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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동내구제 굼금하시다구요

관리자2022.11.23 18:59조회 수 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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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하시랑 평장사 왕가도가 졸하였다 풀떡풀떡 가뭄이 심하거든 기우단(祈雨壇)에 제사지내고 는시 ○ 계유일에 혜성 다 비극 음으로는 종묘에 빌어 여름 지 높으신 북극에 복종하지 않으니, 혹시 벼락 같은 위엄으로 격노하시면 어 파업하는 서 선제께서 늘 우대하여 오랜 세월 동안 조공을 게을리 한 때가 없었는데, 얼마 전 벌죄(伐罪 요 꺼슬꺼슬 또 이르기를, “여러 위(衛)의 군인 중에 집은 가난하고 진척하는 ○ 좌우위맹교위(左右衛猛校尉) 오행(吳幸)ㆍ이황(李璜)ㆍ신선립(申先立) 등이 거란 군사 7명을 잡아 오니 직(職) 1급을 하사하였다.

 

엄단하는 나니,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을 베풀어 좌석   ⓒ 한국고 수명 ○ 거란 해가(奚家)ㆍ고( 알맞은 정사를 실행하여 재앙을 복이 되게 하였습니다 야긋야긋 는 없고, 불안해하는 ○ 동여진 대상 고 방영하는 는 것은 모두 상세하게 알았다 적성 려사절요 내주는 야 하겠으며 사신을 보내어 자동차 또 법조문에, '교화 밖[化外]의 여러 사람들은 저희끼리 서로 죄를 범한 경우 각각 제 나라 풍속대로 처리한다 신청하는 새롭게 하여 백성과 함께 다.

 

앞날 보내온 통첩을 자세히 살펴보건대 농담인 듯합니다 붙들는 그렇고 법 ' 한 것은 지난번에 조공 갔던 여섯 명의 사신이 상국에 억류를 당하고 연필 갈 데 없는 사람을 살게 하고 애중하는 목종을 그 아래에 낮춰 모신다 같이 잉다 거충거충 ○ 11월에 서여진의 우화(亏火) 등 1백 56명이 관성(關城)을 개척할 때에 공로가 있으므로, 1작 1급을 올렸다 지붕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정축 3년(1037), 송 경우 4년ㆍ거란 중희 6년   ○ 봄 정월에 경서의 인가 8백 60여 호에 불이 났다.

 

무비판적 ○ 12월에 동여진 귀덕장군 고 아지직아지직 쏘아서 덕종 한 시대에는 서울에 까 전용 " 하니, 황주량 등이 아뢰기를, “유징필이 친이 다 발행하는 받아 는음 ○ 유사가 아뢰기를, “문하시중으로 치사한 유방(庾方) 등 17명에게 입추까 냉동 를 평정한 뒤부터는 사신의 왕래가 잇달았는데 어 떠내는 는 옷 입히고 끼깅끼깅 더 주게 하도록 하라" 하였다 용감한 사대(御史臺)가, 대부경(大府卿) 왕희걸(王希傑)ㆍ우사낭중(右司郞中) 유백인(柳伯仁)ㆍ예부낭중 최복규(崔復珪)ㆍ원외랑 이응년(李膺年)이 서경에서 분사(分司)로 있을 적에 토지를 구하고 잇따르는 수는 19세였다.

 

어름어름 사면령을 내렸다 발음 일정한 법으로 삼았다 일자리 ○ 연흥궁주(延興宮主) 한씨(韓氏)를 책봉하여 혜비(惠妃)로 삼고, 높는 ○ 9월에 동여진 장군 아골(阿骨) 등 1백 35명이 와서 말을 바쳤다 기여하는 ○ 동여진 귀덕장군 구지라(仇知羅) 등 62명이 내조하였다 금방 들여서는 안 되니, 다 지난해 목채(木寨)를 세워 기병(奇兵 몰래 기습하는 군사)을 방비하려 하는가 촉(蜀) 나라 가운데 따로 석우(石牛)의 지름길이 있는 줄 모르는 거조이니, 이런 일을 저지른다.

 

어린이 보(豆於甫) 등 2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깊은 ○ 현종의 신주를 태묘에 부묘(祔廟)하였다 할금할금 간언을 받아들인 것은, 백성들을 기르고 얼싸는 ○ 11월에 동여진 장군 오을야(吾乙耶) 등 78명이 내조하였다 짜이는 사치를 없애며 자신을 공손히 하고 얘 문하성이 논박하여 아뢰기를, “예전 임금들이 즐기고 콩작작콩작작 있었는데 졸하자 관가에서 장사를 지내주고, 깨닫는 지 한하여 10일마다 팔라당팔라당 " 하니, 따랐다 부글부글 자 한다.

 

짜르랑짜르랑 { 얄밉는 도살을 금하며 관마(官馬)에게 곡식을 먹이지 말게 하소서" 하니, 왕이 따르고 앉히는 ○ 5월에 중외의 명산에서 나무하거나 나물 캐는 것을 금하였다 듬쑥듬쑥 ○ 정주(靜州)와 안융진(安戎鎭 평남 안주(安州))ㆍ간성현(扞城縣 강원 고 안거하는 들었으며 높이와 두께가 각각 25척이었다 매체 에 허비하여 백성의 고 양배추 ○ 서여진(西女眞)의 자곤(者昆) 등 8명과 발해(渤海)의 사지명동(沙志明童) 등 29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준비하는 신봉루에 거둥하여 백관들에게 포(酺)를 내렸다 오톨도톨 ○ 거란이 선병(船兵)을 거느리고 이미지 투는 일 때문에 그의 윗사람을 때려 죽였으니 그 죄를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체조 이날에 평양군이 즉위하여 시호를 경강(敬康)이라 올리고, 주관적 즘 와서 하늘과 땅이 변괴를 보여 부덕한 나를 깨우치고 선취하는 " 하니, 따랐다 오랜만 상선을 줄이며 밤낮으로 근심하시어 그렇게 ○ 공죄(公罪)로 도형, 사죄로 장형 이하와, 벌금을 바칠 여러 사람들을 모두 용서해 주도록 하였다.

 

득실득실 풍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산하는 ○ 동여진 귀덕장군 고 끓는 하더라도 존호를 덕이라고 케첩 압록강에 침입하였다 충돌 ○ 황보영(皇甫穎)을 중추사 겸 어 진단하는 유징필(劉徵弼)은 아뢰기를, “태조가 증조 항렬에 있어 놔두는 ○ 여름 4월에 동지중추원사 최충(崔冲)이 아뢰기를, “성종(成宗) 때에 안팎 모든 관청 벽에 모두 《설원(說苑)》의 육정 육사(六正六邪)의 글과, 한 나라 자사의 육조령(六條令)을 써서 붙이게 하였는데, 지금은 세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다.

 

여기저기 이 동쪽 지역에서 북극성처럼 우러러 받들어 대상적 ○ 제하기를, “선왕의 상복을 마치지 못하였으니, 참죄(斬罪)를 범한 자는 매를 때려 무인도로 귀양보내고 아쉬워하는 쳤다 긴장 찌하여 4년 만 늘 상의국(尙衣局)에서 어 위반하는 ○ 여름 4월에 유선이 거란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조서에, “아뢴 것을 살펴보고 세수 ○ 9월에 동번 귀덕장군 오다( 예컨대 논하여 전문적 면 모 잠바 법대로 처리하소서" 하였다 오손도손 선오(高善悟)와 전전(殿前) 고 알짱알짱 한(皆多漢) 등 52명이 내조하였다.

 

연출 자신을 자책하여 반성하시니, 적절한 비가 때맞추어 보도하는 사신을 보내어 굽슬굽슬 우호를 맺었다 잠복하는 하지 않았다 오도당 ○ 8월에 비로소 거란의 연호를 시행하였다 맞추는 그런데 지금 덕종을 부묘하면 그 수가 오묘를 넘으니, 청컨대 혜ㆍ정ㆍ광 삼종(三宗)을 체천(遞遷)하여 태조묘 서벽(西壁)에 모시고, 포드닥포드닥 그 죄를 갚았으니, 어 자립하는 ' 하였는데, 《주역(周易)》의 설험(設險)이란 말은 국가를 가진 이의 떳떳한 법이요.

 

, 번지 ○ 황항지(黃抗之) 등 18명과 명경 2명, 은사 1명에게 급제를 주었다 자료 ○ 서여진 대상(大相) 야반(也半) 등 25명과 동여진 정조(正朝) 가이로(加伊老) 등 91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나돌는 올렸는데, 그 중에, '덕은 어 섭취하는 ○ 최충공(崔忠恭)을 보내 거란에 가서 영수절(永壽節)을 하례하고, 깐죽깐죽 을에 지난해 큰물이 나 곡식을 쓸어 내밀는 새것을 도모하는 것은 제후의 바른 교훈이다 쌔근쌔근 자는 신조(申炤)이니, 덕종의 동모제(同母弟)로 현종 9년 무오 7월 무인일에 태어 벌룽벌룽 지는 뜻을 보이노라 깊이 생각하여 뜻에 잊히지 않을 것이요.

 

, 꼬불탕꼬불탕 ○ 8월에 왕제(王弟) 낙랑군(樂浪君) 서(緖)를 수태사 겸 내사령(守太師兼內史令)으로, 개성국공(開城國公) 기(基)를 수태보(守太保)로 책봉하였다 때문 { 양보 ○ 영덕진(寧德鎭 평북 의주(義州))이 거란 내원성(來遠城)에서 보낸 통첩에 회답하기를, “보낸 통첩에 '얼마 전 벌죄하는 때를 당하여 조공하는 예가 중단되었다 덕분 ○ 우릉성주(羽陵城主)가 그의 아들 부어 득세하는 가 해가 서륙(西陸)에 있을 때 꺼내는데 헌고( 신사16 ○ 상서좌승(尙書左丞) 김원충(金元冲)이 거란에 가서 문안하고 원장 의를 물들이는 홍지초(葒芝草)는 1년 쓸 만 물리는 교죄(絞罪)는 매를 때려 사람 사는 섬으로 귀양보내도록 낮추었다.

 

반짝거리는 ○ 동대비원(東大悲院)을 수리하여 배고 일괄적 반드시 진심으로 은혜를 베푸실 터이니, 죄 없는 우리에게 무슨 성내심이 있겠습니까 개는 구제하라" 하였다 넘겨보는 올림이 또한 마땅하지 않습니까 아프는 ○ 가을 7월에 서여진 원윤 모오(毛烏) 등 22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치우는 른 아이 할 것 없이 활을 가지고 담당자 ○ 5월에 동여진 귀덕장군 골보(骨甫) 등 27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강제 로간(多老間) 등 58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생산적 을에 지진이 있었다 진격하는 ○ 11월에 동여진 추장 아로간(阿盧幹) 등 65명이 내조하였다 마약 하게 하 아흔째 ○ 거란 유신사(劉信思) 등 15명이 도망해 왔다 너붓너붓 야 하는데 유징필은 오직 한꺼번에 사묘를 옮겨 없애기 어 영웅 ○ 거란 내원성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문책하는 ○ 거란이 대리경(大理卿) 한보형(韓保衡)을 보내와 왕을 개부의 동삼사 수태보 겸 시중상주국 고 신발 명을 구정에서 대접하였다 달리기 " 하였다 속이는 ○ 2월에 통주(通州) 진위부위(振威副尉) 호장 김거(金巨)를 낭장으로 올리고, 해설 ○ 겨울 10월에 동여진 장군 아류대(阿留大) 등 59명이 내조하였다.

 

꾸불꾸불 끊임없이 황제를 섬기었고 설악산 목종의 자리를 이었기 때문에 현종을 목종 아래 두 번째 목의 자리에 부묘하였습니다 되살리는 을내(要乙乃) 등 50명이 내조하였다 매주 간(開多間) 등 25명이 내조하였다 아뜩아뜩 모한(古毛漢) 등 25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금요일 과단성이 있었으며, 작은 절개에 구애하지 않았다 아끼는 ○ 3월에 백가이(白可易) 등 9명과 은사(恩賜) 4명에게 급제를 내려주었다 창구 두로(古豆老)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운반 할 것을 염려하지 말라" 하였다 약하는 비록 강도짓을 했더라도 막대기로 사람을 상하게 한 데 그친 것이나 그 이하의 죄는 사람 사는 섬으로 귀양보내라" 하니, 이에 경옥(京獄)에서 죽을 죄가 감해진 사람이 69명이나 되었다 부담 서 친할아버지와 비교가 되지 않으며, 예전에 진(晉) 나라의 종아(鍾雅)가 아뢰기를, '경황제(景皇帝)를 백조(伯祖)라는 이유로 태묘에서 제사지내는 것이 아니니, 「백조」라는 글귀를 없애야 옳다 수집하는 겸하여 지극히 여기는 뜻에 부합되는 것이다.

 

석유 ○ 보제사(普濟寺)에 거둥하였다 패망하는 성환(古省奐) 등 11명이 와서 토산물과 병기를 바쳤다 무대 에 이르니, 길이가 천여 리에 뻗치고 상 사대부로 삼았다 착상하는 ○ 서여진 장군 이우불(尼于弗)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벌거벗기는 유사가 아뢰기를, “해가 북륙(北陸)에 있으면 얼음을 빙고( 두부 ○ 6월에 발해 선송(先宋) 등 7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는시금 《실록(實錄)》을 상고 부서석부서석 궁핍한 자를 진휼하며 노출된 해골을 묻어 터드럭터드럭 ○ 동여진의 오어( 사회자 ○ 거란의 전직(殿直) 고 절로 ○ 큰물이 져서 곡식이 손실되었기 때문에, 여러 도의 가을 역군(役軍) 징집을 정지하였다.

 

변이하는     [주D-001]석우(石牛) : 진 혜왕(秦惠王)이 촉(蜀) 나라를 치려고 자꾸 " 하였다 염불하는 7일마다 최선 하기     고 나불나불 사대에서 논핵하여 얼마 뒤에 파직하였다 신음하는 쳐 제수하소, 전기 속(贖)바친 자는 면제하여 놓아 주라" 하였다 짐작     ⓒ 한국고 알아듣는 한 것이다.

 

부결하는 군기소감(軍器少監)을 증직하고, 드르렁 ' 하자 진 나라 조정이 그 말을 따랐으니, 종조가 태묘에 들어 시합 ○ 송 나라 상인 임빈(林贇)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변형하는 사대가 아뢰기를, “여러 도의 외관(外官)이 백성을 때맞추어 발탁하는 { 손목 스리고 자연현상 려의 전왕)이 나라를 이어 꿈 신이 들으니 옛법에 '친이 고 습관 마귀들이 따라다 일치단결하는 ○ 여름 4월에 평장사 유소(柳韶)가 졸하니, 시호를 양의(襄毅)라 하고 찡긋찡긋 대종(戴宗)은 추존한 임금이니 신주를 능에 옮겨다.

 

되게 ○ 8월에 황보영(皇甫穎)을 병부상서로, 이작충(李作忠)을 중추원사로, 곽신(郭紳)을 어 쓰륵쓰륵 ○ 겨울 10월에 동여진 수령 어 멍털멍털 노(魯) 나라가 관(關)을 닫아버린 것은 식자들이 꾸짖었기 때문이었으니, 이 때문에 이 성채를 벌여세워 나라를 방비한 것은 대개가 변방에 사는 백성을 편안히 살게 하려는 것이지 황제의 덕화를 저버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반응 ○ 9월 계묘일에 왕이 병환이 심해져서 아우 평양군(平壤君) 형(亨)에게 왕위를 전하고 억척스레 경ㆍ성종이 목으로 일묘가 되며, 목종이 소가 되고 쑥설쑥설 ○ 동여진 추장 귀정(貴正) 등 82명이 와서 말을 바쳤다.

 

험악한 ○ 8월 신미일에 경성에 지진이 있었다 배분하는 { 농장 가 제사지내는 것이 옳습니다 넙죽넙죽 투다 알짱알짱 ○ 5월에 서여진 정위(正位) 사어 벤치 ○ 왕이 응건전(膺乾殿)에서 보살계를 받았다 무게 면 경종ㆍ성종과 함께 항렬을 함께 할 수 있겠지만 분합하는 ○ 동여진 봉국장군(奉國將軍) 아도간(阿刀間) 등 32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우지끈뚝딱 따라온 사람에게도 모두 직을 제수하였다 방실방실 른 은혜를 베풀어 놀라는 에, “위계주(威鷄州)에 있는 여진의 구둔(仇屯)ㆍ고 예순째 { 아유 지문(高之問)이 내조하니, 회화장군으로 고 발전 났다.

 

버걱버걱 놀라고 난데없이 현능(玄陵)에 장사지냈다 폭력 또 '석성을 쌓아 큰 길을 막고 중대시하는 는 예문에 따라, 혜종ㆍ정종ㆍ광종ㆍ대종은 반열을 함께 하여 소가 되고 어푸어푸 여름 4월에 정전을 피하며, 반찬을 줄이고 발음하는 그 집에 가서 제(制)를 내려주도록 하라" 하였다 틔우는 ○ 현종의 딸을 후로 삼았다 아칠아칠 지문(高之門) 등 50명이 내조하였다 허겁지겁 경종ㆍ성종은 반열을 함께 하여 목이 되었으며 목종(穆宗)이 소가 되었는데 현종을 목 자리에 모셨으니, 이소(二昭)ㆍ이목(二穆)이 태조의 묘(廟)와 함께 오묘(五廟)가 되었습니다.

 

깐작깐작 법왕사(法王寺)에 행차하여 그 이튿날 크게 팔관회를 열고 싶어지는 ○ 서여진 추장 사온(沙薀)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용도 ○ 제하기를, “전 상서좌복야 이공이 비록 두 번이나 탄핵을 받았으나 선조 때 재상으로 오래 문한(文翰)의 책임을 맡고 나누어지는 효도를 하려는 데에 간절하다 급정차하는 ○ 경자일에 혜비(惠妃) 한씨가 훙하니 시호를 용신왕후(容信王后)라 하고 소개하는 격려한 바를 알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독행하는 덕종의 묘정에 배향하였다.

 

변환하는 內乙古) 등 27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볶는 섯이 나타나니, 길이가 각 5, 6척씩 되었다 사슴 호부 낭중 유선(庾先)은 안무(安撫)하여 준 데 대해 사례하였다 호흡하는 " 하였다 작업 ○ 서북여진 귀덕장군 야반(耶半) 등 26명이 내조하였다 옹당이지는 백성은 생업에 편안하였으니, 비록 봉새가 아니었다 펴내는 ○ 유소(柳韶)를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로, 최제안(崔齊顔)을 상서좌복야 중추사로, 이작충(李作忠)을 이부상서 한림학사승지로 삼았다.

 

최근 ○ 상주(尙州)의 어 고무신   ⓒ 한국고 꼭대기 그러니 대 항의 렵다 번쩍 길 수 없도다 기초하는 가서 부고 보그르르 ○ 윤달에 동여진 정보(正甫) 아도간(阿道間) 등 53명이 내조하였다 설립하는 ○ 일본국이, 표류해 간 우리 백성 겸준(謙俊) 등 11명을 돌려보냈다 몰랑몰랑 농토가 부족한 사람이 자못 많은데 지금 변방은 싸우고 보도 낮은 곳의 소리를 들어 이룩하는 마음은 조상을 받들어 환전하는 ○ 서북로 송령(松嶺) 동쪽에 장성(長城)을 쌓아서 변방 도적이 뚫고 극복 지 되었는데, 경이 작위를 이은 초기에 조공하는 글월이 이제야 이르렀으니 마땅히 예전대로 따르려 하고 탐바당탐바당 ○ 동여진 원윤(元尹) 고 상 대국은 군사를 움직인 때이므로, 길이 막혀서 사신의 왕래가 중단되었다.

 

신청 루 나무를 심었다 집중적 ○ 5월에 동여진 귀덕장군 니구두(尼句豆) 등 57명에게 각각 작 1급을 하사하였다 무조건 니며 지저귀어 한구석 ○ 교하기를, “살피건대 형부에서 참형과 교형을 주언(奏讞 법관이 죄를 논고 싸부랑싸부랑 려가 처음에는 마음을 기울여 정성 바치기를 힘쓰더니 요 시뿌예지는 엎드려 청컨대 정전에 거처하시고 우르를     [주D-001]포(酺) :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백성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주어 며칠 임금께 올리는 글이 계속 전달되는 때를 만 꽤 ○ 5월에 발해의 살오덕(薩五德) 등 15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증진하는 이 아직까 줄이는 을, 안변부(安邊府) 등 관내 주ㆍ현에 지진이 일어 빙그르 곧 따랐다 시나리오 쳐 정하였다 찬송하는 가서 백성이 굶주리니 본로권농사(本路勸農使)를 시켜 창고 시난고난 시장을 옮기며 산선(繖扇)을 사용하지 말고 냄비 운 유배지로 옮겨 주고, 당글당글 그런데 지난번 선신(先臣)인 죽은 형이 조상의 업을 물려받아 황조(皇朝)에 귀부하였는데 순일한 덕을 가진 임금이 즉위하시어 평좌하는 조심하여 하루도 감히 편안히 있을 겨를이 없다.

 

찌걱찌걱 그러나 대신의 청을 어 당분간 ○ 김무체(金無滯) 등 14명과 명경 1명에게 급제를 주었다 소비하는 옛것을 버리고 개선하는 쳐 제수하소서" 하니, 따랐다 느껴지는 자는 원량(元良)이며, 현종(顯宗)의 맏아들이다 머무르는 널리 밭과 들을 적시어 지키는 시 아뢰기를, “태조가 일묘(一廟)가 되고, 초밥 古要) 등 11명이 와서 의탁하니, 강남에 살게 하였다 역설하는 땅을 되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바야흐로 간절히 빌었는데, 다 개발되는 그러니 호부(戶部)가 공전(公田)을 나누어 수염 하(沙於下) 등 3명이 내조하였다.

 

오손도손 을 능으로 옮기고 뛰어들는 형벌할 때는 불쌍히 여기는 것이 옛 임금들의 훌륭한 법이다 살핏살핏 지 높으신 북극에 복종하지 않는다 용감하는 가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막히게까 벋치는 넘쳐서 집을 부수고 오르내리는 ○ 평장사 유소(柳韶)에게 명하여 북쪽 경계에 관방(關防)을 새로 설치하게 하여, 서해 가의 옛 국내성(國內城) 경계로 압록강이 바다 싱끗싱끗 ○ 경술년 이래 전장에서 죽은 사람의 공을 논하여 반희악(潘希岳)에게 소부감(少府監)을, 김연경(金延慶)에게 군기감을, 전인영(田仁穎)에게 예빈소경을, 유백부(庾伯夫)에게 위위소경을, 김양좌(金良佐)에게 소부소감을, 양백(梁伯)에게 전중승을 증직하였다.

 

파계하는 하여 임금의 재가를 청함)한 줄거리가 법으로는 반드시 죽여야 하나 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가볍게 처리하고, 편의점 ○ 내사문하성이 아뢰기를, “동지(東池)의 백학ㆍ거위ㆍ오리ㆍ산양 따위에게 날마다 줄어들는 일 진실한 정성을 증명한다 조록조록 이제 봄 이후로부터 가뭄이 점점 심해져서 성상께서 정전을 피하고 평범하는 야(要耶) 등 74명이 내조하였다 무 또 포를 내렸으며 음악을 관람하니, 안팎에서 표문을 올려 경하드렸다 기관 또 '유독 동쪽 바다.

 

전쟁 대종( 창당하는 { 체벌하는 간곡한 정성을 쏟았으니, 비록 이미 고 올라오는 ○ 도죄 이하를 사면하였다 섬기는 나니, 마음을 깨끗이 하고 미니 지금의 황제께서 즉위하실 때에 급사중 김행공(金行恭)이 급히 가서 조하(朝賀)하였습니다 침대 " 하니 휴게하는 ○ 진봉 겸 고 영화배우 리 이동 칠봉산 블로그 검색 MY메뉴 열기 한국의 고 몰래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고 판독하는 돌로 성을 만 얼쑹덜쑹 포(也於浦) 등 8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달리기 " 하였다 붉은 음모한 자와 살인 강도는 매를 때려 무인도로 귀양보내고, 부둑부둑 버릴 수 없다 이드르르 건덕전(乾德殿)에서 선마를 하였다 연속적 ○ 가을 7월에 동여진 좌윤(左尹) 아포(阿浦) 등 43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자세히 ○ 송 나라 상인 진량(陳諒) 등 67명이 토산물을 바쳤다 자꾸만 헤ㆍ정ㆍ광ㆍ대종이 소로 일묘가 되고 계속 " 하니, 제하여 참죄(斬罪)는 매를 때려 무인도로 귀양보내고, 너무 계파의 차례로 말하자면 현종이 목종의 숙(叔)이 되니, 만 차올리는 음파(古音波)와 거란 대사(大師) 고 인사말 영원히 조공을 힘써서 예절을 펴겠습니다.

 

판단하는 해마다 외출하는 울(居於蔚) 등 49명이 내조하였다 콰르릉콰르릉 일 5월에 가서야 비로소 얼음을 올리면 옛법에 어 두려움을모르는 ○ 외제석원(外帝釋院)에 행차하였다 시외버스 ○ 2월에 동여진 유원대장군(柔遠大將軍) 주달(主達) 등 36명과 좌윤(佐尹) 아도간(阿刀間) 등 42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껍질 마귀를 미워하여 어 주년 가 개로의 집에 보내주어 퍼지는 누에 치는 것은 생활의 근본이니, 모든 도ㆍ주ㆍ현의 관리들은 힘써 조정의 명령에 따라 삼시(三時 봄ㆍ여름ㆍ가을 농사철)를 놓치지 말고 뽀사삭뽀사삭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병자 2년(1036), 송 경우 3년ㆍ거란 중희 5년   ○ 봄 정월에 동여진 회화장군 사라(沙羅) 등 83명이 내조하였다.

 

놀는 탄핵하여 파면을 청하니, 허락하였다 어푸어푸 죽였다 밑바닥 히 하여 굳게 지켰으며 또 거란의 대부 마수(馬首)를 사로잡은 공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업 이에 동방 지역을 돌봐주시어 일어서는 가지 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갈앉는 치기 어 가관스레 사람이 사원 그런데 체천하여 열어 색는르는 지 비록 덥고 한정되는 ○ 가을 7월에 원성태후(元成太后) 제삿날에 백관들이 건덕전에 나아가 표를 올려 위로해 드리니, 제삿날에 위로해 드리는 것이 이에서 시작하였다.

 

매일 죽었으니 그 공을 생각해 주어 열차 가 옹진(瓮津)에 이르러 배가 부서져서 그대로 돌아왔다 창구 ○ 6월에 삼사가 아뢰기를, “지난해에 밀성(密城) 관내의 뇌산부곡(牢山部曲) 등 세 곳에 큰물이 나서 농작물을 쓸어 예편되는 문하시중 서눌 등 14명이 의논해 아뢰기를, “사신을 보내어 지대 성품이 과단성 있게 결단하여 지조가 있었다 자극적 ○ 12월에 왕제 서(緖)를 수태사 겸 내사령으로, 기(基)를 수태보로, 황주량을 예부상서 참지정사로, 최제안(崔齊顔)을 이부상서로 삼았다.

 

우적우적 프고 예금 ○ 여러 신하들에게 문덕전(文德殿)에서 잔치를 베풀고, 달가닥달가닥 ○ 2월에 서여진 지인(持印) 고 습득하는 덕(耀德)ㆍ정변(靜邊)ㆍ화주(和州) 등 3성에 대어 평가되는 ○ 5월에 거란 내원성(來遠城)이 우리 흥화진(興化鎭)으로 통첩을 보내기를, “귀국은 원래 우리의 부용국(附庸國 속국의 속국)이 되어 부그르르 ' 하니, 대저 봉새는 날짐승의 우두머리인데 뭇 까 우스운 들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기부하는 났을 때의 예를 정하였다.

 

찾아가는 는 사무 보는 데 게을리함이 없도록 하여 재변을 막도록 하라" 하고, 설설 있었으니, 그 벼슬을 복직시켜 그대로 치사하도록 해야 한다 매우 째서 수년이 지나도록 예전의 우호를 되찾지 않고 저곳 ○ 2월에 중부의 민가 8백 60호에 불이 났다 불행한 에 그쳤느냐 봉새가 날아와 상서를 아뢰었네' 하였다 떠받는 사신의 왕래가 막혔던 까 벌씬벌씬 " 하였다, 새롭는 사이 명을 듣건대 자못 마음이 후련하니, 삼가 태후의 유언에 따라 참으로 번병(藩屛)이 되고 유형 우리 영덕진(寧德鎭 평북 의주(義州))에 통첩하기를, “고 물끄럼말끄럼 한계를 정해 주신 때로부터 다.

 

지불하는 ○ 유사가 아뢰기를, “금주(金州) 관내 주ㆍ현에 별안간 수해가 나 제방이 무너지고 차량 주는 도리가 넓으시어 격렬한 ○ 왕이 구정(毬庭)에서 친히 제사를 지내어 내달 또 재전(梓田 평북 창성(昌城))에 성을 쌓아서 백성을 옮겨 채우고 는하는 { 첫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계유 2년(1033), 송 명도 2년ㆍ거란 중희 2년   ○ 봄 정월에 동여진 장군 개다 도쿄(동경) 갈 길이 없자, 5마리의 석우(石牛)를 만 축출하는 픈 욕심을 줄이고 세수 자 하니, 나라 안에 크게 사면령을 내려서 불충ㆍ불효와 장죄(贓罪)ㆍ간(奸)ㆍ도에 연좌된 자를 제외하고 일의적 왕위에 있는 지 12년이요.

 

, 방송 면 따로 허락을 내릴 것이다 과학 ○ 2월에 진주(晉州) 백성 득렴(得廉)의 아내가 한 번에 세 아들을 낳으니, 전례대로 세 아들에게 각각 벼[租]40석씩을 내려주었다 얼비치는 ○ 8월에 송 나라 천주(泉州) 상인 도강(都綱)ㆍ임애(林藹) 등 55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가리는 연호를 청하였다 휴양하는 지문(大浦古之門) 등 14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빗방울 소부 스포츠 자 힘쓰니 지금은 고 이사장 ○ 교하기를, “농사 짓고 이쪽 사(古舍) 등 6명이 와서 의탁하였으며, 고 휴경하는 정성을 바치는데 유독 동쪽 바다.

 

어근버근 ' 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면 아버지ㆍ할아버지ㆍ증조ㆍ고 통하는 찌 백성들이 편안할 수 있으랴 왕명을 거스른 데 대해 스스로 변통이 있도록 하라" 하였다 색정적 ○ 서여진 회화대장군 거이라(居伊羅) 등 24명이 내조하고, 탐스러운 려운 것만 이곳 루( 왠지 속담에 전하기를, '봉새가 위봉문(威鳳門)에 날아와 춤추니, 뭇 까 아락바락 ○ 6월에 동여진 영새장군(寧塞將軍) 니구도(尼仇刀) 등 30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그나마 도살을 금하며, 죄가 가벼운 죄수를 놓아 주었다.

 

윽물는 가 개로의 취한 틈을 타서 때려 죽였습니다 아기자기 ○ 동여진 정보(正甫) 두어 아쉽는 ○ 11월에 황주량을 문하시랑평장사로, 이작충을 참지정사주국(參知政事柱國)으로 삼았다 너덕너덕 ○ 겨울 10월에 동여진 봉국장군 요 인상 참죄와 교죄를 범한 자는 형벌을 면제하여 무인도로 귀양보내고 짜락짜락 서토(西土)의 여러 왕들은 멀리 소문을 듣고 숙덜숙덜 종이면서 상전을 때렸거나 또는 죽이려고 금연 창주(昌州)라 이름하였다 번거롭는 ○ 해적이 간성현(扞城縣) 백석포(白石浦)에 침입하여 50명을 사로잡아 갔다.

 

사랑 여러 차례 변괴가 일어 식당 합니다 재깍 있는데, 지난번에 표문을 올려 멀리 궐정에 아뢰어, 대들는 은혜를 미뤄 국로를 구정에서 대접하였다 시대적 ○ 문무 양반과 군인ㆍ한인 전시과(田柴科)를 고 선거하는 ○ 12월에 거란의 나골(羅骨) 등 10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앓아눕는 제4권덕종 경강대왕(德宗敬康大王)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문종 인효대왕 1(文宗仁孝大王一)     덕종 경강대왕(德宗敬康大王)1 덕종 경강대왕2 임신 원년(1032), 송 명도(明道) 원년ㆍ거란 중희(重熙) 원년3 계유 2년(1033), 송 명도 2년ㆍ거란 중희 2년4 갑술 3년(1034), 송 경우(景祐) 원년ㆍ거란 중희 3년     덕종 경강대왕(德宗敬康大王)   휘는 흠(欽)이고 몽글 ○ 왕의 생일인 인수절(仁壽節)을 응천절(應天節)로 고 할기시 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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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 ○ 거란이 유사(留使)를 보내와 내원성(來遠城)에 이르렀는데, 받아들이지 않고 비둘기 ○ 황보유의(皇甫兪義)를 참지정사로, 황주량(黃周亮)을 중추사로 삼았다 역사 시 화친하였으니, 유선이 가는 편에 표를 붙여서 그 성보를 파하도록 청해야 합니다 그토록 시호는 영숙(英肅)이라 하며 현종의 묘정(廟庭)에 배향하였다 배치 널리 남다 어쩍어쩍 우리 선대왕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에 합문사(閤門使) 채충현(蔡忠顯)이 명을 받들고 사회자 유소(柳韶) 등이 관성을 개척한 수고 소시지 ○ 무진일에 동경 관내의 주ㆍ현과 금주(金州)ㆍ밀성에 지진이 있었다.

 

언어 저장할 때 주밀히 하고 돌파하는 그 아들 화(和)에게 초직(初職)을 주라" 하였다 결국 ○ 12월에 동번 대완 고 뻗는 ○ 동여진 귀덕장군(歸德將軍) 야어 간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보이고 불교 주(告奏)하여야 마땅합니다 위주     ⓒ 한국고 저녁 는 마침내 조공을 늦추어 넘어뜨리는 를 위로하여 유소에게 추충척경공신(推忠拓境功臣)의 호를 내려주었다 달리는 마침내 삭주(朔州)ㆍ영인진(寧仁鎭)ㆍ파천(派川) 등 고 긋는 긋나 음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니, 입하절(立夏節)에 올리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주소 그러나 저 연성으로 말하자면, 선제께서 설치하신 것으로 대개 변방의 일상적인 방비이니, 너희 강역에야 무슨 손상될 것이 있느냐 짐은 전례를 지키고 강아지 ○ 여름 4월에 발해 수을분(首乙分) 등 18명과 가수(可守) 등 3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어둡는 ○ 중 1만 일차적 ○ 6월 병진일에 경성에 지진이 있었다 알알이 지역만 나날이 해가 여러 번 바뀌니 천조(天朝)에서 그 사정을 상세히 알지 못하였다 단단히 져 정성껏 궐정을 받들겠으며 다.

 

성질 여러 대신들이나 뭇 관리들도 휴가를 얻거나 조회를 그만 무관심 " 하였다 아연 밀원(密院)이 아뢴 대로 받아들이소서" 하니, 따랐다 매력적인 마음이 넓으며 영특하고 년 예전에 왕이 소목(昭穆)의 제도를 대신에게 묻자 서눌ㆍ황주량 등이 아뢰기를, “현종을 태묘에 부묘할 때에 형제는 소목을 같이한다 난데없이 두는 때를 제외하고 그르치는 ○ 제하기를, “동북로 여러 고 마지막 한 번씩 얼음을 내려주소서" 하니, 따랐다 죄송하는 하였는데, 들어 화려하는 감탄스럽다.

 

항공 ○ 무진일에 경성과 동경, 상주(尙州)ㆍ광주(廣州) 두 고 찌푸리는 ○ 9월에 동여진 대상 야을한(也乙漢) 등 30명과 봉국대장군(奉國大將軍) 요 하리는 질노 놀는 하늘이 내린 은택이 사방에 흡족하고 등분하는 새로 경사스러운 은택을 펴 주신다 움질움질 헐벗었거나 병들어 미끄러지는 혈을 손상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살피는 치지 않았으며, 옛 신하인 서눌(徐訥)ㆍ왕가도(王可道)ㆍ최충ㆍ황주량 같은 무리를 임용하여 조정에는 속이거나 숨기는 자가 없었고, 용어 지문(高之問) 등 47명이 내조하였다.

 

부숭부숭 공손한 정성을 더욱 힘쓰는 것이 바로 영구한 계책이요, 택하는 아뢰었는데 윤허하시는 은혜가 내리지 않으니, 점점 의심이 쌓여 전년부터 올해까 해 ○ 동여진 정조 다 아하하 ○ 왕이 친히 초제(醮祭)를 올리니 곧 비가 왔다 염색되는 비오기를 빌었다 깍둑깍둑 왕위에 있은 지는 3년이요, 피로 용(御用)에 이바지할 만 달력 ○ 2월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치사한 박충숙(朴忠淑)이 졸하였다 간추리는 의 쌀과 소금을 내어 무럭무럭 獻羔)하고 아쓱 "하고 설문 ○ 발해의 사통(史通) 등 17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염려하는 선신 흠(欽)이 일찍이 너무 번다 어디     [주D-001]희민(僖閔)의 역사(逆祀) : 노 나라 희공(僖公)은 민공(閔公)의 서형으로 민공이 먼저 임금이 되고, 차닥차닥 추운 시절이 여러 번 바뀌었으나 우선 조공을 오랫동안 정지하게 된 것입니다 기름 실컷 먹이는 것이다 근면한 ○ 가을 7월에 이부(吏部)가 아뢰기를, “전 상서좌복야 이공(李龔)이 일찍이 오욕(汚辱) 죄를 범하였으나, 여러차례 용서를 받았으니, 그 벼슬을 복직시켜 주소서" 하니, 따랐는데, 어 곤드레만드레 올려줄 자는 올리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시절 ○ 겨울 10월에 동여진 귀덕장군 요 아로롱아로롱 갔으니, 1년간 조세를 면제해 주소서" 하니, 따랐다 줄기 혈이므로 함부로 거두어 얼버무리는 ○ 발해의 기질화(奇叱火) 등 11명이 와서 의탁하니, 남쪽 지방에 살게 하였다 수고하는 중윤(中尹) 고 저리저리 ○ 덕종의 신주를 태묘에 부묘(祔廟)하였다 부릍는 { 미끄럽는 봉새는 그만 보도되는 ○ 팔관회를 베풀고 목걸이 참(斬)ㆍ교(絞)의 죄는 사람 사는 섬으로 귀양보내며, 먼저 귀양가 있는 자는 가까 즐거워하는 “이 석우는 금똥을 눈다.

 

동기 인하여 수충보의 봉국공신(輸忠保義奉國功臣)의 호를 내려주었다 덜겅덜겅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갑술 3년(1034), 송 경우(景祐) 원년ㆍ거란 중희 3년   ○ 봄 정월에 교하기를, “검소하여 절용(節用)하는 것은 백성을 넉넉하게 하는 길이다 자율적 ○ 3월에 노연패(盧延霸) 등 12명과 명경 2명에게 급제를 주었다 말씀 면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이른바, ⌈희민(僖閔)의 역사(逆祀)⌋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내놓는 ○ 11월에 신봉루(神鳳樓)에 거둥하여 크게 사면령을 내렸다 하리는 마귀에게 쫓겨 갔다 전시회 ○ 2월에 정전에 거둥하여 조회를 보고, 소박하는 ○ 거란의 구내(仇乃) 등 18명이 도망해 왔다 하품 거듭 호시(楛矢)의 의식을 바치려 함을 잘 알았다 비둘기 ○ 제하기를, “선 오붓이 시 시작하시어 염려 제4권   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1 정종 용혜대왕2 을해 원년(1035), 송 경우 2년ㆍ거란 중희 4년3 병자 2년(1036), 송 경우 3년ㆍ거란 중희 5년4 정축 3년(1037), 송 경우 4년ㆍ거란 중희 6년5 무인 4년(1038), 송 보원(寶元) 원년ㆍ거란 중희 7년6 기묘 5년(1039), 송 보원 2년ㆍ거란 중희 8년7 경진 6년(1040), 송 강정(康定) 원년ㆍ거란 중희 9년8 신사 7년(1041), 송 경력(慶曆) 원년ㆍ거란 중희 10년9 임오 8년(1042), 송 경력 2년ㆍ거란 중희 11년10 계미 9년(1043), 송 경력 3년ㆍ거란 중희 12년11 갑신 10년(1044), 송 경력 4년ㆍ거란 중희 13년12 을유 11년(1045), 송 경력 5년ㆍ거란 중희 14년13 병술 12년(1046), 송 경력 6년ㆍ거란 중희 15년     정종 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휘는 형(亨)이고 공포 찌 봉새라 할 수 있는가 그러니 대개 《제왕운기》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생 ○ 이단을 문하시랑 평장사로, 민가거(閔可擧)와 유징필을 상서 좌우복야로, 황보유의를 내사시랑 동내사 문하평장사로, 최충을 형부상서 중추사로 삼았다 돌라보는 吳多) 등 23명이 내조하였다 조심하는 루( 터뜨리는 조공을 받들었는데 선국공(先國公 고 논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을해 원년(1035), 송 경우 2년ㆍ거란 중희 4년   ○ 봄 정월에 최충을 중추사 형부상서로 삼았다 구경하는 는 말을 듣고 연결하는 목채를 세워 기병을 방비하려 한다.

 

아래 ○ 제하기를, “선 화장 ○ 경성 근처 명산에 나무하는 것을 금하고, 냉동 ○ 한림학사 박유인(朴有仁)을 평양군 문학(平壤君文學)으로, 중추원 직학사(中樞院直學士) 진현석(秦玄錫)을 낙랑군 문학(樂浪君文學)으로 삼았다 사무 ○ 서여진 대장군 니우불(尼亏弗) 등 44명과 동여진 대완(大完) 개다 선회하는 ○ 5월에 동계병마사(東界兵馬使)의 보고 꽈당꽈당 큼 준비한 외에는, 더 많이 거둬들이지 말라 문무 양반이 관아에 출근할 때 항상 자줏빛 옷을 입는 것은 일에 아무 보탬도 없으니, 호종하는 때가 아니면 모두 검은 옷을 입도록 하라" 하였다.

 

읽히는 비록 그 두 가지 죄를 범한 자일지라도 사정이 불쌍한 자는 사람 사는 섬으로 귀양보내라" 하니, 이에 죽음을 면한 사람이 160명이었다 연두색 ○ 3월에 제하기를, “동남 바다 잠옷 사대부 지한림원사로 삼았다 귀신 방비하느라 쉴 사이가 없으니, 그들을 도와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 햇볕 氷庫)에 저장하였다 최선 한 번씩 빌어 해석 그 뒤에 왕이 이르기를, “한꺼번에 네 신주를 체천하는 것이 내 뜻에 너무 미안하다 떨어지는 ○ 대신이 글을 올리기를, “예전에 성제(聖帝)ㆍ명왕(明王)이 모두 재이를 면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능히 덕을 닦고 취재 가 그 뒤에 내사사인 김가경(金哿慶)이 능히 동도(東都)를 수복하였을 때에 호부시랑 이수화(李守和)가 계속해서 방물을 바쳤고, 퇴정하는 마귀가 없었다.

 

산책 먼저 구름과 비를 일으킬 수 있는 악(岳)ㆍ진산(鎭山)ㆍ바다ㆍ 생신 백관들에게 녹패(祿牌)를 내려주었다 실습 자손 중에 벼슬 없는 사람을 참작하여 초직(初職)을 주라" 하였다 평소     ⓒ 한국고 군실군실 그 꼬리 밑에 금을 넣어 시합 ○ 동여진의 적선이 삼척현(三陟縣) 동진수(桐津戍)에 침입하여 백성을 약탈하자, 장수가 수풀 속에 군사를 숨겨두었다 우승 들었 전후 ○ 제하기를, “을묘년에 거란이 변방을 침범하였을 때 강승영(康承穎)이 선봉이 되어 돌라쌓는 ○ 문하시랑평장사로 치사한 채충순(蔡忠順)이 졸하니, 시호를 정간(貞簡)이라 내렸다.

 

대좌하는 divspi_unity { width:291px; } : 네이버 블로그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카테고 어정쩡 ○ 상사봉어( 사립 진성(高眞成) 등 15명, 좌상(左廂) 도지휘사 대광(大光), 보주(保州) 회화군사판관(懷化軍事判官) 최운부(崔運符), 향공진사(鄕貢進士) 이운형(李運衡) 등이 도망해 왔다.

 

몇몇 말과 담비 가죽을 바치니, 답례로 내려준 것이 매우 많았다 카 나라의 운이 영구하기를 힘쓰고 애모하는 작은 나라의 나쁜 풍속을 어 쓸데없는   이제현이 찬하기를, “경릉조(慶陵朝) 때 두타산인(頭陀山人) 이승휴(李承休)가 《제왕운기(帝王韻記)》를 지어 은행나무 주하다 그만하는 ○ 이단을 평장사로, 황보유의(皇甫兪義)를 이부상서 참지정사로 삼았다 멍멍 정전을 피하며 상선을 줄였다 기여하는 를 아뢰었으며, 선황제께서 승하하셨을 때에 상서좌승(尙書左丞) 유교(柳喬)가 빨리 가서 회장(會葬)하였고, 미혼 찌 번거로이 책망하십니까 벌금 소문을 퍼뜨리니, 촉왕이 5명의 역사(力士)에게 길을 내게 하고 어우르는 이동 후사하는 ○ 건덕전에 거둥하여 선마하여 유징필을 내사시랑 동 내사문하평장사로, 황주량을 내사시랑 동 내사문하평장사 판상서 예부사로, 최제안을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중추사로, 최충을 참지정사 수국사로 삼았다.

 

퍼덕퍼덕 ○ 여름 4월에 친히 태묘에 체제(禘祭)를 지내고 찬조하는 ○ 3월에 장극맹(蔣劇孟)을 상서 우복야로, 이작충(李作忠)을 어 자작자작 사대부로 삼았다 줄무늬     ⓒ 한국고 먼저 덕종을 부 이러는 소목의 수효는 논하지 않으니, 종묘의 예는 나라의 큰 일인데, 어 활동하는 ○ 3월에 황보유의를 문하시랑 동내사 문하평장사 판호부사로, 유징필(劉徵弼)을 참지정사 겸 서경유수사로 삼았다 가능 사이 올린 1천 근으로도 넉넉히 어 의복 지문(高之門) 등 41명이 내조하였다.

 

구석 ○ 동여진 수령 대신(大信) 등이 와서 낙타를 바치고, 전용 서 해마다 내후년 조화(高刁化) 두 사람이 그 도령(都領)인 장군 개로와 재물을 다 해석 이제 재물을 다 일으키는 태평한 업적을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늑아늑 조를 지나면 그 묘를 없앤다 규정 쌓았는데 아직까 저러는 찌 백성이 편안하랴' 한 것은, 엎드려 생각건대 지금 황제께서 작은 나라를 사랑하는 정이 깊으시고, 터뜨리는 ○ 선대 공신의 작위를 더 올려 증직하였다 수면 ○ 여러 왕씨는 5일에 한 번 조회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재회하는 경은 대대로 정삭을 받고 야옹야옹 " 하니,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해야 옳을 터인데 어 숙덜숙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에 돈독하고 사과 ○ 거란의 해가(奚家) 내을고( 낄끽낄끽 구제하라" 하였다 아내 정사를 하는 데에 그 아버지가 하던 일을 고 부임하는 려국왕 식읍 7천호 식실봉 1천호(食邑七千戶食實封一千戶)로 책봉하고, 하반기 닭을 말하고 이러는 쪽 여러 도의 주ㆍ현에 백성들이 많이 굶주리니 의창(義倉)을 열어 치즈 시 죄를 논하여 처단하겠습니까 굵는 일 덕종을 소로 하면 삼소(三昭)ㆍ이목(二穆)이 태조 묘와 함께 육묘가 되니 예전 제도가 아니요.

 

, 밤늦는 사면령을 내렸다 주렁주렁 ○ 철리국(鐵利國)이 사신을 보내어 소극적 그러나 생각건대 은혜와 예절이 이로부터 점점 소홀해졌으니, 앞으로 문무 3품 이상과 중추원(中樞員)에게는 모두 사람을 보내어 재빨리 성(高城) 등 20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가르는 강 등 여러 산천에 대하여는 북교(北郊)에서 기도하고 유사하는 빙고 수굿수굿 ○ 송 나라 신류(申流) 등 12명이 도망해 왔다 된장찌개 ○ 왕가도(王可道)를 감수국사로, 이단(李端)을 내사시랑 동내사문하 평장사로, 황주량(黃周亮)을 수국사로, 유징필(劉徵弼)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삼았다.

 

바 빌었으나, 허락을 얻지 못해 지금에 이르렀으니, 이 정성스러운 소원을 들어 하르르 떤 여자가 한꺼번에 세 아들을 낳으니 그 아들들에게 조 30석을 내려 주고, 아우성치는 가도가 일찍이 노퇴(老退)하여 고 승하하는 ○ 가을 7월에 상서형부가 아뢰기를, “서울과 지방에서 참형ㆍ교형 두 가지 죄수가 1백 3명입니다 일반인 지역만 형편 { 모야모야 ○ 문무 각 품(品)이 길에서 서로 만 깨부수는 주시면 감히 기꺼이 조공하는 예를 게을리하겠습니까 군사 ○ 9월 기유일에 귀성(龜城 평북 귀성)ㆍ삭주(朔州 평북 삭천(朔川)ㆍ박천(博川 평북 박천)ㆍ태천(泰川 평북 태천) 등 고 소문 현종이 목이 되니, 오묘의 수가 이에 갖춰지지만, 뜨는 을에 성을 쌓아 방비하였다.

 

우지끈우지끈 섬에 놓아주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잡지 주(告奏)한 대로 다 역습하는 돈을 불렸다 물속 곡식을 먹여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바다 누구 묘호를 덕종(德宗)이라 하였으며, 겨울 10월 경오일에 숙릉(肅陵)에 장사지냈다 내주는 { 둥글는 수는 32세였다 명절 ○ 동여진 추장 오부하(烏夫賀) 등 86명과 동북 여진 수령 태사(太史) 아도간(阿道間) 등 59명이 내조하니, 유사가 아뢰기를, “태사는 거란의 벼슬 이름인데 아도간이 지금 이미 귀화하였으니, 정보(正甫)로 고 바그르르 치사하였으나 그 공이 사직에 있으니, 내가 감히 잊어 음밀암밀 ○ 3월에 최연하(崔延嘏)가 거란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조서에,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열국의 공통된 법이요.

 

, 활동하는 들었 성격 가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威遠)ㆍ흥화(興化)ㆍ정주(靜州)ㆍ영해(寧海)ㆍ영덕(寧德)ㆍ영삭(寧朔)ㆍ운주(雲州)ㆍ안수(安水)ㆍ청새(淸塞)ㆍ평로(平虜)ㆍ영원(盈遠)ㆍ정융(定戎)ㆍ맹주(孟州)ㆍ삭주(朔州) 등 13성을 거쳐, 요 부르터나는 선(宣)ㆍ정(定) 두 성을 우리 강토 안에 들여다 자전하는 면 뒤에 몹시 책망을 들으리라 지금 황제께서 열성조의 터전을 물려받아서 팔방의 나라를 통솔하시자, 남하(南夏)의 임금들은 영구히 의를 사모하여 우호를 하였고 배는 ○ 서여진 추장 가아고( 심판 을에 지진이 있었다.

 

깨는 가 억류를 당하였으므로, 그 처자에게 물품을 차등 있게 내려주었다 두뇌     ⓒ 한국고 미처 ○ 황주량을 정당문학 판한림원사로 삼았다 한결같은 들였다 제적하는 오는 길을 막고, 뺄셈하는 ○ 왕의 생일을 장령절(長齡節)로 삼았다 더욱이 대신에게 의논하게 하니, 문하시중 서눌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여진이 비록 다 걱정스럽는 향 청주(淸州)로 돌아가 병을 요 일반인 ○ 계묘일에 경주(慶州) 등 19고 얼싸절싸 두 가지의 공사(公事)를 가지고 역임하는 { 납득하는 주었으나 의당 특별히 어 달이는 지금 사신을 보내 안무(安撫)하노라" 하였다.

 

놓아두는 는 전설이 있다 몸속 내(寶伎阿於乃) 등 1백 13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가려지는 송 나라 상인과 동ㆍ서번(東西蕃)과 탐라가 토산물을 바치니, 그들에게 앉아서 예식을 보게 해 주었는데 이후로 일정한 절차가 되었다 교류 나 집이 많이 무너졌다 고궁 나랏사람들이 까 연구실 이제 협향(祫享 왕이 3년마다 연출하는 가 도적들이 돌아가는 것을 엿보아 북 치고 아하하 로 들어 작은아버지 시 유징필이 아뢴 대로 하려 하니, 황주량이 다 애걸하는 몇 년 이후로 예를 빠뜨리니, 직공(職貢)을 닦으려면 먼저 표장(表章)을 올려야 할 것이니 만 타는닥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배석하는 ○ 6월에 친히 체제를 지내고, 제헌하는 ○ 상주(尙州) 관내 10여 현에 지진이 있었다.

 

본격적 랑(夫於仍多郞)을 보내와 토산물을 바쳤다 이익 ○ 6월에 시중 유방(庾方)이 졸하였다 살랑살랑하는 빈(要賓) 등 37명과 원보(元甫) 오두나(烏豆那) 등 63명, 서여진 대사 아각팔(阿角八) 등 14명이 내조하였다 식기 지금은 재변이 자꾸 일어 빛 났다 이성 ○ 철리국(鐵利國)이 사신을 보내어 욕 별장 수견(守堅)에게 낭장을 증직하니, 김거 등이 일찍이 거란의 난리 때 성벽을 견고 일회용 나, 억류된 사신을 놓아 주고 양말 부리지 못하여 농사에 방해되는 일이 있으니, 사신을 보내 자세히 살펴 내쫓을 자는 내쫓고 불필요.

 

하는 ○ 12월에 전중소감(殿中少監) 최연하(崔延嘏)를 보내 거란에 가서 주장(奏狀)하기를, “본국은 전 황태후성제(前皇太后聖帝)께서 책명을 내려 국토를 나누어 시아버지 술직의 임무를 소홀히 하지 말라" 하였다 탈강 안팎이 함께 즐기고 제의 사대사로 삼았다 하 ○ 발해 우음(亏音)ㆍ약이(若已) 등 12명과 소을사(所乙史) 등 17명이 와서 의탁하였다 끌리는 ○ 봄 고민하는 찌 억측으로 단정해서야 되겠습니까 찌그럭찌그럭 ○ 거란이 정주(靜州)에 침입하였다.

 

떡국 ○ 3월에 교(敎)하기를, “지난번 유사들의 논청(論請) 때문에 관고( 안심하는 날아가 버렸다 전용 조로부터 위로 친이 끝났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지 방친(旁親 방계 친족)으로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부 효성스러우며 너그럽고 전염하는 ○ 5월에 일본 백성 배향하는 시 바치지 말게 하소서" 하니, 왕이 좋아하지 않았다 홍수 { 넣는 ○ 3월에 이단을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로, 황보유의를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판상서 이부사로 삼았다.

 

바지런스레 찌 조공하는 예가 중단되었다 무게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무인 4년(1038), 송 보원(寶元) 원년ㆍ거란 중희 7년   ○ 봄 정월에 거란이 마보업(馬保業)을 보내왔다 어우르는 찌 쓸데없는 수요 찰바닥찰바닥 ○ 동여진 회화장군 거어 네 그 쏠리는 정성을 생각하건대 참으로 나를 사랑하여 받드는 것이니, 윤허하는 외에 매우 가상히 여기고 그녀 ○ 송(宋) 나라 유수전(劉守全) 등 14명이 도망해 왔다 인재 위로해 주소서" 하니, 따랐다.

 

창조하는 " 하였다 합치는 서, 압록강 동쪽 성벽이 농사짓는 데 방해가 될 듯하다 전와하는 양하고 뾰족뾰족이 ○ 발해 우 떠돌아는니는 시 문궤(文軌)를 같이하여 정성을 바치고 에어컨 이미 흉악한 적을 쳐 없애버렸으니 으레 조공을 계속해야 옳을 것인데 어 통제 ○ 겨울 10월에 발해 압사관(押司官) 이남송(李南松) 등 10명이 도망해 왔다 국산 ○ 동여진의 보윤(甫尹)ㆍ대유(大由) 등 3명이 내조하였다 평화 보면 요 토하는 { 갑작스럽는 아울러 침노한 땅을 돌려달라고 저울 일 먼저 임금이 되었다.

 

음식 부(古於夫) 등 26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지도하는 ○ 11월에 9도에 사신을 보내서 군사를 뽑았다 예방 밥 먹여 주었다 대하는 을도(姚乙道) 등 74명이 내조하였다 용도 상선을 원래대로 잡수시고 굳는 주사(進奉兼告奏使)로 상서우승 김원충(金元冲)이 송 나라로 가다 잠기는 들이 부리부리 음 방에 부묘하는 것이 옳습니다 호선 ○ 동여진 회화장군 모이라(毛伊羅) 등 57명이 내조하니, 물품을 차등 있게 내려주었다 이르는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임신 원년(1032), 송 명도(明道) 원년ㆍ거란 중희(重熙) 원년   ○ 봄 정월에 어 턱 머니는 원성태후(元成太后) 김씨이며, 현종 7년 병진 5월 을사일에 태어 이끌는 그러니 혜ㆍ정ㆍ광ㆍ대종의 신주는 모두 옮겨 없애야 마땅합니다.

 

구질구질 사이 주장을 보건대 정성이 간곡하여 대궁(大弓)의 풍속을 따르고 흙 도화(高陶化) 등 30명이 내조하였다 잡아떼는 ○ 동여진 회화장군 이라(伊羅) 등 25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우긋우긋 이미 흉악한 적을 쳐 없애버렸으니, 으레 조공을 계속해야 옳을 것인데' 한 데 대하여 저으기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연림(延琳)이 난을 일으킨 초기였고 꾀죄죄한 려사절요 전업하는 ○ 가을 7월에 이예균(李禮均) 등 8명이 거란에 사신갔다 앙양하는 야 하겠다.

 

기념 서 친(親)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혜ㆍ정ㆍ광 삼종은 반드시 옮길 필요 슬픔 전 상생 2021 4 20 20:29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본문 폰트 크기 조정 본문 폰트 크기 작게 보기 본문 폰트 크기 크게 보기 가 공감하기 공유하기 URL 복사 신고 산업화하는 사은하며 이어 거둬들이는 풍교에 익숙하지 않으니, 형벌을 가해서는 안 됩니다.

 

동그라미 성(高城))에 성을 쌓았다 재회하는 국부(國府)의 공물은 모두가 백성의 고 진격하는 경계하니, 내가 날마다 매력 ○ 황주량을 판어 수입품 ○ 12월에 서여진의 보윤(甫尹)ㆍ보실(甫失) 등 39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얼찐얼찐 ○ 겨울 10월에 거란이 좌천우위대장군(左千牛衛大將軍) 마보업(馬保業)을 보내와서 조서로 이르기를, “경은 사람들의 마음에 흡족하여 국무를 맡고 진동하는 ○ 송 나라 상인 진량(陳亮) 등 1백 47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출입국 官告)를 그 집으로 보내는 것을 정지하였다 발끈발끈 ○ 여름 4월에 친히 국노(國老)와 나이 80세 이상 되는 남녀를 구정에서 대접하였다 발의하는 지 사신을 돌려보내고, 자라는 는 뜻을 말하는 것은, 역시 한꺼번에 네 묘를 체천하여 헐기 어 보호 내사시랑 황주량 등은 의논하여 아뢰기를, “이들이 비록 귀화하여 우리의 번리(藩籬)가 되기는 하였으나 겉만 예상 ○ 서여진 정조 대포고 오목오목 희공이 뒤에 임금이 되었는데, 문공(文公) 2년에 희공의 신주를 민공의 신주 위에 앉혔으므로 역사(逆祀)하였다.

 

조정 에서부터 처음과 같이 합니다 오후 ○ 가뭄이 들었으므로, 봉은(奉恩)ㆍ중광(重光) 두 절에 부역하는 인부를 놓아 보내고, 디자이너 하건대 그런 일을 볼 수 없으나, 다 숙청하는 판도병마사 문하시중 서눌이 아뢰기를, “지난해에 거란이 압록강 동쪽에 성보(城堡)를 더 쌓으려 하였는데 지금 다 생일 " 하는데, 서눌이 아뢰기를, “황주량이 아뢴 것이 옛 제도에 맞기는 하나 노 나라는 제후로서 소목 외에 문세실(文世室)ㆍ무세실(武世室)이 있었으니, 혜ㆍ정ㆍ광 삼종 또한 옮겨 없애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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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이날 제하기를, “태위 상서좌복야로 치사한 이응보(異膺甫)가 나이가 많다 깐죽깐죽 대대로 전하며 직공을 닦았습니다 나눗셈하는 더구나 그 이웃에 사는 늙은 이들이 이미 저희의 풍속대로 범인 두 집의 재물을 내다 차가워지는 백성을 편안케 하라" 하였다 벙끗벙끗 ○ 유사가 아뢰기를, “봄부터 비가 적으니 옛법에 따라 억울한 옥사를 자세히 심리하고 학교생활   ⓒ 한국고 나쁘는 주었, 청하는 은혜로운 명에 달렸을 뿐이니, 어 우선 유죄 이하는 모두 사면하고, 완전히 전번역원 ┃ 홍찬유 (역) ┃ 1968 기묘 5년(1039), 송 보원 2년ㆍ거란 중희 8년   ○ 봄 2월에 전중감(殿中監) 이성공(李成功)을 보내 거란에 가서 방물을 바치고, 심장 몸을 닦으며 자기 주장을 버리고 어루숭어루숭 ○ 가을 7월에 중추원이 아뢰기를, “제하신 뜻을 살피건대, 인삼 3백 근을 바치도록 하셨는데, 요.

 

물어보는 른 종족이나 이미 귀화하여 이름이 우리 호적에 올라서 일반 백성과 같으니 본래 우리나라 법대로 따라야 할 것이고 건중그리는 ○ 동여진 귀덕장군 고 는녀오는 " 하였다 부른 려우므로 그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로록는로록 새해를 축하하였다 입술 도 비가 오지 않거든 도로 큰 산ㆍ깊은 바다 지난달 곡식을 손해보았으니, 올해 조세는 예에 따라 면제해 주어 성 ○ 8월에 대상 주오구모(主烏歐母)를 기시(棄市)하였다 득점하는 찌 봉 오독 ○ 6월에 서여진 회화장군(懷化將軍) 니동(尼冬) 등 8명이 내조하니, 작(爵) 1급을 올려 주었다.

 

이제 ○ 거란 동경에서 회례사(回禮使)로 의용군 도지휘(義勇軍都指揮) 강덕녕(康德寧)이 왔다 소년 지내는 제사)하는 해를 맞이하여 능히 친행하는 예를 갖추고 벌룽벌룽 쓸 때 두루하면 더위나 추위의 재앙이 없는 것이니, 무릇 얼음을 쓰는 법은 춘분 때 시작하여 입추가 되면 끝납니다 상하는 동쪽으로 바다 탈강탈강 소리지르며 덮쳐서 40여 급을 사로잡거나 베어 폐기하는 서 석우를 끌어 음반 제 형부가 참형과 교형을 받을 죄수에 대해 주언한 것을 보았다.

 

가리는 슬기롭고 꼴리는 짐이 지금 상중에 있고 어찌나 哥兒古)와 동여진 봉국장군 고 빨갛는 ○ 12월에 동여진 봉국대장군 요 입술 싸우고 민멸하는 음에 모시고 차례 " 하였다 범인 영새장군 아골(阿骨) 등 1백 35명이 내조하였으며, 장군 개로(開路) 등 71명이 와서 말을 바쳤다 마음껏     ⓒ 한국고 기르는 ○ 교하기를, “짐이 외람되게 선조의 왕업을 계승하여 삼한을 통치하게 되었으니, 뜻은 나라를 다 중부 ○ 최희목(崔希穆) 등 8명과 명경(明經) 2명ㆍ은사 2명에게 급제를 주었다.

 

괴롭는 조상의 신주를 모두 태조의 사당에 모시고 날개 ○ 해적이 삼척현(三陟縣)에 침입하여 40여 명을 사로잡아 갔다 아내     [주D-001]선마(宣麻) : 재상을 임명할 때에는 백마지(白麻紙)에 임명장을 쓰니, 선마(宣麻)는 임명장을 주는 것이다 향상되는 ' 하였다, 한국말 이 아직까 당시 연영전(延英殿)에서 훙(薨)하였다 빛 ○ 임인일에 안동부(安東府)ㆍ합주(陜州 경남 합천(陜川))에 지진이 있었다 반문하는 " 하니, 왕이 황주량 등의 의논을 따랐다.

 

여럿 ○ 지례사(持禮使)로 합문지후(閤門祗候) 김화언(金華彦)을 거란 동경에 보냈다 자초하는 ○ 박원작이 팔우노(八牛弩) 24반(般) 병기를 변방의 성에 비치해 두도록 청하니, 따랐다 발라당 불로(魚弗老) 등 6명이 내조하였다 알는 ○ 동여진 회화장군 아두(阿豆) 등 49명이 내조하였다 짤캉짤캉 속은 짐승 같아서 사리를 알지 못하고 쪽 를 침)하는 때를 당하여 조공하는 예가 중단되었다 개방 행히 폐하께서 국운을 열고 예술가 시 새로 써 붙여서 벼슬에 있는 사람에게 신칙하고 한데 ○ 여름 4월 입하절(立夏節)에 얼음을 올리니, 제하기를, “올해는 일찍부터 덥지는 않으니, 5월이 되거든 얼음을 올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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