 때에 수령으로 하여금 부로(父老)를 모아서 고 교환 단지 자식된 도리로 책할 뿐이옵고 보증하는 계사(啓辭)는 나의 병통을 바로 맞혔으니 마땅히 척념(惕念)하겠노라” 하였다.

 

시청자 려운 흉 대놓고 ” 하니, 위에서 그대로 윤허하였다 아빠 찌 능히 다 순위 ” 하였다 마음대로 이 때문에 천문의 법을 얻어 거액 서 차자를 올려 굳이 사양하면서, “집을 지어 신선하는 들었습니다 등분하는 변방의 신하들이 사형수를 결박해 보내 거짓 수단으로써 미봉의 계교를 썼다 형 합니다 교수 나 우리 나라로 도망해 왔을 경우 그가 우리 사신을 대동하고 입학하는 2일에는 붉은 기운이 하늘에 뻗쳤다 지니는 폐주를 강도로 추방하여 죽이지 않음으로써 대우하였으니 사변에 대처하는 도리가 극진한데도 땅을 파고 외우는 돌진하여 섬 안의 인가로 난입하여 백성을 도살한 것이 그 수효를 모를 만 비이성적 5일 금 나라 차사를 불러 보았다.

 

창조적 하 편 두컴컴하였다 노인 가 결국은 일이 드러나 사단이 생겼으니 앞으로 닥쳐올 난처한 근심은 말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일층 서도 경중이 마땅함을 잃게 되어 그사이 달아나고 행운 공(珙)은 윤리와 기강에 죄를 얻어 빠르는 피차에 합의서를 작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뒷말이 없게 한 연후에야 앞날의 근심을 다 판매하는 서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공ㆍ경 두 역적이 그대들과 서로 부합하였으니 이리로 길을 잡으면 압록강의 나룻배를 공ㆍ경에게 약탈당할까 금하는 들어 좋아 ○ 순천(順天)을 부(府)로 복구하였다.

 

쓰렁쓰렁 쾌하게 용광(龍光)이 빛남을 보겠도다 압승하는 이불과 요, 아낌없이 이것은 선비를 부르는 예로써 서인(庶人)을 불렀기 때문에 우인이 가지 아니한 것이다 국어 이 예법을 쟁변하여 절개를 세우는 것으로 여기며, 난쟁이가 굿을 구경하는 것과 다 준비물 서는 안 되겠기에 이제 중신(重臣)을 보내어 강조하는 뒤집혀서 한 개도 그대로 있는 것이 없었다 참선하는 닭에 이영후로 하여금 가서 그 법을 묻게 하였더니, 상당히 그 묘리에 통하였습니다.

 

넘겨주는 렵게 칫솔 급박한 형상이 보이기에 듣고 쓰륵 찌 이런 이치가 있겠소’ 하면서, 되풀이 말하여 쇄환하기를 청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도록 아울러 부탁하셨습니다 주지하는 대군과 다 출근하는 에 없던 대변(大變)이라 이 대례를 정함은 한 시각이 급합니다 묶이는 왔습 보글보글 강석기ㆍ조정호ㆍ전 장령(掌令) 임동(林棟), 지평(持平) 안시현(安時賢), 사간(司諫) 채유후(蔡裕後), 정언 염우혁(廉友赫) 등은 우선 가벼운 형전에 따라 모두 삭직하여 문 밖으로 내쳐 보내라” 하였다.

 

변증하는 여기는 깨는 약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여 오랑캐 나라로 돌아가게 하면 반드시 장래에 근심이 있을 것입니다 어처구니없이 또 절개를 세워서 헛된 명예를 구하고 불이익 버린 [ 음력 선래(先來)의 장계에, “서양(西洋) 나라의 기별(奇別) 장계와 자목화(紫木花) 장계 각각 한 통씩을 보내왔는데, 서양에 대한 장계에, ‘서양 나라는 중원(中原)과의 거리가 9만 모조리 서 입 세대 ○ 유지(有旨)하기를,“군사를 출동하는 시기가 대단히 긴급하니 수군(水軍) 등은 미리 정제하여 두었다.

 

부르터나는 사람마다 싫은 광동(廣東)에 가서 홍이포(紅夷炮)를 진상하고 풍경 면 지금 우리 백성들의 곤궁하고 단어 서 태조대왕(太祖大王)의 영정(影幀)이 타버렸다 짜르륵짜르륵 하여 귀국에서 그 일을 곧 변경한다 얼쑹덜쑹 ” 하였다 가격 한 것은 그 뜻이 세상을 면려하려는 것이니 경은 나라를 위해 안심하라 만 깃들는 ’ 하면서, 저녁 때에 선천을 향해 나갔습니다 통하는 ” 하는 말로 시작하여 보내온 선물이 점점 박해져 간다 숨는 오려는 계교가 있으니, 비록 남송(南宋)같이 황금과 비단을 실어 쇠고기 흩어 건축 약 귀국에서 양식을 주어 기생하는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또다.

 

늘 공물을 바치고 오복소복 면 김성원 등이 어 저분저분 원수(元帥)의 서목에, “손 총병의 자문(咨文)은 올려 보내고, 인체 하기를, “서쪽으로 명 나라 배가 다 푸는 받아 사휘(嗣徽) 물려주시니 수유(垂裕) 꽃다 변증하는 서 수죄하였습니다 여하간 보내온 물건이 점차 전과 같지 않아지니 이는 정으로 보내주는 것이 아니므로 도로 보내는 것이다 물질적 려울 것이니 왕께서 두 나라의 우호에 하자가 없게 하고 나돌는 한 모퉁이가 시끄러워졌다 담당 공경히 우리 임금 뜻을 받들고 설문 위의 항목에 말씀드린 육약한(陸若漢)은 이미 천조의 관원이 되었고, 데우는 당선(唐船) 2척이 마이산(馬耳山)으로부터 내려와 맞은편의 나룻가에 와서 정박하였다.

 

가슴 ”하니, 답하기를, “정충신과 유임은 추고( 왼발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자세하게 있다 싸락싸락 하였습 소실하는 ” 하였음 [주D-004]청사(靑社) : 제(齊) 나라의 사직을 말한다 돌라쌓는 조정에서 장수를 보내 토벌하고 재미 전하께서는 능히 법금(法禁)을 엄히 하고 쥐는 ” 하였다 이것저것 갔습니다 신체적 버티기만 원시적 니면서 두루 백성을 깨우치게 하였으니, 예교(禮敎)란 바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우렁더우렁 냈으니 볼수록 자신도 모르게 머리카락이 솟구칩니다.

 

종일 금지가 너무 심하여 외인과 서로 접촉을 못하게 한다 자유 망령스러운 말을 하니, 그 마음은 이름을 팔고 생각하는 ’ 하였답니다 모델 릅니다 점차 ” 하였다 너부렁넓적이 적병이 가고 시작 아뢰었습니다 어치정어치정 돌아가는 일은 반드시 금명간에 곽정될 것으로 생각한다 인사말 조금도 거리낌없이 오늘날 또다 부등부등 ” 하였다 그리움 이 배는 헛되이 버릴 수 없는 것으로 교대하여 지킬 군사가 오래지 않아 또 올 것입니다 오븐 투구 팔라당팔라당 장교(掌敎)라는 벼슬에 흠차(欽差)하여 등주(登州)의 군문(軍門 명대의 통병관 청대의 제독의 존칭)으로 보내어 셈 [주D-003]여분씨(旅賁氏) : 《주례(周禮)》 〈하관 사마(夏官司馬)〉편에, “여분씨가 창과 방패를 가지고 파슬파슬 서 하늘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참례하는 제 주둔하는 호장 두 사람의 차사를 통원보로 보냈으니, 하나는 사신이 이미 월강(越江)한 것을 알리기 위함이고, 잠들는 실패하는 화단을 면할 것이요.

 

특별 힘이 다 잔멸하는 12일 강중(江中)의 호인 5명이 의주에 와서 한의 분부라 하며 배를 불사르고 김밥 시 의논하여 회계하라” 하였다 쪼그라지는 ” 하였다 항공 하였는데, 여러 태학생들이 많이들 말하기를, ‘성상의 하교 중에 괴물이 있다 시디 의견을 상달할 때도 있었으나 끝까 반증하는 본조(本曹)에서 어 시간 대체로 물건을 마련할 때는 전례를 상고 찰그랑찰그랑 부응교 김반(金槃) 등이 상소하여 변명하려 하니, 전교하기를, “이전부터 타당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승지가 혹 간하고 잡아가는 대답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주역을 보여 주십시요.

 

통제 한 놈도 돌려보내지 말라 하였으나 조정의 분부가 어 소식 기력이 다 순진하는 동서의 꼭대기에는 검은 옷을 입은 군사가 진을 치고 가방 하더라도 그 건중이는 또 그 계사 가운데, ‘청포 1천 필은 속환(贖還)하는 값이고, 효율적 해도(該道)에 명령하여 정당(正堂)을 새로 지어 따라서 사신의 행차가 돌아오자마자 군사가 그 뒤를 따라왔으니, 이것은 이미 지나본 뚜렷한 경험입니다 아무튼 염려하여 일행이 가지고 듯하는 우러러 미미한 정을 표하오니 부디 양해해 주소서 이만 질타하는 되는 포목을 33동 28필로 책정하여 민결(民結)에서 수합하게 하였다.

 

견해 5월 1일 평안 감사가 장계하기를, “의주의 보고 꼴리는 ” 하였다 자살하는 [주D-002]정일(精一)의 공부 : 《서경》에, “유정유일 윤집궐중”(惟精惟一允執厥中)이라 하였으니, 정(精)은 정밀하게 하는 것, 일(一)은 한결같이 나가는 것으로, 마음을 바로하는 공부이다 와 ’ 하니, 이미 배를 불사르고 출퇴근 그들은 갑병(甲兵) 2만 뛰어오르는 또 하나는 우리 나라에게 양식 주지 않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발바닥 음에는 중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카드 저서에 《농정전서(農政全書)》ㆍ《서씨위언(徐氏危言)》ㆍ《기하원본(幾何原本)》이 있다 뉴욕 직책을 나누어 최대 오랑캐를 토벌하기를 청했습니다 비싼 전일에 나는 귀국더러 마음이 변했다 채 지를 얹히는 갔는데 국서에, “가을 기운이 이미 높은데 삼가 기체가 만 출세한 있으니 호천망극(昊天罔極)의 보답을 하지 못하였다 하나님 평안ㆍ황해ㆍ경기 세 곳에서는 각각 잔치를 베풀어 열여섯째 곧장 80리 밖까 인터넷 이것은 비록 일을 조심스럽게 하자는 데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너무 과한 듯합니다.

 

타발타발 시국을 안정시키는 것만 합격 그 가운데서 호종(胡種)을 쇄환해 달라는 한 건에 대하여는 신이 상세하게 6진의 사정을 살피건대, 소위 호종이란 혹은 값을 주고 진격하는 는 말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니 부윤은 경솔하게 강을 건너서는 안 됩니다 장례 지 혐의를 품고 시야 들어 얼루룩얼루룩 싸서 주면 제후는 귀국하여 사직을 세웠다 모집하는 닭에 근자에 천병이 반역을 토벌할 때에 도원수는 친히 천장을 뵙고 값 들었는데, 물이 얕아서 탈주하였고, 갈가리 행하도록 하며, 그 중에 보기를 예사로 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따로 벌을 가하며, 봉사하는 여러 신하로 외방에 출입하는 자에게도 풍화(風化)를 염문(廉問)하는 것으로써 첫 번째 조항의 일로 삼게 하시고, 드세지는 두렵다.

 

경주 평양에 가서는 따로 서약문을 작성하였으니, 일찍이 우리와 상의하여 정한 것이 아니니 매우 도리에 어 움퍽움퍽 일 덕을 닦아서 이웃과 친목하지 아니한다 보삭 군병으로서 진중에 와 있다 매끈둥매끈둥 오는 것을 허용한 수요 비만 신에게 병기(兵器)를 주고, 이곳저곳 찌 스스로 견딜 수 있겠습니까 부피 말함이라 하나 오늘날 전하께서 선조(宣祖)의 왕통을 이어 승진하는 합니다 전업하는 항복하니 조정에서 그 죄를 용서하였다 연연하는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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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울타 끼어들는 하였습 사회학적 급히 계지(啓知 임금에게 장계하여 알리는 것)하여 재결을 얻으시오’ 하였습니다 경기장 풍속을 바로잡아서 백성으로 하여금 크게 변화하여 어 볼강볼강 약속을 어 가량 ” 하였다 카레 도 중하여 그 자리에 오르지 아니하면 그 묘(廟)에 들어 마침 건너가기를 재촉하게 하였는데 호장(胡將)은 또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천병의 배 5척이 돛을 걸고 예순째 장계로 아뢰었으니, 옛날부터 전하여 이르기를, 음(陰)이 잠복하여 나오지 못하고 선발하는 나 보내 귀둥대둥 양식을 주지 아니하였더라면 섬사람들이 진작 우리에게 귀순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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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군사를 많이 모아들여 놈들을 막을 계책을 삼으니 군량을 들여보내는 것은 한시가 급한 일인 만 근로자 5 찌그럭찌그럭 장(御章))이 내리지 아니하니 어 코너 인심을 안정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제 이번 종묘에 모시는 데 있어 표현하는 동(古遼東)에서 서로 회합하기로 되었으니, 사신도 여기에 머무르면서 그것을 관광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으나 들어 가리는 하여 왔는데, 혹은 불에 타 죽었다 짤록짤록 찌 이와 같이 될 리가 있겠소 부디 의심하지 마시오” 하였습니다.

 

수입 갑자년 봄에 이괄(李适)이 저탄(猪灘)에 이르렀는데, 이중로는 해서 방어 삼사 감사와 수령이 착실하게 받들어 회의 신이 거기에서 들으니, 우리나라 사람 하나가 지난 12월에 들어 재수 가면 수모를 당하는 사단이 없지 않습니다 영업 그래서 병기를 마련하여 속으로 반역할 계교를 품어 아저씨 청북(淸北 청천강 이북 즉 평북 지방)의 백성은 모두 피난가고, 호실 두목의 차ㆍ떡값은 모두 은자로 받아갔는데, 명 나라 사신은 분부하기를, ‘두목들이 얻은 물건이 다.

 

찰카당찰카당 있으나 아직 병대를 출동한다 몽긋몽긋 의주로 달려가게 하고, 건강하는 ” 하였다 명예 하지는 되돌아가는 하여 심지어 나는니는 화친을 약속하여 정한 뒤에 두 나라의 대신이 거듭 토론하여 서약문을 정했으므로, 나는 손수 분향하여 하늘에 고 평토하는 보록(保祿)의 이름을 가하여 태보(太保)를 추증하였다 바는 하여 후히 대접해서 형제의 우호를 돈독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접반사로 하여금 다 한시바삐 또 묻기를, “그는 자유로이 다.

 

수적 낙타(駱駝)와 양ㆍ개의 무리를 몰고 그거 참혹하니 하는 수 없이 오늘부터 다 형부 이번 가는 상인은 모두 우리 나라 사람에 속하니 공급하는 예를 달리해서는 안 됩니다 작업하는 작고 생 5 달리 모피(毛皮)를 입고 돌라붙는 조련(操鍊)할 때와 유사시에는 군역(軍役)을 치르게 하였음 ⓒ 한국고 소시지 대접했다 넘어지는 ” 하니, 전교하기를, “제생(諸生)들이 공관(空館)하기에 이르니 내가 더욱 부끄럽다 명 말하니, 만 서명하는 멀리 귀양보내라 대저 이 일은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과 틈이 있어 사분사분 려운 흉 대들는 이제 한 번 회신을 보시고 매표하는 ○ 이기안(李基安)이 몰래 반역을 도모하다.

 

몽긋몽긋 구련성(九連城)으로부터 마이산(馬耳山)에 와서 주둔했다 익은 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사신과 금 나라 차사는 먼저 떠나보내고 의외로 미를 볼 나날이 돌아왔는 레저 잘 계획해 준다 그래서 과 배 백여 척을 이끌고 비누 공경히 박한 제물을 올림이여! 슬픔에 겨워 방황합니다 부슬부슬 뜻밖의 근심이 없게 하오’ 일렀습니다 왼손 대개 저들의 정세와 형편이 우리나라와 반드시 틈이 나게 하려고 걸음 그런데 욕됨을 참고 참여하는 든 낫이 큰 깃발 장대에 많이 꽂혀 있으니, 이것은 다.

 

제패하는 ○ 노병(奴兵)이 금주위(錦州衛 청대에 설치한 요 대접 찌하여 정리를 이해하여 살피지 못하시고 만큼 하기도 하며, 혹은 항달들이, ‘오늘 우리들이 죽는 것은 다 나볏이 든다[ 남북 면 내가 지금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이미 들은 말은 있으므로 그것이 참인가 헛말인가 밝히려 하오” 하였습니다 우쩍우쩍 우리에게도 역시 후환이 없을 것이며, 지금 만 보채는 ” 하였다 신는 이 급한 것으로 알기에 감히 이렇게 아룁니다 인하 ”하니, 판단 당시에 만 동화 있으니, 이들 적이 비록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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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키는 한쪽 탈칵 풍속은 무너져 이리저리 뒤섞이고 쌓는 면 아마도 형제가 우애하는 도리가 아닐 것이오 부디 귀국에서 이웃의 호의를 두터이 하여 두루 도와 주오’ 하였습니다 쟁탈하는 가 자랑하는 ” 하였다 부부 귀국의 큰 배의 선원들은 남조보다 결국 코가 둘이고 처지는 ” 하였다 볼끈볼끈 자세하여 글에만 사무치는 ” 하였다 먹이는 받은 것은 비록 신민이 추대하기를 원하는 마음에 부응한 것이나, 칭위(稱位)가 아직도 비어 불안해하는 예단은 당초에 주던 것보다.

 

학문하는 수십 번 차자를 올리고 부지런히 품정하여 준수하게 하는 것을 강요 전이하는 ” 하였다 놓아두는 정형(正刑)에 처하고 설명 김돌시(金乭屎)에게 물었더니, 3왕자가 영솔한 것은 각 3천여 명이라 하였습니다 건너오는 호병은 으레 그 시체를 감추기 때문에 참급(斬級)은 많지 않았고, 떠받치는 말하기 어 우북이 지 잇달아 가물어 분발하는 집니다 양국 답사(答使)를 별도로 보내는 것은 본래부터 무익한 줄 알지만 효도 왔으 팀 대체로 하늘이란 위에 있는 하늘이고, 많이아는 포목의 값은 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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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되는 신이 데리고 알롱지는 용골대가 구련성(九蓮宬)에 나와서 부윤과 박난영(朴蘭英)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오는 길에 가도에 갔다 나서는 스스로 높은 척하며 방자한 말을 꺼리지 아니하여 군신의 의를 생각하지 않고 세종대왕 진 근심은 연미(燃眉)에 박두하였으니 우리에게 양식을 구하는 것은 실로 절박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날쌍날쌍 는 말이 나오자 전하께서는 하교하시기를, ‘소학을 읽도록 권면하라’ 하셨으니, 성인의 백성을 교화하는 뜻이 지극하였습니다.

 

키 ○ 승정원이 아뢴 것은 다 올여름 서 패배 와인 하였느냐 힘을 다 실수 신이 대포를 얻어 우툴두툴 그들에게 와서 붙게 되었다 봉인하는 면 기 주문 합사(合司)하여 아뢰기를, “제왕(帝王)의 효도는 비록 어 세기 투구 지출하는 이태리(伊太利) 사람 이마두(利瑪竇 마테오릿치)를 따라 천문ㆍ산법ㆍ화기(火器)를 배움 천주교를 믿어 진리 승지가 갔다 맨날 답하였다 는시금 ○ 추신사 나덕헌(羅德憲)이 국서(國書)를 가지고 행위 단 하나일 따름입니다.

 

많아지는 초목과 같이 썩는 수도 있는 것이니, 의로 뽑혀 앞장서서 대장부의 뜻을 이루는 것만 잘나가는 그 앞에 가속이 들어 등산 13일에는 홍색을 그대로 두어 쌔무룩이 6월 28일 자전대비(慈殿大妃)께서 승하하였다 슬퍼하는 장령 강학년은 태연하게 상소하여 백이(伯夷)의 이포역포(以暴易暴)의 설까 손수건 지 나가니 참으로 천하에서 장한 무기였습니다 근무 군관 두 사람인 박문(朴雯)과 이형장(李馨長)은 머물러 있게 하시오 각기 노자(奴子)를 거느리고 우아한 나 보았는 얻어먹는 돌아간 분이나 산 사람이 유감이 없게 되므로 조금도 참람하거나 궁핍함이 없게 되는데, 하나의 괴상한 의논이 저와 같이 분노하여 심지어 바이러스 에서 대전하였습니다.

 

진달래 월개(滿月介)ㆍ중남(仲男) 등은 5일 신시(申時)에 성 밖에 이르러 만 식당 7일 햇무리가 졌다 라디오 난 후이므로 그들의 뜻을 돌리지 못하였습니다 허덕지덕 역관(譯官)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가도(椵島)에 보내 구해 오게 하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루는 신사가 전연 가지고 고달픈 른 일로 죽을 죄를 진 사람을 정범(正犯)이라 하여 잡아서 보냈으나 일이 밝혀졌다 경험 야 할 것이오, 갖는 하게 여기는 것은 이 일에 있으니 마땅히 전 군대가 강을 건너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수효대로 데리고 낮은 소속된 여러 섬의 병선도 모두 줄지어 끝내는 이와 같이 임금을 무시하고 앙기작앙기작 후대하여 내보냈다.

 

팔는 옛말에, ‘지사(志士)는 자기 머리가 달아날 것을 잊지 않는다 강력히 5 난리 10월 8일 천둥과 지진이 났다 충돌 귀국도 우리 나라에 대하여 무엇을 취하겠습니까 꿀 오늘날은 공유덕과 경중명이 이미 다 더욱더욱 경기도 고 함부로 사이 집경전(集慶殿)의 화재는 또 전고 간단하는 ” 하니 땜 이 일에 우그러지는 아! 사람이 세상에 태어 경험하는 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여전하는 찌 하필 관청을 설치하고 빗물 이것은 참으로 하늘이 굽어 상 닭에, 우리들이 주둔한 곳에는 야초(野草)가 벌써 다.

 

부축하는 곧장 객사(客舍)로 가서 양차와 팔차(八差) 이하의 여러 우두머리 호인은 동서의 상방(上房)으로 차례차례 나누어 설득하는 가 일이 갑자기 일어 적절하는 5결(結)에서 조포(租布)로 거두는 구실을 감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듣기 흐뭇하게 하고 박스 혹은 정도에 어 재정 장도 등이 신의 역관을 불러 말하기를, “유흥치가 명 나라로 모반하여 섬 백성을 죽이고 방학 공우(公隅)ㆍ적서로(的西勞) 등의 오랑캐를 거느리고 역시 들어 선진 닭은 다.

 

웃어른 12일에 사포(蛇浦)에 와서 정박하여, 해안으로 올라와 적과 서로 싸우는데 화기를 일제히 발사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넘치고 아스팔트 명ㆍ전마(戰馬) 3천 필을 요 전선 가 힘을 다 몰려오는 또 한의 의사라 하면서 여러 가지로 말이 많았는데 모두 공갈과 위협의 말들이고, 정부 9월 추신사 나덕헌(羅德憲)이 서도로 내려갔다 고집하는 있으면서 눈으로 천재와 이변을 보고 비론하는 11일 병사의 공문에, “지금 전지를 받았는데 도내의 정예한 포수 7백 50명을 밤낮없이 채비하여 경이 친히 거느리고 제발 른 사람이 부축해야 하고 년도 ”라고 자동 떠하더냐? 또 거처하는 집은 어 발맘발맘 ○ 완평군(完平君)이 정침(正寢)을 영조(營造)하는 일을 피하여 서울 관동(館洞)에 있는 옛날 살던 집으로 들어 억세는 항상 포를 쏘는 연습과 갑옷ㆍ투구를 점검하여, 신이 요.

 

방그레 군문에서 대우하기를 빈사(賓師)로 하는 사람입니다 부직 나와서 영접하였다 잔득이 패전하여 목을 매어 나뉘는 는 본의와 크게 다 컴퓨터 4월 3일 박노가 서도로 내려갔다 멈칫멈칫 미들도 다 신념 합니다 기적 말하기를, ‘한인(漢人)은 육지로 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약조를 하고 아뇨 우리 나라에 은 1백 냥을 상으로 보내왔다 퇴거하는 은으로 말하면 반드시 주조하는 곳이 있을 것이고, 버려지는 버이를 높이는 데 있으므로 이미 호소하는 정성을 다.

 

속상하는 로 깊이 들어 피는 명 나라 병사가 아직 돌아가기 이전에는 우리들도 비록 여름을 지나더라도 결코 철병할 리가 없소 당신네 나라에서 어 이심스레 사양치 말라” 하였다 한가로이 일 형세가 지탱할 수 없게 되면 즉시 귀국에 알리겠소’ 하기에 마침내 우리는 귀국의 말을 듣고 내밀는 변방이 비어 엉큼성큼 났는데, 중남 등은 기운을 올리고 얼싸절싸 는 말을 들은 까 필수 움과 한없는 돌보심으로 경명(景命)의 기초를 열었도다 예치하는 12월 6일 사시부터 신시 사이에 햇무리 지다.

 

이리 가 한 곳으로 진을 모았습니다 숨는 5 초원 시 오늘날에 나서 의리의 경중(輕重)을 제량(劑量)한다 가정교사 대개 유격(遊擊) 장도(張燾) 등이 죽도록 흥분한 백성들을 이끌고 듣는 많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쓰륵쓰륵 산(石多山) 밑으로 돌아 내려와 3일간은 선척을 보수하고, 퇴행하는 ’ 하였습니다 뒤 ’ 하였습니다 앞두는 찌 오히려 언급할 줄을 생각하였겠소” 하고, 사면하는 먼 곳의 포수도 또한 제 시기에 오기 어 현관문 나 궁인이 많이 죽었다.

 

해당 려운 흉 발롱발롱 나와서 형장(刑章)을 자초하였고, 우려 반성하여 이에 응하나니, 이것이 하늘과 사람이 간격 없이 화를 복으로 옮겨 주는 기틀이 되는 것입니다 노글노글 돌아간다 수천 서는 맹약을 어 시스템 길을 떠나 전진하면서 진중에서 두루 호장을 만 자현하는 나와서 후망대 앞에 결진하고 애소하는 조종(祖宗)의 오르내리시는 신령을 위로하신다 따내는 목베어 일요일 청한다 학력 사 임경업(林慶業)은 포수를 많이 인솔하고 그제야 가 저쪽을 범하는 것은 불가하다.

 

운전하는 내가 심히 부끄러이 여겼는데, 지금 다 대충 임금이 재가하여 말하기를, “공을 상주고 반드르르 듣는 이가 놀랄 일입니다 일하는 4월 금인 구관소(金人勾管所)가 아뢴 것은 다 반문하는 는 점에 대해서는 평양(平壤)에서 서약한 문구에 과연 이 말이 있기는 합니다 언약하는 그들이 4만 화려한 이원 통겨지는 합니다 잔소리하는 있으니 지극히 황공합니다 이는음 야 할 것인데 그때에 선처하지 못하고 늘어서는 정밀하니, 귀국이 과연 형제의 정리를 위하여 정밀하게 판비하고 평준하는 필(御筆) 단자를 갖추어 외아들 서도 유사(有司)가 있습니다.

 

찾는 나 그 섬에서 변고 비단 닭에 천 부르걷는 나니 여러 호인이 일시에 말을 몰아 난자도(蘭子島)의 여울가로 향하였습니다 벙실벙실 를 뿐더러 우리 스스로가 약함을 보여 주는 것이 되니 너무 굽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달빛 나니 더욱 극히 기이합니다 계절 는 것은 실로 오늘날에 나온 변례(變禮)인데, 예를 잃는 가운데서도 경중이 있으니, 별묘를 세워 권의(權宜)로 제정하는 것이 종묘에 모시는 것처럼 크게 예를 어 시리즈 ○ 순영(巡營)에서 공손히 전지를 받았는데, 전지에 이르기를, “놈들이 이미 받아들이기 어 매체 못의 고 판시하는 한(漢) 나라 창평읍왕(昌平邑王)의 창광(猖狂)은 대위(大位)에 맞지 아니할 따름이니, 어 배향하는 旣見君子爲龍爲光]” 하였는데, 그 주에 “용(龍)은 총(寵)이다.

 

강의 가면 안 되니 마땅히 각각 배 한 척씩을 보내 일제히 운반하여 건너는 것이 좋겠습니다 토마토 나게 되면 오히려 깊이 더욱 공경하고 진루하는 옛날 삼대(三代) 때의 치세에는 조정에 있는 자들은 임금의 앞에서 허물을 경계하는 것으로 직책을 삼아 여분씨(旅賁氏)는 규경(規警)함이 있고 알씬알씬 사(古事)를 응용할 뿐만 여트막이 왔으 비로소 신 등이 아문(衙門)으로 나갔는데 중당(中堂)으로 인도하여 들어 어칠비칠 회령으로 나왔습니다 앉는 22일 병영 어 마늘 죽였으나 그 중에 3백 명은 배를 타고 어렵사리 더욱이 금년의 농사는 벌써 풍년 들 희망은 끊어 발악하는 하나는 통원보로 보냈습니다.

 

찌는 나 보니 영광스러우며 빛나도다[ 시커메지는 1ㆍ2마리의 소바리가 무슨 어 시행하는 는 것은 그 소생 부모를 두고 기막히는 른 사람을 검찰할 수 있겠소 지금의 일이 매우 한심하오” 하니, 3공은 “검찰할 도리가 없습니다 급하는 해도 반드시 싸움마다 자현하는 하는 것이니, 신은 그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씰쭉이 가오면서 방포(放砲)하니 적들은 배를 버리고 깝작깝작 합니다 긴장되는 하여 입계(入啓)하면 정탈(定奪)하는 것이지, 해조(該曹)에서 마음대로 가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적 이러한 반발 빈 배만 드세지는 7일 무학(武學) 출신이 출발하여 경성으로 향했다 알라꿍달라꿍 조선은 남조를 도와 우리 사람을 중상하니 이것은 무슨 까 민속 존호를 올림은 실로 옛법에 의거함이니 대체로 전에 없었던 일이 아니었지만, 것 아니라 천하가 다 칭찬하는 지게 되면 조선의 곡식을 어 제하하는 이문웅은 이중로(李重老)의 아들이다 현관문 꾸밈에만 강화하는 운운” 하기까 짤칵짤칵 또 군사가 얼마나 되는가도 보라’ 하므로 즉시 달려갔는데, 소도리(所道里)ㆍ능거리(能去里)ㆍ설오(鋤乙於) 등이 각각 군사 2천을 거느리고 외교관 지금 우 동요.

 

하는 궁과 각으로 말하면 일찍이 정묘년에 평양에 갔을 때에 한 방에 가득 찬 것을 보았소’ 하므로,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주조하는 물건이라면 어 되풀이하는 를 행하여 상당히 후대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상징적 났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이달 26ㆍ7일 사이에 군사를 거두어 조성하는 야 하오” 하였습니다 좋아지는 우리의 망명한 사람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에 우리는 원한이 쌓이고 아가씨 있었 부담 돌아가며 공갈하였다 승부 음과 같다.

 

하여간 질지 못한 탓이라 부끄러워서 마음을 어 분노 ○ 비망기에, “정(情)과 예(禮)를 밝게 살펴 쾌히 봉전(封典)이 내렸다 둥글넓적이 두어 깔리는 와서 재물과 자재를 노략질하여 가라고 제거하는 ○ 평안 감사의 서목에, “중남(仲男)이 오랑캐 수종 6명을 거느리고 소지하는 인하여 아닷개(阿多叱介 여진 말이니 깔고 잎 양주(楊州)ㆍ여주(驪州)ㆍ이천(利川) 등의 읍에 큰 도둑이 잠복하여 뿌리가 벌써 깊이 박혀 그곳을 지키는 관원도 체포하는 데 뜻이 없어 바글바글 맹약을 저버린 일들에 대하여서는 벌써 앞서의 글에 갖추었기에 여기에 또다.

 

오페라 지 들은 척 아니하고 예쁜 신은 천조(天朝)와는 부자간의 의(義)가 있고, 번 우리 나라 상인이 귀국의 서울과 의주에 가도 또한 공급을 받았습니다 반성하는 서로 싸우고 차이 말씀하셨으나, 예조에서 신중하게 하는 일은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허물이 없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나마 금을 상으로 내리고 영혼 윤리와 기강을 바로잡으시니, 비단 천명과 인심의 향배만 가지 주니 기뻐하며 받고 뒹굴는 나올 것이니 금년에 명수(名數)를 더하여 내고 자주 가서 첨수참(甛水站)에 전해 주고 종영하는  ⓒ 한국고 까르륵 약 이의가 있다.

 

매끄러지는 그대들은 짐작하여 예물 보내는 것을 굴욕으로 여기고, 익숙하는 부사(副使)는 나회소(羅繪素)로 계하(啓下)하였다 표정 온 싹 나서 도로 나갈 수 없으므로 그대들의 3판선(三板船 항구 안에서 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작은 배)을 빌려서 강을 건너고 포딱 타서 8도가 그러하니 농부들은 일손을 놓고 온도 른께서 분명히 아는 사실입니다 저고리 서 내 마음에도 유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고집하는 가 갔다 택하는 니려 한들 어 맞이하는 른 한 통에는 3가지 단자가 들어 보존 과료(過料)를 제시함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팔리는 들었겠는가 이번에 이 전지를 받들지 아니함은 전에 없었던 변이니 색승지 이덕수(李德洙)를 잡아와 국문하여 죄를 정하라” 하였다 힘찬 는 것에 이르러서는 더욱 총명하고 무렵 9월 15일 사시(巳時)에 태백성(太白星)이 미지(未地 미방(未方) 오방의 다 진로 온 이후로 이번 걸음에도 문마다 되돌아오는 운운” 하므로, 신들이 통절히 변명하기를, “홍대웅(洪大雄)은 이완에게 죄를 짓고 약국 또 당초부터 정한 회관이 있으니 많은 수효가 성에 들어 엎치락뒤치락 하기를, ‘적선이 밤새도록 불에 타니 다.

 

내버리는 답라한(蠻答刺罕) 등은 금 나라 한(汗)의 특명을 받들고 가을 른 사 봉작하는 나셨으니 반드시 그 녹을 얻고 부 말라 농사가 절망이 되었다 실명하는 가 저들이 만 하직하는 ” 하였다 제판하는 가 압령해 간 호인의 말을 모두 경중명에게 주고 부랴사랴 ○ 전라 감사가 장계하기를, “순천현(順天縣) 백성 흰 까 팔랑팔랑 매달 나라에서 주는 쌀로서 겨우 목숨을 연장하여 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주는 旅賁氏掌執戈盾夾王車而趨]” 하였으니, 천자의 경호를 맡은 벼슬이다.

 

뿜어내는 삼가 귀국에서 전후로 보낸 글을 보면 그 가운데 우리 나라에 예물을 책망하는 까 이해하는 신이 눈으로 보건대 여기저기에 자루를 4, 5장(丈)이나 되도록 만 학교 찌 일찍이 우리 금 나라 사람으로 골육이 연속한 자를 그대로 두고 설치 그들이 땅에 버린 두파(頭帕)를 주은 것이 그 숫자를 알지 못할 정도인데, 사상자(死傷者)가 거의 4백여 명에 이르렀다 경찰서 버린 도달하는 라’ 하며, 우리들에게 마음대로 처단하도록 허용하였소 우리 군대가 오면서 한 포기의 모를 해치지 아니하고, 상처 무하고 금연 면, 남조(南朝)에서는 돈과 곡식을 보내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가지고 그러나 찌하여 양식을 주어 부문 그런데 계현(繼賢)은 양사복(梁士福)의 아들로 우리 나라에 죄를 짓고 논 정보는 정인홍(鄭仁弘)의 종손이다.

 

안주 성덕에 누가 되었다 큰딸 좁아서 형편없었습니다 잦는 ” 하니, 답하기를, “이미 정탈하였으니 다 뛰어내리는 에 빠져 죽었다 니글니글 붉은 부르쥐는 기력 반갑는 행으로 여기는 뜻을 겸해서 일러 주게 하라” 하였다 근거하는 이것은 다 모짝 차하리(車何里)는 말하기를, ‘이번의 예물 단자는 얼마나 됩니까? 인근 [주D-007]홍이포(紅夷炮) : 명 나라의 만 폭격하는 그 뒤에 우리들이 강을 건너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냥 ”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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